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新 빈곤시대(1)-심화되는 빈부격차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부러움을 사는 나라, 단돈 몇 푼이 없어 한많은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손가락질 받는 나라. 경제난이 이어지면서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신용불량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도시 서민들과 농민들이 '벼랑끝 계층' 신(新) 빈곤층으로 급속히 흡수되고 있다.

힘겨운 삶에 절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속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이어가고 있는 이웃들의 얘기를 전한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영호(44.가명)씨는 지난 98년까지 포항공단내 대기업 관리과장이었다.

사업부문이 축소되면서 잘 나가던 그는 명예퇴직했고, 대구의 한 백화점 뒤편에 구이집을 차렸다.

그러나 그는 이른바 '막차'를 탔다

8개월 만에 3천만원을 까먹었고, 서너달 쉬다가 다시 구미에 있는 한 섬유업체에 취업했지만 얼마 못 견디고 다시 퇴사했다.

또 2001년 달성공단 중소기업에 총무책임자로 재취업했지만 결국 일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회사를 나왔다.

옷가게도 차려봤지만 또 실패했다.

한때 자신이 주인이던 옷가게에서 아내가 종업원으로 일하며 벌어오는 월수입 약 80만원과 간간이 벌어들이는 그의 일용직 건설노동자 임금이 수입의 전부다.

올해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6학년인 두 자녀는 포항의 외가에서 맡아 기르고 있다.

월 30만원씩 주기로 했던 양육비는 몇달이나 밀렸는지 모른다.

퇴직후 3년간 날린 돈이 8천만원. 대구의 20평형대 아파트에서 전세를 얻어 근근이 살고 있다.

이씨는 "대기업에서 일한 경험을 되살려 재취업한 회사측에 이런저런 건의를 했더니 '폼 잡는다', '건방지다'는 낙인이 찍혀 쫓겨나야 했다"며 "돈이 모이기는커녕 갈수록 빚만 늘어나고 있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나마 이씨는 전세집과 적지만 꾸준한 수입도 있다.

그러나 주위에는 말 그대로 재기불능 상태로 빠져든 빈곤가족들이 점점 늘고 있다.

영천 북안면에 사는 허모(39)씨. 한때 번듯한 싱크대 공장을 운영하던 그는 부도 이후 이곳으로 이사왔다.

경제적 문제로 부부싸움이 잦아졌고, 동반자살을 결심한 적도 있었다.

결국 아내는 이혼후 떠나갔고, 허씨 혼자 9세, 11세된 두 자녀와 생활한다

허드렛일로 생활비를 벌지만 아이들 뒷바라지는 엄두도 못낸다.

결국 허씨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됐다.

경산시의 경우 부양능력이 없거나 최저생계비조차 벌지 못하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는 11월 현재 4천434가구에 8천629명에 이른다.

이 수치는 매년 증가세를 보인다.

대표적인 농업지역인 의성 역시 기초생활수급자 수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올해 의성에서만 수급자 2천200여명 중 130명이 질병 등으로 숨졌지만 120명이 새로 등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장, 식당 등지의 일자리가 많았지만 최근엔 그나마 하늘의 별따기다.

간혹 일자리가 생겨도 업주들이 시간제로 고용하다보니 자활과는 거리가 먼 형편이다.

정부의 지원대상에서 제외된 극빈층도 상당수다.

조건이 까다롭다보니 몇 푼 안되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것도 일부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한 빛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게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는 가정을 파탄지경으로 몰고가며, 행복했던 가정을 빈곤의 나락으로 떠밀고 만다.

고령에 사는 장모(43.여)씨는 중학교 다니는 아들과 단 둘이 생활한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일하며 한달 46만원을 번다.

그러나 이달 초 자궁암 수술을 받는 바람에 빚만 170여만원 지게 됐다.

병원에 누워있는 날들은 고스란히 결근처리됐다.

이달 월급은 한 푼도 받지 못할 형편이다.

아내(38)와 세 자녀를 둔 가장인 최모(51.경주시 천북면)씨는 자동차부품 생산공장에서 일용노무자로 일했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했지만 어느날 갑자기 병마가 찾아왔다.

몸이 예전같지 않다고 느꼈지만 어린 자녀들의 앞날을 생각해 한푼이라도 아껴야겠다는 마음에 병원 가기를 주저했다.

뒤늦게 최씨는 피부다발근염이란 희귀 난치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근육이 점점 무기력해지고 몸의 면역체계가 무너져 버리는 무서운 병. 이미 암세포가 온몸에 전이된 상태. 아내는 나머지 식구들을 부양하기 위해 식당 허드렛일에 나섰지만 하루하루 한계를 절감할 뿐이다.

아내와 함께 도로변에서 떡볶이 장사를 했던 박모(32.영천시 창구동)씨. 여유있는 삶은 아니었지만 행복을 꿈꾸는 단란한 가정이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갑자기 심장병으로 쓰러졌다.

수차례 병원을 오가며 엄청난 치료비를 써야 했다.

행복했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생활비는커녕 3세된 딸을 어린이집에 맡길 돈도 구하지 못할 형편이다.

그나마 이씨는 최근 국민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천직으로 알고 수십년 몸 바쳤던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울릉도에 사는 김모(49)씨는 최근 20여년간 해오던 오징어잡이를 그만두고 육지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열심히 오징어를 잡아도 빚만 늘어나는 상황이었던 것. 경산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의 하숙비나마 아끼자고 온 가족 이사를 결정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이미 전학시켰다.

하지만 평생 뱃일만 해오던 김씨는 도시로 나가 어떻게 살지 막막한 심정이다.

역시 울릉도에 사는 한모(61)씨는 한우 50여마리와 함께 부농의 꿈을 키우다가 올초부터 공사장 잡부로 생활하고 있다.

10여년 전 사채를 빌어 한우 사육에 나섰으나 늘어나는 이자도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처했다.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공사장에 나선 것이 훨씬 속이 편하다는 한씨는 "어미 소 한마리에 빚이 100만원씩 매년 늘어나는 꼴"이라며 "일한 대가도 못건지는 나라가 무슨 나라냐"며 하소연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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