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헌법 체계상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재신임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
는지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형식상 요건 미흡을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림으로써
가부 자체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도출되지 않은 채 논란은 일단 봉합되게 됐다.
윤영철 헌법재판소장 등 5명이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정치적 준비
행위 내지 계획의 표명에 불과해 공권력의 행사인 법적 절차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을 내린 것.
그러나 김영일 재판관 등 4명이 낸 위헌 의견은 비록 헌재의 다수 의견으로 채
택되지는 못했으나 재신임 국민투표 가부 여부에 대해 상당한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
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시 말해 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 재
판관 중 재신임 국민투표가 합헌이라는 의견을 낸 사람은 한 명도 없고, 공히 위헌
이라고 결론을 냈다는 점.
9명의 재판관 중에 6명 이상이 위헌 의견을 내면 위헌으로 채택된다는 헌재의
결정 방식에 비춰 각하 의견을 낸 5명의 재판관 중에 2명만 더 위헌 의견을 피력했
다면 재신임 국민투표는 명백한 위헌이 되는 셈이다.
이번 결정만 놓고 보면 노 대통령이 국민투표안을 공고하고 다시 헌법소원이 들
어와 정식으로 위헌 심판대에 올랐을 경우 위헌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지 않느냐는
추론이 가능하다.
따라서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던 재신임 정국은 "국민투표 시기조정을 원할 경우
탄력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언급으로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이
날 헌재의 결정은 재신임 투표와 관련한 노 대통령의 행보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
용할 전망이다.
이날 소수의견으로 제시된 위헌 의견중 재판관들이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와
관련, 악용된 사례를 우려한 대목이 눈에 띈다.
이들은 "다수 국가에서 집권자가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에 대한 신임을 물음으로
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이용한 사례가 허다했다"고 지적, "국민투표
가 역사상 민주주의 발전에 해악을 끼친 신임투표가 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개헌 국민투표, 프랑스 샤를 드골 대통령의 69년 개헌안,
히틀러 독일 총통의 취임 등 최고통치자가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쓰
이는 신임투표인 플레비사이트(Plebiscite)는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이들은 또 대통령이 국민투표의 근거로 밝힌 헌법 72조의 '기타 중요정책'에 대
해서도 "중요정책이란 '구체적이고 특정한 정책'을 뜻한다고 봐야 한다"며 헌법상
대통령 임기의 절대보장이나 궐위 사유의 한정적 규정 조항에 비춰 재신임 국민투표
는 '중요정책'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 주목을 끌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댓글 많은 뉴스
경북대 '반한집회'에 뒷문 진입한 한동훈…"정치 참 어렵다"
한동훈, 조기대선 실시되면 "차기 대선은 보수가 가장 이기기 쉬운 선거될 것"
유승민 "박근혜와 오해 풀고싶어…'배신자 프레임' 동의 안 해"
"尹 만세"…유인물 뿌리고 분신한 尹 대통령 지지자, 숨져
법학자들 "내란죄 불분명…국민 납득 가능한 판결문 나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