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문화의 특질을 비교하면 지역차별을 획책한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점을 말해 피차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타당한 논의를 전개하지 못하고 선입견이나 되풀이하고 말 수도 있다.
특질이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기도 하다.
그처럼 말썽 많은 주제는 회피하는 것이 현명한가 ? 아니다.
힘써 다루어야 한다.
상대방도 자기와 같아야 한다고 주장해서 생기는 분쟁을 피하고 상호이해를 심화하려면 비교 논의를 해서 특질을 밝혀야 한다.
자기 장기를 자각해 더욱 발전시키면서, 상대방의 장기가 무엇인지 알아 평가하고 가능하면 받아들이는 데 향상의 길이 있다.
문화 특질론을 재치를 자랑하는 문장가나 만담가 수준의 논객에게 맡겨두지 말고 학문에서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연구 형편을 보면 실망스럽다.
전남대학에는 오래 전부터 호남문화연소가 있었고, 경북대학은 영남문화연구원을 뒤늦게 만들었다.
그런데 양쪽 문화의 비교연구를 한 성과는 찾기 어렵다.
영남대학 민족문화연구소, 계명대학 한국학연구원, 부산대학 한국민족문화연구소에서도 지역문화 비교연구의 책무를 감당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학문연구가 수준 미달이어서 능력 부족이었음을 깊이 반성하고 시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자기는 높이고 상대방은 낮추려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순한 사실에 관한 초보적인 실증을 넘어서서 포괄적인 내용의 논의를 타당하게 전개해야 한다.
전공 분야의 경계를 허물고, 문화이론과 사회이론을 합칠 수 있어야 한다.
당위론을 길게 전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본론이 더 소중하다.
문학을 자료로 삼아 내가 연구한 바를 제시해 논의를 진전시키는 토론 자료로 삼고자 한다.
복잡한 논증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를 제시한다.
상하.남녀로 사회가 나누어져 있는 두 축 가운데 영남문학은 상하, 호남문학은 남녀관계를 기본 관심사로 삼고, 차별 철폐를 위해 각기 애써왔다.
호남문학의 원형인 백제의 노래 몇 편은 여성이 지어 부른 것들인데 국정을 담당한 남성이 나라 전체의 노래로 받아들여 후세에 전했다.
뛰어난 한시를 쓴 여성시인이 계속 나오는 데 그치지 않고, 남성이 처지를 바꾸어 여성 화자나 여성 주인공의 노래를 부르는 전통이 뚜렷하다.
'사미인곡'이나 '춘향가'가 그런 것이다.
영남에서는 여성의 문학 활동은 미미하고, 남성의 관심사가 되지 않았다.
그 대신 상하의 차등을 뒤집어엎는 탈춤을 해왔다.
상층은 탈춤 같은 것은 외면하고 한문학에 힘써 상하의 거리가 더 크게 하면서, 유명.무명의 인물을 두고 하는 인물전설을 즐겨 이야기하면서 상하의 차등을 뒤집어엎는 데 동참했다.
인물전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아 본보기를 들기로 한다.
깨달음의 높은 경지에 이른 고승 원효(元曉)가 누군지 모를 멍청이 때문에 쩔쩔맸다는 것이 이런 형태이다.
모두 우러러보는 명재상 유성룡(柳成龍)보다 바보로 알려진 형이 더 높은 식견을 지녔다고 한다.
천하문장이라고 알려진 선비보다 말을 몰고 다니는 하인이 시를 더 잘 지었다고 한다.
여성 화자의 노래를 남성이 부르고, 하층의 반감을 나타내는 이야기를 상층이 하는 처지 바꾸기의 문학을 양쪽에서 했다.
그 둘 다 역설의 묘미를 갖추어 긴장과 흥미를 함께 고조시키면서 삶의 진실성을 추구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 작품에서는 찾을 수 없는 설득력을 가지고, 차별을 넘어서 화합을 이룩하는 데 기여한다.
우열을 뒤집은 원리는 서로 같다.
열세인 쪽이 우세인 쪽을 일방적으로 공격해 승리를 얻으려고 한 것은 아니다.
우세인 쪽이 자진해서 열세인 쪽에 동조해 지위의 역전을 받아들였다.
상하가 뒤집어지는 이야기를 상층에서 하고, 여성의 노래를 남성이 해서 흥미롭고 긴장된 작품을 이룩했다.
싸움이 화합이고, 화합이 싸움이게 하는 운동을 반대 방향에서 진행해 생극(生克)의 관계를 가지게 했다
상하와 남녀에 관한 논란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여서, 세계문학에서 널리 존중된다.
영남문학과 호남문학이 그 가운데 하나씩을 맡아 특별히 돌본 것은 크게 평가할 일이다.
이제 그 둘을 합쳐 더 큰 범위의 창조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양쪽의 아울러 얻는 민족문학의 역량으로 세계문학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를 기대한다.
사회 변혁을 확대하는 과업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서울대 교수.국문학)
댓글 많은 뉴스
구미 '탄반 집회' 뜨거운 열기…전한길 "민주당, 삼족 멸할 범죄 저질러"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
尹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임박…여의도 가득 메운 '탄핵 반대' 목소리
尹 대통령 탄핵재판 핵심축 무너져…탄핵 각하 주장 설득력 얻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