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해 '다랭이 마을' 은빛 눈부신 바다의 끝 벼랑 가에 기댄 삶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어느날 문득 하얗게 퍼져나가는 입김을 보았다.

겨울은 요란 한번 떨지 않고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다.

손끝에 맴도는 매서운 새벽바람 탓에 마냥 따뜻한 곳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무작정 남쪽으로 내달렸다.

3시간 가량을 내려가 만난 것은 남해의 첫 관문인 남해대교. 대교를 지나 남해의 서면에서 남면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달렸다.

(이 해안도로는 비좁아 운전자들이 지나치기 쉬운 곳이지만 주변 경치가 그만이다.

드라이브 코스로 꼭 추천하고 싶다)

남해는 겨울이 아직 발을 붙이지 못한 모양이다.

서서히 코로 온기가 스며든다.

도로 양옆으로 하나 둘 초록의 다랑이들이 제 모습을 뽐낸다

대부분 마늘.양파를 심었다.

빠꼼히 솟은 마늘싹 주위로 비닐들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저 멀리 바다에 어린 햇살과 어우러져 눈을 부시게 한다

머리 속에 그리던 평온한 시골풍경이 눈 앞으로 펼쳐지고 있다

꼬불꼬불 도로를 가다 지천에 깔린 들판이 눈 아래 열린다.

빼어난 풍광에 자꾸만 고개가 돌아간다.

양지.오리.평산리.임포마을 등 시골마을들을 하나하나씩 지나치는 재미도 쏠쏠하다.

1시간여의 유쾌한 여정 후 드디어 남해의 끝에 다달았다.

그 곳에 아스라이 벼랑에 걸쳐진 마을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동경하며 올망졸망 다랑이 속에 억척스런 삶이 묻어나는 곳, 바로 남해 '다랭이마을'이다.

이 마을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 중 '남해 똥배'라는 말이 있단다.

다랭이마을 사람들이 저 멀리 여수까지 가 여수사람들이 버린 변(便)을 싣고 논 거름으로 썼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만큼 부지런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다라는 천혜의 자연에 버림받고 척박한 땅만을 기대고 살아야 했던 그들의 한도 어렴풋이 묻어나온다.

예부터 이곳 바다는 물살이 드세 낚시를 하지 못하고 자그마한 토지에 농사를 생업으로 삼아야 했다.

그래서 결국 고육지책으로 나온 것은 다랑이다.

이 마을의 풍경은 그런 역경 속에 자아낸 것이라 더욱더 여행객들을 매료시키는지도 모른다.

이 마을은 요즘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무공해 마을이라는 입소문으로 웬만한 여행객들은 한번씩 찾아왔음직하다.

또 지난해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농촌 전통 테마마을'로 지정돼 인기를 더하고 있다.

마을길은 무척 가팔랐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마을 끝 벼랑까지 오르락내리락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마을 꼬부랑 할아버지는 종종 걸음으로 거뜬히 그 길을 오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밟았을 그 길에서 새삼 다랭이마을 사람들의 억척스러움을 새길 수 있었다

마을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가천암수바위. 경남민속자료 제13호다.

이 바위는 1751년(조선 영조 27년)에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조선시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아무도 모르게 숫바위 밑에서 기도를 드리면 득남을 한다'고 소문이 나 다른 지방에서까지 많은 여인들이 찾았다고 한다.

자연산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실물을 닮은 모습(?)이 몇번이나 눈길이 간다.

이곳 사람들은 마늘 재배로 먹고 산다.

마늘이 이 마을 사람들 소득의 80%를 차지할 만큼 이들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작물인 셈이다.

이곳 마늘의 특징은 해풍을 받아 유독 맵고 유황이 많이 들었다는 점. 빼곡히 붙어있는 다랑이 저 편, 몇 평되지 않는 마늘 다랑이 위에 한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하다.

그 모습이 왜그리 소박한지 정겨운 미소가 저절로 그려진다.

이 마을은 외지인들을 위한 다양한 농촌체험을 시행하고 있다

소를 이용한 논갈기, 시금치.동초 캐기, 고동.홍합 캐기 등. 아기자기한 마을 모습과 주변 자연광 감상에 농촌체험까지 겸한다면 뜻깊은 추억여행이 될 듯 싶다.

대구답사마당(423-1885)은 새해 1월 4일 '가천 다랭이마을 어촌체험'이라는 테마여행을 떠난다.

글.사진:전창훈기자 apolonj@imaeil.com

◆묵을 곳=이 마을에는 모두 11곳의 민박집이 있다.

1박(3식 제공)에 어른은 2만5천원, 학생은 2만원. 주민 김주성(46)씨는 "도착 열흘 전쯤 인터넷이나 전화로 예약하면 좋다"고 했다.

남해 다랭이마을 홈페이지 http://darangyi.go2vil.org.

◆가는길=대구→구마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하동IC→남해대교→다랭이마을(넉넉잡아 4시간. 진교IC로 빠져 1002번 지방도를 따라 남해대교에 이르는 코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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