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미국원형과 한국의 대응방법

한국과 미국

아메리카 대륙 동녘 끝에서 애팔레치아산맥을 건너 서부로 진출한 개척자들은 1776년 13주가 뭉쳐 미국 독립을 선언한 이래 확장을 계속하여, 하와이 왕조를 무너뜨려 자국화한 후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을 강탈했으며, 아시아 대륙으로까지 시선을 돌렸다.

현재 50개 주로 확장되었고 세계 곳곳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미국은 생명, 자유, 행복 추구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보편적인 권리로 여기며 그것을 추구하는 나라이기에 자신들의 행위는 항상 정의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들의 원형에서 청교도적인 윤리성과 한편으로 세력확장 과정에서 보인 토착민 학살의 비도덕성이 섞여 이루어진 모순된 복합성이 내재되어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노선은 좌우로 흔들림이 있다.

특히 한.미 관계는 그 흔들림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1904년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桂太郞)와 미국 대통령 태프트 사이의 강도의 흥정과 같은 밀약을 통해 조선을 일본에 넘기고 필리핀을 차지했다.

또한 한반도를 미국의 방위권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김일성의 침범을 유발시켰다.

6.25 당시 미군이 출병하여 대한민국을 구했지만, 그후 카터는 주한미군의 전면 철수를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최근 클린턴은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했으나 부시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도 공언했다.

이렇듯 한국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미 정부 태도의 변화는 그들의 복합된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도 걸핏하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위협하는 데도 한국인은 의리니 우정 운운하며 대하고 있으니, 아마 미국 지도부는 속으로 비웃고 있을 것이다.

이라크 사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차기 미정권은 또 한번 극단적인 반대방향으로 갈 것이 분명한데, 미국의 대통령 선거나 일시적 정책변화에 우리 민족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오늘의 미국

미국은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빈약한 구식무기를 지닌 집단에도 미사일과 최신 폭탄을 퍼붓는데, 칼과 화살을 든 인디언에게 총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았던 기병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미 중남미의 도상국이나 베트남, 아프간, 이라크에서 무력을 과시했고,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악의 축으로 지명한 나라들은 모두 미국에 상대도 안되는 약소국이다.

미국은 원형에 따른 서부극을 계속 재연하는 것이다.

세계를 이끄는 위치에 서기 위해서는 로마의 예에서 보듯이 군사력이나 재력 외에도 보편성(설득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 중심주의에 빠져 범세계적인 환경문제, 범죄대책, 평화노력을 외면하고, 스스로 주동이 되어 마련한 UN조차 무시하면서까지 그 힘을 군사력에만 기울이고 있어, 미국 가치관의 보편성을 의심케 한다.

한편, 미국경제는 천문학적인 적자(연간 무역적자 4천억 달러)로서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의 자금유입에 의지하고 있다.

서서히 그 한계를 드러내며 기울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사대냐 용대냐

미국은 오늘날 한국에게 절대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이다.

현실적으로 핵우산에 의해 안보를 보장받고, 미국시장은 한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앞에서 외교적 언사는 고사하고 할 말을 못하고 그저 위대한 나라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또한 야당의 전 당수는 대선 직전에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 지지의 대가로 순종을 다짐, 스스로 미래를 개척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도층이 어떤 언행을 일삼아도, 호전적인 부시 정권 아래에서도 우리의 의지에 따라 개성공단, 철도, 육로 연결 등 통일을 향한 걸음을 걸어온 것은 자랑스러운 민족역량의 표시이다.

한국인은 스스로의 행동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인류역사는 억척스럽게 유지되어 온 김정일 체제가 외부의 힘에 의하든, 내부 붕괴로 무너지든 어차피 오래 존속될 수 없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붕괴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몰고 올 것이고, 전쟁이 일어나는 날에는 남북은 함께 멸망할 것이다.

서서히 다가올 기회에 대비하여 뱀처럼 지혜롭고 곰처럼 인내하며 안으로는 남북간에 안전장치를 구축하고, 밖으로는 국제 조건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김용운(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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