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장인(匠人)들의 예술혼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석공예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시대의 아사달'이라 불리는 석공예 명장 윤만걸(51)씨를 찾았다.
윤 명장의 작업장은 경주 남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기리는 통일전을 지척에 둔 곳이다.
신라 석조문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경주남산 자락을 끼고 있어 작업장 위치 또한 의미가 남다르다.
새벽 5시30분. 동이 트려면 이른 시각이지만 작업장은 벌써 돌가루로 뿌옇다.
300평 남짓한 작업장에는 12지신상 불상 돌거북 석탑 석등 당간지주 그리고 성모마리아상까지 돌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죄다 있다.
윤 명장을 찾아 석공예 체험을 부탁하자 "중간에 도망만 가지마소"라며 못을 박는다.
처음 맡은 일은 돌거북 만들기. 가로 세로 2m×3m, 높이가 가슴 가까이 이르는 거대한 원석이 눈 앞을 가로막는다.
십장생 가운데 하나인 거북은 불상 다음으로 제작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윤 명장이 망치와 정 잡는 법과 돌을 내려칠 때 주의할 점을 세심히 일러 줬다.
초보인 내게 정교한 조각을 맡길 리 만무하다.
"이왕이면 기초부터 배워야지요". 윤 명장이 네모난 원석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눈대중으로 '먹 나누기'를 했다.
"이 부분을 이 만큼 털어내소. 그 다음 세밀한 부분은 내가 맡으면 되니까." 그는 거북이 목 아래 부분의 건석을 털어내라고 지시하고 며칠 전 시작한 불상의 마무리 작업을 위해 일어섰다.
건석 털기는 정교한 공정에 앞서 불필요한 부분의 돌을 뭉텅뭉텅 털어내는 작업. 윤 명장에게 "망치질을 잘못해 머리부분이 왕창 떨어져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묻자 "자신 있거던 그래 보소"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윤 명장이 시키는 대로 정과 망치를 고쳐 쥐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오늘 체험을 위해 어제 밤 붙잡고 늘어지는 술꾼들의 유혹을 모두 물리치지 않았는가. 잠시 거대한 바위를 한눈에 제압하려는 듯 쓱 훑어보고 망치를 높이 들었다.
'탕' 너무 힘껏 쳤나? 순간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손에서 빠진 망치는 한참을 날라 근처에서 일하던 윤 명장의 큰아들 동천(27)씨에게로 곧바로 날아갔다.
생사람 잡을 뻔했다.
새파랗게 질린 그는 저만치 떨어져 다시 근처로 오지 않았다.
조심조심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탕! 탕! 탕!' 망치를 힘껏 연달아 내리쳤지만 한 번에 떨어져 나간 돌은 모래알 크기다.
한참을 끙끙대고 있으니 윤 명장이 "돌에도 결이 있고 암수가 있다.
힘으로 하면 1년을 해도 건석을 다 털어내지 못한다"며 연장을 건네 받아 시범을 보인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돌은 거짓말처럼 뭉텅뭉텅 떨어져 나간다.
몇번의 망치질로 대번에 거북이 머리윤곽이 드러난다.
하루종일 거북이 머리와 씨름했다.
11월의 햇살은 이내 떨어지고 어둠이 찾아들었다.
팔 다리 허리 어느 한군데 쑤시지 않는 곳이 없다.
마침 윤 명장의 부인이 마당에 피운 모닥불에 돌을 얹어 달군다.
그 옆에는 지난번 엑스포에서 선을 보였던 포석정 조각이 놓여있다.
윤 명장은 사발그릇에 소주를 가득 따룬 뒤 물이 담긴 '포석정'으로 흘려 보낸다.
완벽한 포석정의 재현이다.
이어 돌에 구워진 삼겹살이 나왔다.
분위기 탓일까 소주 큰병이 순식간에 비워졌다.
"돌일을 하는 사람들은 독주를 많이 먹어야 해. 독주로 목에 쌓인 돌가루를 씻어내려야 하니까". 이 말을 믿어도 될까? 술이 몇 순배 돌고 거나해지자 윤 명장은 "이제 돌일도 옛날 같지 않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내가 돌일을 처음 배울 때는 말이야, 누구 하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 12지신상을 깎으려고 김유신장군 묘를 수도 없이 들락거렸지. 오토바이를 타고 12지신상을 보고 와서 만들고 생각이 나지 않으면 또 가서 보고…".
윤 명장은 통일신라 석탑예술의 최고 걸작품으로 꼽히는 국보 제12호 감은사 동탑을 그의 손으로 재현했다.
또 폐탑으로 남을 뻔했던 경주 남산의 천룡사지 석탑과 늠비봉 5층탑, 기암골.지암골 3층석탑, 용장사지와 용장7사지 3층석탑이 모두 그의 손에 의해 새 생명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 석공예의 명맥이 끊길 판이다.
그나마 두 아들이 돌일을 배우겠다고 나서 위안을 삼고 있다.
"이 기자, 하루 일하고 우리 사는 모습을 다 알 수 있겠소. 내일 또 오소. 내일은 작품을 설치하러 가요". 취기가 오른 윤 명장이 다시 오란다.
갑자기 술이 확 깬다.
밤새 끙끙 앓다가 다음날 새벽 다시 집을 나섰다.
경남 양산 통도사내 백련암에 석탑과 수각(돌물통)을 세우기 위해 새벽 일찍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새벽부터 내렸다.
"이런 날은 한겨울보다 오히려 일하기가 까다로워요. 물 묻은 돌은 손에서 빠지기가 쉬워서 더욱 조심해야합니다.
손은 손대로 시리고…". 오늘 할 일은 수각(돌물통)과 석탑을 앉히는 작업이다.
기중기와 굴삭기 등 현대화된 장비는 무거운 돌을 세우고 다듬는 작업을 손쉽게 했다.
작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끝났다.
이 수각은 멋진 자태로 백련암을 찾는 많은 이들의 갈증을 풀어줄 것이다.
그러나 석탑은 본당과 떨어진 산기슭에 있어 장비의 접근이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사람의 힘으로 운반했다.
뜻하지 않게 과거 작업방식대로 일하는 행운(?)을 얻었다.
1층갑석과 기단 탑신 등 각 부분을 목도로 운반했다.
4사람이 1개조를 이뤄 발맞춰 나가야 했다.
때문에 요령을 피울 수가 없다.
한 사람만 삐끗해도 전체가 부상을 당한다.
호기심 반 부추김 반으로 등떠밀려 목도를 했다.
죽을 맛이었다.
체험을 마치고 보니 목덜미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다
오늘은 어제 일과 전혀 딴판이다.
망치질이 손에 익었는데 아쉽다.
중장비가 지원되지 않자 윤 명장은 드잡이방식으로 석탑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드잡이는 과거 현대화된 장비가 없었던 시절 무거운 석탑의 균형을 잡기위해 인근에서 구한 나무로 이마대(이마를 맞댄다는 뜻)로 묶은 것을 말한다.
이마대 밑으로 물레같이 생긴 회롱틀을 도르레에 연결한 것으로 양쪽 줄을 번갈아 당겨서 중장물의 중심을 맞춘다.
이 방식은 현대화된 장비보다 오히려 세밀한 것이 특징이다.
작업은 순조롭게 끝나 오후 4시30쯤 경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윤 명장은 한동안 말이 없다.
"내가 올해 초 무형문화재 지정을 신청했어. 공적내용을 모으고 문화재청에 자료를 보내며 법석을 떨었지. 내 개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게 아니야. 돌일을 이으려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석공예 분야에서 무형문화재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해 나섰어".
갑자기 말문을 연 그의 얼굴에 회한과 피곤이 배어있다.
오늘도 윤 명장과 술을 한잔 나눠야 할 것 같다.
경주.c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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