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50억원이 담긴 상자들이 다이너스
티 승용차에 모두 실릴까, 또 이 현금을 실은 승용차는 주행에 문제가 없을까'
현대 비자금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재판
을 맡은 서울지법 형사3단독 황한식 부장판사 심리로 21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
까지 실시된 이색 현장검증에서는 이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이번 현장검증은 검찰측 공소사실처럼 무게만 500∼600kg에 달하는 40억∼50억
원의 현금을 승용차로 전달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변호인측이 요청한 현장검증 제안
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결과다.
검증은 현금무게 측정과 현금상자의 제작, 적재, 수송 등 4단계로 진행됐으며,
대검에서 3명, 변호인측에서 3명이 참석했으나 지난번 신라호텔 현장검증 때 직접
현장에 나와 검찰측 주장을 반박했던 권 전 고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검찰과 변호인 간에 시종 신경전이 벌어지는 등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진행된 이날 현장검증의 하이라이트는 수십개의 현금상자가 다이너스티 승용차에 들
어갈 수 있느냐는 점.
매번 전달된 금액과 현금상자 숫자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측 주장이 첨예하게 엇
갈리자 재판부는 2억원, 3억원 상자를 조합해 현금 40억∼50억원 사이에 나올 수 있
는 24가지 경우의 수를 실험해 보자고 중재했다.
현금상자 적재에 앞서 검찰은 서울지법 앞마당에 쌓인 상자가 의외로 많아보이
는지 "현금상자를 복사지로 채우다 보니 너비가 최대 5cm나 길어졌다. 이런 검증은
검찰에 상당히 불리한 요인"이라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변호인측 역시 '상자가 모두 적재될 것으로 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중요한
것은 적재 여부가 아니라 50억원을 싣고 주행하면 안전문제가 생길 수 있고, 승용차
로 현금을 옮겼다는 상황 설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내 현금 40억원의 적재가 시작됐고 상자가 하나씩 승용차에 실릴 때마다 양측
은 시종 굳은 얼굴로 이를 지켜봤으나 마침내 3억짜리 4개, 2억짜리 14개 상자의 적
재가 완료되는 순간 검찰과 변호인은 상반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진행된 차량 운행에서도 백미러, 사이드미러 등 시야에 장애가 없고 운전
에도 별다른 불편이 없었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분위기는 검찰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돌아섰다.
특히 운행 도중 교통체증이 심해 차량이 막히자 검증차량을 취재하던 일부 방송
카메라 기자는 지나가던 오토바이를 급히 세워 검증차량을 뒤따라가는 진풍경까지
연출하기도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던 검찰은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는
지 "실제로 벌어진 일을 파헤쳐 기소한 것인데 검증에 성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
니냐"며 기세를 올렸다.
이후 41억원에서 44억원까지 9차례 진행된 적재 실험도 모두 성공하자 변호인은
추운 날씨 탓인지 더욱 굳어진 얼굴로 "나머지는 됐으니 마지막으로 2억원짜리 25개
를 싣고 공소사실에 기재된 차량 이동경로대로 운행해 보자"고 긴급 제안했다.
반면 검찰은 "예정대로 다 진행하되 이동경로를 바꿔서는 안된다"고 맞섰으나
재판부가 나서 2억짜리 14개, 3억짜리 6개가 들어가는 검증에다, 2억짜리 25개를 싣
고 하얏트 호텔을 경유, 남산 일대를 운행하는 검증만 추가하는 쪽으로 타협이 이뤄
졌다.
그러나 나머지 2번의 검증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이날 실시된 11번의
검증이 모두 검찰의 판정승으로 끝난 것.
운전경력만 10여년으로 이날 다이너스티를 몰았던 이모씨는 "남산 부근의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 상자가 약간 앞으로 쏠리는 느낌은 있었지만 오르막길이나 평
지에서는 별다른 불안감 등은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현장검증이 끝난 후 변호인은 "현금을 싣고 달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승용차로
50억원을 운반했다는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며 "당시 압구정동
대로변에서 수십개의 상자를 옮겨싣는게 가능한지 추가 현장검증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서초동 법조타운내 모 은행 지점 2층 회의실에서는 은행에서 현금 5
억원을 제공받아 2억원과 3억원 상자의 무게를 재는 현장검증이 실시돼 2억원짜리
상자가 23.2kg, 3억원짜리 상자가 34.7kg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검찰은 처음에 1천만원짜리 현금다발이 상자에 다 들어가지 않자 일순 표정이
굳어지기도 했으나 가로로 누이고 세로로 세우는 등 몇차례 시도끝에 돈다발이 무난
히 상자 속으로 묻혀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한편 이날 검증에는 내.외신을 포함, 모두 4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 거물급 피고
인을 둘러싼 이색 현장검증에 쏠린 관심을 반영했으며, 검증 내내 취재진은 밀착접
근을 제한하는 법원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연합뉴스)
댓글 많은 뉴스
한동훈 이틀 연속 '소신 정치' 선언에…여당 중진들 '무모한 관종정치'
국가 위기에도 정쟁 골몰하는 野 대표, 한술 더뜨는 與 대표
비수도권 강타한 대출 규제…서울·수도권 집값 오를 동안 비수도권은 하락
[매일칼럼] 한동훈 방식은 필패한다
"김건희 특검법, 대통령 거부로 재표결 시 이탈표 더 늘 것" 박주민이 내다본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