"서문시장은 물건값도 싸지만 물건을 사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습니다".
12일 오후에 찾은 대구의 큰 시장인 서문시장 4단지 3층. 250여개의 의류판매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이곳에는 하루종일 쇼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가게마다 진열된 각양 각색 옷들은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손님과 상인간 물건값 흥정으로 왁자지껄한 모습이 영락없는 재래시장이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곳만은 아니다.
4단지 3층 상인 30여명이 모여 만든 봉사모임인 '43인회'가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눠 주고 있는 것.
서문시장의 발전을 위해 지난 1982년 만들어진 '43인회'는 그동안 홀로 사는 노인과 불우청소년에게 의류를 나눠주고 수재민 돕기, 노숙자 지원사업 등 22년째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멀리 강원도.경기도의 양로원.고아원에까지 봉사범위를 넓히고 있다.
모임 회장인 전치완(48.대구 평리동)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인들이나 노숙자들의 우울한 표정에 힘이 빠지다가도 옷가지와 생필품을 놓고 갈 때마다 손을 붙잡고 연신 고맙다고 말하는 이들을 보면 힘 난다"고 말했다.
모임 첫해부터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는 박대정(45.대구 대신동)씨는 "시간없어 목욕시켜 드리거나 위안잔치를 열거나 하는 노력봉사를 할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들이 봉사를 시작한 동기는 단순했다.
한창 호황이던 시절, '번만큼 사회에 돌려주자'는 누군가의 제의로 시작했다
마침 회원중 한명이 부모를 일찍 여의고 고생을 많이 한 터라 가까운 양로원을 찾아 이불이며 옷가지를 나눠준 게 봉사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쉬는 날이 없고 종일 자리를 지켜야 하는 직업 특성상 어려움도 많았다
틈틈이 회원 몇사람이 짬을 내 고아원과 양로원을 돌기 시작한 게 벌써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동안 지원품도 많이 변했다.
정우호(45.대구 대신동)씨는 "봉사초기인 80년대에는 주로 연탄이나 옷가지가 주를 이뤘고 90년대 들어서는 이불이나 생필품이 인기가 많았고 2000년대는 주로 현금이 환영을 받는다"며 "옷가지 등 비인기 지원품들이 복지관 등의 창고에서 주인을 찾지 못해 남아 있을 때는 가슴이 아프다"고 씁쓸해 한다.
그래서 요즘은 무작정 도움을 주기보단 사전에 무슨 품목이 필요한지 '사전조사'를 하든가 아니면 아예 현금으로 불우이웃들을 지원한다고. 따라서 최근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매달 2만원씩 모은 회비로 비용을 대다가 수재민이 생기거나 지하철참사 등 대형사건이 터지면 별도로 돈을 모금하기도 했다.
그러다 10여년 전부터 아예 '불우이웃돕기'통장을 만들어 관리해 오고 있다.
매년 200만~300만원 정도가 모인다.
30년 넘게 서문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김만곤(55.대구 대곡동)씨는 "날씨가 점점 추워지지만 우리 주위에는 겨울나기 힘든 노인과 장애인 집이 아직도 많다"며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노인과 장애인들의 그늘진 얼굴이 환히 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창희기자 cc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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