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유엔(UN)의 위상

어제 아침 우리나라 조간 신문에도 실린 유엔(UN) 사무총장 코피 아난의 사진은 현재의 유엔 위상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 군인들이 죽어 나가고, 구호의 손길을 호소하는 민간인이 늘고 있는데도 그는 페루 마추픽추 유적지에서 한가하게 잉카 제례의식에 참가하고 있었다.

세계 평화와 질서를 위해 봉사해야 할 국제기구의 책임자가 풍전등화의 급박한 시점에 저렇게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지 보통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국 부시 정권의 일방적 패권주의(Imperialism)가 유엔의 무력화를 자초한 세기적 모순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엔 산하 국제적십자가 이라크에서 폭탄 세례를 받은 후 유엔은 현장 책임자를 120명에서 30명으로 줄이고 대부분 철수했다.

유엔 뿐 아니라 미국의 민간구호기관 케어(Care), 영국의 빈민구제기관 옥스팜(Oxfam)도 맥을 못추고 철수를 서두르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이들 외에도 세계 분쟁 현장 어디에서나 활발한 활동을 벌여 칭송이 높던 국경없는 의사회(Project Coordinator of Doctors without Borders)도 이라크에선 그들이 사용하는 자동차나 건물에 깃발이나 로고를 지우거나 감추고 활동한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분쟁이나 사고 지역에서 구호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군이나 테러리스트들의 전략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반군이나 테러리스트들은 중무장한 군인들과는 달리 비무장 상태로 민간인들 속에서 일하는 구호단체 요원을 습격하기가 쉬울 뿐 아니라, 이들의 참상이 미국의 강경론자에 대한 반대여론을 불러일으키는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 시절때부터 유엔은 중구난방의 많은 나라들이 모여, 설왕설래나 하기 때문에 실효가 없다며 유엔을 폄훼하고 대립각을 세워 왔다.

그리고 부시 정권은 이같은 유엔의 무력화를 한층 강화해 유엔의 승인도 없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겠다고 큰 소리 쳐 왔다.

▲그러나 웬걸 미겳?연합군이 이라크와 아프간 전선에서 다시 궁지에 몰리자 유엔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다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들은 부시의 호전적 일방주의(Unilateralism)가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다시 다극화(multipolar)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 유엔의 역할 강조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우리의 딱한 입장을 보며 당당한 유엔 깃발아래서의 파병이 하나의 해결책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최종성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