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단식투쟁과 단식순절

근자에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단식이 9일 동안 진행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달 26일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측근비리 특검거부 철회'를 촉구하고 "내년 예산의 처리도 중요하지만 노 대통령의 잘못된 국정 운영 방식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끌려 다닐 것 같아" 거부권을 선택한 것으로 밝히면서 "장외투쟁은 다수당의 불법파업"이라고 맞받아 쳤다.

두 사람의 주장은 정부의 최고 권력자와 국회 다수당의 대표가 맞붙은 대결구도로서, 현 정국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단식은 약자가 강자에게 저항하는 방법의 하나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에게 밥투정하면서 안 먹겠다고 버티는 것은 원초적인 모습이다.

부모의 요구를 부정하는 청소년들의 식사 거부나, 밥을 짓지도 않고 먹지도 않겠다며 버티는 아내의 주장도 그러한 저항에 속한다.

모든 단식투쟁은 대개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면 끝나거나 대체적인 해결 방법을 찾으면서 막을 내린다.

그러므로 단식은 약자가 강자에게 벌이는 비폭력 무저항이라는 평화적 시위의 수단이다.

단식투쟁은 요구사항을 내세우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이 달성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서기 마련이다.

더러는 의지가 약해 중도에 음식을 몰래 먹어가며 버티기도 하고, 또 본래의 주장보다는 약한 수준에서 타협하고 그만두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강한 것은 정말 죽기 위해 벌이는 단식 시위이다.

타협점을 찾거나 협상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결한다는 목표로 벌이는 단식이 그것이다.

1910년에 나라를 잃자 많은 인사들이 자결하였다.

대개 음독자살이었다.

그런데 드문 사례이지만 최익현이나 이만도와 같은 단식 순국도 있었다.

안동 출신 이만도(1832-1910)는 양산군수와 공조참의를 역임하고 1895년에 안동 예안에서 선성의병을 일으켜 대장을 맡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1910년에 나라를 잃게되자 그는 자정순국(自靖殉國), 즉 나라의 겨레의 자존심을 걸고 자결하는 순절의 길을 택하였다.

경술국치를 당한 직후인 1910년 9월에 그는 단식에 들어갔다.

아들과 며느리가 매일 식사를 권했지만 그는 물리쳤다.

가장 사랑스러워 했던 딸이 친정으로 달려와 미음을 권했지만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집안 자손들이나 제자들이 소식을 듣고 모여들자, 일상 가르침을 주던 그 모습대로 인간의 바른 삶과 정신을 제시하면서 버텨나갔다.

일제 경찰이 그 파급효과를 염려하여 식사를 강요하려 들다가, 혼미하던 그가 돌연 일어나 호통치는 바람에 질겁하고 물러난 일도 있었다

한편 단식하고 있는 어른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참으로 딱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른이 단식하고 있으니 자손들이야 목에 밥이 제대로 넘어갈 턱이 없다.

하지만 먹어야 했다.

가는 사람은 가더라도 남는 자의 일이 있기 때문이다.

스승과 문중 어른을 뵙겠다고, 또 점차 그 의지를 확인하면서부터는 하직 인사를 드리려고 많은 인사들이 줄을 서면서, 이들에 대한 식사대접도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안동 내앞마을 출신 맏며느리 김락(金洛)의 소매 자락에는 눈물이 마를 날 없었다.

78세의 고령이던 이만도는 단식 24일 만인 10월 10일에 순국하였다.

삼종질(9촌 조카)이자 예안의병에 동참했던 이중언도 바로 뒤를 이어 27일 단식 끝에 숨을 거두었다.

장렬한 순국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단식은 목적을 달성하거나 타협점을 찾아 끝내려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길이었다.

이들의 단식은 죽기 위한 것이면서, 아울러 민족과 영원히 함께 사는 길이기도 했다.

그래서 숭고한 죽음이라 평가되는 것이다.

최 대표의 단식은 물론 그런 차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이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 수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나라당이라는 배가 대선자금 파동이라는 폭풍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닻을 단단히 내려두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도 이해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재신임 파동이나 최 대표의 단식투쟁이 모두 서로의 발목을 부여잡고 살아남으려고 벌이는 초강수의 힘 겨루기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김희곤 안동대교수.한국근대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