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의 모 여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여대생의 30%이상이 '결혼 후 아이 낳을 계획이 없다'고 응답하여 관심거리가 되었다.
이러한 조사결과가 신세대 여성의 출산기피 경향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들의 출산기피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사회의 여성 1인당 출산율은 1970년대 4명에서 현재 1.47명으로 급감하였다.
미국의 2.1이나 프랑스의 1.9보다도 낮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여성 1인당 출산자녀수가 2명일 때 현재의 인구가 유지될 수 있다.
출산율 1.47은 인구감소 및 이로 인한 각종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는 적신호이다.
이러한 위험수치가 큰 변동없이 진행되는 추세라면 2005년부터 우리나라 인구는 실제로 감소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인구학자들은 인구가 감소하면 노동력 부족현상이 초래되며, 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되고, 노인층 부양 비용이 증가하는 등 사회적 문제가 속출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슬로건을 내걸며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을 근대화의 상징으로 미화하던 사회적 분위기는 정반대로 바뀌어 버렸다.
이제는 아이를 적게 낳거나, 출산을 기피하는 여성은 국가의 미래와 사회의 기반을 뒤흔드는 위해요소로 주목받고 있으니, 이 급격한 세태변화에 현기증을 느낀다.
그러한 변화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을 단순히 여성들의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 내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의 결과라고 볼 것인가?
실제 우리는 주변에서 결혼이나 출산을 미루고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결혼보다는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미혼남녀, 결혼을 기피하는 독신남녀, 자녀양육의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며 출산을 미루는 직장여성, 사교육비를 걱정하며 한 명 이상의 자녀는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부들, 이들은 모두 결혼이나 출산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해주기보다는 짐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이를 회피하고 있다.
출산을 미루거나,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간에 기존 모성제도에 보이지 않는 조용한 반란을 벌이고 있다.
여성에게 전적으로 양육의 짐을 부여하며,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를 훌륭한 어머니로 미화하는 모성신화를 거부하는 몸짓이다.
우리사회에서 훌륭한 어머니로 산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훌륭한'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 희생하며, 자녀의 신체적, 정서적, 지적 발달을 완벽하게 수행해 내는 만능 어머니이다.
특히 지금 우리 시대가 계층상승과 지위 획득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교육을 강조함으로써 좋은 대학의 입학을 통해 자녀를 입신양면하도록 하는 것이 어머니의 중요한 의무가 되어버렸다.
기혼여성의 절반이상이 취업하고 있지만 우리사회의 양육문화는 전업주부를 전제로 하고 있어 취업 기혼여성은 직장과 가정을 양립하기가 벅차기만 하다.
신세대 취업 여성들은 이상적인 모성과 현실사이에서 좌절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모성을 거부하는 대안을 선택한다.
우리 정부도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육아비용이나 출산장려금을 지원하는 등 출산장려책 도입을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의 교육비를 일부 지원하고, 세금을 감면해 준다고 해서 여성들이 아이를 얼마나 더 많이 낳을지는 의문스럽다.
자녀양육이 여전히 여성의 역할과 책무로 남아 있다면 여성들이 출산을 흔쾌히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정부의 출산장려대책이 갖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은 서구에서 이미 입증된 바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자녀를 낳는 가정에 파격적인 지원을 하고 있으나 저출산은 지속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육아에 대한 어머니역할에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자녀양육이 여성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남편과 함께 나누어야 할 일이며 국가와 사회가 함께 안고 가야 한다는 의식이 보편화되고,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자녀의 (사)교육비 염려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때, 취업주부에 대한 양육지원이 전폭적으로 이루어 질 때, 자녀가 어머니만의 자식이 아닌 아버지도, 사회도 함께 키워야 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될 때, 자녀는 짐이 아니라 사랑과 생명의 신비를 선사하는 즐거움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화 대구가톨릭대 교수.여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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