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78세로 별세한 교육자.아동문학가이며 깐깐한 국어학자였던 이오덕씨와 '몽실언니' '강아지똥' 등의 동화를 쓴 권정생씨. 어린이 문학을 위해 평생을 바친 두 사람이 1973년부터 86년까지 주고받은 200여 통의 편지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한길사)에 실린 두 사람의 편지들에는 질박한 삶과 따뜻한 우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 사람 사이에 편지가 오가기 시작한 것은 1973년. 이씨는 경북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었고, 권씨는 안동에서 교회 종지기를 하며 결핵에 걸린 몸으로 동화를 쓰고 있었다.
"어느 골짜기 양지바른 산허리에 살구꽃 봉오리가 발갛게 부풀어올라 아침 햇빛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괴로울 때마다 저는 권 선생님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편안한 생활 속에서는 결코 참된 문학을 할 수 없다는 진리를 생각해 봅니다"(이오덕). "이오덕 선생님,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 끼 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권정생). 소박하면서도 꾸밈없는 삶과 문학에 대한 두 사람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권씨가 첫 동화집 '강아지똥'을 내려 했지만 대부분의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다.
오직 한 사람 이씨만이 책을 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는데, 출간 작업의 진척 상황을 권씨에게 편지로 일일이 보고하는 것이나, 돈 없어 결핵 치료약을 사먹지 못하는 권씨를 위해 5천원씩, 1만원씩 편지에 끼워 보내는 모습이 가슴 뭉클하다.
아동문학과 문학계의 현실, 아동문학작가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도 편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대체로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성인문학가들보다 노력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어린이를 미숙하고 유치한 존재로 보고 있듯이 아동문학을 그렇게 가볍게 취급하고 있으니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사람들이 여가선용이나 취미로 하지 않듯이, 우리 아동문학도 온 생애를 바쳐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권정생). "동화란 것을 심심풀이 오락물로 읽는 백만 명의 독자보다 단 백 명의 가난한 그러나 슬기로운 어린이들과 진실한 삶을 찾는 젊은이들이 읽어 주는 것이 더욱 기쁘고 보람있는 것이지요"(이오덕).
요즘도 안동에서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는 권씨는 "5년 전쯤 이 선생 댁으로 찾아뵌 것이 생전의 마지막 만남이었다"며 예상보다 빨리 다가온 이별을 아쉬워했다.
20년 넘게 오간 편지는 이승을 떠난 이오덕씨에게 띄우는 권정생씨의 독백글로 끝을 맺는다.
"선생님 가신 곳은 어떤 곳인지, 거기서도 산길을 걷고 냇물 돌다리를 건너고, 포플러 나무가 서 있는 먼지 나는 신작로 길을 걸어 걸어 씩씩하게 살아 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 이 담에 우리도 때가 되면 차례차례 선생님이 걸어가신 그 산길 모퉁이로 돌아가서 거기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