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의 여러 사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어질어질해 진다.
여야간에 싸우는 모습이 통상적인 모습은 넘어서 있다.
노사간의 갈등 역시 궤도를 이탈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역간 갈등, 이념적 갈등 - 이 모두가 우리 국민을 헛갈리게 하고 있다.
어느날 환경단체 간부가 필자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부안핵폐기장문제를 둘러싸고 정부대표와 부안주민 대표들이 모여 대화기구를 만드는데 위원으로 참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너무 바쁜 나머지 그 중대한 문제를 다루는데 들어갈 노고와 시간을 생각해 도저히 안되겠다고 간곡히 거부의 뜻을 정하였다.
그 후 외국여행을 하느라고 1주일을 지내고 왔더니 필자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그 대화기구의 위원으로 이미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그렇게 된 일이라면 뭔가 역할을 해서 이 분쟁과 절망의 시대에 뭔가 대화에 의해 문제를 풀어 우리 국민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하나 선사하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생각하고 회의에 참석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역시 도저히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논란이 거세게 진행되었다.
정부는 정부대로, 부안핵대책위원회는 위원회 대로 도저히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입장이 달랐다.
정부는 어찌되었든 그곳에 핵폐기장을 짓겠다는 것이고 부안군민들은 정부 결정의 백지화를 먼저 요구하는 것이 기본입장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희망을 발견하였다.
부안핵대책위 주민 대표들이 생각보다는 유연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백지화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정부의 입장을 배려하고 있음이 역연하였다.
더구나 함께 나온 환경단체의 간부들도 정부가 핵발전우선정책을 수정할 자세만 보이면 언제든지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함께 뭐든지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필자는 용기를 내어 정부에 제안하였다.
그 제안의 내용은 이러하다.
"현재 부안의 분위기로 보면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핵폐기장을 건설하기는 어려운데 그렇게 되면 굴업도, 안면도에 이어 이제 부안까지 주민의 반대 때문에 건설을 못하게 되면 이제 영원히 한반도 위에는 핵폐기장을 짓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일단 정부 당국자, 환경단체 간부, 지역 주민 대표, 학계 등 전문가 들로 구성된 제3의 독립위원회를 하나 만들자. 거기서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보자. 핵발전 의존도를 줄여나가면서 이미 생겨있는 폐기물을 저장할 장소를 찾아보자. 그 과정에서 후보지역의 주민들의 대표나 중립적인 시민단체 대표들과 함께 처음부터 논의하고 공개하고 상의하자. 부안지역도 배제하지는 말자. 그렇게 해서 몇년이 걸리더라도 정부와 환경단체, 지역주민들이 함께 합의하는 핵폐기장의 건설 모델을 하나 만들어보자".
주민들이 기를 쓰고 반대하면 더 이상 진전할 수 없는 것이 핵폐기장 건설계획이었다.
이미 다른 사례에서 잘 보고 알았으련만 정부 대표는 이런 제안에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
나중에는 시간이 아까운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여러 조사에서 주민들의 80% 이상이 반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 가면 정부의 부안핵폐기장 건설은 다시 백지화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번에도 정부가 한 것은 지난 70년대나 80년대의 밀실행정 - 그것에서 한걸음도 나아가 있지 못하였다.
주민들의 동의를 지역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심지어 개인들에게 배상이라는 이름으로 '매수'하고, 군의회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군수의 신청이 있다는 이유로 밀어붙이기식 행정을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과격한 집회와 시위까지 연일 벌였던 주민들에게도 잘못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원인은 어디까지나 정부측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주민대표들이 만약 억지주장을 하고 끝까지 자신들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면 필자는 마땅히 주민들을 비판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주민들이 받아들인 제3의 합리적인 제안을 정부는 무엇을 믿고 거절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난 70년대식의 방식이 그대로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 탓일까. 결국 이 대화기구는 깨졌고 지금 다시 부안에는 주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참여정부'의 시대에 21세기가 요구하는 '참여'는 없고 여전히 20세기의 아집과 독선이 지배하고 있다.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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