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 집에 가든지 좋은 벽면을 가진 방처럼 탐나는 것은 없다.
넓고 멀찍하고 광선이 간접으로 어리는, 물 속처럼 고요한 벽면, 그런 벽면에 낡은 그림 한 폭 걸어놓고 혼자 바라보고 앉아 있는 맛, 더러는 좋은 친구와 함께 바라보며 화제 없는 이야기로 날 어둡는 줄 모르는 맛, 그리고 가끔 다른 그림으로 갈아 걸어보는 맛, 좋은 벽은 얼마나 생활이, 인생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일까!… 벽이 그립다.
멀찍하고 은은한 벽면에 장정 낡은 옛 그림이나 한 폭 걸어놓고 그 아래 고요히 앉아보고 싶다.
배광(背光)이 없는 생활일수록 벽이 그리운가 보다.
이태준의 〈무서록〉 첫 장 벽에 관한 이야기다.
12월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다.
불황이고, 우울한 연말이다.
사람들의 어깨는 움츠러들었고, 거리는 예전 같지않게 활기가 없다.
얼마 전 개업한 가게가 사라지고 새로운 가게가 개업했지만, 그 가게도 여전히 찬바람이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면 밤 9시 뉴스에는 수 백 억원 비자금 뉴스가 톱으로 나온다.
미칠 노릇이다.
차라리 화끈해서 좋다는 사람도 있다.
먹을 라면 그렇게 먹어야지 하는 사람도 있다.
미칠 노릇이다.
그렇더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와도 책은 읽어야 하고, 인생은 계속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아이들 앞에 어른들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연말이라 먹고 마시는 일이 잦고, 각종 행사와 약속이 잦더라도 그런 다음에는 책을 읽어야 한다.
수 백 억원 비자금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주고받았다고 해서 도서관의 청년들의 취업 공부는 중단되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의 학원공부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이다.
뉘집에 가서 앉아 오랫동안 벽에 그림 바라보고 돌아올 일은 없겠지만, 방에 앉아 한 시간쯤은 세상에 써먹을 일없는 책일지라도 읽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세상에 제대로 써먹을 것이 얼마나 있겠나.
김정용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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