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가로수는 부끄럽지도 않은가

대낮, 바람과 몸 섞으며 깔깔댄다

엿보던 마음 한눈 파는 사이

잠깐 얼굴 붉히더니, 어느 새

한꺼번에 홀딱 벗어 버렸다.

저 부러운 당돌함, 나는 오히려

장롱 깊이 넣어둔 옷 한 벌 더

꺼내 입는데, 당당한 은행나무 향해

숨겨야 할 세상 하나 더 껴입는다.

김호진 '11월'

김호진은 참 정이 많은 시인이다.

그냥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그는 탑리라는, 부르기도 정겨운 곳에서 약국을 하고 있다.

하루 종일 지나가는 사람을 살피면서 사람 사는 삶과 가까워져 있다.

그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또 자연에서 인간을, 인간에서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도 가로수의 옷 벗음과 나의 옷 입음을 연결시켜 계절의 변화를 말하고있는데 이런 기법은 그만이 가진 독특함이다.

서정윤(시인.영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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