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치권 검은 돈 전달방식 '백태'

007가방, 사과상자, 라면상자, 골프옷가방, 서류상자, 여행용가방에 이어 승용차 트렁크가 등장하더니 급기야 승합차와 2.5t 트럭을 통째로 전달하는 '차떼기' 수법까지 등장했다.

정치권의 불법 자금의 전달 수단 이야기다.

007가방은 고전에 속한다.

점점 규모가 커졌다.

93년 8월 금융실명제 실시 후 추적이 가능한 수표는 기피되고 검은 돈은 거의가 현찰로 오고가는 바람에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어졌다.

액수는 적게는 1회 5천만원에서 많게는 최대 150억원에까지 이른다.

150억원은 1만원 신권으로 환산하면 무게가 약 1.5t이다.

구권이라면 2t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승합차로는 한꺼번에 이동이 불가능하다.

이들 검은 돈 전달 수단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사과상자다.

96년 4월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때 이 자금 중 일부가 김석원(金錫元) 전 의원이 오너였던 쌍용그룹 경리부 지하창고에서 25개가 발견돼 세인의 관심을 끈 적이 있다.

모두 1만원권 지폐로 총액은 61억원이 넘었다

그러나 사과상자가 본격적으로 검은 돈 전달 수단으로 각광을 받은 것은 97년 한보사태 때다.

정태수(鄭泰守) 한보 회장은 대출 알선을 이유로 시중은행장 2명에게 각각 2억원이 든 사과상자 두 개씩을 전달했다.

일반적으로 사과상자에는 1만원권 신권은 2억4천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구권일 경우 2억원 정도. 사과상자에 1만원권을 가득 채우면 26kg정도가 나간다.

반면 007가방에는 5천만원이 들어간다.

골프옷가방이라고 하면 1억원이다.

라면상자도 1억원용으로 쓰인다.

신권은 1억2천만원이 들어가지만 구권은 1억원 정도다.

라면상자는 돈으로 가득 채우면 무게는 12kg정도가 나간다.

95년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賢哲)씨는 돈세탁을 시킨 25억원의 자금을 2억5천만원이 들어갈 수 있는 대형상자에 담아서 받은 적이 있다.

그보다 더 큰 것은 대형 마대 자루나 깊이를 조절할 수 있는 해외여행용 바퀴가 달린 대형 가방이다.

여기에는 3억원 이상 5억원까지 들어간다고 한다.

또 4억원 정도 들어가는 서류상자도 간혹 쓰인다.

그러나 성인 남자 한 명이 들 수 있는 무게를 넘어 잘 사용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런 검은 돈 용기의 전달수법도 다양화, 대담화, 지능화 되고 있다.

전달 방식에 있어서 획기적 전기는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 자금 마련이라는 혐의를 받은 이른바 세풍사건 때다.

이 때는 여행용 가방, 사과상자, 천막 등 사용 가능한 수단은 총동원됐고 전달 방식도 차량번호 식별법, 암구호 교환법, 차량 직접 접선 방식, 호텔객실 전달법, 지하주차장 전달법 등 다양화 됐다.

어떤 경우에는 대로상에서 전달하는 방식도 사용됐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연말부터는 이른바 '차떼기' 방식이 등장했다.

SK그룹의 100억원은 5차에 걸쳐 쇼핑백을 이용해 이동을 시켰지만 현대그룹은 승합차 스타렉스를 사용, 2차례에 걸쳐 100억원을 전달했고 LG그룹은 2.5t 트럭을 개조한 탑차로 1차에 150억원 전달을 끝냈다.

그런데 차떼기도 '구식'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계속 대형화됐다면 컨테이너 차까지 동원될 수도 있었겠지만 번거로움을 덜고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만큼 자기앞수표 두 장 크기의 무기명채권을 이용해 잡지책처럼 포장해서 전달하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이 방식은 삼성그룹이 '지적소유권(?)'을 갖고 있다.

삼성은 이를 현찰화하는데 드는 12억원도 함께 전달, 현찰로 100억원을 바꿔쓸 수 있도록 하는 주도면밀함을 과시했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사진:현대차도 한나라당 대선자금을 100억원이 담긴 박스를 스타렉스 승용차에 나눠 실어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서정우 변호사(구속)에게 넘겨주는 '차떼기'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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