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의 실언(?)으로 시작된 대선자금 정국이 5개월째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검찰의 칼끝이 이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로 향하면서 대선자금 정국은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다.
검찰은 연내 수사를 마무리한다고 하지만 노 대통령 측근비리의혹에 대한 특검수사가 시작되면 대선자금 정국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가 끝나면 아마도 많은 정치인들이 법의 단죄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이같은 악순환을 여러차례 봐왔다.
국민들은 정치부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인들을 비판한다.
학자나 언론인이나 일반 유권자 모두가 정치인을 타도해야 할 제1의 공적(公敵)인 양 공격한다.
반면 정치인의 부도덕이 정치인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후진적인 유권자 풍토에도 원인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나라의 선거법을 포함한 정치관계법은 매우 선진적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돈안드는 선거를 위한 선거공영제만 해도 의회민주주의 태생지인 영국보다 훨씬 정교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거제도 자체만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정치선진국이라는 얘기다.
얼핏 들으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선거때마다 정치인들이 불법자금으로 줄줄이 사법처리되는 현실은 이러한 자부심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제도는 선진적인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결국 유권자가 제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된다.
한 의원은 이런 현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자갈밭에 묘목을 꽂아 놓았다고 해서 나무가 자라지는 않는다".
자갈밭과 같은 척박한 유권자 풍토에선 정치신인이라는 묘목도 큰 나무로 자랄 수 없다.
대구에서 출마 준비중이던 한 정치신인은 최근 꿈을 접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유권자의 요구에 접하고서는 출마를 포기한 것이다.
집을 팔고 친구 등의 도움을 얻어 나름대로는 충분한 실탄(자금)을 마련했다고 생각했는데 유권자들이 말하는 당선권의 실탄 규모는 이를 훨씬 뛰어넘더라는 것.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전문직 종사자 등 여론주도층이 "30억원은 써야 하지 않겠느냐"며 돈 선거를 종용한 것이었다.
이는 법정선거비용(16대 총선기준 평균 1억6천200만원)의 30배에 육박하는 규모다.
지금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를 중심으로 정치개혁방안 마련이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들 방안이 법제화된다 해도 정치인들에게 범법을 해서라도 돈을 쓰게 만드는 유권자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정치후진국에 머물 것이다.
불법자금을 쓴 정치인들을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유권자들의 자성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년 4월엔 총선이 치러진다.
정경훈 정치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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