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 (23) - 상주야산, 백학산

1.

백두대간 종주를 향한 17번째 산행에 나섰다. 특히 이번은 2년차 첫번째 산행이라서 더욱 의미가 깊다. '새로운 출발, 새로운 각오'

걸핏하면, 억지로라도 의미 부여 좋아하는 이헌태에게는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감격이겠구만. 어떻게 아셨어요. 새롭게 맞는 또 한 해는 더욱 아름답고 즐겁고, 보람찬 산행이 되기를 기원하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죠. 대간 형제들에게도 기쁨과 영광이 있으라. 또 하나, 무사하기를.

무사(無事). 무사(武士). 이것은 아니고. 공자님이 말씀하신 '시3백편 사무사 (思無邪)' 에도 무사가 있네. 시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사악한 사람이 없다고 하네요. 별 탈이 없는게 무사(無事)고 무사(武士)가 되면 무사 (無事)할 것이고, 진정한 무사(武士)는 사악한 마음이 없어야, 즉 무사(無邪) 해야 하고. 셋 다 통하는 구만. '통하였소', 네 '통하였소이다'

시시한 얘기 그만하고. 잉. 시가 반복되니 시시한 사람이 되네. 전에 그랬죠. 시인들은 시시콜콜한 사람이라고. 아니먼 그만이고.

이번 산행에는 둘도 없는 친구인 매일신문 최재왕 기자를 모시고 갔다. 나도 한때 기자생활을 했지만 기자님들 잘 모셔야지. ㅋㅋ. 고양시 화정에 사는 나는 그와 함께 가려고 합정 전철역 구내에서 만났다.

평소 입만 떼면 대간 산행을 권유해서 나온 터였지만 그의 옷차림을 보니 기가 막혔다. 그냥 등산화 흉내를 낸 운동화에 청바지에 파커 하나 걸친 게 전부였다. 배낭도 없이. 어쩌겠는가. " 괜찮아, 그냥 가자 "고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심 "와, 너무하다. 니 오늘 고생 좀 해봐라". 백두대간 코스는 북한산이나 관악산 코스와 체급(體級)이 다른데. 그러나 일단 가 보자, 죽기 아니면 까무르치기지 뭐. 산을 만만하게 보면 큰일 나는데. 고생하면 니가 하지, 내가 하냐.

둘은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인 강동구 길동 전철역 인근 청산학원 앞에 도착했다. 비가 내린다는 뉴스가 있기도 했고 더러 더러 개인 사정도 있고, 그런지 참석자는 모두 13명이었다. 단출했다.

전세버스는 저녁 11시 반쯤 청산학원 앞을 출발해서 중부고속도로를 통해 대전을 경유,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유영래 대장은 버스안에서 2년차 첫 산행을 맞아 인사말을 통해 "미국의 정치학자 라스웰에 따르면 조직이 위기를 맞았을 때 기본에 충실하면 그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전제하고 '기본에 충실할 것'과 '자기 점검'을 당부했다. 맞습니다, 맞고요. '기본에 충실하자'. 위로는 대통령에서부터 저 아래 어린이까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이 대원칙을 지키면 '만사 오케이' 지 뭐. 지난 일년이 너무 유익하고 재미났듯이 올 한 해도 더 나아지기를 바랬습니다.

다시 한번 외칩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기본에 충실합시다. 기본적으로 덜 된 인간들은 빼고. 이헌태 같이, 헛소리 잘하는 놈, 이빨 센 놈들. 잉.

전세버스는 충북 황간을 거쳐 경북 상주로 들어가 오전 3시쯤 지난 산행 때 마쳤던 '큰재'(경북 상주시 공성면)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칠흑같이 캄캄한 어두운 밤이어서 바로 앞에 있는 옥산 초등, 인성분교의 폐교터가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아이쿠'. 올 한 해 참 지독히 내리는 비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라고 하니, 이전의 비와 속성이 다르겠지.

큰재는 행정구역상 신곡리. '신곡리, 하(下)남실, 상(上)남실, 화합'이라는 글씨가 쓰여진 기념석이 세워져 있었다. 너무 싸워서 화합하자는 뜻인가. 모르겠다. 국민 여러분, 지역이든 계층이든 세대든 제발 싸우지 말고 화합하고 삽시다. 제발 좀. 뚜껑 열리기 전에.

2.

종교화합은 한국이 그래도 세계의 모범국이라고 하네요. 지구상에 이념갈등이 사라지고 난 뒤 겁나게(전라도 사투리) 새로 등장한 인종갈등과 종교갈등을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죠. 전세계에 불교와 기독교, 유교, 천주교를 골고루 믿으면서 서로 사이 좋게 지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하네요. 이슬람은 왜 없냐.

'세계 제1위 종교 화합국'. 어느 정도냐 하면 불교의 비구니, 천주교의 수녀, 원불교의 정녀들이 정기모임을 갖기도 하더라구요.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하늘에서 쳐다보시면 황당하시겠네. 무한대의 사랑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차마 그런 생각을 가지겠어요. 한국의 '종교 대화합' 만세.

한때 미국을 가르켜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멜팅 포트', 즉 용광로라고 했죠. 융합까지는 되지 않고 있다고해서 '샐러드 바울(그릇)' 이라는 표현이 맞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한국의 종교간 화합도 아직 '멜팅' 은 아니고 '샐러드' 수준이지만, 그래도 종교끼리 피 튀기게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보기 좋죠. 하느님이나 부처님은 불만이 가득차 계시는 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는 몰라도.

질문 하나. 종교가 골고루 나뉘어져 잘 어울리는 것은 좋은 건가 나쁜 건가. 화끈하게 한 종교만 믿든지,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분산해서 믿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농담이고요.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나쁜 짓 하지 않고 착하게 산다는 것이니까.

여기서 심층연구. 대한민국이 이처럼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니죠. 동북아시아 1위도 아니고 아시아 1위도 아니고 세계 1위 말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좋은 의미의 '대단한 민국'의 준말인가.

세계적 경영석학인 '피터 드러커'는 책 '넥스트 소사이어티'를 통해 "한국은 기업가 정신이 세계 1등인 나라다. 왜냐하면 40여년 전만 해도 한국에는 기업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적고 있죠.

첨단 선진제품에서 한국산(産)은 단연 돋보이고 있습니다. D램 반도체, CDMA 휴대전화, 초박막 액정표시장치 생산이 세계 1위를 차지해서 최첨단 전자시장을 주름잡고 있죠. 특히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수 1위, 인터넷 쇼핑이용률 2위를 기록하면서 '인터넷 강국' 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죠. 또 선박 수주량 및 선박 건조량 1위, TV 수상기 생산 2위, 자동차 5위, 철강생산 6위 등등 자동차, 조선, 철강분야에서 세계 수위를 달리고 있다고 하네요. 가히 '선진공업국'의 면모가 아닐 수 없죠.

불과 50여년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농업국 가운데 하나였던 처지, 신세와 비교하면 가히 '상전벽해' 죠. 감히 상상도 못한 일이다. '독종 民族'이고 '극성 民族'이고 '특이 民族'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나서 한결 같은 반응은 '한국과 한국 사람들이 너무 역동적이어서 반했다'는 것이죠. 언론 인터뷰에서 많이 보셨죠.

우리 조상들도 대단했어요. 세계 최초 기록이 몇 가지 있죠. 석가탑 안에 감춰져 있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세계최고의 인쇄물이고 고려 '직지심체요절'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이죠. 세계적 공인을 받지 못했지만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죠. 국력만 세다면 바로 공인될 수 있는데. 말이 세계 최초지 , 그것이 어디 쉬운 얘기입니까. 조상들이 대단히, 아주 대단히 똘똘했구만. 아마 당시로서는 첨단산업의 기수였죠. 그러니 근래 세계에서 한국이 날리는 것은 어찌보면 이상할 게 하나도 없죠.

한국이 세계에서 머리가 제일 좋은 民族에 속한다고 하네요. 세계 IQ조사에 따르면 가장 높게 나온 지역은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국가들로 평균 105. 미국 캐나다, 유럽등 선진국들은 평균 100으로 측정되었다고 하네요. 평균 70대로 가장 낮은 지역은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전역과 카리브해 섬나라들이라고 하네요. 서구 선진국들도 우리보다 머리가 나쁘구만. 조상들에게 감사합시다.

한국이 좋은 면에서 세계 1위도 많지만 나쁜 면에서 1위도 수두룩 하더라구요.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죠. 인내심을 갖고 들어보세요. 한국이 이 정도 지랄 같은 나라였나 하는 수치와 부끄러움, 역겨움이 들거에요. 한국 사람들 성질 다 아시잖아요. 한번 했다 하면 불과 눈깜짝할 사이에 바로 1위로 올라서 버리니. 박정희 대통령의 압축경제성장도 혹시 그런 民族성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1) 한국 출산율이 OECD국가 (경제협력개발기구, 소위 세계에서 먹고 살 만한 나라)의 평균 1.7명보다 훨씬 더 낮은 평균 1.17명. 물론 세계 1위, 금메달 획득. 이런 식으로 가면 조만간 한국에는 노인들만 바글바글. '대한 민국'이 아니라 '대한 노인국'으로 바꾸어야 할 판. 흥부의 자식농사도 심했지만 그래도 부부당 2명은 나아야지. 그것도 못하겠다니. 농촌이 피폐, 농사 짓기가 어렵다 보니 '자식 농사'도 따라서 힘든 모양. 나 원 참참.

20-64세 근로자가 65세 이상 인구를 부양하는 비율이 2025년에는 OECD평균인 25%에 이르고 2050년에는 68%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로 부상한다고 하네요. 언젠가 1위를 차지하겠지 뭐. 젊은 사람들이 그 많은 늙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여 살려. 참 골치 아프구만.

최근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한국근로자의 직장퇴출 개시연령이 35세로 OECD가맹국 평균보다 10년이 이르다고 하네요. 이것도 세계 1위 아닌가 모르겠어. 현재 사회은퇴연령은 68세로 세계 4위로 통계가 잡혔다고 하네요.

2) 세계에서 냉전으로 인한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 다른 나라, 다른 民族들은 벌써 합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데. 아직도 절대 다수가 피붙이 가족들 얼굴도 못 보고 있으니. 참으로 지독한 民族이야. 한반도 주변 4대강국이 한반도 통일을 바라는 거야, 바라지 않는 거야. 미래에 통일이 되겠지만 마지막 분단국의 기록은 영원한 것.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벌써 15년 가량이 지났는데도.

3)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 아주 치사하고 옹졸한 것으로 세계 1위. 미국이나 해외교포 사회에서 이민 온 民族가운데 서로 헐뜯고 싸우고, 장사 좀 된다 싶으면 우루루 따라해서 다 같이 망하는 유일한 나라. 교포사회 내에서 패를 나눠 아주 원수처럼 싸우는 유일한 民族. 남들한테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겠구만.

국내에서도 해방이후 지금까지 국민들이 반듯하게 내세울 만한 지도자가 한명도 없어. 약점을 잡아내어 무조건 짓밟아버리니까. 한국이 외국보다 더 못한 인간들만 살지는 안잖아요. 멀쩡한 지도자도 일단 다리 걸고 무조건 폄하해서 병신, 쪼다 만들어 버리죠. 한국을 '지도자 병신만들기 세계 1위국'으로 임명합니다. 외국에서는 시원찮은 지도자도 위대한 지도자로 만드는데. 우리는 거꾸로요. 그래야 직성이 풀리니.

4) 일반 영국인들이 마시기 힘든 발렌타인 30년까지도 맥주와 섞어 폭탄주를 마시는 유일한 나라. 알코올 중독 증세가 중증인 나라. 세계 최고 술꾼 집단이지 뭐. 술만 마시는 게 아니고 한 잔만 들어가면 가무가 나오죠. 화끈하게 노는 民族이죠. 호주,뉴질랜드에 가보니 그 지역 교포들이 '한국은 지옥 같은 천국이고 여기는 천국 같은 지옥'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나라는 평화롭고 여유가 있지만 생기가 없고 재미가 없다나요. 청소년 자살율도 높다고 하네요. 한국이야 사느라 머리가 지끈지끈해서 탈이지 놀기는 좋잖아요. 띵가띵가. 띵가띵가, 놀아보자.

5) 세계 관광지에 한국인 낙서 세계 제1위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지구차원의 명산인 금강산 암벽에 새겨놓은 패악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일). 공중도덕이 꽝이라는 얘기죠.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굴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낙서실력이 화장실 벽을 도배했는데, 시에다가 그림까지 곁들여진 그 원초적인 예술성이 돋보인 화장실 문학(?)도 사라졌으니. 너도 나도 세계 화장실문화 1위에 도전하더라구요. 한 번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할머니 한 분이 "화장실이 집 안방보다 더 좋더라" 며 놀라는 표정을 짓더라구요. 이불 펴고 사세요.

6) 사교육비 세계 1위. 공교육비의 40%를 학부모등 민간이 부담. 전세계에서 한 가정의 수입의 반이 교육비로 들어가고 집값이 교육환경때문에 결정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유네스코 연구대상국. 다른 나라에서 보면 교육투자가 대단한 나라로 부러워하겠구만. 실상은 헛교육에 헛돈이 들어가는 헛짓을 하고 있죠. 그래서 요새 몸에 좋다고 헛개나무를 마구 베어 산에서 아예 사라질 운명이라고 하네요. 헛짓 잘하는 민족이니 헛개나무가 딱이지 뭐.

얼마전 보니까 고등학생들이 "학교보다 학원이 더 잘 가르치고 학생들을 더 아껴준다"고 했다고 하네요. 그러면 학교를 학원으로 , 학원을 학교로 바꾸면 되지 뭐. 학교의 질이 향상될 때 까지. 공교육이 사교육에 밀리는 세계 유일의 나라. 미국이나 호주등 외국에서도 한국 교포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강남 같은 8학군이 생긴다고 하네요. '8학군'을 한국 최고 수출품으로 지정합니다.

7) 사정이 이렇게 되니. 한국 학생들이 학교에서 느끼는 소외감의 정도가 세계 1위라고 하네요. OECD가 조사한 '학생들의 학교생활 불만에 관한 보고서'를 보면 조사대상 42개국 가운데 한국과 폴란드 학생들의 소외감이 41%로 가장 높다고 하네요. 한국은 출결상황은 가장 우수했지만 학교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정반대. 그러면 학교에 왜 가는데. 배울 게 없어서 학교에 소외감 배우러 가나. 웃기는 학교야, 웃기는 나라야.

8) 정치 낙후는 세계 1위. 세계는 '무한경제 전쟁중', 중국은 '선진국 건설중', 그런데 한국은 안타깝게도 이를 외면하고 항상 치고받기 '싸움중'. 대통령 선거만 끝나면 이전 정권 실세들이 깜방에 가고, 대통령은 퇴임과 함께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해 밖에 나다니기가 찝찝하고. 정권만 바뀌면 새로운 여당이 탄생되고. 여야가 4년 내내 쉬지않고 싸우고. 우째 그런 힘이 나오는지. 싸움꾼들이 원래 힘은 세잖아요. 하여튼 OECD나라 가운데 정치분야는 특히나 가장 한심한 나라.

9) 건망증 세계 1위. 97년 경술국치에 버금간다는 외환위기가 닥치자 안방 깊숙히 감춰둔 ,눈물어린 사연이 담긴 결혼 반지까지 내놓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세계를 깜작 놀라게 하더니 이내 곧 잊어버리고 흥청망청하다가 다시 '쪽박'차게 생겼다. 거의 '똘박' 수준. 둘다 '박'이네. '똘박' 짓하면 '쪽박'차네. '대박'이 좋은데. 하여튼 금방 끓고 금방 식어버리는 한국의 '냄비근성'은 알아 줘야죠.

5년전 한국 사람들이 몇 백년전만해도 얼굴도 못 들던 황제국 중국 땅에서 돈을 물쓰듯 쓰면서 거만하게 굴자 자존심 상한 중국 사람들이 "조금만 기다려라' 라며 성질을 죽였는데 불과 몇 년 만에 현실이 되어 버렸죠. 쪽 팔려서.

10) 세계 평등 의식 세계 1위. 지독한 평등 사상. 교육도 평준화. '우열반' 만들면 부모들이 난리가 나죠. 농땡이와 천재가 같은 반에서 같은 내용의 수업을 받는 나라. 중국 공산당 지도자 였던 등소평의 '선부론' (先 富 論)'. 즉 다 같이 잘 살 수 없으니 능력 있는 놈들부터 잘 살자. 바로 이순간 한국에서 어떤 정치인이 이런 말하면 바로 매장되어 버리죠. 남이 먼저 잘 사는 꼴을 못 보죠. 노동자, 농민을 위한다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데 반해 자본주의 한다는 한국에서는 이런 얘기는 절대, 절대, 절대 불가. 그러니까 나보다 잘 살면 무조건 배아파. 잘 사는 사람들이 못 사는 사람 약올리면서 못된 행동을 한 탓도 크지만.

11) 뭐든지 성장율 1위. 압축경제성장의 결과, 50여년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일인당 국민소득과 국가경제력이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가족 해체율도 세계 1위. 또 성개방율도 세계 1위. 불과 20,30년 전만해도 순결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해 매춘부가 된 여성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혼전순결이 문제가 된 시기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고 동거의 효율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 여성들의 의식도 속도전 양상. 한국에서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요즘 세태를 보면 '1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가 정답.

12) '사상 변신율' 세계 1위. 기독교, 불교, 유교는 남의 나라에서 탄생한 종교. 한국에서는 어떤 때는 우직스럽게 나쁘게 말해, 골통스럽게 받아들이고 또 반대로 버리면 총알처럼 버린다. 고려 5백년 동안에는 오로지 불교만은, 조선 600년 동안에는 오로지 주자학만을 섬겼다. 그 당시 타 종교에 대한 탄압이 얼마나 극심했나. 지금 중국에서 별로 인기가 없는 유교를 한국만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다.

조상들은 너무 외골이라서 문제지만 현대는 너무 돌변해서 문제. 80년대 들어와서는 유럽에서 퇴조한 맑스 레닌주의를 뒤늦게 수용해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가 10년이 채 가기도 전에 이를 폐기해 버렸죠. 지금이야 언제 내가 그런 얘기를 했느냐는 식으로. 지금 맑스,레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찾기 매우 힘들죠. 언제가 또 부활할지는 몰라도.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국가들이 다들 '걸뱅이' 국가가 되는 바람에 자본주의가 라이벌이 없어져 거의 미친 자본주의가 되고 있죠. 누구 탓이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할 때 좀 잘하지. 짜식들 안하는 것보다 못한 꼴이 되었잖아. 아. 열받아.

13) 권위주의 세계 1위. 서양에서 권위주의가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죠. 미국에도 대통령 참모진들이 대통령 앞에서 다리 꼬고 앉아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 보세요. 중국 국가주석이 말단 공무원하고 서로 어깨를 치면서 농담하는 모습 보세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위주의는 최고수준의 나라.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가정이면 가정, 직장이면 직장, 사회면 사회, 권위주의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건재하죠, 노무현 대통령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민주적이면 뭐합니까. 대통령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주변의 분위기가 왔다 갔다 하는데요. 아직도 갈 길이 뭡니다. 제가 그랬죠. 압축경제성장은 가능하지만 압축민주의식성장은 요원하다구요. 그것은 시간이 걸리죠.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실천해야합니다.

14) 이중의식과 이중행동, 즉 '이중성'도 세계 1위가 아닐까. 호박씨 까는 것. 더불 플레이하는 것. 이것은 통계는 없지만. 시어머니는 같은 여자인데도 딸한테는 잘 대하고 며느리에게는 구박하고. 시어머니면서 친정어머니의 이중구조. 아짜시들도 딸에게는 금지옥엽처럼 애지중지하면서도 술집에서는 딸 같은 접대부하고 정신없이 놀고, 회사에서도 상사에게는 꼼짝도 못하면서 부하 앞에서 폼 잡고.

사회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차별을 받지만 결혼하면 집안에서는 남편이 마누라에게 기가 죽어사는 아이러니칼 사회. '제왕적 마누라'. 가정 내 여성파워도 아마 세계 1위로 급성장한 것 같아요. 30여년전에는 가정주부가 가장인 남편앞에서 제대로 숨도 못 쉬었는데. 그때로 돌아가자. 자연으로 돌아가듯이.

양평에서 빼어난 음식솜씨를 자랑하는 '사랑 터울'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김사장 누님에 따르면 손님 가운데 부부와 연인사이는 금방 구분이 간데요. 다른 음식 시키고 서먹서먹하게 앉아 있으면 부부관계이고, 같은 음식 시키고 다정하게 얘기꽃을 피우면 연인관계라고 하네요. 이게 바로 이중성의 대표적인 케이스죠. 이런 부부관계는 세계에서 유일하죠. 싫으면 헤어져야 하는데 마누라는 평생 집에 모셔두고 밖에서 딴 짓하는 거죠.

"국민 여러분, 축하해 주십시오. 드디어, 드디어. '동방예의지국'을 자처하던 한국도 드디어 이혼률이 세계 2위로 올랐습니다. 앞으로 이 추세대로 가면 조만간 세계 1위를 차지할 날이 머지 않을 것입니다." 미친 놈. 할 바에는 일등하자, 불화가 잦은 부부들 세계 기록을 위해 빨리 헤어집시다. 조국을 위해 할 일이 생겼습니다. 한국 국민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이헌태, 또라이. 니부터 헤어지라. 저야 그냥 살래요. 마누라 잘 모시면서.결사옹위, 결사옹위

15) 이기적 행동 세계 1위. 계량적인 통계는 없지만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재산기부율'이 OECD국가 가운데 가장 꼴찌가 아닐까. 확신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까워 하는지. 그러니 못 사는 사람들이 잘 사는 사람들을 존경하지 못하지. 누구 때문에 돈 벌었는데, 사회에서 나와 돈 벌었으면 사회에 돌려주어야지.

노동자 파업도 그래요. 예전에는 노동자 인권이 열악하던 시절, 파업도 좋죠. 지금은 돈 많이 받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더 파업하더라구요. 파업을 아주 정기적으로 놀이 삼아 하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한국에서 공장이 다 떠나 국민 모두가 깡통차죠. 한국 노동자들도 참으로 이기적이죠.

중국 공산당 간부가 한국 노동자들은 왜 걸핏하면 파업해서 외국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게 만드냐고 하더라구요. 나 원 참, 공산당이 이런 말 해도 되는거야. 한국 노동자 단체를 지원하지 못할 망정 한심스럽게 쳐다보고 있으니. 아 슬프다, 중국 공산당이여 만국의 공산혁명목표는 어디 갔으며 당신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공산당인가. 한국의 노동단체들이여 중국으로 건너가서 노동자파업을 수출합시다. 뭐야. 파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누가 봐도 명분있게 대충 합시다.

16) 이외에도 세계 1위는 천지 삐까리. 교통사고 사망률 세계 1위.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모여 사는 세계유일국. 모두 고향 앞으로. 이헌태, 니부터. 그러면 없던 일로.

또 부모들이 평생 자식에게 매여 사는 나라도 대한민국 밖에 없다고 하네요. '평생 애프터 서비스'. 자동차가 아니라 자식이다. 외국에는 18살 성인만 되면 독립시킨다는데, 한국은 대학 보내주고 집 사주고. 그래도 나중에 대접 옳게 못 받잖아요. 대한민국에서는 자식이 원수죠.

앞에서 지적한 16개 사항 이외에도 끝도 없이 많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분석해봐도 한국 民族 이거 웃기는 짜장면이구만. '대한민국'이 '대단히 한심한 민국'의 줄인 말이네. 싹수가 노란 民族이네. 역동적이기는 개뿔이 역동적이야. 역한 똥, '역똥' 적이구만.

한국 사람들은 좋든 나쁘든 한번 했다 하면 세계 1위고, 한번 했다 하면 세계의 역사를 다시 쓰고, 한번 했다 하면 끝장을 보려고 하니. 세계를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데 선수구만. 임산부 아기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주세요.

알다시피 세계를 놀라게 한 '금모으기 운동'과 지난 해 월드컵 때 질서정연한 '거리응원'으로 세계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 民族이고 거꾸로 홧김에 서방질할 정도로 열 받았다면 뵈는 게 없는 民族이죠. 과연 이 民族은 어떤 民族입니까. 기본 머리는 돌아가고 착하고 순한 면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치사하고 야비한 면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정체가 무얼까요.

다음에 가장 맞는 답은. 1) 앞으로 틀림없이 세계를 리더하는 民族이 될 것이다. 전도양양한 民族이다. 2) 民族성을 조금 더 고치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民族이다. 잘 될 民族인데 주저주저하고 있어 안타깝다. 3) 民族이 번영하려면 고쳐야할 성질이 하나 둘이 아니다. 대폭적 손질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본 머리가 있고 부지런하기 때문에 굶어 죽지는 않는다. 세계전체적으로 볼 때 평균이상으로는 산다. 4) 아무리 고쳐도 이 民族은 구제불능이다. 언젠가는 '쪽박'찰 것이다. 이헌태 생각으로 정답은 3번.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

이번 산행도 지난 산행과 마찬가지로 급경사를 끼고 있는 해발 높은 산은 없고 낮게 오르내리막이 계속 이어지는 비교적 쉬운 코스. 참 다행이다. 백두대간 종주하면서 편한 길 찾기는. 그래도 편하면 좋지. 고생하는 게 좋다고 하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이 정신병자. 가다 보면 고생길도 나오지만 일부러 찾아가는 것은 또라이.

속세의 인간들과 출, 퇴근이 필요 없는 새들마저 (뭐야), 쿨쿨 잠이 든 한밤중인 오전 3시 20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우비를 걸치고 랜턴을 켠 채 인성분교 왼편 길을 따라 힘찬 첫 걸음을 내딛었다.

최재왕은 내가 준비해온 우산을 펼쳐 들고. 비오는 산속을 우산 쓰고 가는 것도 운치가 있더라구요. 대간길이야 길섶 우거진 잡목이나 나뭇가지에 걸려서 오히려 불편하죠. 그러나 어떡하겠습니까. 요령껏 지나가야지 뭐.

대간길이 마을 뒷산이라서 그런지 마루금에 무덤이 왜 그리 많은 지. 무리를 지어 가는 인적 소리에 형체도 이름도 모를 새가 놀라, 잠을 깨고 푸르르 푸르르 소리를 지르며 날아간다. "이것들이 잠자는 데 왜 지랄 들이야"라며. 미안하다, 새야.

랜턴 불에 비친 대지 위에는 추락한 누런 낙엽들이 카펫을 만들며 깔려 있었고 그 낙엽을 적시고 있는 물들이 랜턴 불빛을 받아 수정처럼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생명수'. 사이비 교주들이 '물'로 장난치는 이유를 알겠다. 물. 오늘 보니 생명에 대한 외경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거룩하고 신비로운 물질.

사위는 암흑천지. 하늘도 안개로 가득 찼다. 랜턴 불빛에 드러난 대간 길과 그 길을 뒤덮고 있는 낙엽, 불빛 반경에 들어온 길섶 나무와 풀들이 오로지 세상의 전부였다. 그래서 나온 게 있죠. 보이는 것만이 중요하냐, 아니다는 뜨거운 철학 논쟁들.

이 날, 이 시간 이헌태가 발견한 위대한 사실. 압구정에는 비상구가 없고 비오는 하늘에는 별이 없다. 이헌태, 다 아는 사실이야. 그렇군요.

어둠의 세계에서 나약한 이헌태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단 하나뿐이었다. 조용히 걷고 또 걷는 것. '묵언산행', '침묵산행'이 저절로 되어 버렸다. 원래 야간산행은 속도가 매우 빠르다. 구경할 아름다운 산천도, 얘기할 상대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득도한 선승들은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굴 속에 틀어 박혀 면벽하고 혼자 묵언하는 것인가. 이헌태는 '야간 산행'을 '득도(得道) 활동' 으로 규정합니다. 동안거(冬安居)가 별 것 인가. 겨울철 '야간산행' 하면 '동안거' 지. 이헌태, 너무 아전인수적 해석하지 마세요. 네.

아니나 다를까. 유영래 대장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마음을 보고 , 마음을 따라 걸으라"고 하시네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모처럼 혼자 걸으면서 더욱 착하게 살아야지, 돈을 모아서 세계 배낭여행을 떠나야지 하는 생각을 다부지게 했다. 이헌태 너 뭐야. 악착 같이 돈 벌면서 착하게 사는 게 어려운 줄을 모르는 구만. 그렇구나. 착하게 사는 것과 돈 많이 모으는 것은 물과 기름이네. 그럼 '운영의 묘'를 잘 살려야지 뭐. 이헌태, 니 똑똑타.

북쪽으로 북쪽으로 향했다. 회룡재와 개터재를 거쳐 안개 속에서 부슬비를 맞으며 3시간 가량을 부지런히 발을 내딛었다. 이번 산행은 '안개 낀 장충당 공원' 처럼 '안개 낀 백두대간산행'. 비가 오고 안개가 자욱히 끼어서 지나 온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을 망정, 낮은 오르내리막이 이어지는 평탄한 산길이었기 때문에 아마 까마득 했을 것이다. 굉장히 멀리 온 느낌이다.

새벽 6시를 넘어서니 사위가 뿌옇게 설핏 보이기 시작하더니 7시가 되니 완전 동이 텄다. 날이 훤해지니 눈앞에 펼쳐진 대간 숲의 광경은 늦가을이 완연했다. 나무에 겨우 달려있는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잎도 오늘 내일 떨어질 것 같이 불안초조, 자신감이 없는 듯했다. 무서움에 떨고 있니, 떨어질까 봐. 걱정하지 마라, 마음 편히 떨어져라. 썩어 퇴비가 되고 또 생명을 잉태하니까, 바로 환생하니까. 아니야, 끝까지 버티는 잎들은 뭔가 특별한 잎들일꺼야. 잎중의 잎. '엽중엽'. 입중의 입은 키스하기 예쁜 입인가.

산은 누런 낙엽들로 쫙 깔려 있다. 머리 위에는 하늘 , 땅에는 낙엽 , 그 가운데 나무. 따라서 대지는 낙엽 차지.

또 하나의 위대한 발견. 비가 오니 별도 해도 뜨지 않는다. 별하고 해는 비하고는 원수 사이구만. 별하고 해는 뭐가 무섭다고 비가 오기만 하면 도망가나. 겁쟁이구만. 이헌태, 무서워서 안 나타나는 게 아니고 비가 가려서 그런거야.

헤르만 헤세는 '내가 별이 되고 달이 되면 어떨까. 세상을 비추고"라고. 별이 나왔으니 괴테는 "하늘에는 별이 있어 아름답고 땅에는 꽃이 피어 아름답지만 사람에겐 사랑이 있어 아름답다". 두 사람다 센티하기는. 별 욕 하다가는 안되겠구만. 별이 없었으면 시인이고 문학가고 우짤 뻔 했노.

욕망과 욕심이 인간의 따뜻하고 좋은 본성을 가리듯이. 이것도 좋은 말이구만. 이건 성선설인가 성악설인가. 그런 차원이 아니죠. 인간이 착하게 태어난 게 뭐가 중요하고 나쁘게 태어난 게 뭐가 중요해요. 어쩔건데. 나쁘게 태어났으면 엄마에게 다시 배속으로 들어가겠다고 할거야, 물어달라고 할거냐구요. 태어났으면 그냥 살아야 하고 또 올바른 인간이 되기위해 고칠 게 있으면 고치고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지. 쓸데없이 왜 싸우는 거죠. 중요한 포인트, 악의 근원인 욕망과 욕심을 버리자는 거죠. 살인과 전쟁, 빈부갈등 등등 만사의 갈등과 불행이 여기서 출발하죠.

이헌태, 니 똑똑하다. 성선설의 맹자, 성악설의 순자보다 더 똑똑하구만. 물론이죠. 음식을 너무 골라 먹고 음식투정이나 하고 변변한 벼슬 한 번 갖지 못한 '꽁한' 공자나, 오죽 답답했으면 어머니가 세번이나 이사를 했겠어요, 시장이든 어느 곳이든지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공부 못한 '맹한' 맹자나, 늙어서 늙을 노냐 아니면 노는데 정신이 팔려 아무 것도 남은 게 없고 또 노느라 도덕이고 다 내팽겨쳐 버려서 노자나, 또 이유를 모르겠지만 '순한' 순자보다는 제가 낫죠. 이름에서 있어서만. 저의 이름이 이헌태이기 때문에 굳이 붙이면 '태자'죠. 태자마마.

불경에 따르면 "달이 숨으면 사람들은 달이 졌다고 한다. 달이 나타나면 달이 떴다고 한다. 그러나 달은 늘 있는 것이며 뜨거나 지는 것이 아니다. 불성도 이 달과 같다. 늘 있는 것이므로 새롭게 생기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생기거나 소멸하는 형태를 잠시 취하는 것일 뿐이다" 이 진리를 인간들이 알아야 하는데. 나부터 모르고 있으니. 쩝쩝.

보너스 하나. 민병기 시인의 '저 별처럼'. 앞의 얘기를 총정리. "나는 왜 별처럼 살 수 없을까 / 슬픔도 분노도 반짝임으로 다스리다가 / 날 새면 투명해지는 별이 될 수 없을까 // 거센 폭풍에도 쏠리지 않고 / 비바람의 세월에도 변치 않는 눈빛 / 영원한 의미로 빛나는 별이 되고 싶다 // 구름에 가리우면 잠시 사라졌다가 / 고요한 밤이면 다시 살아나 / 당신만을 위해 빛나는 / 별이고 싶어라 / 험한 가시 어둠살 헤쳐나가며 / 당신의 먼 앞길 밝히는 불빛이고 싶어라"

4.

일행은 상주읍을 종단으로 가로지르며 계속 북상했다. 대간 마루금을 계속 걷다 보니 한밤중이라서 그런지 좌쪽이든 우쪽이든 간헐적으로 저 멀리 인가 전기불빛이 보였다. 얼마나 갔을까. 모두 다 귀신에 홀린 듯 정신없이 들짐승처럼 마구 내달렸다. 새벽 7시를 갓 넘겨 임도(林道)에 도착했다. 백두대간 산행길 지도책에는 출발지에서 여기까지 대략 4시간 10분의 소요시간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3시간 30분만에 주파했으니 빨리는 온 셈이다. 이런 일은 백두대간 산행이후 처음이다.

왼쪽을 바라보니 평화롭고 한가로운 논, 밭과 농가 몇 채. 임도 위에는 야생 동물들이 대간능선을 통해 이동할 수 있도록 굴다리 통로길을 만들어 두었다. 저 정도 환경보호, 동물보호인식은 있어야지. 대간 산행이후 처음 보는 게 아닐까. 그 임도 위 이동 통로에는 '국토가 숨쉬는 곳, 여기는 백두대간, 높이 4.20미터'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야생이동통로를 만든 분들에게 영광과 축복이 있으라.

여기서 하나 생각해볼 대목. 인간이 동물의 입장에서 한번 대간 길을 가보면서 불편한 점이 없느냐를 따져서 필요한 조치를 해야죠. 근래 인권도 있지만 동물권, 식물권, 자연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속속 등장하더라구요. 짐승도 식물도 산도 들도, 모든 자연과 생명들이 잘 살 권리가 있다는 것. 동물의 권리는 '동권', 식물의 권리는 '식권'. 다른 권은 몰라도 로또복권하고 밥 먹는 식권은 무조건 좋다.

'크리스토퍼 D 스톤' 은 '법정에 선 나무들'이란 책을 통해서 돌이나 물, 혹은 동식물에 법적인 권리를 주자고 역설했죠. 그의 핵심주장, "지금까지 인간의 최대 행복을 위해 자연물을 보던 개념은, 자연물 자체의 행복을 위한 개념으로 바뀌어야 하고 또 인간은 거대한 유기체의 한 부분일 뿐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다". 미래에는 집에 키우던 고양이가 때리던 집 주인을 고발하지나 않을까. 개를 개 패듯이 패다가는 낭패당하죠.

한국에서도 여자나 어린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권리보장이 약한데 동식물, 돌이나 물까지 권리를 주자는 말씀. 국민 여러분, 뜻은 잘 아시겠죠. 자연을 보호하자는 것.

이번 산행에 불참한 백신종 선배가 이전부터 계속 '백두대간 보존 및 종주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청원하자고 제의를 했죠.

법안내용을 정리하면 첫째, 대간 마루 금을 중심으로 양쪽 2km이내에는 공장 및 혐오시설이나 유실, 소득작목 식재 금지. 둘째, 대간 마루 금을 중심으로 양쪽 200m이내의 땅은 산림청에서 매입 원상태로의 복구사업. 셋째, 대간 종주 면허증은 1년 기준으로 발급하며, 면허세, 입산료, 속도제한등의 제 규칙은 법령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 진짜로요. 모르겠고, 백선배 열심히 하세요.

고양이가 얘기가 나온 김에 실화 하나. 백두대간 팀원인 양평 김사장 누님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요즘 고양이들은 주위에 먹을 게 너무 많아서인지 쥐를 전혀 잡아 먹지 않는다고 하네요. 하루는 이 집 고양이가 쥐를 벽 한 구석으로 몰아 세웠나 봐요. 쥐는 도망갈 곳이 없어서 인지 이판사판으로 고양이의 얼굴 정면을 향해 갑자기 뛰어들며 공격을 했나 봐요.

고양이가 너무 놀라서 그 다음부터는 쥐가 나타나기만 하면, 쥐 소리만 들어도 슬슬 도망간다고 해요. 이헌태는 웃기는 짜장면이고 이 고양이는 웃기는 고양이네. 죽어라 죽어 짜슥아, 니도 고양이냐, 고양이가 쥐 무서워서 도망치고. 얘기가 나온 김에 고양이와 쥐의 얘기가 실린 교과서 다 고치세요.

누님이 이 고양이를 더 미워하는 것은 어데가서 엉뚱한 놈 새끼를 배어 왔다고 하네요. 그 숫 고양이는 생기지도 못 생긴게 다리도 쬐금 저는데, 온 동네 암고양이를 다 임신 시켰다고 하네요. (와, 부럽다) 고양이 구실도 못하는 그 황당한 고양이를 버리려고 해도 다시 들어온다고 해요. 일전에 저도 그 레스토랑에 가서 그 고양이 면상,낯짝 한번 보려고 했는데 그날 따라 그 아기를 배게한 숫고양이 따라서 놀러 갔는지 보이지가 않더라구요. 믿기지 않는 실제 얘기입니다. 개봉박두, '쥐를 무서워하는 고양이'

일행은 야생동물 이동통로 굴다리 아래로 내려갔다. 굴다리 밑에는 들국화 한송이가 비를 맞고 덜덜 떨며 피어있다. 축 쳐진 폼이 처량했지만 너 홀로 이 산을 수 놓고 있구나 생각하니 기특했다.

대략 4시간 가량을 이슬비인지 부슬비인지 보슬비인지 가랑비인지, 차가운 비와 싸늘한 산속 새벽 냉기 탓에 다들 한기를 쬐금씩 느끼고 있었다. 속이 뜨뜻한 라면, 김밥과 떡을 먹고 에너지와 훈기를 채웠다. 주변 잔나뭇 가지를 주어 와 모닥불을 지폈는데 물기가 묻었는지 잘 타지 않고 이내 꺼져 버렸다. 냉기에는 온기가 최고야.

인류들이 불을 발견하고 난 뒤의 기쁨과 그 고마움이 얼마나 컸을까. 지금이야 불에 대한 고마움이 사라졌지만. 국민 여러분, 태고적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불을 발견한 인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뜨거운 박수를 보냅시다.

신화상으로는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노여움을 사면서까지 불쌍한 인간들에게 불을 전해주었죠. 프로메테우스가 대도 조세형의 큰 대부라고 하네요. 결국 도둑질이니까. 도둑들도 자랑스런 선배들이 많구만. 이헌태, 인류에게 불을 전해준 사람을 도둑놈으로 치부하다니. 그냥 웃어보자고 한 소리입니다.

이헌태식으로 하면 한국의 어린이들이 세계 위인전집에서 배우고 또 배우는 나폴레옹을 비롯 좋든, 나쁘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빼앗은 '쿠데타의 역사'는 바로 '권력 도둑질의 역사' 네. 누가 그러더라구요, '문화란 본질적으로 훔치는 행위'라고.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부르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에서 도둑질한 문화재들이 쌓여있잖아요.

이헌태는 그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통치자들을 '도둑놈'으로 규정합니다. 그런데 그런 도둑놈은 영웅시하고 마음이 여린 탓에 남의 집 안방에서 물건을 훔치는 도둑놈은 '깜방' 가고. 형평성이 없구만.

프랑스 박물관에 있는 우리나라 국보들을 훔쳐올 수 없나. 그렇다면 한국에 오면 한국 최고의 영웅이 될텐데. 질문 하나, 프랑스는 고속전철을 프랑스 제품으로 선택하면 '규장각 도서'를 돌려 준다 해놓고 왜 안 돌려 주는거야.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구만. 불란서는 '불난 소방서'의 준말인가. 소방서에 불 나면 완전 망쪼지 뭐. 그렇게 되기 전에 빨리 돌려줘. 아니 불(不)자인가. 아니 되겠구만, 손 봐야지.

도둑질 하지 맙시다. 도둑질해서 돈 많아지면 뭐합니까. 공자 '술이' 편에 나오는 말, "사치하면 거만하기 쉽고 검약하면 고루하기 쉽다. 거만한 것보다는 차라리 고루함이 낫다". 현대적으로 쉽게 얘기해서 돈 많으면 거만할 것이고 돈 없으면 궁색해지는데 그래도 궁색해지는 게 거만한 것 보다는 낫다는 뜻 아니겠어요.

질문 하나. 위인전 얘기가 나온 김에, 희대의 바람둥이 케네디 대통령도 위인전집에 실려 있거든요. 그는 거의 섹스광인 가봐요. 단적인 사례. 케네디가 정상회담을 하고 영국 수상 해럴드 맥밀런에게 뭐라고 한 줄 아세요. "당신은 어떨지 궁금하군요. 해럴드. 나는 사흘만 여자를 옆에 두지 못하면 끔직한 두통을 앓게 됩니다".

와, 요즘에 이런 얘기하면 완죤 미친 놈이지. 더 무서운 여자가 있어요.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 남편의 외도에 대한 근심을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한 적이 없다고 하네요.'와 독하다'.

그 당시 미국 언론들도 잘 참아 주었고요. 그때 백악관 기자실에서 한 기자가 케네디의 바람기를 거론하면서 욕하자, 다른 기자가 나무랐다고 하네요. 케네디 대통령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당신은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가 있소". 이런 기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케네디와 재클린 부부는 늘 젊고 아름다운 환상의 부부로 치장되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미국의 전설적 영웅으로 남아있죠.

한국에서는 택도 안 통하지. 하기사 요새 한국에는 '통하였느냐'가 유행이더라구요. 백악관은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도 되지만 또 미국 대통령 가족이 사는 곳도 되죠. 가족들이 사는 곳에 여자들을 데리고 와 질펀하게 놀았다고 하네요. 가족이 사는 집에서 바람을 피우다니. 한국 입장에서 보면 거의 개망나니 내지는 인간 쓰레기. 이헌태 그만 해라. 죄송합니다. 훌륭한 점이 많으니 미국 사람들이 존경하고 세계 위인전에 실렸겠지. 돌아가신 케네디 어른 용서해주십시오. 미국의 위대한 드림을 향한 힘찬 패기와 흑인을 배려한 그 인권 존중의 철학. 좋은 점만 보고 삽시다.

나온 김에 더 골때리는 대통령. 그 뒤를 이은 '린든 존슨' 미국대통령. 그 바람끼도 대단했죠. 대통령도 이어받고 바람끼도 이어 받았구만. 이어 받을 게 따로 있지.

존슨이 호텔 술집 바에서 4,5명 기자들에게 " 이봐, 친구들. 내 한마디만 해두지. 자네들은 가끔 내가 여자와 함께 백악관에서 나오는 걸 보게 될 지도 몰라. 분명히 기억해두게. 그건 자네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야".

케네디에게 적용된 언론 잣대를 그대로 적용해주기를 바랬죠. 기자들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네, 각하" 였고 실제로 그 규칙에 충실했다고 하네요. 부인도 간단치 않은 분이죠. 영부인 레이디 버드는 자신이 안전하게 지키고만 있으면 남편의 바람끼는 조만간 지나갈 것으로 확신했죠. 와, 이런 여성은 대한민국 남편들이 갈구하는 스타일. 이헌태, 니 쫓기나겠다.

버드는 결국 남편이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필요로 하고 있음을 확신했고 그의 외도를 '다른 여자들의 도움과 지원'이라고 부를만한 여유를 갖게 되었다고 하네요. 아이고, 마음도 넓고 마음 씀씀이가 어찌나 예쁜지.

버드는 1998년 클린턴의 여자 문제가 나오자 "사생활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는 한 남자가 우리 모두를 위해 헌신하도록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의 사생활때문이 아닙니다". 여성이 우째 이런 말씀을. 갈수록 예쁘네.

하기사 그 이후 클린턴 대통령 부인인 힐러리도 남편의 외도를 용서함으로써 남편의 대통령직을 지켜냈고 지금은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 대선후보로도 거론되고 있죠. 아량 있고 이해심 깊은 여성들이여 영광이 있으라.

한국의 수많은 기혼여성 여러분. 두 분을 배웁시다. 미친 놈.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부인이니까 그 만큼 영광과 특혜도 클 것이고 자연 성질 죽이면서 참고 살지, 대게의 평범한 아줌마들이야 가만 있겠어요.

이헌태, 시대가 바뀐 줄 모르는구만. 지금은 여권이 신장되어서 정치인의 경우 성스캔들만 나오면 정계에서 도중하차. 지금이사 돈도 별로 못 버는 게 외도까지 하면 바로 축출. 돈도 많이 벌어주고 외도 하면 '나쁜 놈' 이지만, 우짜겠노, 참아야지. 돈도 있는데 외도 안 하면 일등 남편. 돈도 없고 외도도 안 하면 이건 뭐야. 제일 골치 아픈 케이스.

참조하나. 서양은 그리스, 로마신화와 기독교가 사상과 철학의 양대 기둥. 그리스, 로마신화의 제우스신도 희대의 바람둥이. 미국 케네디 대통령도 그 피가 면면히 흐르겠지.

중국 현대문학의 최고봉인 '광인일기'의 노신도 일생 5명의 여자와 살았고 영국의 유명한 철학자 러셀도 이혼을 5번 했다고 하고요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도 엄청 밝혔다고 하네요. 불을 밝힌 게 아니라 색을 밝혀. 이헌태, 니는 부럽냐. 그런 분들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야. 능력도 없는 놈이 밝히면 그것은 잡놈이지 뭐. 알겠습니다. 깨갱.

5.

지난 일년간 백두대간 종주를 계속하면서 느낀 사실, 대간 길 근처 땅 위에는 동물들이 왜 이리 안 보이죠. 하늘을 누비는 새를 제외하고는 겨우 한 여름철 개미 무리들, 뱀 몇 마리, 개구리 몇 마리 본 게 거의 전부다. 이번 산행에서는 산 짐승은 커녕 벌레라도 한 마리 구경 못했다. 아 잔인한, 한국인이여. 동물들이 다 죽었나. 하기사 몸보신에 좋다고 소문만 나면 그날로 다 사라져버리니. 몸보신과 관련 없는 동물들도 겁 먹어서 인간 체취만 나면 도망치겠지.

이번 산행에서도 대간길 주변은 소나무와 참나무, 낙엽송이 주무대. 간혹 눈치도 모르는 측백나무들이 끼여 있었지만. 남녘 산을 주름 잡는 이들 3형제는 한국의 대표 나무. 대지 위 낙엽도 거의 이 3개 나무들에서 떨어져 나온 분신들로 주축. 어떤 대간 길은 참나무 낙엽이, 어떤 대간 길은 소나무 낙엽이, 어떤 대간 길은 낙엽송 낙엽이, 물론 어떤 대간길은 혼합낙엽이. 누런 낙엽 융단이 나로 하여금 늦가을에 대한 찬가를 부르게 하고 있다.

늠름하게 기상을 뽐내는 것은 오직 , 오직 나무뿐. 곧 겨울이 닥치면 나무야말로 완전히 홀로 산을 지킬 것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세계에 나무만이 유일하게 존재할 뿐이다. 하늘에 태양이 있듯이, 산에는 나무밖에 없다. '나무관세음보살'. 뭐야. 그 나무가 아니야.

'나무관세음보살'은 염불이잖아. 아시다시피 염불은 무한한 생명과 지혜를 지닌 부처님께 歸依(귀의)한다는 다짐. 즉 나무(南無: namas,namo)는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죠. 관세음보살에 귀의한다는 것. 우리도 나무에 의지에 삽시다. 나무(나無) 즉, 나를 비우면 부처님께 귀의할 수 있죠. 나무와 나무(南無) 그리고 나무(나無), 이 세가지도 통하네. 오늘 따라 통하는 게 많구만.

비가 촉촉히 내리고 스산한 늦가을인 탓에 산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야생화는 온데 간데 없고 온 산에는 누런 갈색의 바랜 낙엽들만 두껍게 쌓여 있었다. 낙엽세상, 낙엽천지.

온통 낙엽 뿐이다. 그 다채로운 잎사귀가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지니 한결같이 흙색으로 바뀌는 구만. 흙의 가치와 위력을 파악했구만. 알아서 기네. 눈치 하나는 빠르구나. 파릇파릇 싱싱한 잎파리들이 잘 난 척 해도 불가항력, 낙엽이 되고 결국 흙이 되는 구나. '낙엽의 흙화'. 낙엽도 흙으로 가네. 잘 난 인간이든 못 난 인간이든 인간들도 분명한 것은 100% 흙으로 돌아가는데. '썩어 문드러져서 흙으로 돌아갈 몸, 잘 놀다가 죽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으면 못 노나니. 미친 놈.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無)로 돌아가는 것. 명예와 권력과 재산, 모든 게 부질없는 욕심. 와, 이헌태, 철학이 점점 깊어 가는구나. '이헌태를 노자의 후계자로 임명합니다'. 토(土). 즉 흙 토. 흙은 생명의 자양분인 동시에 사상(思想)의 근원이구만. 그런데 '토하다'는 말은 왜 안 좋은데.

이헌태의 주장. 어린 학생들에게도 수시로 아니 매일 아침 눈만 뜨면 '모든 게 부질 없는 것'이라면서 마음 비우고 살 것을 권유해야 합니다. 한창 배우고 자라고, 또 의욕이 차서 왕성한 활동을 할 어린 학생들에게 그런 말씀은 너무 빠르지 않나요. 아닙니다. 현대 한국의 테마가 무엇입니까. '조기교육'. 좋은 것은 하루라도 빨리 가르쳐야 합니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다같이 신부님이나 스님같이 살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헌태, 너거 집 자식들이 집에 들어와, "물질에 대한 집착을 놓아라", "입시공부가 다 부질 없다", "도 닦으러 집 나가겠다" 등등 입말 열면 그런 종교적, 성찰적 얘기를 하면 니는 좋겠나. 황당하겠죠. 쬐금 그렇네. 넘어 갑시다. 이헌태, 니는 불리하면 넘어 갈려고 하더라.

가을과 낙엽과 나무 얘기 더 계속. '하늘 소속'으로 걸려 있던 낙엽이 떨어지니 하늘이 점점 더 텅텅 비어지면서 '허허'해진다. 이와 반대로 낙엽이 '대지 소속'으로 주소를 옮기면서 땅은 갈수록 낙엽으로 가득차는구나. 땅이 하늘의 낙엽을 유혹했나. 아니죠. 하늘이 매고 있으려니 귀찮아서 내다 버린 것이죠. 떨어질 때 보세요. 휙 날리잖아요. 이헌태, 아주 시적으로 노는구만. 잘 놀아라, 그 대신 놀다가도 제자리에 돌아와라, 네. '낙엽의 추락 - 하늘의 허공화, 땅의 낙엽화'

노니 뭐합니까. 장독 깬다고. 나무를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어느 시인이 낙엽을 떨구는 나무를 욕망과 욕심, 심지어 가족까지 버리고 온전히 빈 몸 육신 하나만 덜렁 갖고 출가하는 모습으로 비유했지만, 나 역시 수도승으로 보인다. 이헌태의 나무연구 결과발표.

1) 산의 주인은 역시 나무다. 아니면, 그럼 풀이냐. 인간 세상의 리더가 종교가, 수도자이듯이. 나무가 지구의 주인이라는 논리도 있더라구요. 탄생으로 보면, 2백억년전 우주, 45억년전 지구, 40억년전 생물, 5-6백만년전 인류죠. 생명시계로 보면, 지구에 생명이 태어난 시간이 새벽 00시 00분, 나무와 풀이 지구를 정복한 시간은 20시 24분, 사람 비슷한 것 23시 56분24초, 사람은 23시 58분 12초 . 나무가 인간보다 지구의 더 어른이네. 나무숭배 民族도 있잖아요.

2) 나무는 광합성 작용을 통한 '자체 식품 공장'. 최소한의 노동으로 생존하는 효율적 시스템을 갖고 있죠. 자연 나무에는 비만이 없다. 비만 스님이 없듯이. 주지하다시피, 나무는 동물과 달리 움직이는 것 사절. 따라서 만드는 에너지량도 적고 필요한 에너지량이 적다.

나무는 육체 노동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더럽게 치사하게 빌 붙어 살지 않는다. 나무는 자식인 사랑스런 잎들을 땅에 떨구어 대지를 기름지게 하고 그 흙으로부터 영양분을 받아 먹는다. '나무와 흙의 공존관계'.

나무의 노동은 절에서 스님들이 하는 '울력' 정도. '울력'이란 아침 공양이 끝나고 나면 모두 나가서 경내를 깨끗이 청소한다든지 스님들이 밭에 나가 거름을 주고 김을 맨다든지, 장을 담근다든지 건물을 수리한다든지 최소한의 노동.

원래 '울력'은 일손이 모자라는 집에 시기를 놓쳐서는 안될 급한 농삿 일이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보수나 노동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도와주는 봉사적 노동협동 방식. 두레와 품앗이과의 차이는 무(無)대가. '무노동 무임금' 은 들어봤는데, 이것은 '유노동 무대가'네. 일종의 자원봉사구만.

득도와 중생구제가 스님의 역할이지만 그래도 울력은 해야지. 스님이 중노동하면 언제 도닦고 중생 구제하나. 나무도 똑같다. 최소한 광합성 작용만 하면 된다. 낙엽을 떨구어, 대지를 풍성하게 만들면 되고. 나는 '나무 = 스님'이라고 생각한다.

3) 나무의 생존력은 대단하다. 다양한 계절에 맞게 잘 적응하고 혹한의 시베리아 벌판에서도 나무는 버틴다. 즐겁게. 얼마나 대견하나. 웬만한 큰 상처에도 잘 살아 남는다. 1백년이상도 거뜬하게 산다. 나무도 1백년 이상을 살면 정령이 깃든다고 하네요. 거북이 처럼.

'북풍한설', 한국의 겨울은 혹독하다. 산등성에서 세찬 눈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나무들은 경외감을 자아낸다. 온갖 형극과 시련을 당하면서 인내하고 극복하는 나무의 모습이 구도하는 스님의 모습 그대로다.

4) 나무는 인류에게 늘 인자하고 고마운 존재. 나무의 혜택은 다 아시죠. 집을 짓는 나무, 연료, 석유화석, 열매, 잎, 꽃, 맑은 산소. 산소공급원, 식량공급원, 에너지공급원, 휴식처.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편하고 행복하게 만들죠. 나무를 없애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재앙이 닥치는 지는 불문가지.

정현종의 시 '나무에 깃들여'. "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 지를 ". 맞습니다, 맞고요.

5) 나무는 한 곳에 머문다. 고승들은 '면벽수도' 에서 알 수 있듯이 한 곳에서 도를 닦지 마구 돌아다니지 않는다. 30년을 절 밖을 벗어 나지 않은 스님도 계셨다고 한다. 이헌태로서는 돌아버릴 일이죠. 무기징역을 받았나. 식물과 도 닦는 고승의 자세는 동일.

이헌태는 그렇게는 못 산다. 이헌태의 꿈은 '세계무전여행'.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어도 눈을 못 감아. 내 집을 팔아서라도 가야지. 아들이, 난리치지 않을까. 아들아, 꿈 깨라. 하기사 스님들은 마음으로 세계여행, 아니 훨씬 더 넓은 우주 여행을 하시고 계시지. 속인들의 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여행이지. 생사를 넘나들고 전생과 후생을 넘나드는. 우주의 적멸과 진리를 찾아서.

유영래 대장식의 '양반론'을 도입한다면 나무는 진짜 양반. 이동이 불가능한 나무가 꽃이 필때는 머슴들인 (?) 동물들에게 유전자가 실린 꽃가루를 운반하는 심부름을 시킨다. 지구의 생물을 유지하는 에너지는 빛이고 빛을 이용해 직접 유기물을 생산할 수 있는 생물은 오로지 광합성을 하는 조류와 식물뿐. 동물들도 이 식물들을 먹는다든지 이를 먹은 동물을 잡아먹는다. 쉽게 얘기해서 식물이 동물을 먹여 살린다. 식물은 동물 없이도 사는데 동물은 식물 없으면 못 산다. 양자의 관계가 분명해 진다. 절대적 지배와 종속. 동물들은 식물에게 한 없는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 식물님, 식물님. 자꾸 하다 보니 이상하네. '식물 인간'. 그건 안 좋은데. 움직이지 못한다고 동물들이 식물들한테 버릇없이 너무 함부로 대한다. 물빛도 모르고.

6) 나무는 땅에 뿌리는 내리면서 하늘로 향해 두 팔을 뻗고 있다. 하늘과 땅은 만물의 터전. 스님들이 대중을 기반으로 하고 성불을 향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론, 인간들이 나무로부터 배워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네. 나무를 인간의 스승으로 임명합니다. 이헌태의 '나무 철학'이었습니다.

사족 하나. 조이스 킬머는 '나무'라는 시에서 "나무같이 아름다운 시는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또 미국의 신문평론가 리프만은 "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일은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 더위에 허덕이는 우리 동포에게 한 줌의 그늘을 주는데 있다"고 말했다.

사족 하나 더. 일본 '이토 게이치'라는 분이 시를 발상할 때 다음 8가지를 떠올리라고 했다고 하네요. 나무가 작시(作詩)의 기본 수단이구만. 나무의 용도가 이런 데까지. 대단한 나무야. 1) 나무를 그대로 나무로서 본다 2) 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3)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는 본다 4) 나무의 잎사귀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본다 5) 나무 속에 승화하고 있는 생명력을 본다 6) 나무의 모습과 생명력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사상을 본다 7) 나무를 흔들고 있는 바람 그 자체를 본다 8) 나무를 매체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나무나 풀을 함부로 꺽거나 베지 맙시다. 이처럼 나무는 우리에게 너무 고맙고 귀한 존재입니다. 제주도 사람들도 나무를 벨 때 인디언처럼 "오늘은 너도 목숨이 다 하는구나" 하면서 애도했다고 하네요. 큰 나무는 나무의 정령이 노하지 않도록 고사를 지냈고요. 버드나무나 소나무도 백년이상 지나면 모두 정령을 갖게 된다고 조상들은 믿었기때문이죠.

독일에는 산림관이 '신랑후보 1순위'라고 하네요. 한국에서는 '돈 많은 사람'이 신랑후보 1순위인데. 독일에 비해 한국이 '수준 이하' 구만. '천민 자본주의'의 전형. 한국에는 국토의 70%가 산이어서 한국에서 산다(山多)는 것은 산에 많이 오르는 것이고 따라서 한국에서 신랑후보 1위가 산림관이어야 하는데. 뒤바뀌었구만.

착한 일을 별로 안 해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지 모르겠으나 혹시, 혹시, 혹시 다시 태어나면 설악산 국립공원 관리원이 되고 싶어라. 진짜로. 365일 설악산의 비경을 볼 수 있으니. 매일 매일 '지상낙원' 이겠네.

6.

아침 식사를 꿀떡처럼 먹고 일행은 7시 50분쯤 다시 대간능선 길을 나섰다. 안개비가 개이고 날씨가 맑아졌다. 시간이 갈수록 사위가 선명해졌다. 하늘도 뭐에 질렸는지 파란 하늘 속에 안개를 껴안은 '푸른 반(半), 누런 반(半)' 산들이 한 눈에 시원스레 펼쳐졌다.

이것도 운해라면 운해, 운해가 멋지게 만들어졌다. 밤새 내린 부슬비 탓에 큰 골마다 펄펄 끓어 오르는 증기가 우뚝 선 장엄한 대간 주위의 산들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산속에, 축축한 비 맞으면서 온 보람이 있구만. '고진감래'.

심상준총무가 한말씀 하신다. "아무리 뒷산이라도 대간은 대간이구만". 즉, 그리 눈에 확 띄지 않는 평범한 대간 코스도 일반 야산과 비교하면 훨씬 좋다는 말씀이겠지. 실제로 이번 대간 코스는 상주읍 내로 따지면 야산, 뒷산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을 구성하고 있고, 이는 똘마니 산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고.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지난 일년간 백두대간을 산행하다 보면 탄성을 자아내는,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웅장한 산도 있지만 그렇고 그런 지루한 야산도 있다. 백두대간 종주가 재미있고 의미있다는 것은 이 같은 특성때문이 아닐까. 영웅들만 모아 놓으면 식상하죠. 영웅도 있고 민초도 있고, 그래서 영웅이 더욱 주목을 받고. 이헌태, 니말 맞다.

심총무가 감탄을 내지른 그 '김'. 덕유산에서 본 운해 하고는 급이 다르지만. 이런 곳에는 그냥 안개. 아니지, 그래도 백두대간 가운데 안개인데 운해라고 치켜세워 주어야지. 그래도 노는 동네가 다른데. 하여튼 유령 같이 떠도는 신비로운 '그 안개'.

직업따라 다를 것. 제철소 사람은 철을 녹이는 용광로에서 나오는 김일 것이고 설렁탕 좋아하시는 분은 사골을 푹푹 고아낼 때 나오는 김일 것이고 온천을 좋아하는 분들은 온천탕의 증기가 아닐까. 소방서에 계시는 분은 불 났을 때 나오는 연기로 보셨을 테고. 그럼 산에서 나니 산불이 온 산을 태우면서 나는 연기냐. 만약 그렇다면, 백두대간을 비롯 한국의 모든 산이 불타고 있나.

흔히 단풍을 보통 표현하기를 '산이 불탄다' 고 하죠. 산에 안개가 자욱한 것도 '산이 불탄다'고 해야 하나. 이헌태의 생각은, 신선들이 사는 곳이어서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기운으로 보이거든요. 뭐 눈에는 뭐로 보인다고, 제가 도인이니까 그런 생각이 들 지 않겠어요. 니 혼자, 잘났다.

기가 막힌 김이 있죠. '연기'라고. 브레이트라는 시인의 '연기'. "호숫가 나무들 사이에 조그만 집 한 채./ 그 지붕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이 연기가 없다면 /집과 나무들과 호수가 /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시인들을 일컫어 '창조신'이라고 하더라구요. 나 원 참참. 적막하기는 뭐가 적막해. 연기가 없어도 잡과 나무와 호수는 전혀 적막하지 않아요. 제가 물어 보았다니까요.

최재왕 기자가 농가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자 "저게 전라도 사투리로 냉갈" 이라며 흥분한다. 전북 부안 출신의 허정균 선배가 "맞다"고 맞짱구 친다. 연기를 놓고 감상에 젖다니. '대단한 연기'네. 탤런트가 연기 잘 하듯이.

최재왕에 따르면 '냉갈' 은 해거름에 소를 몰아 집으로 돌아올 때쯤 배는 고프고요, 그런데 산아래 저 멀리 집 굴뚝에서 장작불로 밥을 지을 때 피어 오르는 연기. 와, 고향에 가고 싶다. 마누라, 나도 매일 저렇게 해서 밥 해줘. 장작 불 지펴.

가을, 연기, 비도 왔으니 한 마디.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란 책에 보면 계절별로 정리를 해 놓아더라구요. 잠깐 인용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몇 개나 맞나 체크 한번 해 보세요.

1) 봄 바람은 술과 같고 여름 바람은 차와 같으며 가을 바람은 연기와 같고 겨울바람은 생강처럼 맵다. 2) 봄 비는 영전을 수여하는 칙서와 같고 여름 비는 죄수에게 내리는 사면장과 같고 가을 비는 만가처럼 생각된다. 3) 봄 비는 책 읽기에 좋고 여름 비는 장기두기에 좋고 가을 비는 가방이나 다락 속을 뒤지는데 좋고 겨울 비는 술 마시기에 좋다 4) 봄철의 새소리 여름철의 매미소리 가을철의 벌레소리 겨울철의 눈 내리는 소리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살랑살랑 간지리는 가운데 능선을 타고 북서쪽 방향으로 올랐다. 쉭, 갑자기 빠르게 날아가는 꿩 한마리도 보았다. 어떤 시인이 "까르루 소리 조차 검다"고 표현한 까마귀가 '까악 까악' 소리를 내고 날아간다. 모두들 반갑다. 새는 좋아, 땅을 내려다보니. 최고 높은 곳에서 사니.

오전 9시 5분쯤 이번 산행의 최고 높이인 해발 6백 15미터 고지인 백학산 (白鶴山) 정상에 도착했다. 사위가 한눈에 들어 오는 곳이 아닌 숲 속에 가려져 있었다. 백한산에 도착하니 이내 곧 안개가 산 전체를 휘감더니 일행을 가둬버렸다.

실종사고가 발생했다. 대장님과 허정균, 송동현 이 세 분이 '응아'를 하기 위해 대오에서 벗어났다가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무려 2시간 동안 백학산 정상에서 벌벌 떨었다. 산행 때는 그래도 몸을 움직이니 체온이 유지될 수 있다. 싸늘한 이슬비를 맞으면서 나무마냥 가만히 2시간을 서 있으니 서서히 체온이 떨어져 나중에는 벌벌 떨며 추워 죽을 지경이었다. 옷을 다 꺼내 입고 겨우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모두가 받들어 모셔야할 종마를 왜 자꾸 고생시킬 것이여

이날은 입동(立冬), 이십사 절기 가운데 열아홉번째 절기. 이제 한 해가 거의 다 가는구만.동양에서는 이날부터 3개월을 겨울이라고 한다네요. 그럼 겨울이 시작되었네. 그건 그렇고. 이날 실종사고는 똥 때문에 생긴 것. '입똥 신고식' 을 확실히 했네.

보통 입동이 되면 낙엽이 쌓이고 찬바람이 불어 김장을 담구었다고 하네요. 옛날 중국에서는 입동기간을 5일씩 3후(三候)를 정하여, 물이 비로소 얼고, 땅이 처음으로 얼어 붙으며,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그렇구나.

'상황이 어렵더라도 여유를 갖고 살아야지'. 일행이 모두 모이자 시낭송회를 열었다. 두 편의 시가 낭송되었다. 다음 산행부터는 자작시도 발표하자고 한다. 당신들이나 하세요. ㅋㅋ.

조태일의 '국토서시'.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 까지 닿도록 //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신석정의 '산수도'. "숲길 짙어 이끼 푸르고 / 나무 사이사이 강물이 희여---// 햇볕 어린 가지 끝에 산새 쉬고/ 흰 구름 한가히 하늘을 거닌다// 산가마귀 소리 골짝에 잦은데 / 등너머 바람이 넘어 닥쳐와---//숨어든 숲길을 돌아서 돌아서 / 시냇물 여운이 옥인 듯 맑아라// 푸른 산 푸른 산이 천년만 가리/ 강물이 흘러 흘러 만년만 가리// 산수는 오로지 한폭의 그림이냐"

이헌태의 코멘트. 첫째 시에서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불량청소년들이 밤늦게 집에 안 들어가고 공원에서 서성이는 것이 연상되네요. 생각하는 것이라곤. 이헌태의 생각, 미우나 고우나 조국을 사랑합시다. 이민 떠날 때 조국을 욕하지 말고. 이헌태는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조국의 하늘 밑에서 서성이겠습니다.

둘째 시는 시가 아니고 한 폭의 그림이네요. 먹으로 물감으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지만 글자로서도 수묵화를 그릴 수 있구만. 신석정 '화백' 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그래서 시는 이미지고 그림이고 음악이고라고 했구나.

오전 11시야 겨우 출발했다. 백학산 정상에서 부터는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왼쪽으로 길을 잘 못 들어서니 바로 넓다란 임도가 나왔다. 대간 안내리본이 없이 약간 우왕좌왕하다가 임도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안내리본이 나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바로 내려 왔어야 했는데 약간 둘러왔다. 임도를 따라 내려와 더 편했지만 말이다. 15분 가량 걸릴 시간이 20분 가량 걸렸다.

능선에 놓인 임도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아스라히 산밑 저 멀리 평화스러운 마을 전경이 보였다. 유대장의 말쌈, " 저런데서 처가살이 하면서 살면 너무 너무 좋겠다". 쉽게 얘기해서 경치 좋은 데서 자연을 벗하며, 처가집 덕분에 공짜로 먹고 놀면서 살고 싶다는 뜻이리라. 누가 그랬냐. "그것은 유 대장만 바라는 게 아니라 뭇 남성들의 꿈입니다".

언뜻 언뜻 보이는 상주들이 넓다. 경북지역에서는 경주와 상주의 들이 넓다고 해서 정치,경제의 중심지가 되었고 경상도의 이름도 이 두 곳이 합쳐져서 생겼다고 하네요. 예전에는 들판이 넓으면 정치,경제의 중심지, 지금이야 '가난의 중심지'지 뭐.

7.

임도에서 왼쪽 방향으로 다시 산을 오르다가 약 40여분을 계속 내려가니 수확이 끝난 논과 밭이 나오고 농로가 나왔다. 대간 길은 농로를 따라 가지 않고 약간 오른쪽으로 꺽어 산길로 이어져있었다. 관절이 좋지않은 허정균 선배와 정병일 선배는 여기서 이번 산행을 중단하고 모서면으로 택시 타고 나가 막걸리 걸치고 종착지, 지기재로 왔다.

지난 주말까지도 논에는 벼수확이 덜 끝났는데. 농민 여러분, 올해 농사가 별로 좋지 않아 어떡하세요. 벼농사가 23년만에 최고흉작이라고 하네요. 우째 이런 일이.비가 아주 원수처럼 내렸으니.이헌태가, 대통령과 국민을 대신해 죄송한 마음을 표합니다. 이헌태, 니 뭐하노.

농로 분기점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대략 30분쯤 산을 타다가 다시 하산하니 커다란 과수원이 나오고 진흙 투성이의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개머리재, 일명 소정재. 도로 건너편에 과수원이 딸린 민가 한 채 나왔다.

너무 먼 길을 속도를 내며 빨리 걸어오느라 나의 왼쪽 무릎 관절도 약간 시쿰거렸다. 최재왕은 태어나서 이렇게 먼 산행을 처음이라며 스스로 놀라는 표정이다. 그도 무릎에 이상이 왔다며 통증을 약간 호소한다. 환갑 가까운 유대장은 나이도 잊은 채 대원들을 독려하려는 듯이 일찌감치 선두로 나가 중간에 그만두자는 하소연할 소지를 없애 버렸다. '중단은 불가능', 나도 이를 악물고 전전하고 또 전진했다.

민가에서 출발해서 꾸역꾸역, 한발한발 힘들게 오르니 다시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이번 산행의 마지막 산등성을 넘어 가다가 길을 잘 못 들어 큼직막한 묘가 있는 길로 접어들었다. 진입로를 너무 잘 닦아, 대간 길로 착각해서 속은 것이다.

하지만 그 숲속 산길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늘을 찌르는 날씬한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쭉 쭉 뻗은 모습이 고혹적이다.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하고 마음이 상쾌하다. 그윽한 솔 향기도 나는 듯하다. 정신이 너무 맑아진다. 기암괴석의 암능도 좋지만 빼곡히 우거진 숲도 좋다는 것을 알았다.

도시에 있는 인간들아, 불쌍하다. 백두대간 길에 감춰진 아름다운 숲속 길도 보지 못하고, 걷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인디언 구호하나.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돈 되는 곳 찾는데는 귀신같은 한국 사람들이 진정한 행복을 찾는데는 까막눈이니까. 한심하다.

대지에는 누런 소나무잎과 참나무잎들이 무더기로 카페트를 깔아주고 있다. 산에는 나무들이 황금색의 황제 옷을 입은 채 멋진 형상으로 군무(群舞)를 펼치고 있었다. 가을 냄새, 가을 정취, 가을 향기를 물씬 내뿜고 있었다.

깊어가는 늦가을 숲속의 미(美). 예술 사진 속에서나 본 이 정경을, 직접 보고 냄새 맡고 듣고 느끼고 걷고. 오감이 총동원된 '늦가을 숲의 감동'이었다. 사랑하는 연인과 둘이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이 저절로 커진다. 아름다운 자연은 '사랑 증폭기'인가봐. 여자 꼬실려면 이런 곳에 데리고 와야지. 그냥 넘어가지. 저는 유부남이니까 여기서 연인은 마누라임. 꼭 이렇게 넘어가야 하나, 불쌍한 이헌태.

저는 누런게 좋더라구요. 언제는 푸른 숲이 좋다고 하고, 언제는 흰 눈이 좋다고 해놓고. 인간은 자꾸 변하죠. 넘어가고.

누런 들, 누런 낙엽, 누런 땅. 생명과 결실, 원숙과 경륜을 뜻하죠. 그럼 누런 똥은. 잉, 그것도 생명의 자양분이죠. 누런 색깔도 파란색이나 빨간색, 흰색 만큼 대우를 받아야합니다. 누렇다고 하면 웬지 퇴색되고 더럽고 이런 이미지를 풍기거든요. '황색 복원운동' 을 펼칩시다. 사무총장, 이헌태. 이헌태, 니 얼굴이 보통 누렇게 떴더라. 죄송합니다.

나온 김에 낙엽 하나 더. 낙엽보고 흔히 벌겋게 불탄다, 시들다, 누렇게 또는 벌겋게 물들다 등등. 이번 산행에서는 낙엽이 누렇게 물들은 것 같아요. 간혹 불타는 듯한 곳도 있고. 그래서 소방서 아저씨들이 늘 긴장하나. 실제로 산불을 가장 조심해야 할 시기가 지금 같은 가을철과 봄철 건조때.

타는 것 가운데 백미가 뭔줄 아세요. 남녀가 들러 붙어 뼈와 살이 불타는 게 아니고요. 석존께서 한 말씀. "다들 보시오. 하계(下界)는 불타고 있소. 하계의 모든 것이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쾌락에 취해 있으며 삼독(탐,진,치)에 불이 붙어서 마음도 몸도 타고 있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까지도 활활 타고 있소". 여기서 불은 번뇌. 하여튼 석존의 눈에는 인간들이 벌겋게 불타고 있는 가 봐요. 각자 알아서 불 좀 끕시다. 이헌태 니부터 끄라. (고개를 떨구며 조용히) 네.

가을이 곧 가겠죠. 벌써 강원도 산간에는 눈이 왔다고 하더라구요. 늦가을이여 영원하라. 노란 낙엽세상, 너무 매력적이다. 겨울로 가기 위한 계절의 절정인가. 만사가 죽기 전에 화려한 꽃을 피운다고 해요. 누가 일러 봄은 즐거움, 여름은 정열, 가을은 서글픔, 겨울은 차가움이라고 했든가. 갑자기 서글퍼 집니다.

시인들의 단골메뉴. 가을이 지금 먼 길을 떠나려 합니다. 떠나든지 말든지, 내하고 무슨 상관이 있노.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또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영원히 되풀이 될 것을 무슨 걱정이 있나. 가을이 가고 갑자기 거울 거쳐서 여름 올까 봐 걱정인가. 걱정도 팔자다.

인디언들은 11월이 남다르다.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크라크족),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체로키족), '강물이 어는 달'(하다차 족),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 달' (테와 푸에블로 족), '작은 곰의 달' (위네바고 족), ' 기러기 날아가는 달' (키오와 족),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아라파호족). 캬, 구구절절, 예술같은 표현이구만. 인디언들을 '세계 최고수준의 시인 집단'으로 임명합니다. 내 몸 속에 인디언의 피가 흐르고 있는가 봐. 이렇게 감동이 오니.

시인 오세영의 '11월'이란 시.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 돌아보면 / 다들 떠나갔구나 / 제 있을 꽃자리 / 게 있을 잎자리/ 빈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후략)"

시인 나태주의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란 시. "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 11월이다 /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 황토 흙의 알몸을 / 좋아하는 것이다 (중략) /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역시 이번 산행기와 분위기와 비슷한 미당 서정주의 시, '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이헌태의 생각 1. '순응의 철학', "가을이 가고 있습니다. 나는 가을이 가는 것을 잘 못 느낍니다. 가을도 자기가 가고 있는 줄 모릅니다. 가을이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습니다. 그 때문인지, 나는 가을이 가는 것이 잘 알 수 없습니다. 가을은 그냥 흘러가는 계절의 순환에 순응할 뿐입니다. 착한 사람은 자신이 착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합니다. 착한 사람과 자연은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이 권력과 돈과 질서에 순응하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결국, 인간은 자연에 순응해야지 같은 부류인 인간에 순응하면 안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죽음이 있습니다. 삶과 죽음도 자연의 이치에 맞게 순응해야 합니다. 오늘 가을이 가는 것을 보면서 '순응의 철학'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순응의 철학'에서 나오는 게 '여유로운 미소'고 '여유로운 삶'이다. 이헌태의 깊은 생각의 결론. 여유로운 미소가 나왔으니, 입가에 엷은 웃음이 잔잔히 번지는 게 뭔 줄 아세요. 부처님의 '염화미소'와 또 다른, 공자의 '완이미소(莞爾而笑) '죠. 완은 관(寬)대한 뜻도 내포하고 있죠. 공자님이든 부처님이든 성인들은 웃음마저 기리기리 뜻을 새기는 구만. 이헌태가 웃으면 그것도 소음. 너무 하십니다. 흑흑.

이헌태의 생각 2. 사계절의 기간을 개정하는 입법을 국회에 제출하자. 한국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형식적으로 각각 4달씩을 차지하고 있다. 요새는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과 가을이 짧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나는 가을이 좋다.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서서 풍광을 보면, 나의 선호도는 만산홍엽의 단풍 가을, 녹음방초 여름, 북풍한설의 겨울, 아지랑이 생명잉태의 봄 순이다. 그래서 나는 국민여론조사를 해서 가을을 대략 6개월 정도, 나머지를 각각 2달씩 하도록 자연을 바꾸는 법을 제출하려고 합니다. 이헌태, 그렇다고 가을이 오래 머무냐. 인간들이 환경을 파괴하니 가을이 짧아지는거야. 제대로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라. 알겠습니다.

길을 잘 못 들어섰던 내가 낀 6명의 일행은 대간 길을 제대로 찾아 나와 거의 수직 급경사길을 대략 40여분 내려왔다. 오후 2시 5분쯤 숲을 빠져 나오니 마침내 저 멀리 지기재 도로가 보이고 한켠에 대장과 몇몇 일행이 보인다. 야, 이제 이 지리하고 지리한 산행이 끝났구나. 지기재는 상주시 모서면의 49번 지방도로와 내서면의 25번 국도를 연결하는 901번 지방도로가 대간 주능선을 가로지르고 있다

배추밭, 포도밭, 사과밭을 지나고 약 5분 더 내려 오면서 사과밭에서 탐스럽게 주렁주렁 달려있는 사과를 따서 먹었다. 단물이 나오고 어찌나 맛있든지. 참 시인들은 관찰력도 좋아. 과일 열매는 거의 다 왜 빨간 색이냐는 시도 있었지만. 오세영 시인은 '열매'라는 시를 통해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고 했더라구요. 그렇지. 유전 생명학의 발달로 네모 열매도 만들수 있거든요. 시도 고쳐야 하겠구만.

인간들이여, 여기서 '열매의 교훈'을 배우자. 인간도 성숙되면 열매처럼 모가 나지 않아야 하지. 둥글둥글 사는 세상.

목적지에 도착했다. 쾌청한 날씨였다. 비가 갠 시골풍경은 너무 선명하고 청명하다. 사위의 산들은 낙엽송의 누런 색과 소나무의 푸른색이 각각 서로 군락을 이루고 또 뒤섞여 조화를 이루며 환상의 동양화를 그리고 있었다.

사과 얘기. 사과가 얼마나 맛있는지. 사과농가들이 과수원의 사과를 다 수확하고 사과나무마다 몇 알씩 남아 있더라구요. 지나가는 과객들이 먹으라고 남겨둔 촌 사람들의 인심이겠죠. 이 과수원 주인님, 복 많이 받으세요.

이헌태도 '사과 도둑'이네. 앞에서 '불 도둑', '정권 도둑' 에 대해 거론했지만. 사과 도둑질에 대해 사과 드립니다. 사과가 두번. 엄밀히 말해 남자가 장가가서 남의 집 귀한 딸들을 데리고 오는 것도 일종의 도둑질 아닌가요. 장인들이 사위들을 보통 '도둑놈'으로 생각하잖아요. 한국의 남자들은 다 도둑놈이네. 한국은 도둑놈 소굴이네.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죠. 이렇게 정의하면 되겠군요. 도둑질한 마누라를 잘 해주면 '백년 귀한 손님'으로 임명하고 못 해주면 '악질 도둑놈'으로 임명하면 되겠네요. 저는 물론 이론의 여지없이 도둑놈이죠. 그래도 잘 못한 줄은 아는구만.

도로변에 무궁화가 흉측하게 알 몸을 드러낸 채 무리를 지어있다. 내가 "국화가 뭐 이래"라고 불평하자 대장 왈, "무궁화는 참 좋은데 벌레가 많아 나도 웬 지 싫어"라고 답한다. 정병일 선배가 옆에서 "그래서 한국이 외침을 맞이 당했다고 하네". 무슨 말이에요. 쉽게 눈에 띄지도 않고 벌레도 많고, 그런데 왜 국화로 삼았어요. 소크라테스가 한 명언 '악법도 법이다'. 국화가 바뀌기 전까지는 우째든지 무궁화를 사랑합시다

무궁화가 국화로 지정된,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슬픈 사연이, 흑흑, 있다고 하네요. 해방후 1948년 국화로 결정할 당시 참여한 우국 노인들에게는 꽃 자체보다는 무궁화라는 꽃 이름이 크게 작용했다고 해요. 일제 때 나라를 빼앗긴 통한의 과거를 의식해서 무한한 존속을 의미하는 말 뜻에 감동했다고 하네요.

참 특이한 것. 일본인에게는 무궁화는 '덧없음의 상징'이라고 하네요. 왜냐하면 무궁화는 꽃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져 버리는 하루살이 꽃이거든요. 중국인들도 '하룻 영화꽃'이라며 무시한다고 하네요. 이 짜식들이, 남의 나라 국화를 가지고. 너거나 잘해.

이에 비해 고산 윤선도는 '일일화'라고 부르며 '무궁화'라는 시도 지었죠. " 오늘 핀 꽃이 내일까지 빛나지 않는 것은 한 꽃으로 두 해님 보기가 부끄러워서다 / 날마다 새 해님 향해 숙이는 해바라기를 말한다면 / 세상의 옳고 그름을 그 누가 따질 것인가". 우리나라 동요에도 있잖아요. 다함이 없는 무궁화. "무궁 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꽃,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 무궁화라는 똑 같은 꽃을 갖고 생각 차이가 우째 이리 다르노..

윤선도의 얘기대로 하면 또 '해바라기'가 콱, 쥑 일 놈이죠. 그게 또 아닙니다. 세상을 너무 가볍게 봐서는 안됩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 왈, " 해바라기가 해를 향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그 타고난 성품이 그렇기때문이다. 내가 해바라기를 화분에 심어 두고 관찰해 보았다. 매일 아침에는 동쪽으로 향하였다. 한낮에는 바르게 되고 저녁에는 서쪽으로 기울었다. 태양의 방향과 똑 같았다. 해바라기가 동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을 때 내가 화분을 옮겨 서쪽을 향하게 했더니 금세 출 늘어져서 죽고 말았다. 아, 내가 해바라기로 하여금 절개를 잃게 했더니 해바라기는 절개를 지켜서 죽고 말았다" 가수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가 아니고 '일편단심 해바라기'. 대단한 관찰력이다. 이덕무를 조선 후기 최고의 식물학자로 임명합니다.

윤선도와 이덕무 얘기를 종합해보면 이헌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 머리가 나빠서 그렇겠지. 아니다. 다 맞는 애기다. 이 세상에 진실은 없다. 그럼, 이헌태는 막 살아야겠다. 잘 났다, 잘났어. 여기서 막 살아야겠다는 딴 뜻이 아니고요 막걸리와 춘천 막국수를 더 자주 먹어야겠다는 뜻입니다요.

8.

일행은 전세버스를 타고 늘 가는 황간으로 갔다. 목욕탕에서 일단 땀을 씻고 개운하게 목욕하고 난 뒤 늘 가던 황간 식육점에 가서 막걸리에 돼지고기 삼결살을 구워 먹었다. 이런 고기를 왜 서울에는 없노. 비개낀 돼지고기를 쑹쑹 쓴 김치찌개가 너무 맛있어 또 배를 잔뜩 채웠다. 포식하고 돼지가 되어 서울로 향했다. 돼지고기가 내 배에 많이 들어왔으니 인간 이헌태의 일부도 돼지지 뭐. 돼지 보면 동족 의식 느낄까. 이헌태의 정체는 . 이헌태 몸의 30분의 1은 돼지구만. 꿀꿀. 이헌태, 근래 생각이 너무 깊어져 지나칠 정도가 되니 조심하세요.돼지고기를 먹고 사람 몸에 들어오면 사람고기가 되는거야. 그렇구나.

오후 4시 반쯤 전세버스가 서울로 출발했다. 경부고속도로는 교통체증이 심했는지 한숨 자고 나니 저녁 10시가 다 되어서야 길동 청산학원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11를 넘겼다. 귀여운 딸은 자고 있고 마누라와 아들이 반긴다. 가장이고 아부지인데 저거들이 안 반기면 우짤긴데. '철 없는 이헌태'.

이번 17번째 백두대간 산행에 대한 종합평가를 내려야지. 당근이지. "잇츠 패럿 (It's carrot.)"

1) 총 길이 17.5 킬로미터, 총 소요시간 10시간 반 (백학산 정상 체류시간 2시간 빼면 사실상 8시간 반). 대간 코스의 시종, 상주시내 안이다. 백두대간 코스는 흔히 두 도(道)를 이어가고 있다든지, 한 시나 한 군만 지나는 것은 참으로 드물다.

평이한 난이도, 그렇지만 너무 길고 길어 지리하고 지리해서 혼쭐이 난 코스다. 열일곱번의 산행 가운데 가장 편하면서도 가장 길었던 코스로 기록되겠죠. 이헌태의 인생철학하고 같네. 우야든지, 가늘지만 길게 사는 것. 이 세상이 좋으니까, 풍요롭지는 않지만 오래 살아 이 세상의 변화을 지켜보고 증언해야지. '굵고 짧게 사는 것'은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얘기.

유영래 대장의 만보기가 '3만 8천보' 를 기록했다고 하니, 대장이 헤맨 길의 양을 제하더라도 '3만 3천보'는 이헌태가 소화한 듯. 대단한 기록이죠. 대단한 기록이 아니라 사람 잡는 기록이지 뭐.

2) 비야 제발 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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