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우리나라 언론계는 그 어느 때보다 격랑이 심했던 한 해로 기록되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기존의 언론계 관행에 일대 개혁의 바람이 불었는가 하면, 최근에는 디지털 TV전송방식과 관련하여 정책결정 과정에서 정통부와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간에 상반된 견해로 극심한 대립양상을 보이는 등 언론계의 긴급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정통부는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통신센터빌딩 1층 약 60여평 규모의 공간에 미국식과 유럽식 디지털TV방송을 비교.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을 마련하고 대국민 홍보에 들어갔다.
이 전시관에는 HDTV를 통해 현재 국내 수도권에서 방영중인 미국식 HD 방송과 유럽의 표준화질(SD)급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나란히 전시하면서 'HDTV(아날로그의 4~5배 화질)'가 'SDTV(깨끗한 아날로그 수준인 표준화질)'와 비교해 화질에서 앞선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통부의 이번 홍보는 여러 가지 점에서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
우선 화질의 차이만을 고려한 HDTV와 SDTV 비교는 자칫 국민에게 극히 일부의 진실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마치 HDTV는 미국식이고 SDTV는 유럽식이라는 이분법적 인상을 줌으로써 올바른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곧 방송위원회와 더불어 해외 조사도 할 예정인데 왜 굳이 국민의 세금을 낭비해가며 전시관까지 먼저 만들어 수용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지 모르겠다.
정통부는 지난 97년 미국식 전송방식을 채택해 수도권에서 방송 중이며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의와 MBC 등 일부 방송사에서는 이를 중단 또는 연기를 주장해오고 있다.
이미 기술적 측면에서 고화질인 미국식이 이동수신에 큰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고 유럽식은 표준화질이지만 이동수신에 강하다는 것이 증명됐다.
난시청의 문제를 안고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이동수신성이 가능한 유럽방식이 미국식에 비해 훨씬 선호될 수밖에 없다.
21세기가 모바일(mobile) 시대라는 것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미국식의 이동수신 취약성에 대해서는 정통부도 할 말이 있다.
지상파 DMB 서비스로 보완하면 된다는 것이다.
정통부의 주장대로라면 차량용 지상파DMB 수신기 개발에 또다시 추가로 예산낭비가 발생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국민의 부담인 커진다는 사실이다.
현재 200에서 최고 2천만원까지 호가하는 HDTV를 어떻게 일반화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에서 HDTV보다 한 단계 낮은 SD(표준화질)TV 방식을 채택한 것은 HDTV 수상기가 기존 아날로그 TV보다 20% 이상 비싸면 구입하지 않겠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미국 방식을 택한 나라는 캐나다 외에 실질적으로 한국이 유일한데 수익규모만을 고려한 정통부의 주장은 결코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정책결정의 주도권을 갖고있는 정보통신부가 제대로 된 여론조사나 의견수렴 없이 소수 관료의 주도 하에 미국식으로 관철시키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다.
정통부가 미국식 전송방식을 고집하고있는 이유가 산업적 측면을 고려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 또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유럽방식을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대미 수출엔 사실상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와 방식이 다른 유럽에도 PAL 방식 TV를 수출하듯, 디지털 TV 전송방식에서 유럽식을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기술상 전혀 문제없이 미국에 디지털 TV를 수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다원화된 방송환경에서 정부가 추진해야할 정책의 핵심 과제는 무엇보다 방송의 공정성, 공익성, 다양성의 보장은 물론 산업적 육성과 그 혜택이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분배될 수 있도록 민주적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하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모적 진실게임으로 국력을 낭비하지말고 한시라도 속히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민주적인 방법과 절차로 전송방식을 결정해야만 한다.
디지털TV 전송방식을 둘러싼 논쟁이 자칫 소수 관료들만의 주장대로 관철된다면 이는 실로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최경진 대구가톨릭대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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