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아는 건 오직 복수 뿐...

이번 한 주가 즐겁기만 하다.

그 동안 코미디 일색의 한국영화에 갈증을 느꼈던 팬들에게는 독특한 연출과 관련된 두 편의 복수영화는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와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1편은 모두 '한 스타일 하는'것 뿐 아니라 이야기 구조가 관습적이지 않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너무나 관습적인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는 영화팬들에게는 조금 허전한 감도 없지 않지만, 영화광들에게는 원하는 것들이 넘쳐나는 영화다.

그들이 벌이는 복수현장으로 달려가 보자.

#복수의 5일-올드 보이

'오늘도 대충 수습하며 사는 인생'의 '오.대.수'는 딸의 생일날도 술에 취한 채 경찰서에서 행패를 부린다.

그러던 그가 공중전화기 앞에서 보라색 우산을 쓴 사람에 의해 어디론가 감금당한다.

빨갛고 노란 유치한 그림의 벽지, 차가운 침대, 식사가 들어오는 작은 구멍…. 그것이 오대수가 갇힌 방이다.

아… 또 한 가지. '웃어라. 세상이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라는 뜻 모를 글귀가 적힌 기분 나쁜 그림 한 장이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다.

자기가 왜 갇혀야 하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리고 얼마나 갇혀 있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때론 발버둥치며 때론 소리 지르며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정확히 15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는 비로소 풀려난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복수뿐이다.

잃어버린 15년의 시간만이 아까운 것이 아니다.

그는 어느새 부인의 살인범으로 지목당하고 있었고, 여자를 보아도 "여자 사람이다"하면서 놀랄 정도로 세상과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자신을 가둔 자가 친절하게 전화까지 걸어온다.

그로서는 약 오를 수밖에.

#빌을 죽여라-킬 빌

암살조직인 데들리 바이퍼의 리더였던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는 자신의 결혼식 날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갑작스런 공격을 받는다.

바로 자신이 은퇴한 킬러집단의 새로운 보스로 떠오른 '빌'이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고 조직을 재정비하기 위해 5명의 킬러들을 보내 총알 세례를 날린 것이다.

결국 신랑과 하객 등 아홉 명의 참석자들은 모두 살해당하고 신부만이 코마 상태에 빠진다.

죽은 줄 알았던 그녀는 5년간의 혼수상태에서 극적으로 회복하고, 복수를 꿈꾼다.

독특한 카리스마의 여전사 우마 서먼이 긴 공백을 깨고 복수의 화신으로 돌아왔다.

현란한 3단 발차기, 정통 쿵푸권법, 칼을 총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사무라이 검법….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 때문에 할리우드를 한동안 떠났다는 그녀가 맞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어쨌건 전직 킬러에서 네 살 난 딸의 어머니이자 가정주부가 된 버니타 그린의 가슴에 칼을 꽂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복수는 텍사스, 멕시코, 일본까지 이어진다.

참고로 타란티노는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숭배)의 일환으로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게 했다고 한다.

#복수는 아름답다, 하지만 끔찍하다

개봉된 두 편의 복수 영화는 모두 '그림 같은 액션'이 돋보인다.

오대수가 사설 감금방의 복도에서 망치 하나를 들고 16명의 조폭과 벌이는 액션신은 눈여겨 볼 만하다.

주인공의 파격적인 헤어스타일, 녹색과 자주색의 화면, 거액을 들였다는 펜트하우스 등 모두 정교한 시각적 효과를 노린다.

킬 빌에서도 하얀색 기모노를 입은 중국계 일본인과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브라이드의 대결은 단연 눈에 띈다.

흩뿌려지는 빨간 빛깔의 피들은 색들의 향연을 더욱 고조시킨다

두 편 모두 영화를 본 친구에게 줄거리만 듣자면 시시할지도 모른다.

복수 과정이 잔인하다 보니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판가름조차 헷갈린다.

하지만 직접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관객들은 오대수가 되고, 브라이드가 되어 버린다.

'왜 날 가둔 걸까'를 고민하고, '어떻게 복수할까' 궁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들은 거부감마저 들 정도. 치아를 하나 하나 뽑아 내거나 등에 칼이 꽂힌 채 활보하는 장면은 공포영화가 아님에도 눈을 감게 만든다.

킬 빌은 한 수 더 뜬다.

결국 심의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제한상영 판정을 받았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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