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분 (9월 23일)을 사흘 앞둔 20일. '백두대간 한걸음 이어가기' 팀은 열다섯 번째 대간종주산행에 나섰다. 民族의 명절 한가위 '추석'이 끼여 있는 바람에 지난 8월 16,17일 산행 이후 자그마치 5주만이었다. 와 너무 오래되었네, 백두대간 산행 잊어 뿌겠다.
'추분'이 나왔으니 다시 한번 정리. 이헌태, 니 정리 한번 잘하네. 백로(白露)에서 출발, 15일 후인 양력 9월 23일경부터 한로(寒露) 전까지의 15일간. 이 때부터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며, 밤의 길이가 길어진다. 다 아시죠. '추분을 아시죠' 가 아니고 '밤이 길어지면 어떻게 되는가를 아시죠'죠. 아가들이 많이 탄생하죠. 왜 그런지 몰라. 깜깜하면 딴 생각이 별로 안드나 봐요.
이 시기는 농사력으로 보면 추수기이므로, 백곡이 풍성한 때입니다. 올해 농사가 흉작이어서 이번 추분은 추운, 사투리로 추분 '추분' 이구만.
옛날 중국에서는 추분기간을 5일 단위로 1후 (一候)로 하여 3후로 구분, 1) 우뢰소리가 비로소 그치게 되고 2) 동면할 벌레가 흙으로 창을 막으며 3) 땅 위의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고 하네요. 연구도 많이 많이 했다. 나도 사실인지 잘 지켜봐야지. 조상들 얘기에 의심이 많기는.
조상들이야 밤낮으로 자연, 땅하고 일심동체가 되어 함께 사니까 꼼꼼하게 쳐다 보았겠지만 요즘 세상에야 그런 관찰이 가당키나 하겠나요. 시간도 없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그렇게 하지. 현대에 사는 일반 백성들이야 평소에는 자연하고 담쌓고 살다가 여가가 생기면 비싼 돈 주고 자연 보러 가는 세상이죠. 자연이 가장 비싼 상품이죠. '관광상품'.선조들이 보면 '웃기는 세상'이지 뭐.
20일 저녁 11시 46분 길동 청산학원 앞에서 전세버스가 출발했다. 유영래 대장을 비롯 심상준총무, 허정균 종군기자, 나를 포함 모두 15명이었다. 버스 안에서 심총무님의 노총각 생일축하연이 열렸다. 나이는 자꾸 먹어 환갑에 접근하고 (10살에서 11살 되는 것도 환갑에 다가서는 것이지, 너무 심했나) 날씨는 추워져 옆구리는 시리고. 하기사 근래 젊은이들도 혼자 사는게 유행인데, 쬐금 앞서 가고 있는 '선구자'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딱 깨놓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죄인'이었지 뭐. 지금이야 '자유인'. 부럽다, 부러워. 너무 미화했나.
버스는 부지런히 달려 심야인 오전 2시 30분 충북 영동군 황간면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소슬한 가을이 찾아온 듯 쌀쌀한 기운이 온 몸을 엄습했다. 어느 새 계절이 바뀌었구나. 한 해가 막바지로 치닫는 구나. 세월이 이렇게 빠를 수가. 인생 무상이여. 이헌태 너무 오버 하지마라. 네.
머리를 드니 어두운 하늘에는 이름 모를 별들이 초롱초롱 하지는 않았지만 희미하게나마 반짝반짝 자기 멋을 한껏 내고 있었다. 참으로 얼마만에 보는 하늘의 별인가. 반갑다.
기상청에 따르면 토,일 주말이 한꺼번에 날씨가 쾌청한 것은 11주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우째 그런 일이. 올해는 잊을 수 없는 해야. 조상들이 반만년 살아 온 이 금수강산 한반도를 여름 내내 괴롭혔던 그 지긋지긋하고 징그럽던 비도 계절의 변화 앞에서는 꼼짝을 못하는 구만. 무장해제당했네.
2.
여름이 가려고 하네. 잘 가. 너무 매정했나. 또 가려는 부류들이 있어요.근래 한국의 최대 화제와 이슈. '탈 한국 신드롬'. 한국 사회에 지쳤다, 한국을 포기하고 싶다등등 절망적인 목소리가 조국강토 곳곳에서 한숨처럼 터져나오는 모양이다.
반만년 전통의 거함 한국호 (韓國號)에서 하산하려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탈 한국 러쉬' 에 휩싸여 있죠. 원정출산, 조기유학, 기러기아빠, 20,30대 청년층의 이민열풍, 기업의 해외이전, 빈곤자살을 통한 생의 이탈. '오 필승 코리아'가 아니라 '오 탈출 코리아'네.
먹고 살기 위한 '생계형 이민'보다는 자녀 교육을 핑계로 높은 눈 때문에 살기가 싫은 30,40대 전문직업인의 '자존심 이민' 이라고 하네요. 북한에서는 배고파 죽을 각오로 도망나오고 남한에서는 자존심 상해서 도망나오고 아래,위 모두 다 꼴 좋다. 살기 좋은 나라가 이제 도망치는 나라로 바뀌었으니 한심하기는. 조상들 보기 민망하다.
오호 슬프다. 아니야, 이 좁은 땅덩리이에 사람이 바글바글. 인구가 너무 많으니 잘 가. 가서 부디 잘 살어. 한국의 기상을 높여. 다시 곰곰. 곰 두마리네. 왜 가는데요. 이 좋은 나라를 두고 왜 떠나는데요. 먹고 살기 힘들어, 자녀교육 때문에. 스스로 못 견디고 못 버티니까 떠나죠. 한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 서면 신선이 따로 없는데. 그것도 돈 3만 5천원만 주면 갈 수 있고. 이런 축복받은 땅이 어디 있는데. 이헌태가 구라와 이빨과 썰을 풀겠습니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세가지 사례만. 하나, 옛날 옛날 아랍지역에 살던 이슬람인들은 저 먼 대륙의 끝 신라를 '유토피아'로 알았다고 하네요. 신라를 이슬람국에 소개한 최초의 이슬람 지리학자인 이븐 쿠르다드비 는 '왕국과 도로총람' (846년)이란 책에서 "중국의 동쪽 칸수의 맞은 편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다. 산이 많고 왕이 많은 나라이다. 그곳에는 금이 많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물품으로는 비단, 검, 사향, 노회(알로에), 말안장, 담비모피,도기 ,범포, 육계등이 있다. 신라로 진출한 무슬림들은 자연환경의 쾌적함 때문에 영구 정착하여 떠날 줄을 모른다"며 적었죠.
이슬람 학자들은 우마이야 왕조(661-750)의 박해를 피해 일부 알라위족의 한반도 망명을 기록하고 있어요. 내 주변에 생김새가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인데 아랍사람들처럼 생긴 친구들이 더러 더러 있었는데. 다 그 피때문이구나.
17명의 아랍학자들이 편 20여권의 책 가운데에는 "중국의 마지막 나라인 신라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완벽한 위생조건으로 인해 그곳 사람들은 질병을 모르고 건강하다. 집집마다 호박향내가 가득하고 아무나 불치의 병에 걸려도 신라에 오기만 하면 씻을 듯이 나아 버린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또 "동쪽 대양의 끝에는 신라라고 하는 섬이 있다. 이 섬은 서쪽 끝에 있는 이상향에 대비될 정도다. 서쪽의 이상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라는 비옥하고 쾌적한 기후를 가진 실제로 사람이 살아 갈 수 있는 유토피아다"라고 극찬하고 있어요. 요즘으로 치면 전 세계 사람들이 꾸역 꾸역 모여드는 미국 같은 나라였구만.
예전에는 우리나라는 농업국으로는 세계 최고의 나라이었겠지만. 세상사 새옹지마라고. 지금은 한국 같은 나라에서 농사를 짓는 다는 것은 아주 망하는 지름길이죠. 한국 농민들이 너무 불쌍타. 흑흑흑, 검을흑,검을흑, 검을 흑. 닭똥 같은 검은 흑 눈물이 나는 구나. 흙에서 묻혀 살면 흑흑흑 눈물밖에 안나죠. 토로트 가요처럼 '흙에 묻혀 살다가'는 패가망신하죠.
그런데 우야겠노. 망하는 길 밖에 없으니, 새로운 생존방법 백날 연구해봐야 제가 볼 때는 도로묵. 실날 같은 기대. 우루과이라운드체제가 출범한 지난 94년 이후 71조원이 농촌에 투입되었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죠. 오히려 그 돈 때문에 농가들이 더 무거운 빚더미에 앉았죠. 앉는 것 가운데 가장 나쁜 게 빚더미에 앉는 것이죠. 이헌태 니도 빚더미에 앉아봐라. 그래도 우야노, 살 때까지 살아봐야제.
아랍 사람들이 그 넓은 대륙 중국땅보다도 신라의 땅을 더 칭송했다고 하니 대한민국은 '대단한 나라'다. 잉, '대단한' 의 준말이 '대한' 이네. 얼마전 신문을 보니 노동자들의 파업을 빗대 '떼'를 잘 쓰는 나라라고 '떼한 민국'으로 불린다고 하더라구요. 대단히 한심한 나라도 '대한 민국'인데. 그것도 말되네. 한심한 구석이 한두 곳이 아니죠. 이러다 나라가 언젠가 '걸뱅이나라'로 한번 전락할 것같아요. 피눈물 나기 전에 정신 좀 차립시다. 제 생각으로는 피눈물 한번 날 것 같아요. 한국 사람들 꼭 망해보고 쓴 맛을 봐야 정신차리더라구요.
둘, 民族의 지도자 백범 김구선생님 어록인 '나의 소원' (1947년)을 보면, 공자께서도 우리나라에 살고 싶어했다고 하네요. 진짜인가. 그 글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역설하셨는데. 좋은 말이 많으니 길더라도 다 소개할 께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중략) 인류가 현재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다. (중략)
옛날 한토 (漢 土) 의 기자(箕子)가 우리나라를 사모해왔고 공자께서도 우리 民族이 사는데 오고 싶다고 하였으며 우리 민족을 '인'을 좋아하는 民族이라고 하였으니 옛날에도 그리하였거니와 앞으로도 세계인류가 모두 우리 民族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겠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 데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맞습니다, 맞고요.
셋.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일제때 일본에서 동아일보 기자가 한국방문을 요청하자 거절하면서 미안함 마음을 담아서 지어준 시가 있죠.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 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 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아랍사람, 중국사람, 인도사람 사실상 그 당시로서는 세계 문명국들의 시민들이 한국을 그렇게 '이상향의 나라'로 생각했는데.
이헌태의 분석적인 영민한 머리가 돌고 있습니다. 한국이 이렇게 살기 힘든 나라가 된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중국때문이죠. 노동자의 임금이나 농산물의 가격이나 너무 싸서 한국, 특히 한국기업과 한국노동자들이 개피 보고 있죠. 공산당이 우리 노동자,농민을 더 괴롭히네.
1848년 '공산당 선언' 아시죠. '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의 유령이' 로 시작되어 '만국의 프로레타리아여 단결하자'는 끝나는 유명한 글. 이 선언을 만든 마르크스, 엥겔스가 지하에서 통곡하겠다. 만국의 프로레타리아들이 개뿔이 단결해. 하기야 요새는 유령은 유령인데 '중국의 싸구려 유령'이 전세계를 떠돌고 있죠. '저가 공세'로 여러 나라 다 작살내고 있어요. 6,25전쟁때 인해전술로 내려올 때 벌써 알아봤어야 했는데.
나온 김에 '공산당 선언' 맛뵈기. "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공산주의의 유령이.옛 유럽의 모든 세력들이 이 유령을 잡기위한 성스러운 몰이사냥을 위해 동맹하였다. 교황과 짜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관들이.(중략)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는 것을 경멸한다.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질서의 폭력적 전복에 의해 달성될수 있을 뿐임을 공공연하게 선포한다. 지배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앞에서 전율케하라. 프로레타리아에게는 족쇄말고는 공산주의 혁명앞에서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는 얻어야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로레타리아여 단결하라!" 다 흘러간 옛노래구만.
핵심포인트. 중국 공산당 때문에 한국사람 다 죽는다. 특히 노동자 농민이 훨씬 더 죽는다. 중국도 정치민주화를 하든지. 아주 돈 되는 짓만하고 인간에게 꼭 필요한 자유와 인권은 유보하고. 중국은 온통 나라안이 돈 버느라고 난리죠. 기업은 물론 이고 대학이고 남녀노소. 늦게 배운 도둑이 날새는 줄 모른다고. 중국 공산당도 '완전 장사꾼'이고 왕서방 후손이네. 공산주의 한다고 피가 어디 가나. 공산당, 공산주의는 '외면 체면용'으로 일부러 고상한 척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 공산당, 공산주의 버리고 아예 솔직하고 떳떳하게 자본주의로 나서세요. 한국은 물론 세계의 기업들이 중국으로 달려가니 이건 무조건 빨아들이는 완전 '진공청소기'구만.
질문 하나있습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 남이 잘 되면 배아파 하는 한국사람들이 공산주의 하지 않고 자본주의 하는 것도 이상하고 장사꾼 민족인 중국이 자본주의 하지 않고 공산주의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실 속을 들여다보니 한국은 공산주의 비슷한 것하고 중국은 철저한 자본주의하고 있죠. 2대 불가사의.
말이 나온 김에 농민들도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똑같이 다 같은 피억압 농민들이 아니더라구요. 얼마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WTO각료회의때 보니까 각국 농민들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개방품목과 폭이 다르더라구요. 세계 농민들도 다 계산이 다르더라구요. 이렇게 되어가면 만국의 프로레타리아가 단결할 리도 없고 마르크스 엥겔스의 그런 얘기는 다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황당한 말씀으로 되어버리는 거죠.
3.
한밤중이 되니 날씨가 더욱 쌀쌀해진 탓에 올해 들어 처음 버스내에 히트까지 틀고 기다리니 새벽 4시 반쯤, 거창도산인 백신종선배가 지인들 2분과 함께 합류를 했다.
황간시내에서 지난번 산행때 하산했던 궤방령으로 가는 도중,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의 수해로 인해 도로 길이 끊겨 버린 곳이 있어 우회했고 또 낯선 길인 탓에 헤매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동트기 직전, 새벽 5시 23분에 경북 김천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매곡면을 잇는 977번 지방도로가 놓여있는 궤방령에 겨우 도착했다.
하늘은 온통 푸른빛 머금은 검은 바탕이었고 별은 여기저기 성의 없이 마구 흩뿌려져 있었다. 사람의 감정과 정서를 자극하는 초승달이 하늘 저편에 걸려 있었다. 초승달에서 내뿜는 그 빛이 어찌나 밝은 지, 천국의 빛이 살짝 제쳐진 커튼을 통해 마구 쏟아지면서 저 쪽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발동시키고 있었다.
유영래 대장님은 초승달을 보면서 "유혹하고 있네" 라고 한마디 운을 띄운다. 어여쁜 색시의 눈썹이라는 뜻이겠지. 이원 선배는 "노름꾼이 밤을 새우고 새벽에 방문을 열면 뜨는 달이 초승달이라고 하든데"라며 한마디 거든다. 똑 같은 사물이라도 각자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고. 두 분 죄송합니다. 한 분은 여자를 , 한 분은 노름을. 싸잡아 비난해서. 웃자고 한 얘기지 뭐. 이헌태는 초승달을 보면 옷 걸어놓고 달아래 술을 왕창 마시고 싶죠. 알코올중독자.
서정주 시인의 시 '동천(冬天)'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섭을/ 즈문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 하늘에다 옴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캬, 초승달이 눈썹이고 또 하늘에 나는 새모습일새. 한국 최고의 인기연예인 '이효리'. 성형외과 마다 반달처럼 생긴 효리 눈을 만들어 달라고 난리라고 하네요. 반달눈이든 눈썹 같은 초승달이든, 달은 역시 멋져. 불그스레한 달, 황달. 그건 간염 증상이고. 죄송합니다.
4.
새벽 5시 33분 출발. 일행은 목적지인 추풍령을 향해 북쪽방향으로 힘찬 첫 걸음을 내딛었다. 벌써 동이 트기 시작했다. 날이 밝아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검은 하늘이 순식간에 하얗고 파른 하늘로 대체되고 있다. 하늘에 물감이 스며들 듯이 부지불식간이다.
대략 30여분이 지난 새벽 6시 10분쯤에는 동쪽에는 붉은 복숭아 하나가 탐스럽게 떠올라 있다. 오랜만에 마음 속깊이 느끼는 황홀감이다. 올 여름 지긋지긋한 비로 인해 중단되었던 '자연 감탄사' 가 이번 산행에서 다시 연달아 터지고 있다.
궤방령은 낮은 지형이기때문에 백두대간 높은 산 위의 본 능선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몇 시간이나 계속 오르막을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심총무의 제의로 백두대간 산행이후 처음으로 한시간 동안 '묵언산행'을 하기로 했고 이에 묵묵히 가다 보니 오히려 더욱 편하고 쉬운 산행이 되었다.
'묵언산행'한 소감 한마디. 인터뷰하나. 아니고요. 주변 사람들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또 주변 사람들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모두들 가다보니 산속이 '조용한 바다'와 같더라구요. 산을 '숲의 바다'라고 하듯이. 바다는 멋진 표현을 할 때 인기가 많구만. 이헌태도 바다 같은 마음을 지녔다. 아니면 그만이고.
'묵언산행' 하다보니 첫째, 산속에는 나 혼자 뿐인 것 같더라구요. 둘째, 나 혼자뿐이니 나에 대한 사랑도 느끼고 이 우주에는 내 생각뿐이라고 하니 저절로 기쁨이 찾아 오더라구요.셋째, 고요한 숲속에서 자연을 맞대니 역시 시끄러운 것 보다는 조용한 게 낫더라구요. 마음이 편안하고 그윽해진다고나 할까. 산은 침묵이 멋있죠. 스님들이나 신부님들이 묵언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구요. 좋으니까 하지, 싫으면 왜 하겠어요. 심총무님, 다음 산행 부터도 초입때는 늘 '묵언산행' 합시다.
'가득한 것은 조용하다'. 아함경 말씀. " 깊은 물과 얕은 물은 그 흐름이 다르다/ 바닥이 얕은 개울물은 소리를 내고 흐르지만 깊은 넓은 큰 바다의 물은 소리를 내지 않고 흐른다/ 부족한 것은 시끄럽지만 가득한 것은 조용하다/ 어리석은 사람은 반쯤 채워진 물그릇과 같고 지혜로운 사람은 가득찬 연못과 같으니라".
속이 꽉차면 조용하다. 이헌태 니는, 앞으로 늘 입 다물고 조용히 살아라.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입 다물고 조용히 살면 무조건 도인인가요. 그런 것 아니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 원참, 내 방식대로 살아야지. 시끄럽게, 히히히.
인도의 오쇼 라즈니쉬는 '지혜는 어리석음을 먹고 자란다'는 책에서 "침묵은 지성의 폭발이다. 침묵은 그대 마음속에 있는 온갖 상념 욕망 추억 환상 꿈들을 치워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대는 그냥 존재를 직접 즉각적으로 바라본다"고 주장했죠.
또 인도에 '스리 라마나 마하리쉬'라는 침묵의 성자가 있다고 하네요. 침묵으로 성자가 되었는 모양이죠. 이분은 " 침묵은 가장 높은 차원의 언어이며 가장 효과적인 언어이다. 말로는 몇 년이 걸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침묵을 통해서나 침묵하고 있는 스승앞에서는 즉각 깨달을 수 있다. 완전한 앎이며 그 밖에는 모두 보잘것없고 하찮은 앎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네요.
또 그분은 " 참자아는 침묵이다. 침자아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각해야 할 거리가 아무것도 없다. 극치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생각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자아의 아름다움 속에서 말은 길을 잃어버린다. 그에게는 오직 침묵만이 존재한다. 언어와 생각을 초월한 상태가 침묵이다. 현자들은 나라는 생각(에고)이 털끝만큼도 일어나지 않고 참자아 만이 오롯이 현존하는 상태를 침묵이라고 한다. 이러한 침묵상태의 주인공이 신이며 영혼이다. 참자아는 아득한 태고적부터 존재해온 침묵이다. 침묵만이 진실하고 진정한 스승은 그대안에 있다". 무슨 말씀인지 대충은 아시겠죠. 침묵을 통해 도를 닦으라는 충고.
이날 묵언산행은 한시간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무려 한시간 반 이상 계속되었다. 아주 재미들었구만, 대간팀 가운데서 스님 여러분 나오겠네. 간혹 주변에서 묵언이 깨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었다.
나의 경우 묵언산행이 딱 한번 깨졌다. 떠오르는 해를 모처럼 보니 도대체 감정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아' 탄성을 내질렀다. 깨달음. 돈오돈수. 그것은 봐줄 수 있다고요. 붉게 솟는 태양을 보면서 북받치는 감정이 없다면 그것은 백날 묵언산행 해봐도 소용이 없다구요. 감사합니다.
궤방령에서 출발해서 418미터고지 봉우리를 하나 넘고 다시 하산했다가 오르막으로 계속 올랐다. 하늘이 가린 숲을 어느 정도 지나자 새벽 7시 10분쯤에는 지난 산행때 들렀던 황악산을 비롯 주변 산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너무 너무 청명한 날씨다.
전형적인 가을날씨. 송대관의 '네박자'가 아니라 '오박자'가 딱딱. 1) 싱싱하고 찬란한 햇살 2) 푸르고 높은 하늘 3) 선선한 바람 4) 맑고 깨끗한 공기 5) 한가로운 흰 구름. 하나 더 추가. 6) 인간 이헌태. 캬 그림 좋다. 한 폭의 동양화다.
제가 사계절 가운데 가을을 제일 사랑하거든요.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에 서서 보면 가을단풍- 여름녹음- 겨울흰산- 봄 까까머리산 순이더라구요. 개인별로 취향이 다 다르겠지만. 여기가 어디 식당이냐. 추가하게. 이헌태는 빼는게 맞다구요. 알겠습니다. 다 필요없어, 천상천하 유아독존. 내가 좋아하면 그만이지 뭐.
산은 완연 가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증거를 대라고요. 가을하늘은 이미 설명드렸고. 백두대간 길에 우거진 정글 숲이 없어졌더라구요. 짙푸른 빛깔의 숲이 탈색이 되어 누런 빛으로 변하고 있더라구요. 휑하기 시작한 쓸쓸한 숲의 풍경이 펼쳐졌다. 대간 숲길에도 여기저기 도토리가 떨어져 있었다. 떫지도 않고 아싹 아싹 씹히는 게 먹을만 했다. 풀섶을 따라 쭉 깔렸던, 정구지 같이 생긴 쇠풀이 그 푸릇푸릇하던 장발머리를 벗어던지고 거의 노인처럼 흰머리로 바뀐 채 힘없이 푹 쓰러져 있었다.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 참나무 잎들이 낙엽처럼 떨어지고 잎새마저 썩어 싱싱한 게 하나도 없었다. 푹신한 낙엽길이 카펫처럼 만들어진 게 너무 좋았다. 산도 춥고 마음도 추운 겨울이 곧 오겠지. 잦은 비와 우박 때문에 나뭇잎새들이 다 작살이 났다고 하네요. 이 정도만 하면 가을이 찾아 왔는 게 확실하죠. 늘 산에 가다 보면 금방 금방 계절이 바뀌는 것을 잘 알 수 있죠.
가을 야생화인지는 몰라도 쑥부쟁이, 개망초꽃이 피었다. 한국산의 보배인 가을 억새가 휘청휘청 산바람에 나부끼기 시작하면서 너울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억새야, 오랜만이다, 그간 잘 있었느냐.
나뭇잎들도 10%가량은 누렇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단풍색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이제 곧 단풍이 시작된다고 하네요. 산 전체 면적의 20% 가량이 물들기 시작하면 단풍 시작일로 그리고 전체면적의 80%가량에 달할 때는 절정일로 본다고 하네요. 올해는 9월 27일 설악산 대청봉정상에서 시작해서 내장산에는 10월말경 절정을 이루겠다고 하네요. 옆길로 샜구만. 죄송합니다. 퀴즈하나, 단풍의 하강속도 하루에 평균 40미터라고 하네요. 돈 많고 묵고 노는 한량이라면 단풍 따라 쭉 걸어 같이 하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가을이 왔으니 이내 곧 갈 것이고 곧 겨울이 오고 눈이 오겠지. 이헌태 성질 되게 급하네. 벌써 눈타령이냐. 쬐금 오버하는 버릇이 있어서. 작년 10월 중순 백두대간 산행을 처음 시작할 때 지리산에 눈이 펑펑 쏟아지고 살을 에는 혹한이 닥쳤거든요. 제 얘기가 완전 풍이 센 게 아니죠.
부지런히 가다보니 출발한 지 2두시간만인 새벽 7시 20분 가성산 (해발 716미터) 바로 밑에 도착했다. 이렇게 먼 길을 2시간 만에 오다니, 힘이 덜 든 느낌이다. '묵언 산행'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선두와 후미가 차이도 거의 없었다. 불과 몇 십 미터가 되지 않았다. 백두대간 산행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대장께서 지난 산행때 화를 크게 내는 바람에. 모두다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대열에서 낙오하면 끝.
5.
가성산 정상 밑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라면을 끓이고 볶음밥, 인절미, 김밥, 전, 그리고 양주, 소주 등 갖은 음식들과 술을 즐겁게 나눠 먹고 아침 8시에 자리에 일어섰다. 양평 김사장누님이 늘 잔뜩 음식을 가져온다. 고마워요. 말로만. 돌배주도 기가 막히고, 뽕나무 열매 오디로 만든 오디주도 나왔다. 뽕나무에서 기생하는 상황버섯이 암에 직효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고 하네요. '뽕' 영화에 이미숙이 출연해서 그 이후 유명 탈렌트가 되었죠. 뽕나무가 나무가운데 최고 나무일세. 히로 '뽕' 먹고 인생 조진 사람도 많지만. 이미숙씨를 방송국 부근 길거리를 지나 가다가 보니 뽕가겠더라구요. 역시 '뽕' 영화 주연으로 제격이야.
뽕나무와 관련된 전설하나. 사랑타령인데 끝까지 봐주세요.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베낀 것으로 본래의 뽕나무 열매는 흰 색깔의 열매 였는데 검붉은 색깔로 바뀐 전설이야기.
" 옛날 바벨론에 잘생긴 미남 피라모스와 아름다운 처녀 티스베가 이웃하고 살았기 때문에
자연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는 절대로 반대하는 바람에 그들은 만나는 것이 금지되었다. 사랑은 그들 집의 틈을 찾아내고 보지는 못하지만 이야기만은 나눌 수가 있었다. 그들이 보고싶은 마음은 욕망은 위험 부담이 많은 저녁 미명 들판 흰 뽕나무 아래서 만나기로 하였다.
티스베가 먼저 흰 뽕나무 아래로 나가서 퓌라모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 방금 먹이를 잡아먹은 사자가 나무 곁에 있는 맑고 시원한 샘에 물을 먹으로 다가왔다. 처녀는 놀라 바위 틈 사이로 몸을 숨길 때에 쓰고 있던 베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사자는 물을 먹고 난 후에 베일을 피묻은 입으로 찢어 버렸다. 사자가 간 다음에 청년은 늦게서 약속한 장소로 다가왔다.
그리고 모래땅에서 사자의 발자국을 보고 창백하여지기 시작하였다.
염려한대로 피묻은 베일을 발견하고는 그는 부르짖었다. "그대가 죽은 것도 나 때문이다. 이런 무서운 장소로 나오게 한 것도, 오래도록 홀로 있게 한 것도 나의 죄다. 이제 나도 죽어 그대에게 가겠노라, 그리고 뽕나무 너는 나의 피로 물들이리라"하고 칼을 빼어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피는 뽕나무 뿌리를 타고 올라가 열매를 붉게 물들였다. 공포에 떨고 있던 처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용기를 내어 나무 아래 왔을 때 흰 뽕나무의 열매가 붉은 색깔을 보고 조금전의 나무인가 의심하였다. 주저하고 있는데, 그의 눈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놀라 물러서다가 그가 사랑하는 연인임을 알고 외마디 소리를 질려다. 그리고 그에게 "어찌된 일인지 말 좀 하세요, 머리를 들어줘요"라고 울부 짖었다. 청년은 말을 듣고 눈을 떴으나 잠시 후 감고는 다시는 뜨지 않아다.
처녀는 피묻은 베일과 칼을 보고 상황을 알았고, 자결 한 것도 자신의 잘못인 것도 알게 되였다. 처녀도 자기의 사랑이 청년만 못하지 않은 것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마음 먹었다. 죽음은 이제 두 사람의 사이를 떼여 놓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뽕나무를 보고 '뽕나무야, 너는 우리 죽음을 너의 열매가 우리 피의 기념이 되도록 하여다오'하고 청년의 가슴의 칼을 빼어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신들도 옳다고 생각 되여, 이후는 뽕 나무 열매는 오늘날 검붉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옛날 사람들은 사랑을 갖고 잘도 얘기 꾸며 내는구만. 그렇게 할 일이 없었나. 눈만 뜨면 사랑얘기를 지어내었으니. 참 한심하기는.
6.
아침을 맛있게 먹고 쬐금 더 올라가니 가성산 정상이 나왔다. 사실 아침 식사 한 곳이 가성산이라고 알았는데. 헬기장으로 활용되는 시멘트 바닥으로 이뤄진 가성산 정상에는 영동군 매곡면 체육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대충 땅에 끼워져 있었다. 돌 기념비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으려니 마침 역광이어서 표지석을 반대편으로 빼내 우리 일행 앞에 세워놓고 찍었다. 아주 웃기는 대간산행 팀이야. 산행지도를 펴보니 이 지점은 목적지인 추풍령까지의 절반 쯤에 해당된다. 야 빨리 왔다.
날씨도 깨끗하고 따사롭다. 모처럼 삼라만상이 비에 젖은 우울과 습기와 축 처진 마음을 말리는 것 같았다. 특히 내 영혼도 따뜻한 햇볕에 말려지는 것 같았다. 이불을 햇볕에 말리면 살균도 되고 기운을 받아 포근한 이불이 되듯이. 눅눅한 영혼도 맑고 건강하게 다시 태어나겠지.
흐르는 구름을 보니 이헌태가 생각이 동(動)하네. 소아시아 에페소스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 (기원전 540년경- 480년)는 "모든 것은 흐른다"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모든 것은 운동 가운데에 있으며 어떤 것도 영원히 존속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같은 강물을 두 번 들어갈 수 없죠.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말 된다.
이헌태의 생각.흐르는 것은 다 아름답다. "구름이 흐른다. 강물이 흐른다./ 음악이 흐른다. 눈물이 흐른다 / 시간이 흐른다. 역사가 흐른다./ 사상이 흐른다. 피가 흐른다./ 모든 것은 다 흐르고/ 흐르는 것은 모두 다 아름답다."
구름을 보고 그림 같이 시를 쓰신 분이 계시죠. 뜬구름을 보고 허망한 인생을 떠올린 게 아니고요. "산은 스스로 무심히 푸르고 구름은 스스로 무심히 희네. 그 가운데 한 상인이 있으니 그도 또한 무심한 나그네일세" (휴정 서산대사).
보너스. "흰 구름 구름 속에 푸른 산이 겹겹이고 푸른 산 산 속에 흰 구름이 많네/ 날마다 구름과 산으로 벗삼아 지내니 몸이 편안하면 어디고 내집일세"(태고국사 보우). 캬 너무 좋다. 아희야, 막걸리 한사발 가져 오너라.
7.
지난 산행때 대장께서 나무랐는데도 불구하고 허정균선배를 비롯 일부가 뒤에 쳐졌다. 나는 하도 야단을 맞아 처음에는 선두에 섰다가 나중에는 중간그룹으로 뒤쳐졌지만 후미그룹에서는 탈출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심총무가 후미그룹을 '소요파'라고 했다. 자연을 감상하는 소요가 아니라 성질나면 폭동과 소요를 일으키는 소요파인가. 그래도 대장께서 눈 하나 까딱안하실 걸.
가성산을 떠나 장군봉 (616미터)을 넘고 또 683미터봉우리를 넘은 뒤 북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오전 10시 반쯤 이번 산행의 최고 정상인 눌의산(해발 743미터)에 올라섰다. 헬기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 동네는 산 정상 곳곳이 헬기장이구만.
모처럼 해발이 높은 곳에 위치해서 인지 주위 사방의 산들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이 얼마 만인가. 가슴이 뻥 뚫린다. 도를 득한 것 같다. 예술 그 자체다. 서쪽에는 백화산, 북쪽에는 속리산, 동쪽에는 금오산 가야산, 남쪽에는 민주지산 황악산이 우람하게 버티고 있었다. 저 산 아래는 경부고속도로가 놓여있고 차들이 질주하고 있었다. 가파른 급경사 내리막길을 통해 하산하면 추풍령이 나온다고 한다.
눌의산 정상에서 사방 주변의 산을 보면 딱 아프카니스탄 산악지대. 따가운 햇살이 마구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맑고 깨끗하고 푸른 하늘에 흰구름 조각들이 떠 있고 아직 짙게 푸른 숲을 품에 안고 있는 시커먼 산 줄기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너무 아름답다. 한국의 가을산이여 만세! 오늘 대간산행 만만세. 완전 본전 뽑았네.
산위에서 시낭송회도 열렸다. 수준 높은 대간팀이네. 대장께서 한 말씀 하신다. "시는 천기누설이다" 라고. 맞습니다, 맞고요. 그런데 천기누설은 뛰어나 시인의 경우. 제가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요, 저는 '천기혼선'이겠죠. 겸손하기는.
시인은 남이 볼수 없는 특수한 시력을 지녀야 하고 동시에 꼭 보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을 볼 줄 아는 시력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하네요. '특수시력자'구만. 하기야 보통 사람들이 느끼지도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현상이나 사물들을 현미경 들이 대고 완전 분석하고 연구했더구만. 머리 아프게. 그러니 맨날 울고 불고 죽니 사니 슬프다느니 기쁘다느니. 하여튼. 시인들이란. 오죽 했으면 프로스트도 "시는 슬픔에 관한 것이고 정치는 불만에 관한 것"이라고 했겠나. 잉. 정치가 웬 불만. 불평불만자들이 정치를 한다는 것인가. 그래서 늘 자기들이 열받고 열내고 결국 국민들을 열받게 하는 구만.
어떤 분이 무엇이 시인을 만드는 지를 정리했죠. "슬픔이 시인을 만든다/ 사랑도 시인을 만든다 /펜혹이 시인을 만든다/ 분노도 시인을 만든다/ 부끄러움이 시인을 만든다 / 바람도 시인을 만든다/ 길이 시인을 만든다/ 유행가도 시인을 만든다/ 시만이 시인을 만든다."
그런데 시란 뭐냐하면은요. 이헌태의 우상, 소동파 선생께서 정곡을 콕콕 찌르는 말씀을 하셨죠. "아름다운 시구가 끊임없이 솟아나네 / 어찌 남의 호감을 사기위해 일부러 꾸며 쓸 수 있으리요 / 원숭이나 학도 본래 아무 생각없이 우는 것이니 / 언덕 아래로 사람이 지나가든지 않은지 상관치 않네" 카, 이게 시지.
시 찬양. 공자께서는 "시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말할 게 없다"고 단정을 지어셨고 19세기 영국의 매슈 아널드는 "시는 인간의 가장 완벽한 발언"이라고 했다고 하네요. 시는 인류의 낙이고 최고의 발명품.
각설하고, 시낭송회에 낭창하게 하늘에 퍼진 시. 김수영의 '풀'과 정현종의 '견딜수 없네'.
'견딜 수 없네'를 소개하면. "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이헌태의 코멘트. 뭐 그런 것 가지고 견딜 수 없나. 너무 센티한 거 아닌가. 하기야 시인들이야 그런 생각해야지 뭐. 고생 많습니더. 쓸데없이.
김종철시인의 '나는 없다, 없다, 없다'(등신불 시편 9)는 시. "안개 속에 갇혀 이틀을 보냈다/ 창문을 열면 안개가 흘러 들어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벽처럼 가로막는 안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보지 않고도 보는 것처럼 보아도 못 본 것처럼 산도 나무도 모두 오리무중,/ 오늘 하루 나는 없다, 없다, 없다/ 생등신불이 이처럼 쉽게 될 줄이야! ". 이헌태의 코멘트. 나는 주머니에 돈이 없다.
시가 별게 아니더라구요. 한국을 대표하는 세분의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분들의 시를 보면 장난에 가깝더라구요. 저는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게 되었습니다.
짜짜잔. 우선 미당 서정주. '꽃피는 것 기특해라'. "봄이 와 햇빛속에 꽃피는 것 기특해라./ 꽃나무에 붉고 흰 꽃 피는 것 기특해라./ 눈에 삼삼 어리어 물가으로 가면은/ 가슴에도 수부룩히 드리우노니/ 봄날에 꽃피는 것 기특하여라." 저희 딸, 아들이 기특한 것은 많이 보았지만 꽃 피는것도 기특하다니. 이게 시냐고요.
다음 윤동주. 이게 윤동주시인지 어느 초등학교 학생이 지은 동시인지. 하기사 윤동주라고 좋은 시만 쓰냐. 살아 생전 시집하나 못 발간했고 나중에 유작으로 시집이 나왔다고 하네요. 그래서 긁어 모으는 바람에 습작시도 있다고 하니, 이해해야죠. 아니지 훌륭한 시란 원래 읽으면 '에게게, 이게 뭐야'하면서 누구나 고개를 끄떡여지는 시가 아닐까요. 황당한 시 3개. 이런 시 보면 나도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1) '무얼 먹고사나'. "바닷가 사람 물고기 잡아먹고 살고/ 산골엣 사람 감자 구워먹고 살고/ 별나라 사람 무얼 먹고 사나." 별이 무얼 먹고 살기는, 나 원 참. 참. 참.
2) '눈'. "지난밤에 눈이 소오복히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이불 장사 아줌마들이 다 눈으로 보이네.
3) '오줌싸게 지도'. "빨랫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 지도 /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싸 그린 지도 / 꿈에 가본 엄마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역시 나 원 참 참 참.
마지막 '향수'의 정지용. '지는 해'. " 우리 오빠 가신 곳은 / 해님 지는 서해 건너 / 멀리 멀리 가셨다네,/ 웬일인가 저 하늘이 / 피 ㅅ 빛 보담 무섭구나 ! / 난리 났나. 불이 났나.". 석양을 보면서 불이 났다. 나 원 참참. 소방서 아저씨들은 해만 지면 불끄러 가기 바쁘겠다. 석양때 화재신고가 많나.
이상한 것 하나. 남미 아르헨티나에는 황혼이 없다고 하네요. 해가 지자마자 캄캄한 밤이 되는데, 그런데도 황혼을 노래한 현대시가 많다고 하네요. 황혼이 좋은 줄은 알았어. 황혼 낙조 일몰 석양 낙일. 말도 다양하네.
얼마전 저희 회사 직원들하고 회식할 때 시 한 수씩 지어라고 하니, 모 여성 동지께서는 "인생은 사이다맛" 이라고 해서 주변을 놀라게 했죠. 시가 이렇게 친근한 것인데.
한국의 거물급 시인들이 왜 이래 시시해. '시시한 사람'의 약자가 시인인가. 아니면 그만이고. 시인은 가난하다고 하네요. 예술가, 작가, 조각가, 미술가, 음악가 등등. 모두 집을 가지고 있어 '집 가(家)'를 쓰는데 유독 시인만 사람인만 쓰네요. 집은 없어도 인간은 되었다는 뜻인가. 요즘은 세상이 우찌 되어 인간이 덜 되어도 집 있는 놈이, 특히 강남에 대형아파트 있는 놈이 큰 소리치니. 세상 말세여. 이조시대 때 태어날 걸. 재수 더럽게 없이 현대에 태어나 이 고생이냐.
인심내어 보너스. 웃기는 시. 황지우 시인의 '벽1'. " 예비군편성훈련기피자일제자진신고기간/ 자 :83.4.1 지:83.5.31" . 박남철 시인의 '사직서'. "일신상의 사유(신병)로 인하여 더 이상 직무를 계속 수행할 수 없겠기에, 이에 사직하고자 하나이다 (사직서를 제출하오니 재가하여 주시옵기 바라옵니다)/ 1980년 2월 8일/ 2부교사 박남철 /학교장 귀하". 가슴이 뭉클 뭉클 뭉클한 너무 너무 너무 감동적인 시네. 농담입니다. 이런 것도 시라고.
눌의산 정상에서 발아래 아득히 고속도로, 民族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를 내달리는 장난감 같은 차들을 보니, 참 인간 세상이 가소롭게 보이는도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모래와 먼지 같은 존재가 아닌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났나. 이헌태의 생각, "모래같이 많은 사람들, 그 우주같이 넓은 모래"
먼지, 모래 하면 정호승 시인의 시가 생각나죠. '햇살에게'란 시. "이른 아침에 /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제는 내가 /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 하루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 더. '나그네'. "한 알 모래 속에 바다가 있다/ 한 알 모래속에 섬이 있다/ 그 섬에 나그네 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 그런데 주장하는 바가 뭔데.
일본의 단시 하이쿠. "몸무게를 달아보니 65킬로그램/ 먼지의 무게가 이만큼 이라니 (호사이). 이헌태 생각, 육신 시리즈. 1) 내 육신 1- 먼지 투성이 2) 내 육신 2 ? 욕망 덩어리 3)내 육신 3- 쓰레기 더미 4) 내 육신 5 ? 116근 고기 5) 내 육신 5- 행복안테나.
한국에도 재미난 단시가 많죠. 1)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2) 이정록 '서시'.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3) 고은 '내장산'. "병든 아우야 내년의 단풍보고 죽어라." 4) 황인숙 '삶'.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외상값." 5) 어떤 학생 '인생'. " 산 오징어 만원 / 죽은 오징어 오천원"
질문하나. 부처님이 열반하시니 나온 사리가 8말. 해탈하시느라 뼈밖에 남지 않은 부처님의 몸의 몸무게를 따져보면 과연 그럴까. 이헌태, 너무 나가지 마라. 죄송합니다. 의문이 생겨서. 그러면 하느님이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하면, 이상한 물건 하나는. 넘어갑시다. 이헌태는 하느님, 부처님을 의심해서 지옥 가겠다. 죄송합니다. 저는 두 신을 모두 받들고 있습니다.
8.
오전 11시 6분에 눌의산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했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다리가 풀릴 정도로. 어떤 때는 하산 길이 더 고달픈 것 다 아시죠. 고추 잠자리도 보이고 매미울음소리도 들리는 것으로 봐서 여름이 아직 완전 퇴각하지는 않은 듯했다.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다만 매미소리는 힘이 빠져 있었다.
드디어 낮 12시 15분 경부고속도로 옆까지 내려왔다. 산밑 펀펀한 지역은 온통 포도밭이었다. 영동의 대표선수는 아다시피 포도. 하지만 눈물이 뚝뚝 떨어질려고 해요. 포도밭에는 태풍때문인지 엉망진창이었다. 벌써 수확해 그냥 내버려둔 포도밭도 있지만 썩은 채 매달려 있거나 떨어져 널브르져 있는 포도송이를 보니 가슴이 무척 아팠다. 올해 영동지역 포도농사도 망쳤다고 한다. 농민들의 시름이 얼마나 깊겠나. 뼈빠지게 일년 일하고 그 수고비가 날아갔으니. 용기를 내십시오. 좋은 날이 오겠죠.
고속도로 밑을 통과하는 지하 굴다리를 건넜다. 남쪽으로 700미터 내려가면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가 있다. 추풍령휴게소는 김천시 관내인 셈이다. 경부선 철도 건널목을 건너고 해서 포도밭을 건너 낮 12시 반경 추풍령면 시내에 들어섰다. 4번 국도 가로수에는 노랗게 물든 감이 싱그럽게 탐스럽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감나무는 가로수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시내를 따라 죽 걷다보니 김천의 봉산면과 영동군 추풍령면을 잇는 고개가 나타났다. 고갯길은 밋밋했다.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고갯길 추풍령. 1905년 세워진 경부선 철도, 1970년에 세워진 경부고속도로. 모두 추풍령을 넘어갔다. 아, 우리나라 중부지역과 영남지역을 연결하는 허리.
길가에 '추풍령'이란 화강암 표지석과 함께 추풍령 노래 시비가 세워져 있다. 한국 가요사를 빛낸 이 기념시비 앞에서 단체기념사진도 찍고 오늘 뽕이야기가 나왔으니 뽕짝, 트로트인 굵직한 저음가수 남상규가 부른 '추풍령' 노래도 대장님의 선창으로 다함께 불렀다. 노래 좋고 가사 좋고, 부르는 이헌태 좋고. 또 오버하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 / 추풍령 구비마다 한많은 사연 /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 보고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고개"
역시 가을에 들어설 때 추풍령에 도착하니 운치가 더 있구만. 사실 추풍령은 백두대간 종주의 4분의 1가량 되는 지점이다. 더욱 의미가 깊을 수 밖에. 부어라, 마셔라.
빗방울이 가늘게 내렸다. 비가 미쳤나. 이내 멈췄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추풍령이라고 해서 슬쩍 구경 시켜준 모양이지. 인근에 있는 '고향갈비마을' 식당에 가서 우리 대간팀의 장기이고 주요 일과인 술 퍼마시기 시작했다. 너무 우리 대간팀을 폄하했나. 식당에서 샤워도 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삼겹살에다가 막걸리를 들이켰다. 모두들 얼큰하게 취했다.
9.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에서 한잔 꺽으니 전국을 방랑하면서 좋은 경치 다 보고 원없이 산 김삿갓의 인생살이가 문득 생각난다. 요즘으로 보면 배낭여행객이죠. 다 들 부러워하는.
술이 나왔으니 한마디. '추풍령' 트로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예술인이라고 하더라구요. 술 가운데 가장 품격 높은 술이 예술. 술만 권하면 '예스'하면서 넙죽 넙죽 마시면 예술이지. 예술가들이 그래서 술을 좋아하나. 쌀로 만든 동동주, 미(米)술도 있죠. 미술은 그 미술이 아니라구요. 동동주 동생이 윤동주 잖아요. 옛날 선비들은 달과 술, 여인과 그림과 시가 있으면 아쉬운 게 없다고 했는데. 여기에 다 있구만. 음악이 있으면 더욱 좋고.
이헌태는 술있고 예술있고 입술있고 이 세가지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 미친 놈. 술 가운데 가장 맛있는 술이 뭐니 뭐니 해도 입술이죠. 화랑도의 풍류정신 아시죠. 시주풍월, 음풍농월,화조풍월. 나는 화랑도의 후예야. 잘 났다, 잘 났어.
옛날 문인들은 꽃과 달 미인이 없으면 이 세상에 태어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필묵과 장기와 술을 보탰지만.
음악의 '악'이 즐거울 락이죠. 이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락은. '희희낙낙'. 인터넷상 저의 예명이 '희희낙낙' 이거든요. 락이 많더라구요. 음악 '락컨롤'의 락도 한자 즐거울 락(樂)으로 표현하더라구요. 호락호락, 생사고락, 오락, 타락, 나락, 우락부락, 오락가락, 젖가락, 도시락. 농락. 다 즐겁다는 뜻인가. 이 가운데 술마시고 두들릴 때 필요한 젖가락과 배고플 때 먹는 도시락도 좋고, 타락은 안되는데. 낙도 복잡구만.
말장난 그만하라구요. 제가 조사해보니 조상들도 말장난 많이 했더라구요. 김삿갓 아시죠.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 가량 머물면서 만난 기생의 딸이 가련인데, 스물 셋에 만나 모처럼 안정된 생활을 했다고 하네요.
'기생 가련에게'라는 시가 있죠.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원문으로 하면. 可憐妓詩(가련기시) " 可憐行色可憐身 可憐門前訪可憐 (가련행색가련신 가련문전방가련) 可憐此意傳可憐 可憐能知可憐心 (가련차의전가련 가련능지가련심)". 어떻게 생각하세요. 말장난 아니에요. 김삿갓은 말장난 해도 시가 되고 이헌태가 말장난하면 '웃기는 짜장면'이 되고. 엄중경고 하겠는데, 이중잣대를 들이대지 마세요.
보너스 하나. 김삿갓이 '돈'이라는 유머시도 지었더라구요. "천하를 두루 돌아 다니며 어디서나 환영 받으니 / 나라와 집안을 흥성케 하여 그 세력이 가볍지 않네 /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는 또 가니 / 살리고 죽이는 것도 마음대로 하네." 나 원 참. 시인 되기 싶네.
10.
전세버스는 고속도로를 경유해서 오후 6시쯤 서울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고 나도 지하철을 타고 7시쯤 귀가했다.
결론이 중요. 이번 대산 산행은 지긋지긋한 비를 떠나 보내고 가을의 정취를 느낀 멋진 '가을 산행' 이었다. 여름아 잘 가거라. 비야 잘 가거라. 가을아 반갑다. 낙엽아 반갑다. 벌겋게 불타는 가을이구나. 내 마음도 벌겋게 불타겠지. 유부남이 그런 소리해도 되나. 알겠습니다. 은인자중해야죠.
이날의 감상 키 포인트 '가을'. 가을은 흔히 '독서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낙엽의 계절', '결실의 계절'등등 불리는 예명이 많죠.
세상 바뀐 걸 모르는 구만.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잘 대처합시다. 일단 두가지만 정정하겠습니다. 천고마비의 계절. 사시사철 먹을 게 많고 늘 먹어 이제 사람들은 살빼는 전쟁에 돌입. 따라서 천고마비의 계절은 옛 시절의 아련한 추억. 가을은 '연예의 계절'이어서 남녀가 이성에게 서로 잘 보이기 위해 천고마비의 거꾸로인 '다이어트의 계절'.
'독서의 계절'도 흘러간 노래. 컴퓨터가 나오면서 책은 저 멀리 빠이빠이. 불황이 깊으면 책이 안 팔린다고 하네요. 독서의 계절은 가을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고 호황과 관계있죠. 독서의 계절이 되려면 경제를 살려야합니다. 그렇구나.
이번 가을은 주5일제의 도입으로 '나들이 계절', '등산의 계절'이 하나 보태졌죠. 2주전에 도봉산에 가서 등산객의 옷차림을 보니 검은색 등산바지를 입지 않은 사람들이 거의 없더라구요. '백의 民族'이 언제 '흑의 民族'의 바뀌었는지. 하기사 백의민족을 계속 유지하려고 발버둥티고 있더라구요. 청년 백수(白 手)들이 너무 너무 넘쳐나니까요.
최근 한민족이 '백의 民族'이 아니라 '붉은 民族'으로 알려졌다고 하네요. 유럽.북미.동북아시아 등 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 3백32명을 조사한 결과 "한국 하면 떠오르는 색깔은 빨강"이란 응답이 36.8%. 그 이유로는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노조 파업 때 머리에 두른 붉은 띠, 월드컵 때 붉은 악마 응원단, 열정적 민족성, 김치 색 등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쯤되면 '백의 民族'에서 '붉은 民族'으로 바꾸죠. 조상들이 대노할 일이라구요. 알겠습니다.
앞으로 토,일 주말이 모두 노는 주5일제가 정착되면 조국강산이 등산객들의 등산화로 밟혀지겠지. 산이 무너지겠다. 너무 많이 올라가면. 국민들이 산 좋은 지는 알아서 너무 많이 몰리더라구요. 나 원 참. 전국민의 등산객화. 조만간 '전국민의 세계배낭여행객화'가 된다고 하네요. 태고적 유목민족의 후손이니.
전세계가 한국의 배낭여행객으로 꽉 차겠네요. 바로 이게 선현들이 말씀하신 '자유인'인가. 하기야 광개토대왕이나 세종대왕이 아무리 잘 났어도 이헌태처럼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가보지 못했는데 뭐. 이헌태 팔자가 더 낫지.
쉬어가는 코너. '주5일제'가 뭔지 아세요. 술 주(酒). 주말 빼고 평일날 5일 내내 술마시는 제도. 금주회가 뭔 줄 아세요. 평일날 술 마시고 금요일은 특히 왕창 마시는 모임. 이헌태, 미친놈.
이헌태가 가장 좋아하는 가을을 맞이해서 이렇게 허무하게 글을 끝낼 수 없습니다. 이헌태의 생각, 귀엽게 봐 주세요. 지난달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으니 5년 후에는 시가 좀 나아지겠죠. '기대반 희망반'.
누가 그랬죠. 봄은 즐거움, 여름은 정열, 가을은 서글픔, 겨울은 차가움. 아니만 말고. 그래서 이헌태는 가을에 대해서 여러 가지 다각도로 감성을 마구 돌렸죠.
이헌태의 가을 생각 1. 가을 방문. "작년에 아쉬워 눈물로 보냈던 가을이 어김없이 올해도 찾아왔습니다. / 함께 보냈던 우수(憂愁)와 연민(憐憫), 환희(歡喜)와 정열(情熱)도 또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저는 가장 사랑하는 옛 친구가 다시 찾아와서 너무 반갑습니다"
웬 가을 타령이냐고요. 9월이 시작되면 봄이 시작되냐, 여름이 시작되냐, 겨울이 시작되냐. 가을이 시작되는 거 다 아는데 웬 난리냐고요. 죄송합니다.
이헌태의 가을 생각 2. 가을 하늘. "가을은 푸르고 깨끗하고 맑다./ 하늘이 텅비어 있다. / 하늘도 가을을 닮아 마음을 비운 모양이다./ 나는 가을과 가을 하늘을 닮아 마음을 비워야겠다"
이헌태의 가을 생각 3. 가을 햇살. " 봄 햇살/ 여름 햇살/ 가을 햇살/ 겨울 햇살/ 나는 이 가운데 가을 햇살이 가장 좋더라./ 가을 햇살은 따사롭고, 싱싱하고, 힘차고, 건강하다./ 그래서 오곡 백과들이 유독 가을 햇살을 받고 결실을 맺는구나"
이헌태의 가을 생각 4. 가을 들녘. " 산과 들녘에 쫙 널린 초목과 오곡백과들이 / 가을 바람에 / 너울너울 춤을 춘다./ 모처럼 / 대지도 즐거워하고 / 하늘도 덩달아 흐뭇해 한다"
이헌태의 가을 생각 5. 가을 구름. "흰 구름이 이리 저리 떠다닌다. 어디로 가나, 필경 이유가 있을 테다./ 가랑잎이 한잎 두잎 떨어진다. 누가 부르나. 필경 이유가 있을 테다. /기러기가 편대를 형성하며 떼 지어 날아간다. / 누가 시켰나. 필경 이유가 있을 테다. / 곡식이 한알 한알 영글어 간다. 누구를 위한 성숙인가. 필경 이유가 있을 테다. / 나는 가을이 오니 사색가(思索家)가 된다. 왜 그럴까. 필경 이유가 있을 테다."
이헌태, 니 약묵었나. 오늘따라 장구치고 북치고 '난리 부루스' 치는구만. 저도 센티할 때는 센티하답니다. 건드리지 마세요. 톡 터져요. 이슬을 머금고 사는 소녀랍니다.
글을 마치면서 이 아름다운 계절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뜻에서 좋은 글을 소개하면서 땡할께요. '월든'의 작가 데이빗 소로우는 "하루는 1년의 모형이다"라고 한마디 했죠. 하루를 헛되어 보내는 사람은 평생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니, 내일을 생각하기 전에 오늘을 충실히 살라는 공자 같은 말씀.
권선사 스님은 아침 일찍부터 공부에 매진하다가 해가 질 때면 "하루 해가 부질없이 지는데도 마음을 깨닫지 못하였구나"하면서 통곡을 했다고 하네요. 뭐, 그럴 것 까지야. 이헌태는 죽을 때 까지 매일 저녁 자기 전에 대성통곡 해야겠네. 인생을 즐기러 왔지 울러 왔나.
'한번 뿐인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지혜'라는 책에도 좋은 말씀이 있더라구요. 1). "일본의 한 샐러리맨이 30년동안 살아온 자기의 시간을 분석해 보았다. 30년은 날짜로 10950일인데 그 중에서 잠잔 시간이 3505일, 불쾌했던 시간이 1596일, 담배를 피운 시간이 1140일, TV를 본 시간이 775일, 독서한 시간이 722일, 차 타는데 소모한 시간이 691일, 관혼상제에 참석한 시간이 544일, 모임이나 파티에서 보낸 시간이 517일, 남을 흉본 시간이 441일, 술집에 간 시간이 266일, 도박으로 보낸 시간이 258일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30년동안 잠자고, 화내고,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흉보고, TV본 날들. 그 밖에도 아무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 시간까지 합하면 23년 이상을 비생산적인 일에 소모한 셈이다."
아이고 아까워라. 그런데 아니, 자기가 언제 어떻게 이렇게 시간을 체크했나. 모임에서 담배를 피울 수도 있지. 모임 시간 따로 계산하고 담배 피우는 시간 따로 계산하고. 이헌태, 짧고 귀한 인생 허비하지 말고 알차게 보내라는 이 사람의 의도만 대충 알고 넘어가라. 니 와카노. 알겠습니다.
2) 쇼펜하우어 왈, " 보통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데 마음을 쓰고 재능있는 사람은 시간을 이용하는데 마음을 쓴다". 누구집 아들이고 말은 잘하네.
결론은 버킹검. 노산 이은상의 '赤 壁 遊'가 가장 마음에 든다. " 백년도 잠깐이요 천년이라도 꿈이라건만/ 여름날 하루 해가 그리도 길더구나 / 인생은 유유히 살자 바쁠 것이 없으니." 안녕. (9월 20일,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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