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망각의 저주' 끔찍한 정체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면, 죽은자의 영혼은 저승 앞을 흐르는 '망각의 강' 즉 '레테'의 강물을 마시면서 생의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다.

사람들은 망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망각이 없다면 이 세상은 너무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고통과 아픈 기억을 잊지 못한다면 삶이 얼마나 고단할까.

사람 가운데 3분의 1에서 2분의 1은 늙어가면서 가벼운 기억력 감퇴를 경험한다.

그러나 이같은 일상적인 기억력 감퇴와 달리 '노망'(老妄)은 저주이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모두 파멸시킬 수 있는 이 끔찍한 질병의 정체는 무엇일까.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솅크가 지은 '망각-알츠하이머병이란 무엇인가?'(민음사 펴냄, 이진수 옮김)는 이 병의 원인과 증세 및 전망에 관한 체계적인 보고서이다.

사상가 렐프 월도 에머슨, 전 미국 대통령 레이건 등 알츠하이머병에 희생된 유명인사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생명연장의 꿈과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의학에세이이기도 하다.

알츠하이머병은 노인성 치매 가운데 6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사소한 뇌졸중으로 야기되며 증상도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한 다발경색성 치매의 경우 원인이 알려졌고 치료 및 예방도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알츠하이머병은 불행히도 아직 원인과 치료법이 밝혀지지 않았다.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한 명 생길 때마다 희생을 감수해야 할 주변 사람이 여럿 생긴다.

간병은 24시간 이뤄져야 하며 이같은 상태가 길게는 20년 동안 이어질 수도 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알츠하이머병은 향후 50년 이내에 인류의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 확실시된다고 저자는 우려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의 기억시스템과 정체성에 대해서도 의문 부호를 던진다.

1953년 25세 남자가 뇌 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 남자는 수술 이후부터는 기억이 축적되지 않았다.

60세 노인이지만 이 남자에게 25세 이후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저자는 이 남자의 사례를 통해 현실이 기억을 왜곡.변형하며 순수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깨운다.

기억은 망각의 도움으로 기능하며 결국 망각은 결함이 아니라 활발한 신진대사이며 숨겨진 미덕이라고 저자는 설파한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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