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 길라잡이-소리내어 읽기 직접 경험 풍성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전파가 되었다…'. 장정일이 김춘수의 시 〈꽃〉을 패러디한 작품의 앞부분입니다.

그런데 시를 감상하는데 있어서 소리내어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뜻으로 이 시를 다시 패러디한다면 이렇게 되겠지요. '내가 소리내어 읽기 전에는/그는 다만 차가운 활자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 활자들을 소리로 변주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한 편의 시가 되었다…'.

시를 읽는 독자의 목소리도 그 시의 일부이며, 시는 소리내어 읽혀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소리가 언어의 뿌리이며, 시의 언어는 고조된 생명의 언어로서 불가사의한 리듬을 타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노래하는 그림이요, 그림을 그리는 마음의 음악이기에 소리로 접근해야 시의 바다에 온몸을 풍덩 담그는 직접 경험이 가능합니다.

특히 아이들의 시 공부에 있어서는 이 소리내어 읽는 활동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를 소리내어 읽는 행위에는 여러 층위가 있습니다.

처음 대하는 시의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 더듬더듬 소리내어 읽는 것이 단순한 음독이라면 문장의 형식적 장애를 극복하고 속뜻을 상상하며 감정과 정서까지를 표현하는 음독을 낭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를 외워서 낭독하는 활동을 낭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낭독 또는 낭송은 음악의 연주와 같은 차원의 창조활동이지요. 〈당신은 모르실 거야〉라는 가요를 혜은이가 처음 불렀을 때와 이를 리메이크하여 핑클이 불렀을 때 그 느낌이 매우 다르듯이 김소월의 〈산유화〉는 한 편의 시이지만 낭송으로 듣는 〈산유화〉는 낭송자에 따라 여러 편이 되듯이 말입니다.

이렇듯 시 낭송은 시를 재창작하는 일이며 시가 지닌 아름다움을 내 마음의 무늬로 육화하는 일입니다.

'새는 새는 남게 자고/쥐는 쥐는 궁게 자고/어제 왔던 새각시는 신랑 품에 잠을 자고/꼬꿀꼬꿀 꼬꿀할매 영감 품에 잠을 자고/납딱납딱 송어 새끼 방구 밑에 잠을 자고/우리 같은 아이들은 엄마 품에 잠을 자지'. 〈엄마품〉이라는 이 전래동요를 제재로 수업을 전개할 때, 조용히 눈으로만 읽도록 한다거나 내용이나 주제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기보다는 우선 소리내어 읽도록 해야지요.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금방 2음보 또는 4음보의 운율을 타고 동요 속의 세상으로 달려 갈 것입니다.

책상을 두드리거나 몸짓을 곁들이며 온몸으로 이 동요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아동문학가.문성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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