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왜곡된 동양관을 비판하고 동양의 참된 모습을 논의하는 학술회의에서 서양인이 한 기조발제를 비판했다가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자리에서도 서양인의 견해를 경청할 필요는 물론 있겠으나, 그것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반드시 무례는 아닐 것이다.
소위 세계화 탓인지 서양인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나, 서양인의 학술 발표나 예술 공연이 반드시 충실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마치 지방에서 지방인보다 서울인의 그것이 무조건 높이 평가되는 경향이 문제이듯이 한국인보다 서양인의 그것이 무조건 높이 평가될 이유는 없다.
물론 서양 문화에 대해 서양인이 한국인보다는 그 원래의 모습을 더 잘 안다는 전제는 가능하나, 그렇다고 하여 서양인의 견해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는 문제이다.
최근 18세기 작곡가인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초연 당시 그대로 공연하는 이른바 원전공연이 국내 최초로 행해졌다고 떠들석했던 것을 예로 들어보자. 당시 관객이었던 귀족들을 위한 바로크 스타일로 음악보다도 현란한 무용과 화려한 의상 등을 중시했다는 그것은 절제된 양식화로 종래 공연의 중후한 느낌과는 전혀 다른 경쾌한 모습을 보여주어 마치 흥겨운 뮤지컬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런 공연이 지금 관중에게는 더욱 맞다고 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초연시 진부한 바로크적인 도덕성의 강조로 실패한 것처럼 이번 공연에서도 감동은 없었다.
18세기말에 쓰여진 오페라인 만큼 바로크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전부를 바로크적인 것으로 봄에는 문제가 많다.
적어도 모차르트가 바로크적 음악을 보수적으로 묘사한 귀족 여인의 아리아에서 전형적으로 사용했을 뿐인데도 오페라 전체를 그렇게 봄에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 누가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거의 상연되지 않는 헨델의 오페라처럼 바로크 일색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차르트 오페라가 바로크여서 지금까지 생명력을 갖기는커녕 도리어 바로크적이 아니어서 생명력을 갖는 것이 아닐까?
심지어 예컨대 여인을 속여 유혹하기 위해 두 남자가 서로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는 장면에서 초연 시에는 분명 그렇지 않았으나,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두 사람의 체구가 아이와 어른처럼 너무 달라 실소를 흘리게 했다.
결핵으로 죽어 가는 비올레타가 너무 거대한 몸집이었던 탓으로 초연이 실패한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를 좥원전좦 공연하는 경우는 어떻게 할지 의문이다.
게다가 다양하게 변하는 무대 장치도 이번에는 오직 하나로 너무나 단조로웠다.
무대장치까지 공수하지 못한 탓일까? 또한 고개를 한껏 뻣뻣이 들고 쳐다보아야 하는 자막 번역에도 오류가 많았다.
또한 녹음으로 들려지는 아리아나 합창곡도 있었다.
12만원까지 주고 관람하는 손님들에게 너무 한 것이 아닐까? 이번 공연의 특징인 어느 정도로 밝은 객석 조명도 18세기 오페라 관람이 동시에 먹고 마시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도리어 먹고 마시는 것이 금지되는 지금 특별하게 강조될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
물론 이번 공연은 다양한 연출로 유명한 그 작품의 수많은 해석 중의 하나일 수 있다.
좥원전좦임을 강조하는 새로운 해석이 갖는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백년간 수없이 행해져온 그 다양한 해석이 거의 없는 채 원전이라는 이유로 그것이 본래 모습인양 먹힐 우려도 있다.
그래서 모순된 욕망에 따라 낡은 도덕을 벗어나 자유롭게 행동하는 현대적인 개인의 창출이나, 자유 만세라는 합창곡 등으로 모차르트가 부여하는 봉건사회에 대한 저항이라는 바로크에 반하는 요소는 오히려 무시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돈 조반니를 자유분방한 영웅으로서 그린 모차르트의 혁신적인 의도는 상당 부분 무시되고 있고, 적어도 다양한 의미부여가 가능한 주인공의 성격에 대해 너무나도 단순한 이미지를 갖게 하여 매력을 반감시킨다.
모차르트가 지금 이 땅에 살아있다면 그런 18세기의 실패한 진부한 도덕양식의 바로크 오페라를 상연했을까? 아니 18세기 공연 자체가 과연 그러했을까? 지금 우리에게 서양의 원전이란 도리어 현대적인 의미에서 더욱 정확하게 이해되고 감상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박홍규 영남대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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