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시 남구 봉덕동 서정구옹

"하는 일이 없으면 세월이 지겹고 병도 생기는 겁니다.

나이 들었다고 일을 손에서 놓으면 안 돼요.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일을 갖고 움직이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길입니다".

서정구(79.대구시 남구 봉덕동)옹은 경로당에 거의 나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주머니가 말라서도 아니다.

푼돈을 건 화투놀이나 서로 비슷비슷한 넋두리나 늘어놓으면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일이 즐겁고 건강에도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장성한 네 자녀 모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어 직접 나서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형편은 되지만 서옹은 집에서 청국장을 만든다.

청국장 연륜이 깊다 보니 이웃 사람들로부터 '청국장 할아버지'로 불린다.

처음 시작할 때와는 달리 지금은 소일거리로 하고 있지만 벌이도 꽤 쏠쏠하다.

하루 한 갑 정도 피우는 담뱃값과 거의 매일 두 병씩 먹는 막걸리값은 충분히 떨어진단다.

청국장 제조는 서옹이 지난 80년대 초반부터 해오던 일. 당시 서옹은 직원 30여명을 데리고 대구시 북구 칠성동에서 15년 정도 운영하던 도금공장을 막 처분하고 집에서 쉬던 중. "3년 전 세상을 떠난 집사람이 조금은 억척스러운 편이었어요. 집사람은 내가 도금공장을 하면서 돈을 제법 벌어 줄 때도 시장에서 노점상을 했는데 내가 도금공장을 처분하고 나니 자기가 판매할 청국장을 나에게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부인의 요구를 수용했지만 처음엔 실패가 많았다고 한다.

" 발효를 잘못시켜 콩 한 가마를 그대로 버린 적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즘은 콩을 익히는 정도나 온.습도 조절에 실패하는 경우가 없다.

"삶은 콩을 볏짚을 깐 상자에 넣어 60시간 정도 발효시켜야 구수한 맛이 나는 청국장이 된다"고 말하는 서옹은 3, 4시간마다 온.습도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발효시킬 때는 집을 거의 비우지 않는다고.

서옹이 만드는 청국장은 주문을 하고도 최소한 나흘은 지나야 먹을 수 있다.

주문에 대비해 미리 만들어놓지 않고 주문이 있어야 제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국산콩만을 원료로 사용하고 발효촉진제나 방부제 등을 전혀 쓰지 않는다.

단골은 40~50명 정도. 대부분 일반 가정의 주부이지만 식당과 반찬점 주인도 있다.

지난해 11월 아들이 한 인터넷 사이트에 '청국장 사랑'이란 카페를 열면서 다른 지역민들의 주문도 제법 들어온단다.

서옹이 청국장 제조를 위해 일하는 일수는 월 평균 15일 정도. 주문이 없는 날이라고 손을 놀리지 않는다.

다른 일은 낚시찌를 만드는 것. 낚시를 좋아하는 아들 때문에 시작한 것인데 하루 종일 만들면 7, 8개를 완성해낸다.<

"청국장을 만들든 낚시찌를 만들든 작업을 위해 앉았다 섰다 하면 하루가 후딱 지나갑니다.

아플 틈이 없어요. 그게 남는 것 아니겠어요"라며 서옹은 활짝 웃었다.

송회선기자 song@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