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과 희생이 무엇인지를 알리고 떠났어요".
13일 오전 11시30분쯤 대구 경북대병원 외래병동 9층 소아중환자치료실. 몸집이 작고 왜소한 어린이가 누워있는 병상을 7, 8명의 어른들이 안타까움과 젖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권민기(8)군. 민기는 이날 세상에서의 마지막 호흡을 마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짧은 시간이나마 머물렀던 흔적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병상위에 올라 있었다.
지난 5일 건강상태가 악화돼 입원한 뒤 장기뇌사판정을 받고 부모의 동의 아래 장기기증을 하게 된 것.
민기는 출생후 1년여쯤 지나서도 뇌주름이 생기지 않아 지능발달장애와 함께 뇌성마비를 앓게 된 중증장애아. 말을 못하고 뇌만 또래 아이들보다 커지는 바람에 걷기마저 어려워 누워 지낼 때가 많았다.
아버지 권성하(40.달성군 화원읍)씨는 "집에서 키우다 사정이 어려워 6세때 수성구 만촌동 보림사에 있는 장애인생활시설에 맡겼다"면서 "자주 찾아보지 못했는데…"라며 병실에 들어서지도 못한 채 복도벽에 기대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민기 곁에 앉아 그 모습을 계속 새기려는 듯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이날 병실을 찾은 후원자들 역시 새근거리는 민기의 마지막 호흡소리에 못내 안타까워 했다.
보림사내 '룸비니 동산'에서 3년여간 민기와 함께 생활한 진영주(25.여)씨는 "말은 못하지만 늘 밝게 웃고 음악을 들려주면 몸짓으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했다"며 "함께 지내면서 민기가 제일 기분 좋아하고 건강하던 때가 바로 올해였는데..."라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낮 12시30분쯤 민기가 누워 있는 병상은 3층 수술실로 옮겨졌다.
가족과 민기를 사랑하던 이들의 발걸음이 한걸음씩 옮겨질 때마다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민기의 장기적출은 오후 6시쯤 모두 끝났다.
송영미 병원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는 "민기의 장기는 모두 양호한 상태이며 간은 서울대병원의 2살짜리 아이, 신장 2개는 경북대병원의 환자 2명, 각막 2개는 충남대병원의 환자 2명에게 이식된다"고 밝혔다.
아버지 권씨는 "장기기증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민기가 그동안 받은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날 병원에 모인 이들은 "다음 세상에서는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나 생전에 좋아하고 신나하던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기 바란다"며 나지막히 이별의 말을 전했다.
1995년 7월17일에 태어났다는 민기. 8년3개월여의 힘들었던 삶을 마감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사랑하고 아꼈던 이들에게 해맑은 미소를 기억하게 했다.
모르는 또래 어린이에게 자신의 장기를 나눠 준 민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남기고 이날 우리 곁을 떠났다.
문현구기자 brando@imaeil.com
사진: 뇌사상태에서 장기간 생명을 유지해온 장애아동 민기군의 장기기증 수술이 열린 12일 민기군을 보살펴온 자원봉사자들이 경북대원에서 수술을 앞두고 마지막 간호를 하고있다.김태형기자thkim2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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