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잠보! 케냐(중)-아세미 사막의 사람들

나이로비의 국내선 전용 윌슨(Wilson) 공항. 성서 속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따온 듯 '사마리아인의 지갑'이라는 이색적인 이름의 경비행기에 올랐다.

케냐 동북쪽의 와지르(Wajir)까지는 800km 거리. 자동차로 가면 12시간이나 걸리는 데다 워낙 험한 오지여서 때때로 산적들이 출몰하므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경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다 한다.

30분쯤 지나니 아프리카 대륙에서 킬리만자로(5,895m) 다음으로 높다는 마운틴 케냐(5,199m)의 정상이 운해 위로 불쑥 솟아있다.

그 부근의 고산지대는 최고급 커피 원두 생산지라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와지르 지역은 온통 짙고 연한 분홍빛. 점점이 박힌 검은 나무들과 어울려 거대한 분홍 표범의 등짝같다.

광대한 반사막지역이지만 눈으로 보기엔 몹시 매혹적이다.

와지르 비행장 근처 이탈리아인 수녀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한 후에야 분홍빛 땅의 비밀을 알았다.

모래 자체가 여느 사막과는 달리 온통 분홍색이었다.

케냐에서 3번째로 큰 지역이지만 인구는 매우 희박해서 와지르 전체 인구는 32만명 정도. 모두 8개 지역(Province)으로 나뉘며, 그중 1개 지역은 '케냐 소말리' 지역이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이웃국가인 소말리아 출신의 소말리족(族)이며, 기독교 인구가 압도적인 여타의 케냐인들과는 달리 인구의 99%는 이슬람교도이며 그것도 열광적인 수니파 무슬림들이다.

숙소 근처의 가톨릭특수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와지르 지역내 69개의 초등학교 중 맹인과 정신지체 아동들이 함께 다니는 학교로는 유일하다.

541명의 전교생 중 맹아가 15명, 정신지체아가 8명. 교사들이 수소문으로 장애아동들을 찾아 데려온다고 한다.

부모들이 장애자녀를 부끄럽게 여겨 숨기기 때문에 실제의 대상 아동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교사 및 수용시설 부족 등으로 더 이상 받기는 힘든 실정이라고.

누르 모하메드 교장은 시각장애아 중 3명은 해외 시각장애인 지원단체의 도움으로 점자타자기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평균 12세인 동급생보다 4세나 많은 아부카르 아브디는 그간 익힌 점자 타자기로 'Dear Sir, Im going home'이란 문장을 쳐보였다.

8학년생인 바샤라(17)도 이전엔 작은 칠판을 갖고 다니며 받아적는 식으로 공부를 했으나 2년 전부터는 점자타자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방문지는 마코로(Makoror) 농장. 현지인들이 아세미 사막이라 부르는 반사막지역을 지나가야 한다.

차바퀴가 푹푹 빠지는 아세미 사막 역시 온통 짙은 분홍빛 모래지대다.

아케시아 나무들 사이로 간간이 유목민인 소말리족들의 움막이 보인다.

우리네 초가지붕처럼 둥그런 모양인데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은 위에 마른 풀들을 덮었다.

맨땅에 자리 한 장 깔면 그만일뿐 서발막대 휘둘러야 거칠 것 없이 텅 비었다.

유목민들은 언제나 그렇게 가볍게 떠날 준비를 하며 사는 모양이다.

마코로 농장은 월드비전 호주의 지원으로 인근 주민들이 협력해서 꾸려가는 농장으로 5개의 풍차가 돌고 있었다.

'포포'라는 이름의 열대 과일나무가 늘어선 이 농장은 2001년에 10m 깊이의 샘을 파서 주민들의 식수와 농장 작물재배에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토마토, 옥수수 비슷한 모양의 카사바, 고추, 메이즈 등의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언뜻 보기엔 농장이라 하기엔 초라할 정도로 작은 규모다.

월드비전 케냐의 와지르 지역 담당자인 존 카리(48)씨는 그래도 이 농장의 샘 때문에 유목생활로 떠돌던 주민들이 정착하게 되었고, 자립생활의 터전을 다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점심 후의 방문지는 레헬리(Leheley) 초등학교와 레헬리 보건소.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유유히 나뭇잎을 뜯어먹는 초원의 신사 기린과 날렵한 모양의 가젤영양, 낙타들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간 사라져간다.

레헬리 초교는 지난 94년 월드비전 코리아가 교실을 지어줘 한국과 인연이 깊다.

전교생 250명인 이 학교의 모하메드 두바트 하산 교장은 "이전엔 교실이 없어 나무 밑에서 공부를 했지요"라고 말했다.

반사막지역이라 낮의 햇살은 눈이 아롱거릴 만큼 부시고, 신발을 파고드는 모래는 참기 힘들만큼 뜨겁다.

나무도 별로 없는 허허벌판에서 뙤약볕 아래 수업을 했다니 얼마나 고역이었을까.

하산 교장은 또 "교실이 생겨 좋긴하지만 여학생용 화장실이 없어 고민"이라고 하소연했다.

소말리족은 딸들에게 초등교육마저 잘 안시키는 데다 조혼풍습으로 딸이 15세 정도면 결혼시키는 경우가 많은 탓에 과거엔 여학생들이 적었다고. 그러나 점차 여학생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화장실이 필요해졌지만 돈이 없어 화장실을 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집이 가까운 여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후다닥 뛰어갔다오지만 집이 먼 아이들은 그냥 참거나 각자 알아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레헬리 초교에서 100m쯤 떨어진 레헬리 보건소는 월드비전 코리아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위탁을 받아 건물을 지어 지난 2000년 3월 문을 열었다.

인근 지역 주민 3만명이 그 대상. 소말리족 간호사 스와디아(26)씨가 예방접종과 간단한 질병치료, 투약, 임신부 정기 검진, 출산 등을 돕고 있다.

하루 보통 20명 내외의 환자가 찾아오며, 전문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병원으로 보낸다고 한다.

보건소 운영을 위해 주민 15명 내외로 구성되는 커뮤니티가 있어 지역내 무슬림 지도자인 이맘이 이끌고 있다.

보건소 관계자들은 "학교와 보건소를 도와주는 한국인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 "보건소가 더 확장되었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나타내기도 했다.

전경옥 siriu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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