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엔부 선언'을 하시지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천하를 평정하고 정권을 쥔 뒤 제일 먼저 내세운 정치비전은 소위 '엔부 선언'이란 평화선언이었다.

'엔부(偃武)'란 무기를 거두어 쉬게 한다는 뜻으로 도요토미 가문을 멸망시킨 즉시 모든 무기를 거두어 창고에 넣고 자물쇠로 잠금으로써 두번 다시는 무기를 꺼내지 않겠다는 권력투쟁의 종식을 선언한 것이다.

그의 엔부 선언은 당시 정치세력간의 끊임없는 전쟁과 권력투쟁에 진절머리가 난 난세(전국시대)의 백성들에게 신선한 희망을 심어주었다.

도쿠가와는 난세에 권력투쟁이 판을 치면 반드시 하극상의 풍조가 나타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내다보았다.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면 신하도 신하다울 필요가 없다는 풍조가 나타나고 나아가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고 군주의 측근들이 신하답지 않게되면 백성 또한 백성다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권력(무기)을 창고에 넣는 대신 주자학을 도입, 대의와 명분의 도(道)를 꺼냈다.

다시말해 도(道)는 없고 권력을 위한 정치적 말재간이나 술수를 부리는 무도국(無道國)이 아니라 인(仁)과 덕(德)의 정치를 하는 유도국(有道國)을 건설함으로써 화합의 도를 세우자는 엔부 선언을 했던 것이다.

세치 혀의 백마디 정치적 말재주나 권력부리기보다 쇼오군 권력의 원천적 힘인 무기를 스스로 거둬들이는 화합과 행동의 정치가 300년 도쿠가와 막부정권의 흔들림 없는 기초를 이룬 셈이다.

도쿠가와의 엔부 선언과 유도국 이야기를 거론한 것은 노 대통령 집권 후의 지금 이 나라를 유도국과 무도국으로 구분해 본다면 어느쪽일까라는 의문과 함께 언제쯤 여야 정치권이 엔부 선언같은 걸 할 것인지가 궁금해서다.

많은 사람들이 '난세'라는 험한표현으로 현 시국을 말한다.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다고 여겨서인지 정치후배가 대통령을 배신자라 공개비판하고 측근 부하는 비리를 예사로 저지른다.

부안의 백성들과 철거민은 백성다울 필요가 없다는 심정이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극단적인 저항을 하고 있다.

기울어진 경제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살기 힘든 난세임엔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난세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모든 무기(권력)들, 예를 들면 특검거부권, 검찰권, 화염병과 죽창무기, 일부 신문방송의 편향적 보도권력, 야당의 민생법안심의 거부권, 단식투쟁, 이런 저런 각자의 '무기'들을 어느날 창고속에 다 쓸어넣고 자물쇠를 잠근 뒤 너도나도 도(道)의 자리로 함께 돌아간다면 난세가 풀릴까. 그래서 군주(대통령)는 군주답게 인과 덕의 정치를 펴고 신하는 신하답게 화합과 정직으로 군주의 정치를 도우며 백성은 백성답게 모두가 상생의 도를 따른다면 난세가 사라질까.

단식하는 야당 대표와 토론의 화해라도 해보라는 권유에도 양쪽다 "만나봤자 싸움밖에 더 하겠느냐"는 오기로는 상생(相生)의 화(和)와 도(道)의 정치를 기대하기는 글러보인다.

재신임, 특검, 파병, 부안사태를 싸고 오락가락 헷갈리게만 하는 입 가벼운 발언들에서도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다'는 불신을 내뱉는 백성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백성들 사이에 '백성다울 필요 뭐 있느냐'는 난세의 풍조가 나오고 화염병과 쇠창이 난무하는지 모른다.

참으로 좋은 조짐이 아니다.

인과 덕 대신 시종일관 적대적이고 전투적 사고와 옹고집으로 대응하는 무도국(無道國)의 술수정치는 희망을 낳지 못한다.

'정치적 대결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진 적이 없다'는 대통령의 어이없는 말에서 무기를 창고에 넣지않고 계속 움켜잡은 채 정치투쟁을 하겠다는 무도국적 사고가 배어나는 한 백성들은 희망은 못보고 절망만 보게 되는 것이다.

최 대표의 단식투쟁 또한 무기를 버리지 못한 집착의 무도(無道)정치다.

어느 논객의 표현대로 '둘다 똑같다'. 솔직히 취임후 보여온 노 대통령의 캐릭터와 이미지 성향으로 볼 때 엔부 선언 같은 건 곧 죽어도 안할 것 같고 그렇다고 군주의 변화를 포기한 채 난세의 고통을 앉아 당하고만 있을 수도 없다.

노 대통령님이 도쿠가와를 뛰어넘는 지도자가 돼라는 꿈까지는 못꾸더라도 말재간보다 인과 덕, 도 의 정치가 더 높은 정치임을 깨닫게 해줄 큰어른은 없는 것일까. 추기경님이 말해도 국가원로들이 충고해도, 언론이 쓰고 야당이 단식으로 말해도 요지부동, 콧방귀도 안뀌는것 같아 해보는 탄식이다.

더이상 싸우지 말고 서로서로 목에 힘을 빼고 권리를 양보하며 엔부선언을 해보자. 그러면 나라는 나라다워지고 백성들도 백성다워질 것이다.

김정길(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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