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은 휴가 "가라-못간다" 신경전

"김대리, 휴가가 아직 20개가 넘게 남았네. 웬만하면 소진 좀 하지 그래".

"부장님, '방콕'할 휴가를 왜 냅니까? 저도 도리가 없습니다".

2003년 마감을 불과 40일 앞두고 일선 기업체 사무실마다 적체된 연월차 소진을 놓고 휴가사용을 독려하는 고급간부들과 연말에 돈으로 돌려받겠다는 중하급 직원들간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포항공단 ㅇ사 직원 이상수(38)씨는 연월차를 합쳐 현재까지 미사용 휴가일수가 22일이나 되지만 사용계획이 없다.

주5일제 근무가 시행되면서 사실상 매주 연휴를 즐기는 마당에 추가 휴가를 얻을 필요성이 없었던 것. 이씨는 연월차 수당으로 연말에 180만원 가량을 추가로 받기로 마음을 정했다.

반면 회사측은 '제발 휴가 좀 가라'고 떠밀고 있다.

일부 휴가자가 나오더라도 업무에 큰 차질이 없는데다 막대한 액수의 임금성 경비 추가지출은 연말 결산기 자금운용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

최근들어 일부 업체에서는 '적치휴가 소진대책'이 임원회의나 운영회의의 최대 주제로 떠오르면서 부분적으로 억지성 휴가실시도 불가피하게 됐다.

모 대기업에서는 솔선수범 차원에서 팀장급 이상 고급간부들이 1주일씩 장기휴가를 내면서 부하직원들에게 간접적인 압력을 넣기로 했다.

또 12월로 넘어가면 휴가자가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고 내부적으로 이달 마지막 한주를 동계 휴가기간으로 정한 업체도 등장했다.

따라서 오는 24~30일은 한여름에 버금가는 휴가성수기가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모 업체 인사팀 김 모(39) 과장은 "휴가가 늘어난 올해는 입사 10년차 이상이면 휴가가 15일이상 남아있는게 보통"이라며 "미사용 연월차 휴가의 금액환산지급은 법정사항이어서 회사측이 휴가사용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게 현실적 한계"라고 말했다.

한편 사용자단체와 일선 기업체 등 경제계에서는 각급 학교가 정상수업을 하는 이상 기업체의 주5일 근무제는 겉돌 수밖에 없고 연월차 휴가적치도 문제가 될 것이라며 정부가 현실에 맞게 학교의 주5일 수업제를 조기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