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나간다면 이제 더이상은 숨을 곳이 없습니다'.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본격 단속이 시작된 17일 오후. 대구시 남구 대명동 외국인노동상담소에는 외국인 근로자 150여명이 초조와 불안감이 잔뜩 서린 표정으로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당국의 단속을 피해 이곳을 찾은 불법 체류 근로자들. 대구.경북의 공단과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던 이들은 15일을 전후해서 하나둘씩 정든 일터를 버리고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 이날까지도 찾는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언제 여기서 나갈지는 저를 포함해 여기 있는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 일을 할 수 있을때까지는 참고 기다릴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스리랑카 출신 타이르(34.가명)씨는 앞날에 대한 걱정을 '비장함'으로 대신했다. 이 곳이 불법체류 딱지가 붙은 외국인근로자들에게는 '코리아 드림'의 끈을 끝까지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인 것.
다양한 국가 출신들이 모인 만큼 이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체불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 브로커에게 큰 돈을 주고 한국으로 왔는데 아직 제대로 돈을 모으지 못한 사람, 고국에 있는 가족을 위해 돈을 더 벌어야 하는 사람... 이들 모두 한국 체류를 고집해야 될 이유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최소한의 의식주마저 보장되지 않는 '감옥보다 못한 감옥(?)' 생활을 기약없이 견뎌내야 한다.
현재 외국인노동상담소내에 마련된 방은 모두 4개. 건평이 고작 15평에 불과한 3층 건물의 지하와 1층에 있는 비좁은 방 4개마다 40여명씩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지내야 하는데 이들 모두가 사용해야 할 화장실과 세면대도 1개에 불과하다.
'강제 추방'을 선택하지 않는 한 좁은 상담소 건물 밖으로 한발짝도 나갈수도 없는 형편인 것. 물론 상담소측도 정부의 '사법 처벌' 경고에도 불구,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끝까지 보호할 방침이다.
김동현 상담실장은 "쌀과 기본적인 부식은 준비돼 있지만 각국 근로자들이 먹는 음식이 달라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하기가 어렵다"며 "합법적으로 취업허가를 받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찾아와 음식을 전달해 주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는 17일 오후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 강제추방 반대 및 근로조건 전면 합법화에 대한 결의대회와 기자회견이 있었다. 회견에서 김경태 대구외국인상담소 목사는 "외국인 근로자 강제추방 문제는 법적 문제를 떠나 인권보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한 뒤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외국인 근로자들은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왔다"며 "앞으로 조금만 더 일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출입국관리사무소와 경찰은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단속에 나섰으나 18일 오전까지 대구.경북 지역을 통틀어 성주 지역에서 불법 체류자 두명을 적발하는데 그쳤다.
특히 당국이 '인권침해 논란'을 우려, 대구 외국인상담소와 서울 명동성당 등 추방대상 외국인근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단속에 나서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여 이들의 농성은 상당히 장기화 될 전망이다. 문현구기자 brando@iameil.com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국가 위기에도 정쟁 골몰하는 野 대표, 한술 더뜨는 與 대표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김건희 특검법, 대통령 거부로 재표결 시 이탈표 더 늘 것" 박주민이 내다본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