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혹자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보다 '도스토예프스키'를 훨씬 더 높게 평가한다. 그의 시 한편으로 백두대간 종주기 24편을 시작한다. 잡글인 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고상한 글로 위장하고 있구만. '위장취업'이 아니라 '위장종주기'구만. 혹세무민하는 '위장종주기'. 혹시 '혹세무민'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혹독한 세상 민, 즉 백성을 위무한다'. 아니먼 그만이고.
그건 그렇고. 한국의 24시는 위장정치인, 위장기업가, 위장공무원, 위장문화인 등등 위장이 판치는 '위장전성시대'. 정치권에 갔으면 올바른 정치를 하고, 돈 벌러 갔으면 옳게 돈 벌고 ,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했으면 희생정신으로 해야지 막상 그 현장 가서는 딴 짓을 하잖아요.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위장 종주기' 쓰는 놈이 말이 많기는. 죄송합니다. 하도 술을 많이 마셔서 위장이 빵구나서 쓰립니다. 잘났다 잘났어.
아차, '도'선생 시부터. 한국에서 '도'선생은 도둑놈인데. "모든 것을 사랑하라./--/모든 잎사귀를 사랑하라 / 모든 동물과 풀들 / 모든 것을 사랑하라 / 네 앞에 떨어지는 빛 줄기 하나까지도 / 만일 네가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면 / 모든 것 속에 담긴 신비를 보게 되리라 / 만일 네가 모든 것 속에 신비를 본다면 / 날마다 더 많은 모든 것을 이해하리라 / 그리고 마침내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 너 자신과 세상전체를 사랑하게 되리라"
보너스 하나.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의 노래. "모든 것이 아름답다/ 내 앞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 내 뒤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 내 아래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내 둘레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 카 좋다. 아희야, 산 건너 술도가에 가서 막걸리 한 통 사오거라. 미친 놈, 초장 좋은 글로 시작해 놓더니 좋은 분위기 망치네.
2.
'백두대간 한걸음 이어가기팀'은 11월 29, 30일 양일에 걸쳐 백두대간 종주를 향한 18번째 산행에 나섰다. 11월의 마지막 날이구만.
11월아 안녕. 한국 사람들에게는 11월은 추위가 시작되는 계절이죠. 형식은 '가을'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내용은 찬바람이 불어 겨울 외투를 입기 시작하는 '겨울'의 범주에 들어가죠. 가을과 겨울, 양다리 걸치고 있어서 별로 주목 받지 못하는 계절이죠. 경상도 사투리로 '얍삽'하네. 사전에는 약삭 빠르네.
조상들은 11월이 되면 일월산천에 수확제를 올리고 난로회(煖爐會)라 해서 화롯가에 둘러앉아 추위를 막는 시절 음식으로 쇠고기를 구워 먹었다고 하네요. 예전과 지금, 쇠고기의 용도가 달랐구만. 하기사 따뜻한 겨울 옷이 없으니 고기를 구워 먹어 몸에 살이라도 푹푹 찌게해서 추위를 덜 느꼈나 보지. '똘똘한 民族'이구만. 앞으로 정육점을 난방가게로 임명합니다.
추위를 누그러지게 하기위해 쇠고기를 구워 먹다니. 흘러간 옛 노래구만. 지금이야 뒤룩뒤룩 살찌지 않기 위한 '고기 기피' 현상이 강토를 휩쓸고 있죠. 소시적을 회고할 때, 고기 구워먹는 것은 기억에 없고 아부지가 한 달에 한 번 월급 타오시는 날에 큰 냄비에 쇠고기국을 많이 끓여서 온 가족이 한 그릇씩 푸짐하게 뚝딱 밥 말아 먹었던 것 같아요. 대략 20여년 전부터 '고기 구워먹기'가 성행하면서 대량생산, 대량살육의 '소,돼지의 통한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일전에 그랬죠. 다 짐승들의 시체라고. '으웩'. 도살축산물시장은 '살생사형장', 정육점이나 고기구이식당은 '시체처리소'겠네. 고기 구워 먹는 사람은 시체를 먹는'하이에나'이고. 이헌태 그만해라.
불교가 나중에는 자기 스스로의 해탈을 추구하는 소승불교와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대승불교로 갈렸잖아요. 한국은 대승불교가, 동남아지역은 소승불교가 각각 판을 치고 있죠. 한국에서는 스님이 고기를 먹으면 난리가 나죠. 소승불교에서는 고기를 먹는가 봐요. 우째 스님이 고기를 잡수시나. 한국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죠. 이헌태야, 무식해서 잘 모르죠. 다만 무식한 제가 봐도, 부처님이 살생을 금하라고 엄명하셨는데 스님이 괴기를 잡수시는 것은 아무래도.
이헌태, 니는 니 일 아니라고 말 함부로 하지마라. 요즘 세상에 평생 고기 안 먹고 건강이 우찌 유지가 되노. 스님도 간혹 고기를 잡수셔야지. 그건 또 그렇구나. 여기서 밑줄 쫙, 남 얘기는 함부로 하지 맙시다. 특히 자기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이헌태 철 많이 들었구나. 동서고금, 즉 동양이나 서양이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꼭 필요한 말이 있어요. 역지사지 (易之思之). 한국은 곳곳이, 천지 사방, 구석구석이 '싸움 중'이라고 하네요. 이것은 제가 볼 때는 '역시사지' 정신이 없어서 그래요.
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동산스님의 실화 하나. 오래전에 태국의 불교 종정과 총무원장이 방한을 했었죠. 우리나라 한 스님이 "저희 대승불교 교단에서는 스님들이 육식을 금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소승불교에서는 육식을 합니까"라고 일침을 놓았죠. 이에 태국 총무원장이 "죽은 고기도 마음에 걸려 먹지 못하면서 어떻게 산 고기(중생)를 제도한다고 하십니까"라고 비아냥댔다고 하네요.
약간의 침묵 뒤에 또 한 스님이 "태국에도 도인이 있습니까"라며 의기양양하자 태국 총무원장은 "마음이 열리고 나면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초초(花花草草)가 도인 아님이 없지요" 며 맞불을 놓았다고 하네요. 한국 스님들은 황당하고 불쾌했죠.
나중 이들 일행이 경주 불국사에 갔는데 동산 스님이 다보탑위 포요하는 듯한 돌사자 한 마리를 가리킨 뒤 "저 사자를 보시오" 라면서 "저 사자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하네요. 이에 태국 고승들은 입을 꾹 다물고 쩔쩔 매었다고 하네요. 동산 스님은 이어 "내가 당신들에게 선사할 것은 이것 뿐이오" 라며 말했다고 해요. 마침내 태국 승려들이 "한국 불교 내에 대승 선을 아는 스님이 없다고 말한 것 취소합니다. 동산스님은 참으로 훌륭한 스님입니다"라고 고백을 토로했다고 하네요.
주 내내 간헐적으로 추적 추적 내리던 비가 토요일 오후를 계기로 그만둔다고 하니 위안이 되었지만 웬지 그래도 불안했다. 올해는 '비' 소리만 나와도 가슴이 덜컹 내려 앉는다. 마누라 왈, "비로 방 좀 싹싹 쓸어라". 이 '비' 소리도 듣기 싫지만.
11월이 지나면 올해 마지막 달인 12월. 또 한 해가 무참히 무참히 다 지나가는 구만. 올 한 해 이헌태는 뭘 했던가. 세월이 쉬지 않고 흘러가고 또 나이 한살 더 먹겠구나. 인생이 허무하다.
3.
인생이 나온 김에, 인생(人生)이 뭔 줄 아세요. 사람 인(人)도 있지만 참을 인(忍)도 있어요. 참고 사는 게 인생 (忍生)이라고. 흔히 "인생은 고(苦)"라고 하죠. 참고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하죠. 샐러리맨 생활 즉 출퇴근표에 도장 찍는 인생 (印生), 그런 인생도 있죠. 성 개방 풍조를 타고 여자들에게 마구 도장 찍는 남성분들도 있다고 하네요. 와, 부럽다 부러워. 미친놈.
멋진 인생은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어질 인(仁)을 실천하는 인생(仁生)이죠. 공자 왈, "삶을 애걸해서 인을 손상시키지는 않겠다. 몸을 죽여서라도 인을 이루겠다". 와, 대단하다. 공자 선생께서도 참말로, 진짜로, 목숨 바쳐 그렇게 인을 실천하셨는지요, 공자 어른이라고 자기가 내 뱉은 말 빠짐없이 다 지켰겠나. 지도 사람인데.
'인생'이란 거대한 담론을 갖고 말장난 치는 이헌태가 불쌍하고 가련하다. 이헌태는 장난을 쳐도 의미있는 장난을 치죠. 이헌태가 누구인가요. 서양 최고의 이야기꾼 '이솝'과 같은 집안이죠. 동(同)씨잖아요. 이솝은 기원전 6세기쯤 고대 그리스 부자집 노예였다고 하네요. 안짱다리, 불룩 나온 배, 검고 비할 데 없이 추악한 용모를 가졌지만 이야기를 너무 너무 많이 알고 재미있게 했다고 하네요. 노예 출신이구나. 근래 잘 나가는 소설가나 문학가들은 오래전 과거 노예출신의 후예들이구나. '재롱둥이'.
아세요. '노자'가 이씨라는 것. 모르셨구나. 이외에도 시선(詩仙) '이태백', 당나라 세운 '이세민' 등등. 이헌태 니 조상은 중국 사람인 모양이다. 너무 좋아하네. 인류는 모두 한 형제.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도 이씨 성.
아는 체하자. 노자의 성은 이(李)씨, 이름은 이(耳). 조선의 성리학자 이이(李珥)하고 이름이 똑같고 한자도 비슷하네. 한글로 보면 '동명이인'이네. 어쨌든.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혁명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자를 잘 활용했다고 해요. 노자와 종씨라는 거죠.
당 고종 건봉원년 (서기 666년)에는 노자에게 어떤 존호를 붙였나 하면은 요. '태상현원' (太上玄元)황제 즉 '가장 위이고 뿌리가 되는 왕'으로 불렀죠. 이 존호는 그래도 양반이네. 당 현종 천보 13년 (서기 754년)에는 '태성조고상대도금궐현원천황대제' (太聖祖高上大道金闕玄元天皇大帝) 즉 '가장 뛰어나신 조상으로 거룩하시며 세계의 이치를 설파하시고 황금 문이 있는 곳에 계시며 만물의 뿌리이신 하늘과 같으며 위대하신 황제'. 어휴, 길기도 길다. 여러분, 격찬 가운데 이런 격찬 보았어요. 하여튼 중국사람들은 통이 대단하구만. 아예 격찬만을 갖고 마침표 없이 책 1권 자리로 만들어 버리지. 노자를 인간이 아니라 거의 신으로 격상시켰구만. 당나라도 나라를 막 일으켜 세웠을 당시에는 답답했던 모양이지. 하기사 노자가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얘기도 있으니.
보너스. 이헌태가 이빨이 세잖아요. 이빨에 대한 얘기도 추가. 이빨도 이(李)씨네. 이헌태, 이솝, 이빨 다 통하는구만. 통하였느냐. 네.
신라시대에는 이빨이 센 사람이 왕이 되었어요. 웃기죠. 기원전 69년 박혁거세가 신라를 세웠죠. 삼국유사에 나오는 황당한 얘기. 제2대 남해왕이 승하하자 아들 노례가 매부 탈해에게 양위하려 했어요. 이에 탈해 왈, "내가 듣기에 성스럽고 지혜가 많은 사람은 치아가 많다고 합니다" 라며 떡물기 시합을 했어요. 이로인해 노례가 잇금 (이빨자국)이 많아 제3대왕에 즉위했고 탈해는 제4대왕에 올랐죠.
박혁거세에서부터 경순왕까지 56명의 신라왕을 분석해보면 거서관과 차차웅이라 부른 임금이 각각 한명, 마립간이라 부른 임금이 네명, 이빨로 인한 이사금이라 부른 임금이 2대 노례왕 부터 무려 열여섯명이나 되었다고 하네요. 이빨 세고 이빨 많은 사람들은 신라시대 때 태어나면 대접 받았을텐데. 아셨죠. 이빨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말이죠. 역사적으로 증명되었죠. 이헌태가 이빨 세다고 할 때 그 이빨이 아니잖아. 니는 구라가 센 것이지, 차원이 다르지. 네. 죄송합니다.
이빨이 세면 음식을 잘 씹기도 하잖아요. 금쪽 같은 얘기만 담겨있는 '채근담' 아세요. 이 말은 송유학자 '왕신민'이 먼저 썼어요, 사람이 항상 나무 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백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에서 유래되었죠. 고생하면 결국 성공한다는 뜻도 있고 실제로 뿌리에서 참 맛이 나온다는 뜻도 있고요. 여기서도 씹는 얘기 나오네.
'채근담'의 작자는 명나라때 홍자성. 나온 김에 좋은 글 하나. "세월의 길고 짧음도 생각하기에 달려 있고 세상의 넓고 좁음도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마음이 유한(悠閑)한 사람에게는 하루가 천년처럼 길고 뜻이 넓은 사람에게는 오막살이도 우주 공간처럼 넓은 것이다".
'마음' 얘기가 나왔으니. 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고암스님은 어느 스님에게 "네가 한 물건이 있으니 허공보다 더 비었고 우주보다 더 크고 일월보다 더 밝아서 밥도 먹고 옷도 입고 다니고 일하고 말할 줄 알되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이것이 무엇인지"라고 물었다고 하네요. 대답을 못하자 고암스님 왈, "마음이지. 그렇지. 이놈을 잘 다스려야 돼. 그런데 그게 안된다 말이야. 중생계는 분별경계에서 살아가느라 실(實)하기는 제일인 문안쪽 일을 까맣게 제쳐놓고 문밖에서만 맴돈단 말이지". 국민 여러분, 아셨죠. 마음이 이렇게 허공보다 더 비었고 우주보다 더 크고 일월보다 더 밝다고 합니다. 자기 마음을 닦습니다. 자기 마음을 잘 활용합시다. 하모하모.
결론은 많이 씹어야 합니다. 공자든 제갈공명이든 약점이 잡히고 걸리기만 하면. 실제로 음식을 꼭꼭 씹어 먹어야 뇌가 발달하고 씹지 않으면 뇌가 둔화된다고 하네요.껌은 오래 씹으니 턱뼈가 얼얼하든데. 400만년전 인류가 직립할 때 두뇌는 400그램, 이것이 1백만년 전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하네요. 현대에 와서는 남자는 1400그램. 많이 씹으면서 현대인이 탄생되었다고 하네요.
수천년 전과 비교해서는 거꾸로. 통계에 의하면 일본의 경우 2천년전 야요이시대 사람이 한끼를 먹는데 대략 4천번 씹었다고 하네요. 불과 50년 전만해도 대게 1400-1500번 정도, 지금 일본 젊은이들은 햄버거 스파게트를 먹을 때 620번씩 씹는다는 해요. 이로인해 문제가 많이 발생합니다. 한국 젊은이들도 걱정입니다. 얼마전 식당에서 한 청년이 밥을 먹으면서 씹지도 않고 죽 먹듯이 술술 넘기더라구요. '엽기식사'에요. 꼭꼭 씹어 먹읍시다. 머리가 다시 퇴화되기 전에.
사람의 치아모양을 보면 32개 가운데 육식과 관련된 것은 송곳니 4개뿐. 육식동물인 호랑이와 사자는 장이 짧고 초식동물은 길잖아요. 사람들도 장이 긴 것으로 봐서는 초식동물이었다는 반증. 인간도 토끼처럼 풀 먹고 삽시다.냠냠, 맛있다. 건강의 비결, 고기보다는 채소. 잉, 채소도 소네.
4.
이헌태의 이빨, 구라 자랑을 딱 한번만 더 하겠습니다. 기분 나쁘면 경찰서에 신고하고. 신고하면 그 놈이 쪽팔리지 뭐. 이번에는 한국의 전통시를 화끈하게 연구했습니다. 분야별로 1등을 발표하겠습니다. 둥둥둥둥.
1) 한국최고의 '퇴폐문란시' 1등. 고려가요 '쌍화점'. 몽고의 지배를 받고 사회 풍기가 극도로 문란했던 13세기 충렬왕 때 만들어졌죠. 작자미상. "만두가게에 만두 사러 갔더니 몽고인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 / 이 말씀이 이 가게 밖에 나며들며 하면 (소문나면) 조그마한 어린 광대(심부름하는 아이) 네가 퍼뜨린 말이라 하리라./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그가 잔 곳 같이 어수선한 곳이 없다". 4연으로 외국인이 경영하는 만두집인 쌍화점 주인, 삼장사 주지, 우물 밑에 사는 용, 술집주인이 등장하죠. 한때 여고생들한테 만두집에서 스캔들이 나왔는데 고려시대때도 만두집이 그런 장소였구만.
2) 한국최고의 '뒤룩뒤룩 욕심시' 1등. 태조 이성계가 지은 '등(登) 백운봉'라는 제목의 한시죠. "댐댐이 덩굴 잡고서 상봉에 오르니 /암자 하나 구름속에 위치해 있네/ 눈에 띄는 땅이 모두 내 것이라면/ 초월(楚越)강남 땅도 모두 내 것이 되리라" 조선땅을 먹었다고 해서 중국땅까지. 호방 호방해도 너무 심하구만
3) 한국최고의 '뻥 과장시' 1등. '북정'(北征), 즉 '오랑캐를 치다'는 제목의 남이 장군의 시. " 백두산 돌들은 칼을 갈아 닳았고 / 두만강 물줄기 말이 모두 마셨네/ 남아 이십에 나라를 태평케 못한다면/ 뒷날에 누가 대장부라 일컬으랴". 백두산이 칼 갈아 없어졌고 두만강물이 말이 마셔 없어졌다고, 뻥이 너무 심하구만. 또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것을"이란 시도 있으니. 우리 조상들도 중국 사람들 닮아서 통 크게 놀았구만. 눈물이 모여 대동강물이라고. 중국 사람들이 한꺼번에 오줌 누면 황해가 오줌바다로 되는 거나 마찬가지구만.
태종의 외손이었던 남이는 17세에 무과에 급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26세에 병조판서를 지냈지만 28세 아까운 나이때 유자광에 의해 위 시일부가 '미평국(未平國)'에서 '미득국(未得國)'으로 고쳐져 무고하게 죽음을 당했죠. 뻥이 심하면 훗날 우환이 오죠. 이헌태 조심해. 저야 권력과 전혀 관계없는 뻥이라서 괜찮지 않을까.
4) 한국최고의 '로또대박신화시' 겸 한국최고의 '건망증시' 1등. 고종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가난하던 시절 지은 '빈한(貧寒)시' " 부귀가 하늘에 닿아도 예로부터 죽음 있고/ 가난이 뼈에 차도 오히려 삶이 있네/ 억 천 년이 지나도 산은 오히려 푸르고/ 보름달이 오면 달은 다시 둥글도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대원이 어른, 그래 놓고서 어마어마한 경복궁은 왜 복원해서 국민들을 못 살게 굴었는데.
5) 한국최고의 '공주병환자 기생시' 1등. 작자 미상의 '전주기(妓)' 제목의 시. "나는 원래 달나라에 사는 선녀로 / 인간에 내려와 명창이 되었네라 /만일 내가 오나라 소대에 있었다면/ 서시가 어찌 오왕을 모실 생각이나 했으랴" . 잘 놀고 있다.
6) 한국최고의 '측은시' 1등. '김삿갓'으로 불린 김병연 (1807-1863). 황해도 선천 부사로 있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 반란군에게 투항한 후 처형당하고 일족이 폐족 당해 도망 다니다가 20세때 영월 고을 향시에 응시, 장원 급제. 이 시험에서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하였다가 나중에 그분이 조부인 것을 알고 죄책감에 빠져 방랑을 시작했다.
제목은 '자탄'. "구만리 장천에 머리 들지 못하겠고/ 삼천리 넓은 땅에 다리조차 못 펴겠네/ 새벽 누각 오름은 달구경이 아니요/ 사흘을 굶었음은 신선 되려 함이 아니다" . 김삿갓이 잘 곳이 없어 흙구덩이에 박혀있다가 답답해서 누각에 올라가 지은 것이라고 하네요. 오매 불쌍한 것.
김삿갓의 '난고평생시' 하나 더. "새에게는 둥지있고 짐승 또한 굴이 있거늘/ 나의 평생 돌아보니 정처 없이 홀로였네/ 죽장에 짚신 신고 수천리를 방황했고 / 물처럼 구름처럼 아무데나 내 집 삼았네/ 하늘 향해 내 팔자를 원망키도 어려워/ 세밑에 슬픈 감회 애를 끓는 듯해라". 지금은 저소득층으로 지정받아 밥은 먹고 사는데.
7) 한국최고 '까불이시' 1등. 김삿갓의 '구월산'. "작년 구월에 구월산을 지났고 / 금년 구월에 구월산을 지나네/ 해마다 구월이면 구월산을 지나니/ 구월산 빛이 긴 구월이러라". 이것을 한자로 고치면 "작년구월과구월(昨年九月過九月)/ 금년구월과구월 (今年九月過九月)/ 년년구월과구월 (年年九月過九月) / 구월산광장구월(九月山光長九月)"
8) 한국최고 '거지시' 1등. 역시 김삿갓의 '이십수하(二十樹下)'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손이요/ 망할 놈의 집 가운데 쉰밥이로다/ 인간에 어찌 이런 일이 있으랴/ 차라리 내 집에 돌아가 설은 밥 먹으리". 우째 그렇게 글 잘하는 문인이 각설이 거지 깡통들고 산천을 떠도는 구나. 김삿갓이 3관왕이네.
9) 한국최고의 '애절 사랑시' 1등. 작자 미상의 고려가요 '만전춘'. "얼음 위에 대나무 잎으로 잠자리를 마련하여 임과 나와 얼어죽을망정 /(반복)/ 정을 둔 오늘 밤이여 더디게 새어라. (후략)"얼음위에서 잠자리를 마련해서 밤을 새우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 못한다. 사랑도 살고 나서 사랑이지, 얼어 죽고 나서 무슨 사랑.
얼음위 사랑. 달라이 라마는 "격정적인 사랑은 얼음 위에 지은 집과 같아 얼음이 녹으면 집은 무너지고 말지"라면서 "사랑을 배우려면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 사람 입장이 되어 생각하라"고 공자 같은 말씀을 하시네. 결국 얼음 위에 사랑은 좋지 않다는 말씀. 목동 아이스링크장에서 연애하는 분들 조심하세요.
10) 한국최고 '속터지는시' 1등. 성리학을 도입한 고려말 안향의 '유감'이란 시. "향불 밝힌 곳마다 부처에게 기원하고 노래 들리는 집마다 귀신께 제사하네 다만 한 칸 집 공자님의 사당에만은 달에 풀만 덮이고 사람하나 안 오네". 조선 들어 와서 성리학이 완전 평정했지만 그 직전에는 안향이 속이 터졌는 모양이에요. 그 심정 이해 가는구만. 그런데 안향 선생님, 성리학이 도입되었다고 해서 조선시대가 고려시대보다 꼭 더 나았다는 법은 어디 있나요. 대충 사시지.
5
헛소리가 너무 장황했구만. 반성합니다. 이번 대간 산행에는 형님처럼 모시는 윤상욱 선배도 참여했다. 백신종 선배가 충북 황간에서 합류, 총 참여인원 15명.
늦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부는 저녁 11시 50분쯤, 일행을 태운 전세버스가 경북 상주로 향했다. 거나하게 취한 탓에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을 하는 심상준 총무의 '말'과 '몸'이 비틀비틀이다. 20세기 전설적 영웅 '비틀즈' 멤버인가, 비틀 비틀하길. 용서해 주세요, 총무님.
유영래 대장은 '팀이 우째 술꾼팀으로 바뀌었냐'며 눈을 흘기신다. 대장은 '양반이 백두대간 산에 오르다'는 팀의 명제를 재확인시킨 뒤 "술 먹는데 대해 곱지않은 생각을 갖고 있다"며 잔소리를 하신다. 대장님, 술 없으면 어떻게 살아요. 과거, 동양의 석학들이 거의 다 술꾼이라고 하네요. 봐 주이소. '석학이 술꾼이 많지 술꾼이 석학이 많냐'라고 따지면 할 말 없지만.
유 대장은 양기스님의 '시절 인연' 개념을 언급하면서 "백두대간을 종주하기 위해 힘들게 가다 보면 어떤 목표가 달성되어 희열과 기쁨도 느낄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자기수양과 자기완성도 이룩할 수 있다" 면서 "직장에서든 산행에서든 오로지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당부하며 고귀한 말씀을 걸친다. 맞습니다, 맞고요.
양기스님(서기 996-1049년)은 달마조사에서 시작한 선종 가운데 '임제종' 만이 오랫동안 번성하였는데 그 한파인 '양기파'를 개산한 선승. 한국의 조계종도 이 문하. 양기종은 임제의 '입처개진(立處皆眞)' 선지를 계승, 실제 생활 가운데서의 성불을 요구했다. 마음과 정신이 안정되고 통일되면 시끄러운 시장바닥에 살더라도 심산유곡의 편안하고 고요함과 같다는 설법이다
양기 스님의 유명한 선문답. 한 학인이 "어떤 것이 경계 중에 있는 사람(깨달은 사람)입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양기스님은 "가난한 집 아가씨가 나물 바구니를 들고 가고 있고, 목동이 초원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피리를 불어대고 있다." 가난한 아가씨는 산에 가서 산나물과 산과일을 따고, 목동은 풀과 물이 풍성한 초원에서 방목을 하는 게 본분사(本分事)다. 양기스님은 가난한 아가씨와 목동이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평범한 일상을 빌어 인성 회귀를 촉구했죠. 불성이니, 자성이니 하는 철리는 바로 일상생활 가운데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는 인성에 다름 아니다는 논리를 폈죠. 아, 그렇구나.
6.
전세버스는 칠흑 같은 한밤중 오전 3시 30분쯤, 지난 산행 때 종료했던 상주시 모서면 지기재에 도착했다. '지기재, 그래 와 쥑인다, 와'. 아니면 '지피지기'의 준말인가. 지가 나를 피보게 하면 나도 지를 기찮게 한다. 아니라구요. 아니만 그만이고. 원래 지기재는 과거 동네 뒷산에서 도둑이 많이 나왔다고 하여 적기재라고 부르다가 바뀌었다고 하네요. 지난 산행때 여기서 사과를 훔쳐 먹었는데. 잘 아네, 귀신이네.
바람 한 점 없는데다 늦가을의 살폿한 한기(寒氣)로 인해 시원했다. 캄캄한 하늘, 광활한 우주에 별 식구들이 저마다 잘난척하며 흩어져 살고 있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 가족은 단번에 한 눈에 쏙 들어오고, 언제 봐도 반갑다. 그 옆 길잡이 '북극성'은 여전히 하늘의 왕좌 위세를 떨치고 있다.
서울 대도시에서 못 보던 별들을 다시 보니, 그것도 '무더기'로 보니 동심으로 돌아온 것 같고, 막혔던 가슴도 이내 뻥, 확 트인 것 같다. 어른들도 별을 보니 좋구만. 혹시 나도 지구 아닌 다른 별나라 출신 아닌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수구초심'.
지난 산행때, 사과를 슬쩍 따서 너무나 맛나게 먹었던 과수원에 '혹시나, 남은 사과가 있나' 해서 가보니 단 하나의 사과도 남기지 않고 나무와 그 가지만 처량하게 서 있었다. 괜히 서운하다. 이헌태, 니 너무하구만. 도둑놈 주제에. 잉. 새들과 짐승들을 위한 여유와 인심은 어디로. 꼭 못된 놈들이 딴 데서 핑계를 찾더라구요. 죄송합니다.
버스 안에서 소등한 뒤 오전 5시까지 눈을 잠깐 붙였다. 오전 5시 5분. 안개 때문에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딱 두 시간 만에 하늘의 대반란이다. 이번 산행도 드러누운 듯한 야트마한 산에서 오르락 내리락, 소위 산도 아닌 것이 언덕도 아닌 것이, '非山 非丘' 산행이라고 한다.
랜턴 불을 켜고 대간 길을 밝히면서 이날 산행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북북서쪽으로 나아갔다. 산행 초입부터 완만한 둔덕에 오르는 편안 길이다. 늦가을 날씨 탓인지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맑고 깨끗하다. 모처럼 들이마시는 청정 공기, 들숨과 날숨이 신이 났다. 이내 곧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히면서 얼굴과 목덜미를 타고 쫄쫄 흘러 내렸다. 옷도 셔츠 하나만 달랑 입었다. 산행에 좋은 날씨다.
어둠과 적막의 산 속. 산과 숲, 나무의 정경은 영락없는 겨울 풍광의 외양. 쭉쭉 뻗은 나무는 여름과 가을에 풍성하던 잎사귀를 다 땅에 떨군 채 앙상하게 남은 뼈대와 실핏줄뿐. 허욕을 비운 수도승처럼. 나무들의 '누드쇼'가 휑한 산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길과 길섶에는 발바닥이 폭신폭신함을 느낄 정도로 두터운 '낙엽융단'을 만들고 있었다. 산 전체가 낙엽으로 겨울 옷을 입은 것이다. 빈틈없이 두껍게 맨 땅, 고상하게, 대지를 덮은 것으로 봐서 옷이 아니라 이불이지 뭐.
대지가 나온 김에. 영국의 위대한 문학가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의 제2막 제3장에 나오는 로렌스 신부의 독백. 약초를 따면서 다음과 같이 읊조렸죠.
"자연의 어머니인 대지는 자연의 무덤이기도 하고 자연의 무덤인 그 대지는 또한 자연의 모태이기도 해 /보아하니 그 모태에서 가지각색의 자식들이 태어나와 다정한 대지의 가슴에서 젖을 빨고 있더라 / 그 수많은 것들이 모두 뛰어난 효험을 지니고 있고 또한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모두 가지각색이니 / 아, 그들 안에 있는 천부의 힘은 참 대단하기도 해라 / 나무, 풀, 돌 할 것 없이 그 본질에는 기이한 약효가 있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흉한 것일지라도 무엇인가 특별하고 이로운 약효를 주지 않는 것이 없고 / 또한 아무리 좋은 것도 그 용도를 그르치면 본성에 어기어 악용의 해를 면치 못하는 법---/ 가련한 이 꽃봉우리 속에는 독도 들어 있거니와 약도 들어 있다". 대지를 사랑합시다. 나무와 풀과 돌도 사랑합시다. 사람 사랑이 가장 기초인 거 아시죠. 이웃 사랑은 하지 않고 자기 집안 개만 사랑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구요.
사실 이 대사 앞부분이 하루가 시작되는 해뜨는 묘사거든요. '섹스'에 관심있는 섹스피어, 아니지 세익스피어 답게 표현이 기똥차더라구요. 아까워서 잠시 소개. "회색눈을 한 아침이 찌푸린 밤위에서 배시시 웃고 동천 구름을 빛줄기로 갈라 놓으며 얼룩진 어둠은 주정뱅이처럼 비틀거리면서 태양신의 수레바퀴로 난 태양의 길에서 흩어져 나가는 구나. 자아, 태양이 그 불타는 눈을 쳐들고 축축한 밤 이슬을 말리기전에 독초며 귀한 약즙이 들어 있는 꽃잎을 이 바구니에 가득 담자구나" . 아침과 태양에 눈을 달아놓았구만. 하여튼 문학가들이란, 시인들이란.말 재주도 좋아.
7.
모두들 앞만 보고 열심히 내달렸다. 무한질주(無限 疾走). 갑자기 내 머리위 나무에서 꿩 한 마리가 파드득 파드득 요란한 소리를 지르면서 씩 날아간다. '이 짜식이, 애 떨어질 뻔 했잖아'.
이헌태, 니가 무슨 임신을 했다고. 아들 딸에게 엄마가 아니고 아부지가 임신해서 10달후 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고 낳았다고 그러죠. 그것도 석가 세존을 낳으신 마야부인처럼 옆구리로. 이유는 다 아시죠. 저는 남성이니까, 옆구리가 안성맞춤이죠. 아니면 배꼽, 입, 항문, 웩, '엽기' 네. 그럴 때마다 초등2년 귀여운 딸로부터 " 아빠, 헛 소리 좀 그만해" 라는 핀잔을 듣지만. 아들이든 딸이든, 말 잘 듣지 않으면 그때는 "니는 엄마가 낳았다"고 하고 말 잘 들으면 "내가 낳았다"고 하고, 왔다리 갔다리 하죠. 이헌태, 니 잘 아네, 왔다리 갔다리 하는거.
심상준 총무는 잠 자던 뀡을 깨운데 대해 "우리가 죄 짓고 있구만" 하면 미안해 한다. 이전에는 사람 발자국 소리만 나도 멀리에서 미리 깨어 파드득 날아갔는데. 이 따식, 꿩은 잠이 너무 깊숙히 들었었나. 어제 밤 뭐했노, 너무 무리했나. 무슨 무리. 넘어 갑시다.
송전탑을 지나니 새벽 6시 40분쯤. 잘 닦힌 넓은 아스팔트 신작로 신의터재(해발 280미터)가 나왔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신은현(新恩峴)으로 불리었으나, 임진왜란때 김준신이 이 고개에서 의병을 모아 큰 공을 세우고 임진년 4월 25일 순절한 후부터 신의터재로 불린다고 한다.
열심히 일한 밤이 잠을 자기 위해 귀가하는 어슴푸레한 새벽, 어둠이 퇴각하는 기색이 역력하고 새벽이 꿈틀대고 있다. 여명이 웅크리고 있었다. 검은 단색의 하늘에 파란색이 야금 야금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신의터재 따라 왼편에 군데 군데 불 켜진 농가들이 보인다. 신의터재에서 주변 산을 휘 둘러보니 편안하게 감싸는 듯한 산 실루엣이 파도처럼 펼쳐져 있다. 덩달아 내 마음도 아늑해진다. 하늘에 도전하는 기세로 장엄하게 솟구친 산들을 보다가 이런 정감 어리고 아늑한 산들을 보니 또 다른 감흥을 느낀다. 도 닦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무지랭이도 있어야 하고, 기암괴석의 설악산도 있어야 하고 산책하는 마을 뒷 동산도 있어야 하고. 맞습니다. 이게 바로 '천지만물의 조화'가 아니겠어요.
신의터재에서 첫 휴식을 취했다. 잠깐 단체사진도 찍고. '팔음산 포도'를 선전하는 큰 입간판도 있고, 그 옆에는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을 알리는 홍보판도 있다. 상주는 분수령을 재마다 홍보하고 있으니, 상주는 분수령에 목 매달았구만. 하기사 재를 넘는 사람은 한번 보니까. 두 강은 영남과 호남의 대표적인 강이니 그렇게 목매달고 홍보할 수 밖에.
천지가 분간 되면서 모두들 랜턴불을 꺼고 다시 대간 길에 나선다. 백두대간은 民族의 정기가 서린 산이라서, 정기를 더 받으려고 하는지 묘가 굉장히 많다. 특히 이번 대간 길은 인가와 가까워서 그런지 유달리 묘가 많다. 좋은 곳에 가셨는 지 모르겠다. 극락왕생.
바람도 쉬고, 공기도 청명하고, 비도 촉촉히 내렸으니, 마치 '초봄' 같다. 겨울 내내 얼음처럼 단단하게 굳었던 땅이 슬슬 녹고 생명의 새 순이 돋기 시작하는 그런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심 총무도 "초봄 날씨 같네"라고 한마디.
신의터재를 떠나 구릉 같은 야산에 오르자 왼쪽에는 큰 논이 달린 꽤 큰 마을이 나타난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집 근처에 낳선 객이 오면 짖어야지, 그 개 참 미련하네. 멍멍, 그래도 듣기 좋다. 그러나 산골에서 듣는 개소리는 사회생활에서 듣는 인간들의 개소리와는 천양지차다. 잉.
연이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은 넉넉히 2백가구 이상이 되는 것 같다. 대간 마루금에 근접해서 이렇게 농가들이 붙어 있는 경우는 참 보기 드물다. 지도책을 펴니 아랫말, 새터, 영안동, 골말, 대하라는 마을 이름이 나온다. 이들 농가들은 뭘 해 먹고 사나. 벼농사만으로는 살기 힘들겠지. 모르겠다. 너무 고즈넉하고 평화스러운 동네는 틀림없다. 겉보기에는 근심도 없는 낙원.
마을, 동네.향수어린 단어. 어떤 학자 왈, 도시에서는 '옆집', '가게','동네','시장' 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고요. 대형 슈퍼마켙, 무슨 신도시 무슨 동 무슨 아파트, 아파트 몇 호집 사람등등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하네요. 지금, '물질 풍요, 정신 고독'. 이렇게 바뀌어져야죠. '물질 풍요, 정신 풍요'.
능선을 타자마자 이내 동이 터 오더니 날이 휜히 밝아졌다. 오전 7시 5분쯤, 능선 오른편 저 멀리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졌다. 긴 잠에서 깨어나 막 기지개를 편 산들이 겹겹, 중첩되면서 하얀 안개까지 휘감으면서 신비스럽다. 먼 곳은 안개를 머금어 회색으로, 가까운 곳은 여명을 받아 검푸른색으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진을 한 장 멋지게 찰칵 찍었다. 사진이 아니라, 눈 속에 아니라 마음 속에.
선종 가운데 하나인 법안종을 만든 법안선사가 어느 선비로부터 그림을 선물 받고 한 말. " 이 그림은 당신의 손이 그린 것이요. 아니면 마음이 그린 것이오?". 그림은 마음으로 그려야 하며 , 자연은 마음에 담아야 하는 법. 자연과 마음은 하나네.
시원찮은 백두대간 능선이라도 역시 눈을 사로잡는 구석이 있기는 있는 모양. 백두대간 주변의 산들은 '썩어도 준치' 라고.
8.
백두대간이란 산에 웬, 바다고기인 준치가 등장하나. "산꼭대기에 파도가 일렁이고 바다속에 산불이 났구나". 전복(顚覆)의 미학을 통한 득도(得道) 아세요. 이헌태는 그것은 모릅니다. 전북과 전북죽을 좋아하는데. 바다에서 해녀들이 바로 따온 싱싱한 전복을 후라이 팬에 참기름을 넣고 볶아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죠. 이헌태, 전복사고 날라.
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효봉스님도 중국 선종의 특성인 격외(格外)의 자유가 대단했죠. 효봉스님의 오도송은 한국 선종 선사들의 오도송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났다고 해요.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 타는 불 속의 거미집에 고기가 차를 달이네 /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랴 / 흰구름 서로 달은 동으로 달린다"캬,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무슨 바다 밑에 사슴이 알을 품고 불 속에 고기가 차를 달여. 이헌태, 모를 때는 넘어가라. 무식한 놈이 따지기는 왜 따져. 네.
중국 선종은 주지하다시피, 극단적 부정을 통해서 삶의 자유와 실체를 획득하고 더 나아가 자기 생명의 근거에 도달하려고 했죠. 운문스님이 대표적 인물이죠. 하나, "스님 부처가 뭡니까"라고 묻자 스님은 "부처, 그건 말라 비틀어진 똥막대기야"라고 답했죠. 중요한 것은 관념 속의 부처가 아니라 바로 자기자신이니까, 부처 같은데 신경 쓰지 말고 네 현실이나 똑바로 보라는 것이죠.
하나 더, 그 분은 "내 앞에서 다시 부처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을 선언한다면 몽둥이로 후려쳐서 주린 개에게 주겠노라" 부처를 부정하고 나서 철저히 자기를 확인하는 과정이죠. 이헌태가 입만 떼만 하는 얘기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인데. 큰일났다.
성철 스님 말씀도 추가.첫째, " 성현과 달사(達士)들이 나 잘났다고 서로 뽐내니 현미경 속의 티끌만한 그림자" 둘째, "대중이여, 석가 오심도 망상이요. 달마가 서쪽에서 오심도 망상이요. 천칠백 공안도 망상이니 절경(絶景)이 어떠한가" 셋째, "부처님 법문도 따지고 보면 모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든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인 말과 문자를 쫓지 말고 저 달을 바라봐야 한다". 종정까지 지내신 대선사들이 부처 알기를 우섭게 아네. 그건 아니겠죠. 부정을 통한 극복. 전복의 미학.
장엄하면서 웅장하고 육중한 파노라마 산들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돌연 저 산들 하나 하나가 태고적 신들의 무덤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미쳤다. 신라고도 경주에서 본 왕릉보다는 훨씬 크기 때문이다. 무덤들이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에 깍이고, 바람에 깍여서 천태만상의 산들이 되지 않았을까. 그럼, 백두대간 산행은 신들의 무덤 위를 지나가는 거네. 이헌태, 너무 머리 돌리지 마라. 네.
동쪽 장자골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아침 7시 반쯤, 산길 모퉁이에서 자리를 펴고 아침식사. 윤상욱 선배가 싸온 일본식 김밥이 히트다. 라면을 끓여서 속도 뜨뜻하게 하고 쐬주도 한잔씩 돌렸다. 왁자지껄, 박장대소. 푹신한 낙엽더미에 퍼질라 앉아 야외 나들이의 행복을 만끽했다.
곧 이어 아침 7시 35분,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다. 동쪽에 버티고 있는 큰 산 위로 아침해가 수줍은 듯이 슬슬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찬연하고 도도한 '불덩이 태양 해'가 아니었다. 좌우 어깨에 벌건 무리를 대동하지 않고, 소리 소문도 없이 부끄럼 타는 새색시 마냥 달빛 얼굴을 한 채 떠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은은한 '달덩이 해'였다. 안개가 다소 끼여, 일출 구경을 일찌감치 포기했던 터여서 더 탄성이 터졌다. 장병일 선배는 '해가 참 아담하게 떠오른다"고 표현하며 좋아한다.
산에 거주하는 나무와 풀, 새들과 구름까지도 일출을 보느라 숨을 죽이는 바람에 산천은 일시 정적 그 자체였다. 해는 인간은 물론 동식물 또 무생물까지 경외적인 , 절대적인 존재이구나. 이상 야릇한 아침 해에 대해 모두들 한마디씩 입을 대자 유 대장께서 "해는 같은데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르구나"라고 신선같은 말쌈을 하신다.
해는 찬란해야 맛이 나는데, 이날 해는 되레 겸손했다. 달처럼. 그래서 나는 달이 지난 밤 흐린 날씨 때문에 결석, 미안해서 아침이라도 잠시 나타나는 성의를 보인 게 아니냐는 착각이 들었다. 확실히 누런 달이었다. '새벽을 여는 서곡' 치고는 특이했다. 非일상적이었다.
예기치 않게 허를 찌르면서 기습적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솔직히 너무 기쁘게 한 저런 '깜짝쇼'를 하는 해는 태어나서 처음. 이번 대간산행 수확이 꽝은 아니구만. 아쉽게도 곧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무심하기도. 한낮 꿈에 불과했던가. 뭐가 부끄러워 그렇게 빨리 얼굴을 숨겨 버렸나. 잠깐 보여준 것만 해도 고마워.
살다 보니 '별의별' 일출을 다 보네. 가슴속에 뭉클 감동을 자아낸 해는 뭐라캐도 태백산 일출, 서해안 만리포 낙조도 기억에 아련히 떠오른다. 나는 평생 일출을 몇 번 보았을까. 1) 100번 이내 2) 100번- 500번 3) 500- 1000번 4) 1000번 이상.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고 하면은요.
일출을 많이 볼수록, 일출을 보면서 마음을 더 다짐하고 기를 더 모을수록 하루, 아니 인생이 더 보람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갑자기 해보았습니다. 일출 본다고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일찍 깨어나 일출을 보면 하루 출발도 더 빠르고 상쾌하지 않을까.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도 많다". 이헌태, 참 니는 똑똑하다. 국민 여러분, 아침 일찍 일출을 많이 봅시다. 동네 가까이 해 보이는 곳에 매일 올라갑시다. 아침 운동이라도 되겠지 뭐. 일출을 구경하는 일이 건강에도 정신에도 다 좋겠구만. 해해해. 이헌태, 그건 태양 해가 아니야. 그런 해해는 좋지않아.
9.
50분간의 아침식사를 끝내고 오전 8시 20분, 길을 다시 재촉했다. 참나무류, 낙엽송, 소나무 삼총사가 숲을 지키고 있고 길섶에는 드문드문 아담한 노기재나무가 구색을 맟추고 있었다. 진녹색 잎을 가진 소나무와 노기재나무가 '산의 황색(黃色) 일당지배'를 온 몸으로 막고 있었다. 독야청청,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만세.
숲의 변화. 초록색으로 빽빽하던 숲은 앙상한 나무들로 인해 누런 속살을 드러냈다. 세찬 된바람에도 끄떡없이 나뭇가지에 끝까지 결사적으로 붙어있는 나뭇잎은 뭐 꼬. 우주의 섭리가 그렇게 싫고, 생명을 잉태하는 대지가 또 그렇게 싫은가. 빨리 투신해라. 빨리 투항해라. 이승에 그렇게 미련이 많은가. 나뭇잎보고 내가 뭐라카노. 너무 오바했네. 시를 많이 보다가 나도 머리가 이상해졌어요. 시인들을 '감정과잉증 환자' 내지 '감정오버맨'으로 임명합니다.
휑한 산과 작대기 비쩍 마른 나무 사이로 동지들의 행군 모습이 언뜻언뜻 보인다. 뾰족뾰족한 바늘이 심겨져 있고 인간이 걸려있다. 너무 엽기적인가. 안부에서 서서, 저 위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일행을 보니 '겨울 숲, 나무와 인간'이란 주제의 동양화다. 텅 빈 겨울 산과 성긴 나무가 그려진 자연에 인간이 넉넉하게 담겨져 있다. 겨울산은 서양화가 아니라 동양화가 더 어울리네.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네.
'인간도 자연'이라. 선현의 시상(詩想)들이 절로 감흥을 돋군다. 고려 때 홍간의 '눈 (雪) '이란 시. "저문 강 마을에 눈 덮인 봉우리들 / 하늘 하늘 눈 내려 한가로워라 / 백발진 낚시꾼 도롱 삿갓 쓰고서 / 제 몸이 화폭인 줄 모르고 있네"
또 조선 때 정도전의 '방김거사야거', 즉 '김거사 초야에 묻혀 사는 거처를 찾아서'란 시. "가을 구름 막막하고 온 산은 고요한데/ 소리없이 단풍져 땅을 붉게 물들였네/ 시냇가에 말 세워 돌아갈 길 묻나니/ 이 몸은 한 폭의 그림 속에 있어라"
삭발한 산과 앙상한 나무, 떨어진 낙엽을 보고 이헌태의 생각 1.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땅을 가득 채운다. 하늘은 가난하게 되고 땅은 부자가 된다. 이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그때는 땅이 가난하게 되고 하늘은 부자가 된다. 이것이 바로 천지의 이치이고 둘만의 영원한 우정이 아닐까"
산새들이 지저귄다. 흰 눈을 기다리는 소리다. 부엉 부엉 부엉, 부엉이 소리도 들린다. 산에서 귀청을 때리는 자연의 원음 (原音)은 다 듣기 좋다. 마음으로 들리고 영혼을 두드리는 것 같다. 개소리든, 새소리든, 바람소리든, 물소리든, 나무 흔들리는 소리든, 심지어 개미 웃는 소리든. 이헌태 니가, 소머즈 귀냐. 개미 웃는 소리가 들리게.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져요. 오래전에 김상현 국회의원이 삼천포로 빠졌다고 해서 경남 삼천포 사람들이 항의해서 곤욕을 치렀죠. 지금은 아예, 사천시로 지명을 바꾸어 버렸죠. 이헌태야 평범한 사람인데 누가 항의하겠노.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이헌태가 들린다는데 왜 시비야. ㅋㅋ.
이번 산행 코스는 난삽하기 그지없다.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등줄기다. 뭔가 능선이 굵직굵직하다는 의미다. 이번 대간 산행은 지난 번처럼 상주 땅에서만 이뤄진다. 마을 뒷산 같은 야산으로 이어져 있어 길이 뱀처럼 꼬불 꼬불해지고. 요약정리. 지기재에서 출발해서 신의터재까지 북북서쪽방향으로 한참 나아가다가 다시 동쪽으로 꺽어가다가 북쪽으로 나아간다. 서쪽으로 휘돌아 북쪽으로 전진하다가 북북서쪽으로 가서 이번 코스 가운데 가장 높은 윤지미산을 만난다. 서북서 방향으로 나아가면 종착지인 화령재가 나온다.뭐야, 이리저리, 정신이 하나도 없다.
대략 해발 300미터에서부터 400미터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 고되고 힘든 곳은 없다. 6시간 산행시간이 이렇게 뱀처럼 휘어지니, 뭐야 이게. 안내 리본이 없으면 길 잃기 십상이다. 솔직히 말해, 이게, 무슨 백두대간이냐. 이헌태, 성질 쥑이고 넘어가라. 뭐 잘났다고 따지냐. 알겠습니다.
백두대간 종주를 미리하신 분들이 기록한 대로 지리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경관도 잘 보이지 않고 숲속으로만 완만한 능선을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걷고 또 걸었다.
오전 10시 50분, 드디어 윤지미산 (해발 538미터)에 올랐다. 이름이 '김지미'도 아니고 '윤지미'냐. 벡두대간 평균으로 보면 아주 낮은 산이나 어찌되었던 이 일대에서는 소위 '골목대장'이다.
나무가 주변을 뺑 둘러 에워 싼데다 안개도 머금고 있어 사위 경관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여름에 숲이 울창하면 더하겠지. 정상은 교실 같은 터가 있었다. '골목대장' 이라고 귀족티를 내려는지 나무와 바위에 초록색 이끼들도 멋을 내고 있었다. 단체사진도 찍고 정상주도 돌렸다. 이번에 마신 정상주는 꼬냑과 캔맥주를 혼합해 만든 폭탄주였다. 향과 맛이 일품이었다.
10.
시 낭송회가 열렸다. 대장이 직접 시 낭독한 시, 감태준의 ' 흔들릴 때마다 한 잔'. "포장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한 놈은 너고 한 놈은 나다, 접시 위에 차례로 놓이는 날개를 씹으며, 꾼 옆에도 꾼이 판 없이 떠도는 마음에 또 한 잔, 젖은 담배에 몇 번이나 성냥불을 댕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사라져야 별 수 없이, 다만 다같이 풀리는 기쁨, 멀리 뒷산에는 문득 나무들이 손 쳐들고 일어서서 단풍을 털고 있다"
이 시가 낭독되자 일제히, 이구동성으로 심상준, 정병일 두 사람의 얘기라고 아우성이다. 이 시는 두 사람을 위한 시라나.
이헌태의 논평 1. 이헌태는 포장마차에 술 마시러 가나 술을 떡이 되게 마신 후 취한 속 풀기 위해 국수 먹으러 가지. 이게 살 찌는 지름길. 용도가 다르네. 포장마차는 원래 미국 서부시대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인데. 엄밀히 말해 한국의 경우는 포장마차가 아니라 포장리어카 지. 이헌태의 주장, '포장마차'가 아니라 토속적인 '포장대포집'으로 바꿉시다.
이헌태의 논평 2. 술은 한국인에게는 유토피아적 성격이 강하다고 하네요. 현실의 아픔과 슬픔을 잊고 다시 일어서는 계기를 마련해주죠. 기쁨을 위한 파티도 되고. 간혹 술 기운을 빌어 헛공약을 남발하지만. 그래서 이 시에서도 '이제 시작이야'라는 표현이 등장하잖아요. 이헌태도 나이 이제 마흔 둘이네. 다시 시작하자. 120살 까지 산다고 보면 이제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네. 잉. 이헌태, 120살까지 살아도 튼튼한 육체를 가진 것은 몇 년 남지 않았다. 혹시 또 의학기술이 기적적으로 발달해서 120살까지 청년처럼 살게 될지. 꿈도 야무지다. 이헌태, 시작은 되었구만. 치매가.
이현주가 또 하나 시를 낭독했다. 누가 지었나, 대장이 지었나. 제목은 '달마산책'. "길에서 길을 찾고 집에서 집을 구하기 그 얼마였던가 / 나아가려 하면 할수록 길은 멀어지고 / 나와 함께 사람들의 심정은 쪼들어만 가니/ 그러한 까닭에 오늘 스스로 자화를 그려내 / 마음 등불을 밝힐까 하노라"
이헌태의 논평, 길은 지도책에서 찾고, 집은 복덕방에서 찾아야죠. 그런데 왜 부동산집을 복과 덕이 있는 복덕방으로 했을까. 그렇고 보니, 땅과 집 장사가 지금도 복과 덕의 원천이네.
유 대장이 왕양명의 양지(良知)론을 곁들이면서 양반론을 다시 꺼냈다. 아 지겨워. 아닙니다. 아니고요. 양명학을 창시한 왕양명은 "인간은 원래 양지라는 좋은 면을 갖고 태어났다"면서 "자기 고유의 덕성인 양지를 자각 실천하라"고 설파했죠. 이에 앞서 맹자 선생께서 '진심'편에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알게 되는 것이 양지이다" 라고 먼저 말씀을 했다고 하네요.
'양지'라는 개념이 나왔으니 당연히 '성선설'과 '성악설'이 나와야죠. 인간의 본성과 관련해서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대조를 이루고 있죠. 그런데 왜 싸워. 사람은 그냥 태어난 것인지. 좋은 환경아래에서 잘 자라면 좋은 성질을 가지는 것이고 좋은 환경아래서도 나쁘게 자라면 나쁜 성질을 가지는 것이죠. 또 나쁜 환경아래서도 잘 자라면 좋은 성질을 가지는 것이고 나쁜 환경아래서도 나쁘게 자라면 나쁜 성질을 가지는 것이지. 이헌태 니 말 맞다.
두얘기를 기가 막히게 잘 종합정리한 사람이 나타났죠. 주희라고 들어보셨죠. 무희는 춤 잘 추는 여자이고 주희는 술 잘 마시는 여자인가. 이헌태, '성리학'을 일으켜 세우신 대학자 주자(주희)를 갖고 장난을 치다니. 죄송합니다.
주희 (서기 1130-1200년)는 맹자와 순자의 한계를 지적했죠. 인간이 도덕적으로 선하도록 되어 있다는 근거를 제시한 '본연지성 (本然之性)'과 환경의 영향으로 악할 수도 있는 이유를 설명한 '기질지성 (氣質之性)'의 양대 논리를 함께 제기했죠. 맹자와 순자의 얘기를 모두 끌어 안은 거죠. 똑똑한 학자는 틀림없지만 얌체 같은 학자네.
주희는 존재를 서열화하고 기질과의 상관관계를 설명했죠. 1) 성인 (聖人)은 그 자체로 완전하기 때문에 기질변화가 필요 없다고 했죠. 2) 현자 (賢者)는 기질을 변화시켜서 완전한 이가 될 수 있다고 했죠. 3)범인 (凡人)은 기질 변화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했죠. 4) 동물은 기질 변화가 거의 불가능하나 부분적으로 선하다고 했죠. 이헌태는 범인이지만 현자를 지향해야죠 뭐. 언제 어느 세월에. 누구야, 내년부터 몰아 쳐서 착한 일 할 지. 이헌태가 그렇게 하면 손에 장을 지져라. 뭐야.
놀라지 마세요, 주희 선생께서 이 논리를 갖고 한국을 비롯 동아시아 지성사를 무려, 무려 700년 동안 날렸더라구요. 웬만하게 잘 나간 왕조보다 더 영광이죠. 주희를 우섭게 보았더니 세계사적 인물이네. 한국은 이상한 나라에요.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데 남의 나라, 중국 사람 주희의 사상을 이조 5백년 내내 받들고 모셨으니. 그것도 광신도집단처럼.
여기서 주자와 왕양명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주희는 양지는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지혜로서 '먼저 널리 배워 그 이치를 안 후에 실천한다'는 소위 '선지후행'의 논리를 폈어요. 이에비해 왕양명은 양지에 의한 지행합일을 주장했죠. 왕양명은 효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그 이치를 모르면 실천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죠.
왕양명의 논리가 더 그럴듯해요. 성현의 가르침은 책을 읽고 연구할 수 있는 사대부의 독점이 아니라는 거죠. 여유없는 서민들도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양지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겁니다. 또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할 경우 이 내재하는 양지야말로 바로 천리라고 주장했습니다. 주희가 '엘리트지식인파' 라면 왕양명은 '서민파'죠. 이 왕양명이 조선시대때 이단으로 완죤 왕땅당했죠.
모두다 100% 아는 것. 유영래 대장의 좌우명, '양반답게 살자'. 멋진 좌우명 하나 소개. 명나라 말기 학자인 '육상객'의 '육연 (六 然)'이 있어요. 1)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고 2) 타인에게는 언제나 부드럽게 대하고 3)유사시에는 활기에 넘치고 4)무사할 때는 마음을 맑게 가지고 5)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고 6)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라. 현대 기업경영지침서 같구만. 고리타분한 옛날 사람 같지 않구만. 현대인에게는 주희보다 더 낫구만.
11.
낮 11시 20분 하산길에 나섰다. 윤지미산 정상에서 하산길은 거의 80도 각도의 낭떠러진 같은 급경사 길이었다. 하산길은 언제라도 마음이 편하다. 큰 산 하나를 내려오니 저 아래 차도로가 보여 앞에 놓인 산만 넘으면 최종 목표지인 화령재에 도착할 것 기분이었다.
그것은 착각. 높지는 않았지만 자그마치 세 개의 자그마한 봉우리를 더 넘어야 했다. 등산에 문외한인 최재왕기자가 "마지막 산인지, 넘어가 봐야 할 걸"이라고 운을 뗀다. 나도 "니 우째 그리 알았노. 이번이 두번째 백두대간 산행인데, 빨리도 터득했네"라고 맞장구친다. 늘 마지막 봉우리라고 생각해서 산행이 끝났다고 기뻐하면 또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이런 실망과 좌절이 반드시 있었으니까. 봉우리 뒤에 봉우리가 숨어 있는게 다반사. 그냥 종착지가 나올 때까지 걷는 수밖에. 이것이 백두대간 산행이 주는 깊은 의미가 아닐까. 인생은 그냥 가는 것. '일희 일비'할 것도 없이,기뻐하고 슬퍼할 것도 없이. 그냥 가다보면 종착점이 있는 것.이헌태, 또 철학 나오네. 개똥철학.
지대가 낮아지고 햇살이 따사로워지면서 초록 잡초들도 길섶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정신 나간 잡초 아냐, 봄 인줄 알았나 ,이게 겨울인지 모르나. 내리쬐는 햇살이 너무 따가워지면서 후덥지근, 여름철 더위를 느낄 정도였다.
산행 끝 자락에 청원과 상주를 잇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었는데 백두대간 능선을 끊고 지나갈 모양이다. 지명은 화서명 상곡리. 묘터에 묘를 이장하라는 통지나무팻말이 박혀 있었다. 오른편에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교각이 2열 종대로 늘어서 있었다. 백두대간을 자르더라도 최대한 환경이 파괴되지 않고 짐승들이 대간길로 이동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풀이든 짐승이든 생명을 중하게 여기는 백성이 앞으로 복받는 세계가 될 것으로 확신.
벌목된 참나무에 핀 표고버섯 무리. 억새풀이 바람에 한들한들 나부끼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억새풀은 늘 봐도 좋다. 갸날픈 몸매와 흔들리는 겸손, 솜틀모자의 따스함이 인간에게 매력을 준다. 무슨 사연인가 피를 흘렸는지, 막 태어난 도토리 참나무싹의 피빛 잎사귀. 백두대간 길이 잘려서 그렇나.
지난 산행 때까지 형형색색으로 다투며 뽐을 내며, 모두에게 기쁨을 선사했던 야생화는 야속하게도 온다 간다는 말도 없이 이번 산행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야생화 보는 낙으로 산을 찾고 또 찾았는데. 삭풍의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야생화도 버려야 하는구나. 산의 겨울나기는 이렇게 처연한 결단일수가. 대충 대충 아니구나.
서편 지명이 '수청거리' 라고 심상준 선배가 큰 소리로 떠든다. 노총각이 수청을 왜 좋아하는지. 혹시 할머니한테 수청 당하면 어떡하려고.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수청 드는 세상이라고 하네요. 이름하여 '호스트바'.
정오를 지난 낮 12시 25분, 종착지인 화령재 (해발 320미터)에 도착했다. 이날 산행 총 도상거리 16.7킬로. 아침식사 및 정상휴식시간 1시간 20분을 빼면, 순수산행시간은 대략 6시간. 운동량으로는 충분하겠지. 하머 하머. 이헌태,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 만세.
이번 산행도 지난 산행처럼 상주고을만을 관통해서 북으로 북으로 향했다. 차이는 지난 산행 때는 논밭과 마을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이번 산행 때는 중반 이후에는 사방을 둘러봐도 산밖에 없는 깊은 산길 속을 지나갔다. '논밭 상주'에서 '산 상주'로 넘어간 것이다. 이는 속리산의 심심산골로 이어진다는 것을 암시. 빨리 속리산에 입성해야지. 경관 100점이라고 하네요. 다음 다음 산행 때는 속리산 국립공원에 들어가죠. 기다려진다. 속리산 정상인 문장대도 상주소속이라네요.
백두대간에서 상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상주는 상스러운 땅인가, 상놈들이 많이 사는 땅인가, 장사 잘하는 사람들이 사는 땅인가, 상민 즉 평범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땅인가. 아무렴 어때 백두대간의 웅장하고 장엄한 멋이 상주에 다다라서 흐느적 흐느적 하는 것으로 봐서 특이한 곳인 것은 틀림없구만.
화령재를 넘나드는 차들이 꽤 많았다. 경북과 충북을 잇는 국도. 서울로 가는 길목. 지리산에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북상해 오면서 이렇게 통행량이 많은 도로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오른편은 상주쪽일 것이고 왼편은 청주,보은과 괴산, 화복, 문장대로 넘어가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12.
화령재에 도착하니 전세버스 기사아저씨가 고향인 상주에서 볼 일이 있어 늦는다고 한다. 부인이 김장김치 하러 시집에 미리 내려왔다고 한다. 그 사이 윤상욱 선배와 나, 박현수선배와 최재왕기자는 '화령정' 정자 옆에 등을 기대고 누어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일광욕을 즐겼다. 병든 병아리 새끼 마냥 햇볕을 쬐고 있었다. 아, 얼마만에 이같은 따사로운 햇살 축복을 받고 있나. 얼굴이 따가운 햇살로부터 강하게 공격을 받으니 눈은 어느새 봄눈 녹듯이 따사해지고 이내 몸은 노곤해졌다. 얼굴은 화상을 입기 직전의 느낌, 화끈화끈. 아시죠, 태양을 향해 얼굴을 정면으로 드러내고 쬐고 있으면 어떤 기분인지. 좋지 뭐.딩동댕, 정답. 윤상욱선배와 최재왕기자가 이내 드렁드렁 코를 골고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아니지 따가운 햇살이 수면제이구만. 따스라운 햇살이 너무 좋다.
오후 1시 전세버스가 화령재에 도착, 상주시내로 가서 술판을 벌였다. 상주 '술도가' 막걸리를 사오게 해서 촌에서만 맛 볼 수 있는 기가 막힌 삼결살, 고소한 배추, 된장찌개로 배를 잔뜩 불렸다. 오후 3시가 되어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서 상주에서 수안보쪽으로 귀경했다.
산천이 적막하고 고독하고 고요하다. 을씨년스럽고 스산하다. 마음까지 춥게 만드는 겨울의 정취다. 자연은 침묵수행할 채비다. 차창으로 비친 들녘은 황금 물결. 잉, 자세히 보니 추수가 끝난 누런 땅이네. 구분이 잘 안되네. 논위에는 잔털만이 남아있네.
겨을 들녘을 보면서 느낀 이헌태의 생각 2. "텅빈 들녘을 보면 허전하고 외로워 보인다. 황금 물결로 출렁이던 화려했던 시절, 그 향수가 그리워 지지 않나. 마음 편하게 살아라. 풍요 뒤에 찾아 드는 휴식이고 봄의 생명을 기다리는 동면이겠지. 들녘도 겨울채비를 하는 구나. 이것이 바로 자연의 순리이지 않겠나"
산도 겨울채비를 하고 있었다.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나뭇잎 말끔히 털고 낙엽 두둑히 깔고. 나뭇잎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으면 오히려 더 춥지. 낙엽은 보온효과. 산도 나무도 똘똘하구만. 나도 산을 따라서, 겨울채비해야지. 없구만. 짝이 없는 분들은 겨울채비하세요. 옆구리 따뜻하게 해줄 분. 저야 마누라와 자식이 있으니.
상주에서 충북지역으로 오면서 보니 산세가 웅장한 게 남성적이다. 우뚝 솟은 산 마루에 소나무가 홀로 서 있는 곳도 있다. 저, 소나무가 나 같은 凡人의 기를 죽인다. 도연명의 사시 (四時), 즉 사계절이라는 한시가 생각난다. " 봄물은 연못에 가득하고 / 여름 구름은 산봉우리들처럼 떠 있네 / 가을 달은 밝은 빛을 비추고 / 겨울 산마루엔 큰 소나무 한 그루 서있네". 도연명도 사계절을 정리 잘 했네. 성현들의 글을 보면 항상 쉬운 말로 정리 잘 한 사람이더라구요.
충주를 거쳐, 중부고속도로를 통해 저녁 7시쯤 서울 강남의 중심지 삼성역에 도착, 한잔 더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딸이 아빠와 함께 숙제하기로 약속한 '연 만들기'를 버떡 끝냈다. 서울에 온 대구 청년이 호떡집에 가서 '아줌마 버떡 주이소'라고 하니 아줌마 왈, '호떡은 있어도 버떡은 없어요'라고 했다죠. 샤워하고 잠에 곯아 떨어졌다.
이번 백두대간 열여덟번째 산행의 결론은 '없음'. 없을 때도 있어야지. 없다고 하니 또 생각나네. 효봉스님의 화두와 마지막 임종계도 '무(無)'였다고 하네요. 큰 선승들이 돌아가실 때는 "이제 내가 갈 때가 되었구나" 하시면서 담담하게 속세와 육신의 옷을 벗고 입적하신다고 하죠. 임종게를 남기면서. 선승이 아니시더라도 죽기 마지막에 감동적인 한마디를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더라구요. 영어로 잇츠 오버. 게임 끝.
13.
'임무 종료 선언'의 대표선수는 원나라에 의해 망한 남송의 충신 문천상.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벼슬을 간절히 권하였으나 끝내 거절, 사형당했죠. 이민족에 굴복하지 않았으니 한족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뻔할 뻔자. 중국 역사상 걸출한 민족영웅이 되었죠.
문천상은 사형될 때 형리를 돌아보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네요. "나의 일은 끝났다."(吾事畢矣,오사필의). 캬 멋있는 말이다. 만고의 충신이 만고의 명언을 남겼구나. 옥중시 '정기가(正氣歌)'가 유명하죠."
"천지에는 정기가 있으니 이러저리 흘러서 모양을 이룬다. 아래로는 강과 산이 되고 위로는 해와 달이 된다. 사람에게는 호연지기가 되고 널리 퍼져서는 대양에 넘친다". 그 이후 "나의 일은 끝났다"는 말이 유명해졌다고 하네요. 이헌태도 나의 일은 끝났다. 뭐. 그냥 멋져 해봤어요. 이헌태 니는 한 일이 하나도 없어서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삐 빠지게 좋은 일을 해야 죽고 나서도 심판을 받을 때 겨우 참작되지 않을까.
마지막 코멘트 약간 정리해보죠. 몇 사람 더, 끝났고 말한 사람이 있죠. 영웅일수록 그런 말을 하는 구나. 일이 되든 안되든. 히틀러는 자살 직전 "이제 모든 것이 끝났어. 죽음이 내게 휴식이 될 거야. 나는 배반을 당했어". 곧잘, 죽어도 잘 했다구만. 짜식 왜 지는 전쟁을 일으키고 자살하고, 온 세상을 걱정 끼쳤어. 레닌도 1924 사망 직전에 "이제 내일은 끝냈으니 평화롭게 떠날 수 있다"고 말했네요. 나중에 소련연방이 무너지고 공산주의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환장할긴데.
톨스토이도 1910년 11월 5일 "그래 이제 끝이구나. 별 것도 아니구만" 이라고 했다가 의식을 되찾은 후 "아 귀찮아 날 내버려두지 .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가니'라고 말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고 하네요. 뭐야. 그래도 여유롭게 돌아가셨구만. 마호메트는 632년 "신의 말씀을 모두 전하고 제 사명을 끝냈습니다"라고 했네요. 역시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네. 지금 13억 인구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죠. 단일종교는 세계 최대종교죠. 그만하면 진짜로 성공했구만. 푸근한 마음으로 죽었겠지.
아쉬움을 표한 분이 계시더라구요. 마하트마 간디 (1869-1948) 는 말년에 무거운 과업에 절망하면서 " 스스로 떠안은 책무를 다하기 위해 120살까지 살아야 한다"고 했다고 하네요. 간디 같은 성인은 오래 사셨지만 좀 더 사시지. 그래도 오래 사셨나.
소크라테스가 청소년의 사상을 어지럽힌 죄로 사형선고를 받는 재판에서 마지막 인사말을 통해 " 시간이 다 되어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죽기위해 여러분은 살기위해 . 그러나 우리 가운데 어느쪽이 더 좋은 곳으로 가는 지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형 선고 내리는 놈들 가슴 뜨금 하겠다. 이런 것을 보면서 죽으면서도 '꽥 소리'한다고 하죠.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1804년 2월 12일 죽기 직전에 "좋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네요. 산 게 좋다는 거요, 죽는 게 좋다는 거요. 나 원 참. 우찌 되었든, 세계적 철학자 답네.
마지막 코멘트의 압권. 동학농민전쟁 때 전봉준 녹두장군은 체포된 뒤 정치구상을 밝힌다. " 일본병을 물러나게 하고 약간의 관리를 축출해서 임금 곁을 깨끗이 한 후에는 몇 사람의 주석(柱石)의 관리를 내세워서 정치를 하게 하고 우리들은 곧장 농촌에 들어가 상직인 농업에 종사할 생각이었다".
농촌으로 돌아가리라. 이헌태 생각하고 우찌그리 똑같소. 나도 나라를 평정하고 갈려고 했는데 힘과 능력이 없어서. 그 차이구만. 그냥 도시에서 버티다가 50살 안팎에서 농촌으로 갈 계획입니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사형순간에도 의연했다고 하네요. 녹두전 먹고 싶다. 이헌태는 죽기 전에 무슨 말을 할까. '잘 있거라. 나 간다. 그 동안 고맙다. 볼 수 있으면 또 보자. 안녕' 진짜 안녕. (11월 29,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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