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외환위기 이후 그동안 떠안고 왔던 부채를 완전히 갚았습니다.
요즘 농민들이 빚없이 농사나 축산을 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성공비결이라면 그동안 오로지 욕심내지 않고 성실하게 일했던 거지요".
안동시 성곡동 잿골농장에서 만난 권영철(50.사진)대표는 분명한 자기철학으로 성공을 일궈냈다.
황소같은 뚝심과 성실이 그의 재산이다.
권씨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도 그만큼 많다.
초창기 축산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엔 '밤을 잊은 사나이'로 불릴 정도로 거의 24시간을 소와 함께 생활했다.
또 지금까지 부인 장태련(47)씨와 자신 외에는 단 한차례도 남의 손을 빌려 쓴 일이 없을 정도로 '자가노동 농장주'로 통한다.
그만큼 권씨에게는 축산업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온 축산 경영철학이 있다.
자가노동으로 성실하게 일하고 배합사료 사용으로 경영비를 절약하는 것이다.
지금은 남보다 앞서 있다고 내세울 수 있지만 권씨도 처음엔 소 2마리로 축산업을 시작했다.
지난 1980년 안동 서후우체국에 근무할 당시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소를 키우기 위해 5년4개월의 공직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인 잿골에 정착했다.
소 2마리로 축산농의 길을 시작하자 주위에서는 안정된 공무원을 그만둔다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권씨는 안동농림고 축산과를 졸업하면서 품은 축산농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2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당당히 안동지역 최고의 축산인으로 성공했다.
3천평 규모의 농장에 100여 마리의 최고급 한우를 키우면서 연간 순수익 6천만원의 부농꿈을 일구고 있다.
권씨는 "그동안 1억2천만원의 축산자금을 지원받아 축사를 신축하고 배합사료기계를 도입하는 등 실제 경영에 필요한 곳에 투자했다"면서 "가족 노동력과 철저한 품질경영을 위해 100여 마리 이상을 넘기지 않고있다"고 했다.
최근의 소값 강세에도 불구하고 권씨는 90여 마리의 한우를 키우면서 추가 입식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는 철저한 가족노동력만을 사용함으로써 경영비를 절약하고 사양관리를 통해 1등급 판정 소 70%이상 유지를 고집하기 때문.
게다가 권씨는 지난 2001년에는 1천300만원을 들여 배합사료기를 도입해 옥수수.쌀겨.맥주박 등 14가지의 곡물을 혼합해 자가배합사료를 생산, 먹이로 사용하면서 매월 100만~150만원의 사료비를 절감했다.
자연히 한우 등급도 암소가 90% 이상 1등급을 받을 정도로 향상됐다
이 때문에 권씨가 생산해 낸 잿골한우의 경우 암소는 경주 안강지역으로 전량 납품되고 수소 거세.비거세우들은 다른 한우에 비해 좋은 가격으로 안동농협과 서울 가락동시장으로 판매되고 있다.
특히 권씨는 그동안 생우 수입과 IMF 등으로 겪은 세차례의 소값파동이 전화위복이 됐다고 했다.
철저한 경영철학으로 그때마다 호황을 누리는 등 돌파구가 됐다.
자가노동과 자가배합사료, 철저한 사양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권씨는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성실과 경영에 대한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또한 축산정보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해 등 현실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