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폭도와 애국시민

폭력 시위대 진압에 나선 프랑스의 젊은 장교가 시위대와 대치한 군중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나는 프랑스의 자유와 질서를 해치는 폭도들을 진압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여러분 중 대부분은 민주애국시민으로 보입니다.

제게는 폭도와 애국시민을 구별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1분 이내에 애국시민은 이 광장을 떠나 주시고 폭도들만 남아주십시오". 그러자 시위대 군중은 슬금슬금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고 끝내 위기감이 돌던 시위광장은 텅 비어버렸다.

몇년 전 데모 진압 경찰의 과격 진압을 지적하며 프랑스 장교 같은 지혜로운 진압의 여유를 권고해 썼던 글이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같은 따옴 글을 재인용해 본 것은 거꾸로 최근 빈발하는 각종 시위대의 도를 넘어선 폭력성을 지적하고자 해서다.

지난 시절때의 시위만 해도 경찰은 최루탄, 시위대는 돌을 던지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데모대가 돌을 안던지면 우리도 최루탄을 안쏘겠다는 경찰의 무석무탄(無石無彈)에 학생들은 '무탄무석'의 조어(造語)로 맞선 낭만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시위사태는 점차 내란이나 폭동으로 오인될 만큼 잔혹하고 파괴적으로 변해간다.

손에는 막대기 대신 날을 세운 쇠파이프와 죽창, 갈고리를 들고 돌 대신 화염병과 불붙인 가스통을 던지며 고무총에는 볼트와 너트를 끼운다.

공공기관에까지 화염병으로 불을 지르고 진압경찰에게 밥을 판 식당은 배신자로 몰려 테러를 당한다.

프랑스 장교 눈으로 본다 해도 민주사회의 질서 존중속에 자기 표현을 하는 애국시민은 단 열명도 가려내기 어려웠을 것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시위대가 이처럼 거칠어지고 파괴적이며 선동적인 집단으로 변화 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죽창부대나 테러집단같은 파괴적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는 것일까.

내 나라의 경찰이 북한 남파 무장공비가 아닐진대 쇠파이프 끝을 칼날처럼 갈아 찌르고 전기톱을 휘두를 수 있는 적대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화염병에 휩싸인 도심의 극렬 난투의 모습에서 만약 총이라도 쥐어진다면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길것 같은 두려움이 배어난다.

폭력은 주먹→칼→총→대포처럼 면역성을 더해갈수록 점점 더 폭력적이 된다.

의견과 입장이 다양할 수 밖에 없는 민주 사회에서 갈등과 분쟁, 자기주장의 대립적 표현은 어차피 존재하지만 폭력적인 갈등 표출은 더 큰 갈등을 증폭시킨다.

폭력시위에 대해 시몬 베유는 '노동일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억압이 약화되다고 느끼는 즉시 수년동안 소리없이 쌓였던 힘, 고통과 모욕감, 원한, 슬픔이 속박에서 풀려나 폭발한다.

이것이 바로 파업(폭력시위)의 전(全) 역사이다'. 우리는 그의 말에서 노동자.농민의 고통과 원한, 아픔은 앞서 들여다보고 미리미리 어루만져야 한다는 '배려'를 살피게 된다.

반대로 '국가 재정이 핍박하면 가계도 힘겨워지는 것이다.

언제나 쉽게 파업(폭력시위)에 들어갈 수 있는 노동자는, 자기 자녀를 질서를 사랑하는 인간으로 교육시키지는 못할 것이다(L 미트켄슈타인/반철학적단장)는 말에서는 비이성적 폭력시위의 절제가 왜 필요한가를 깨닫게 한다.

서로 살피고 스스로 깨달아야 같이 살 수 있다는 말들이다.

불법 폭력시위로 자신의 일자리를 잠깐 지킬 수는 있어도 멀리는 자기 자식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사실을 왜 모르느냐는 외국인의 뼈아픈 충고도 귀에 들어와야 한다.

그런게 안되면 나라의 경제도, 이익집단의 미래도, 개인의 희망도 사라진다.

그것은 명백하고 냉엄한 현실이며 우리는 공멸의 길을 피해 화해와 공존의 길로 즉시 우회해 재빨리 빠져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도 무슨 미움이 그리도 쌓이고 쌓였기에 쇠창과 진압봉으로 맞서서 피를 뿌리고 불바다를 이뤄야만 한이 풀린다는 듯 투쟁은 그칠 줄 모른다.

273명이 연간 800억원을 소모하고 1인당 9천655만원의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들이 이 눈치 저 눈치 표 계산에만 빠져 시급한 민생 법안 13가지를 미루고 또 미루는 꼴이 미워서인가.

대통령 측근의 억대 비리 의혹을 조사하자는 특검을 놓고 티격대는 권력층과 임금협상땐 앓는 소리 하면서 부패한 정치권에는 수십억원씩 뒷돈 갖다바치는 가진자들이 미울 수도 있다.

미움과 사랑, 슬픔과 즐거움 그 모든 것은 바깥 사물에 있지 않고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오늘의 이 다툼과 분열과 폭력적 저항은 서로의 마음의 눈에 때가 끼어 순리의 이치를 보지 못해서다.

잠시 죽창을 놓고 진압봉을 던진 채 폭도와 애국시민의 차이가 무엇인지 '마음의 슬기'를 들으며 묵상해 보자.

'오늘 내가 빈천하거든 베풀지 않았던 탓임을 알며 자식이 나를 돌보지 않거든 내부모를 내가 편히 모시지 않았음을 알라. 남의 탓은 내맘에 증오만 만든다.

빈천한 자 보이거든 나 또한 그와 같이 될 수 있을 것을 내다보고 미리 보시하라. 가진자 보고 질투하지 마라. 나름대로 베풀어서 받은 복덕이니라. 없는자 비웃지 마라. 베풀지 않으면 나 또한 그리되리라'.

김정길(부사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