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무너지려면 사소한 것이 삐걱거리고, 회사가 문을 닫거나 고용주가 그들을 너무 나이가 들거나 불성실한 사람들로 간주해도, 혹은 그들 중 하나가 병에 걸려 눕게 되는 걸로 충분했다.
그들의 앞에도 뒤에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은 자주 불안이라는 것을 생각했고, 끊임없이 불안에 휩싸였다'.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에 나오는 이 구절은 작품 속 두 남녀에 대한 이야기며, 동시에 우리들 독자에 대한 이야기다.
물질추구적 삶의 극단으로 치닫는 현대인의 허구적 삶의 궤적을 다룬 이 소설은 사물들과 현대인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며, 사물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생각하게 한다.
낚시터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아침 출근길에서 강도 당하고 칼에 찔리고 납치 당하는 사회, 점점 극단적인 광인들의 수가 늘어나는 사회, 단 한 번 아름다운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 사회의 어떤 시스템에서 위로받아 본 적 없는 사람들, 그렇다고 희망을 걸어볼 미래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 한다.
어느 날 우리는 깨닫는다.
'모든 것을 허용하지만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세계'를. 그러나,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이 세계는 사실 사물들의 세계다.
사물에 주눅든 삶을 사는 사람들의 세계이다.
사물들의 무한한 증식, 광고, 엄청나게 비싼 가죽 제품들, 소위 말하는 명품들, 숱한 사물들의 위엄 앞에 인간존재가 왜소해질 때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하여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고 단정해 버린다.
하지만 이 사물들의 지배에 벗어난 탈자본주의적 인간 존재가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기껏 따지고 들면 짐승의 가죽에 물들이고 요리조리 꿰매고, 무늬 입히고, 장식했을 뿐인 지갑에 수십 만원이라는 물질적 가치에 매달려 허우적거린다고 생각해 보면 우리 사는 일이 얼마나 천박스럽고 어처구니없는지. 때묻고 곰팡이 슬면 한갓 쓰레기통에 던져질 사물들에게 우린 얼마나 맥없이 굴복하는지. 사물들 앞에 우리 자신이 초라해진 적이 또 얼마나 많았던지.
김정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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