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는 고령을 거점으로 가야후기의 중심국으로 성장했다.
5세기 후반에는 황강 수계의 합천 거창 함양 남원(아영.운봉), 섬진강 수계의 남원분지 곡성 구례 하동 순천 여수, 금강 수계의 장수 진안에 걸친 넓은 권역을 형성했다.
남강 상류 교통의 결절점인 남원지역을 확보, 종래 아라가야(함안)나 소가야(고성)가 행했던 백제와의 교통을 차단하고 그 관계망을 장악했다.
대가야가 남강 상류로 진출한 5세기 중엽 이후, 일본열도에 대가야 문물이 급속하게 출현한다.
당시 일본열도에 이입된 한반도산 토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대가야 토기는 주로 쓰시마에서 세토나이카이와 동해에 연한 교통로 상에서 출토돼 주목된다.
사람과 철 등 필수인력 및 물자의 이동에 동반하는 토기가 일본열도의 교통로 주변에 확인된 것은 대가야인의 활발한 대왜(對倭) 교역활동을 시사한다.
또 당시 일본열도에서 지배자의 위세를 과시하는 순금 귀고리 대다수가 대가야산인 것은 대가야와 왜 왕권과의 밀접한 정치적 교섭을 상징하고 있다.
당시 규슈, 키나이, 호쿠리쿠, 간토우의 유력한 호족무덤인 구마모토현 에다후나야마 고분, 와카야마현 오오타니 고분, 후쿠이현 니혼마쯔야마 고분, 사이타마현 이나리야마 고분 등에 대가야 위세품이 부장된다.
비슷한 시기, 산간분지에 위치한 대가야권에는 종래 해안에 집중되고 내륙에 이입되지 않던 왜 문물이 반입된다.
오키나와(沖繩 )제도 주변에서 전해진 야광조개(夜光貝) 국자가 지산동 44호분에서 출토된 것을 비롯해 대가야 왕 묘역인 지산동고분군에 왜계 문물이 출현한다.
이런 정황으로 봐 왜의 호족 가운데 그때까지 금관가야와의 교류에 의존하던 세력의 쇠퇴와 대가야세력과 결합한 신흥 호족의 대두를 상정할 수 있다.
한반도에 반입된 일본열도의 문물도 금관가야에서 대가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가야를 대표하며 왜와의 교류를 장악한 주체가 김해에서 고령으로 이동하는 정치적 변화를 반영한 것.
대가야는 남강 상류를 통해 백제와의 교역로를 개설함과 동시에 남원분지로 남하해 섬진강 하구(하동)를 확보, 김해 함안 고성 세력을 제압하고 왜와의 교섭을 주도함으로써 가야의 중심국으로 떠올랐다.
박천수 경북대교수(고고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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