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풍요속 빈곤' 지역 건설사

"오죽하면 대구시에 대책을 요청했겠습니까".

전문건설업협회 대구시회는 900여 회원업체 가운데 75%선인 600여개 업체가 손익분기점인 연간 15억원 미만의 공사를 수주,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어 대구시에 SOS를 요청했다.

"지방진출 대형 건설사 영호남 본부장을 초청하여 지역업체의 하도급 참여를 도와달라"는게 건의의 주 요지였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최근 대구지역 아파트 공사장등에 지역 하도급 수주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대구지역 아파트 건설시장은 활황인데도 지역 소재 중소건설업체들은 일감을 구하지 못하는 '풍요 속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IMF 이전 지역업체가 맡았던 아파트 설계까지도 서울업체가 싹쓸이하면서 지역의 건축설계사무소는 행정관청의 인적 네트워크 활용 창구(대행)로 전락, 지역 주택관련산업 중 어느 한 분야도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의 900여 전문건설업체의 3/4인 600개 업체가 손익분기점은 커녕 벼랑 끝 경영위기에 몰렸다.

전문건설업협회 대구시회 권오형 회장은 "외지서 진입한 대형건설업체들은 작업 특성상 지역업체를 쓸 수 밖에 없는 콘크리트 등 전체 물량의 10%내외만 지역업체에 배정한다"면서 "아파트건설은 홍수지만 지역 전문건설업체들은 일감이 없어 도산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1년 이후 3년째 대구시내 곳곳에서 아파트 건설공사가 러시를 이루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건설관련 업체의 경우 타 업종과 달리 경기가 좋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지역의 대다수 건설관련 업체들이 아사(餓死) 직전 상황에 놓여있다.

기술력과 품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면도 있지만 서울에 소재지를 둔 대형 건설사, 즉 원청업체들이 지역의 건설업체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홀대하고 있기 때문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대구지역에서는 대구시종합건설본부 등 대구시 산하 기관이 발주하는 공사를 제외한 민간업체 발주 아파트공사장이 35개단지(2만여가구)에 이르지만 지역 전문건설업체의 하도급 참여비중은 평균 10%미만으로 극히 낮은 실정이다.

대체적으로 장비투입이 필요한 토공이나 철근콘크리트 공사에 대해서만 지역 업체에 하도급을 주고 있을 정도.

지역 건설업체들이 하도급을 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관급공사도 마찬가지다.

전문건설업협회 대구시회가 집계한 지역업체의 작년 하도급 수주액은 4천500억원으로 전체 물량(1조707억원)의 절반수준에도 못미치는 42%에 머문 반면 타 지역 전문건설업체들의 수주금액은 6천207억원(58%)에 달했다.

이처럼 대형아파트 건설은 물론 관급공사에서 지역 업체들의 참여가 배제되고 있는 것과 관련, 전문건설업협회 대구시회에서는 최근 대구시에 △지자체 발주공사의 원도급공사(전문성, 소규모복합공사)에 대한 지역 전문건설업체 발주 △시 및 산하기관 발주공사 하도급 의무 시행 △민간 발주공사에 대해 지역업체 참여비중 70%이상 유지 등 조치를 취해 줄 것을 건의했다.

이에 대구시는 지역 건설업체들의 공사 참여기회 확대에 의한 기술개발 등 경쟁력 제고를 목적으로 며칠 전 부터 대구시내 대형 공사장을 돌며 지역 건설업체들의 하도급 참여비율에 대한 전수조사를 펴고 있는 상태다.

◆타 시.도의 지역 업체 지원제도

전남도는 외지업체가 역내에서 공사수주시 하도급액의 45%이상을 지역 전문건설업체에게 주도록 관계기관 등에 협조 공문을 보내는 한편 하도급 대금 직접지급 확약서를 발부토록 하고 있다.

또 광주시는 지난 1999년부터 당해 공사 하도급 금액중 50%이상을 시내에 주된 영업소를 둔 전문건설업체와 의무하도급 체결토록 하고 있다.

또 인천시는 20억원 이상 공사 입찰시 하도급할 금액중 50%이상을 지역업체와 하도급 할 것을 입찰공고문에 명시하고 있고 경남도는 일반업체가 공사하도급을 할 경우 역내 전문건설업체에게 50%이상 하도급 하도록 입찰공고에 명시하는 등 시책을 쓰고 있다.

◆현지 업체들을 외면하는 이유

대형건설사들이 하도급업체로 지역업체를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취약한 재무구조 때문이다.

원청업체들은 하도급업체를 선정할 때 일의 숙련도도 따지지만 자금력과 도급한도 등 신인도를 보고 참가시킬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자칫 시공도중 부도가 나게되면 공기를 맞추지 못하는 등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력은 기본이다.

외지업체가 하도급업체로 참여할 경우 퇴근후 어짜피 갈곳이 없는만큼 기능공들이 밤늦게까지 '책임 시공'을 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지역 기능공들의 경우 타 지역에 비해 높은 노임에도 불구, 서둘러 퇴근을 하려는 구태 등으로 인해 원청업체들로부터 미움을 사는 경우도 있다.

지역업체의 시공품질이 외지업체에 비해 떨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롯데건설 피욱환 대구경북건축본부장은 "기술면에서 다소 수준이 떨어지더라도 가급적 지역업체에 하도급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사 입장에서는 시공도중 부도가 날 경우 전체공정에 차질을 빚기 때문에 자금력과 도급한도액 등을 감안치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역업체, 경쟁력 높여야

일반적으로 외지업체가 지역에 와서 공사를 하면 지역업체들에 비해 관리비 등이 더 들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 반대다.

같은 하도급 공사를 두고 지역업체들이 공사비를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는 게 업계 측 얘기다.

그만큼 지역 업체들이 가격경쟁력에서 뒤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일의 숙련도 면에서도 앞서고 비용 면에서도 싸다면 당연히 외지업체를 쓸 수밖에 없는 게 시장논리다.

따라서 지역업체들은 일을 주지 않는다고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대형건설사들이 찾아 일을 맡길 정도로 각 업종별로 신기술 개발과 함께 시공능력을 길러야 한다.

또 서울의 대형건설사 시공발주 관계자들을 초청, 그들이 요구하는 기술과 품질수준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에 맞는 눈높이를 능가하는 감동 시공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업체별로 일정액의 연구개발비 등을 투입, 정예 기능공을 양성하는 한편 신기술 교육을 지속화, 전천후 업체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갈 필요가 있다.

전문건설업협 대구시회 김용호 회원지원실장은 "업체별로 경쟁력 제고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

원청업체들로부터 홀대를 당하지 않도록 경쟁력을 갖추도록 내부적인 노력을 하는데 맞추어 행정기관의 지역 하도급 옵션의무조치도 강화돼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황재성기자 jsgold@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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