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지역은 골짜기마다 문화유산이 널려 있다.
또 신라와 고려시대 문화유산인 사찰들도 지천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유산인 서원.서당.종택.재사들은 더 말해 무엇할까.
이는 모두 눈에 보이는 문화유산들이다.
하지만 안동에는 서민들의 애환과 울분, 한(恨)과 함께 했던 종교의식과 문화유산도 여느 지역보다 많다.
마을 전체의 안녕을 비는 동제도 그러하고 성주.조왕.삼신.칠성신 등 많은 집안 신들도 가정의 버팀목이 돼 왔다.
하지만 유형의 문화유산 가꾸기에만 힘써 소중한 무형의 문화유산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20~30년 전만 해도 농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성주신이 사라지고 없다.
이젠 케케묵은 보고서 더미에서만 성주를 만날 수밖에 없게 됐다.
안동대학교 임재해(민속학과) 교수는 지난해 안동지역 성주신앙에 대한 조사.연구서인 '안동문화와 성주신앙'이란 책을 펴냈다.
그나마 다행이다.
임 교수도 이 책에서 "가장이 없는 집은 있어도 성주가 없는 집은 없는 것처럼 가장과 상관 없이 집집마다 성주를 매고 모셨다"고 했다.
성주에 대한 옛 사람들의 귀의와 믿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국 곳곳에서 전승되고 있는 성주풀이에는 '성주 본향이 어디메뇨/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러라'라고 읊고 있다.
제비원의 솔씨를 받아 키운 나무로 집을 짓는다는 뜻이다.
집 짓기 전에 했던 터다지기 노래도 '이 터전에다 집을 질제/ 성주목을 모시어라/ 각도 목수가 다 모였는데/ 성주본이 어딜는가'로 전승되고 있다.
또 집을 지은 후 행했던 지신밟기에는 '이집성주 초가어른 초가성주로 모시고/ 이집성주 와가어른 와가성주로 모시고/ (중략) /모시자 모시자 이 성주로 모시자'라 노래해 '성주신'과 '집'을 하나로 엮었던 민심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서민들은 성주신에 대한 제의를 통해 가정의 안녕과 만복을 빌었다.
게다가 안방의 '삼신'과 부엌의 '조왕신', 외양간의 '마대지신', 변소의 '측신', 마당에 '노적지신', 우물에 '용왕신' 등 숱한 집안 신들 중에 우두머리로 '성주신'을 꼽고 있다.
가장이 가족을 통솔하듯 성주신이 집안 신을 통솔해 가정을 평안하게 한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신체(神體)를 만들어 모셨다.
한지로 접어 집의 마룻대나 대들보, 마루의 가장 가운데 기둥에 높이 걸어뒀다.
누가 봐도 성주신이 모셔진 것을 알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안동지역에서 조사된 성주신체로는 한지만 접어두거나 실타래와 한지를 함께 사용한 것, 그리고 성주단지에 곡식을 줄기째 꽂아 둔 것, 접이 한지에다 실타래를 걸치고 그 위에다 벼 등 곡식 이삭으로 치장한 것 등이 있다.
대주(大主:집안의 가장)의 나이가 성주운이 좋다는 37세, 47세, 57세일 때 성주 신체를 모셨다.
그땐 집안 어른이 손수 설치를 관장하고 보살을 불러다 재복과 행운을 축원하는 성주굿을 펼치기도 했다.
이렇게 설치된 성주는 그 때부터 대주를 대신했으며 대주가 사망시 '성주가 나갔다'고 해 함께 효력을 잃게 했다.
하지만 이제 집안신(家神信仰)들 중에 으뜸으로 모셨던 성주신앙이 사라지고 있다.
더러는 한국전쟁때 집과 함께 잿더미로 변했다.
새마을 사업과 신식주택 등 현대화에 떠밀려 또 한차례 수난을 당했다.
또 현대에 들면서 새로운 집안의 가장인 대주가 성주신 모시기를 꺼려 성주 신앙의 맥이 끊겼다.
이런저런 이유로 성주신앙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안동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제주도와 함경도까지 전국 골골이 모셔진 성주신의 본향인 제비원이 있다.
안동시 이천동 제비원에는 미륵불이 있다.
이는 안동이 사실상 가신신앙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성주신앙은 전통적 민속종교 양식인 굿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제비원은 안동의 상징일 뿐 아니라 민족 정서속에 깊이 깔린 정신적 지주였다.
하지만 지금 안동의 성주신앙은 어떠한가? 제비원이 있음에도 체계적 전승과 보존, 의미에 대한 연구노력이 부족하다.
전국에서 널리 전승되고 있는 '성주풀이'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성주풀이보존회가 있으나 무형 문화유산을 온전히 보존.전승한다고 할 수 없다
아파트.콘크리트 주택의 보급으로 집집마다 성주신앙은 사라지고 있다.
더구나 사회의 주축인 30, 40대들에게는 성주신에 대한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성주 생일날 아침에 어머니가 정화수로 공들이고 봉두밥으로 모셨던 기억이다.
특히 안동에서는 혼례를 치른 신랑, 신부가 집안 어른들에 앞서 성주신에게 절을 올렸던 적도 있다.
이처럼 성주신은 조상들의 삶에서 기쁨과 즐거움, 고통과 불행을 함께 해왔다.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이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장수와 가정의 행복을 지켜주었던 성주. 성주신은 새로운 조명과 연구를 통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재평가돼야 한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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