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광장'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최인훈(67)씨가 1984년 단편 '달과 소년병' 이후 19년 만에 신작 단편소설 '바다의 편지'를 발표했다.
장편소설 '화두' 이후로는 9년 만의 작품이다.
계간지 '황해문화' 겨울호(통권 41호)에 실린 이 작품은 잠수함 승무원의 이야기를 통해 본 한반도의 분단된 현실, 냉전 이데올로기 속의 바다와 이를 극복하는 바다를 그리고 있다.
소설 속 청년 수병은 공작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지 못한 채 바닷속에서 죽고, 사자(死者)의 입으로 분단의 현실과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최씨는 이 작품에서 "참다운 한 줄의 시를 아무도 쓰지 않는다 칼보다 더 무서운 사랑의 냉혹함을 제 몸에만은 대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씨는 1994년 20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장편 '화두'를 펴낸 이후 또 다시 신작 발표를 중단했다 이번에 새로운 작품을 내놓았다.
우리 문학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문학적 완성도 등의 측면에서 이번 작품은 여러모로 문단의 관심을 끌고 있다
"어머니. 오래지 않아 이렇게 부를 수도 생각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최씨는 이 말을 처음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요즈음 자주 보는 물고기떼가 여기저기서 나를 건드리며 지나간다.
물고기떼의 한 부분은 내 눈 속을 빠져나간다…여기저기 흩어진 나…".
소설은 공작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지 못한 채 바닷속에서 죽은 청년 수병의 독백으로 이뤄졌다.
수병이 남한의 병사인지 북의 병사인지는 알 수 없다.
"접근해야 할 해안까지는 아직도 먼 위치에서 나는 공격당하였다.
.모선으로 돌아가려고 뱃머리를 돌렸을 때 큰 타격이 있었다.
.내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내 눈자위를 넘어 물고기들이 드나들고 있었고 내 몸통과 팔다리도 백골이 되어 있었다".
백골은 자신이 타고 온 일인승 잠수정을 보면서 자신이 죽던 날의 기억을 더듬는다.
이어 백골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무수한 기억과 바다의 움직임 속에서 혼란스러운 의식의 흐름을 내뱉는다.
독백 틈틈이 이탤릭체로 쓰인 시 한 편, 1962년에 발표된 중편소설 '구운몽'에 이미 삽입된 자작시 '해전(海戰)'이 삽입돼 있다.
시는 잠수함에 탑승한 젊은 수병들의 죽음, 원인도 알지 못하는 전쟁의 와중에서 바닷속에 수장된 고혼들이 도시의 어항 속의 붕어로 귀환하여 그 죽음의 안타까움과 어처구니없음을 전하고 있다.
시는 그대로 소설의 골격이 되는 익사한 수병의못 다 한 말들인 동시에 작가의 외침이다.
"어머니, 부디 안녕히 계세요. 다시 만날 그때까지". 소설은 수병의 의식이 흐려짐과 동시에 끝맺는다.
최씨는 1959년 단편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으로 등단, '광장''회색인''구운몽''화두'등 남과 북의 냉전 이데올로기와 정치.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소설을 썼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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