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시가 외면당하는 시대'다.
시집을 찾는 독자들이 갈수록 줄어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집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현학적이거나 말놀음이 무성한 시들이 난무할 뿐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시가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문단에서 나오고 있다.
왜 이같은 일이 빚어지고 있을까. 이에 대해 시인들 스스로가 냉철한 진단을 하고 나서 문단 안팎의 주목을 끌고 있다.
시인 임동확(44)씨와 이선이(36)씨는 최근 한국 시의 작풍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두 사람은 계간 '시평' 겨울호에서 각각 '시의 낭만화와 삶의 불모화', '불꽃과 심연 혹은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라는 글에서 현실과 유리된 한국시의 '자폐적 경향'을 같이 문제삼았다.
우선 임씨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시인들을 거론하고, "그들의 시는 언제부턴가 지나치게 아름답다.
또한 지나치게 편안하다.
(…) 주로 은유에 바탕을 둔 그들의 시에서 나는 시적 대상보다는 시적 주체의 시야의 비대성을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의 은유적 구성 또는 낭만주의적 접근은 쉽게 읽히고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우선 자신들의 고유성과 개성, 특수성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며 "그것은 자신의 세계관이나 논리로 세계를 일방적으로 전유하는, 자기동일적이고 자기애적인 시적 사유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참다운 시의 생명력은 실재 자체 속으로 과감히 뛰어드는 모험 속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1990년대가 내 안의 심연을 파고들어가 '삶의 불꽃'을 되살리려는 견딤의 시간이었다면서도 "포스트모던한 삶의 풍광은 이 작은 불꽃들을 하나의 풍자와 위트로 혹은 역설적 아이러니의 경계에서 소비하며, 시대의 심연을 파고드는 뜨거운 불꽃으로 옮겨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사품과 복제품을 왕성한 생산력으로 착각하는 시인의 저 왕성한 창작력을 진실로 부끄러워하며, 자신의 모습에 유혹된 나머지 심연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르시소스적 비극의 주인공에게 탈전략의 전략이 필요할 때는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시인들이 다른 시인들이 내놓은 시를 어떻게 읽고, 시를 평가하는데 어떤 잣대를 갖고 있는가를 유추할 수 있는 책들도 잇따라 나와 같은 맥락에서 문단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계명대 교수인 이성복(51) 시인은 외국시를 읽고 그 시편들이 뇌리에 남겨준 잔상을, 다시 자기의 시어로 옮겨 적는 작업을 통해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열림원)을 내놨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비롯 네루다, 보들레르, 로버트 프로스트, 에즈라 파운드, 예이츠, 랭보 등의 시를 나름대로의 시선으로 독해하고, 자신의 시어로 옮겼다.
문정희(56) 시인은 유명 시인들의 시 65편을 골라 짤막짤막한 상념을 담은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중앙 M&B)를 펴냈다.
나희덕(37) 시인은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창비)에서 김수영의 시를 통해 전통의 진정성을 찾고자 했으며 정현종, 김지하, 강은교, 고정희, 김혜순, 장정일, 김기택, 최두석, 이홍섭, 장철문 등의 시를 분석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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