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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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폭력배의 무기는 가위

'조폭'(조직폭력배)들의 무기는 칼이나 도끼, 야구방망이가 고작이다.

가위를 든 폭력배는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다.

그러나 '조폭마누라'의 깔치는 예리한 가위를 휘두르면서 남성들의 세계를 정복해간다.

가위는 남성들에게 '거세(去勢) 공포'의 대상이다.

담벽에 '소변 금지'와 함께 그려진 가위는 그동안 남성들에게 무시무시한 응징의 표상으로 작용해왔다.

깔치의 무기가 가위인 것은 남성 위주의 세계, 권위주의적인 남성세계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조폭마누라'는 2001년 개봉해 관객 520만명을 기록했다.

한국영화 역대 4위. 하지만 사실 '조폭마누라'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아니다.

상업성에 매달리면서 설정이나 상황도 억지스런 점이 많았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한국사회에 대한 '여성의 도전'을 '조폭'과 연결시킨 점. 그동안의 '조폭영화'들이 간과한 부분을 자극한 것이다.

'조폭마누라'의 대표적인 광고카피는 '꿇어!'다.

가위를 든 여주인공이 매서운 눈으로 '꿇어!'라고 외치는 모습은 가공할 위력을 보여줬다.

'깍두기' 머리의 심복들이 '형님!'이라며 떠받드는 장면은 남성 위주의 세계에서 여성들에게 후련함을 던져주었다.

더구나 마지막 대결의 상대를 일본 야쿠자로 설정해 깔치에게 정당성까지 부여했다.

영화 속 남성은 두 종류로 나온다.

깔치를 추종하는 심복과 깔치를 해치려는 적대세력이다.

심복들은 모두 의리가 넘치고 충성스런 반면 적대 남성들은 대부분 사악하고, 치사하고, 좀팽이처럼 그려진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도 페미니즘 성향의 영화들이 많이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개같은 날의 오후'(감독 이민용.1995)이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페미니즘 영화는 대부분 적대적인 남성을 등장시켜 여성에 대한 핍박을 강조하고 여성들의 분투를 고무시켰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영화 '델마와 루이스'도 이같은 범주에 들어 있다.

그러나 여자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우뚝 선 여성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도 있다.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회사 노조를 승리로 이끄는 '노마레이'(감독 마틴 리트.1979)가 대표적인 작품.

'조폭마누라'의 경우 흥행이란 태생적인 한계가 보인다.

깔치를 결혼하지 못해 안달하게 한다거나, 가정에서 남성과 똑같은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남성에 대한 응징' 차원을 넘는 것이다.

그동안 남성 중심의 사회가 보여준 '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폭마누라'가 관객 500만명을 돌파하고, 헐리우드에서 미국판으로 리메이크되는 것은 남성 중심사회에 대한 '여성의 반란'이란 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한 때문일 것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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