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지역금융과 지방분권

한국 경제는 지금 정치적 혼란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장기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 자동차, 휴대전화 등을 중심으로 수출은 호조를 보이고 있으나 기업의 투자심리와 가계의 소비심리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방 경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과거 개발연대 시절 성장을 뒷받침 해온 산업과 기업들은 이른바 '세계의 공장'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추격에 구조조정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같은 압박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지역이 과거 국내 경제 성장을 주도했던 대구경북지역이다.

뿐만 아니라 도하개발어젠다(DDA)협상에서 농업의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의 인식이고 보면 이 또한 지역 농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 뻔하다.

지역의 실물 경제는 이제 전산업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지역 경제의 어려움을 논할 때 주로 실물 경제만을 다루었다.

이론적으로 볼 때 자본주의 사회는 궁극적으로 금융자본에 의해 지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지난 1997년 IMF사태 당시 우리나라의 유동성 위기는 낙후된 금융산업과 국제투기자본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은 급격한 구조조정을 당했고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구조조정의 핵심 내용은 부실금융기관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거나 선진국 금융자본에 매각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의 금융기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동은행의 퇴출에 이어 3개 투자금융, 투자신탁, 생명보험, 리스회사 등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수십개에 달하는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 지역 서민저축금융기관들도 문을 닫거나 인수합병에 의해 재편됐다.

지역 벤처기업의 자금줄인 창업투자회사마저 간판을 내리거나 바꿔 달았다.

이러한 금융구조 조정 과정에서 야기된 지역 금융의 공동화 현상은 가뜩이나 취약한 지역 경제 기반을 더욱 빈사상태로 몰아갔다.

지역 금융은 지역 산업에 활력을 공급하는 혈액과 같은 역할을 한다.

또 실물 경제와 더불어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 수레의 또 다른 축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역 금융은 새롭게 구축될 지역혁신체계의 핵심 인프라라는 점에서 볼때 지역 금융이 활성화되지 않고서는 지역 경제의 회생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참다운 지방분권도 공염불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공동화된 지역 금융에 활력을 불어넣어 실물 경제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에서 조성된 소중한 재원인 지역 공공자금만이라도 지역에 재투자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등의 금고업무와 함께 지역 주민들로부터 조성된 법원의 공탁금과 보관금 등 각종 공공 자금을 지방은행에 예치토록 하고 이들 공공자금이 지역 기업과 산업에 효과적이면서도 원활하게 지원되도록 해야 한다.

지역에서 마련된 이들 소중한 공공자금은 꼬리표를 달아서라도 산업구조 고도화에 기여할 수 있는 지역 전략산업과 고부가가치 업종에 재투자되도록 해야 한다.

조밀한 점포망과 풍부한 고객정보를 바탕으로 지역밀착 경영을 하고 있는 지방은행은 다가올 지방분권 시대에도 지역의 기업, 대학, 연구소,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지역 혁신체계의 한 축을 이루고 지역 경제 발전을 선도해 나가야 한다.

지방은행에 이들 공공자금을 맡겨 운용토록 하자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가까운 일본을 보더라도 지방은행이 도도부현(都道府縣)과 시정촌(市町村) 금고의 60.3%를 맡고 있다.

지금과 같은 지역 자금의 수도권 유출을 방치하기엔 지역 경제와 금융의 낙후상이 너무나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지역 공공자금의 역내 재투자는 지역 자금 흐름을 선순환(善循環) 구조로 바꾸는 동시에 지역 경제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주춧돌을 쌓는 의미 깊은 노력이 될 것이다.

돈은 이윤을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돈의 흐름을 너무 시장에만 맡기다보니 서울 강남의 부동산 폭등과는 대조적으로 일년이 가도 아기 울음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낙후된 지역이 나올 만큼 지방의 피폐를 가져 왔다.

시장의 실패를 자초한 것이다.

지역 금융이 활성화될 때 지역 경제는 다시 활력을 되찾을 것이며 우리가 염원하는 참다운 지방자치와 지방분권 시대가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이정인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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