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은 예상대로 부지불식간에 빠르게 바람처럼 사라졌다. 바야흐로 6월이 접어들자 여름철이 본격 시작되었다. 갈수록 정이 가는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들은 6월을 어떻게 부르는 줄 아세요. 위네바고족은 '옥수수 수염이 나는 달', 퐁카족은 '더위가 시작되는 달', 테와 푸에블로족은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 오마하족은 '황소가 짝짓기하는 달', 체로키족은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게 되는 달". 다 맞죠. 또 너무 멋있죠.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미개인으로 취급하며 우습게 알았더니 21세기 고도정보화사회로 들어오면서 거꾸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네요. 인간이 태초, 원시의 순수에서 출발해서 이성을 무기로 물질문명, 과학문명을 추구하다가 한계에 봉착하면서 자연과 정신,영혼으로 컴백하는 거지 뭐. 돌고 돌아 원래대로 돌아가네.
호국보훈의 달인 6월. 백두대간 종주 열한번째 산행에 나섰다. 열을 넘어 열한번째 도전이다. 열번의 피가 끓으면 '열혈남아'인가. 백두대간 종주팀은 모두 '열혈남아'지. 앞으로 백번째, 천번째 도전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3주일만에 한번씩 간다고 보면 천년 만년 살 모양이지. 고작 100살도 못 넘기면서. "찰나 같은 인생, 찰나처럼 멋지게 살아보자" 말 되나 모르겠다. "찰나 같은 인생, 좋은 파트너 만나 찰떡처럼 잘 살아보자"는 말 되겠지. 이헌태, 니는 유부남인데 앞으로 죽을 때까지 가족들하고 잘 지내. (아쉬움이 남는 듯 뒷통수를 끍으며) "그래야지요. 제가 이제 다른 선택이 있습니까" 이헌태,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있구만. 해준 것도 없는데도 너를 좋아하는 가족들이 너를 버리지 않는 것만해도 운 좋은 줄 알아라. 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잖아요. 어떤 분은 '인간은 가정적 동물'이라고 하네요. 즉, 인간은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에서 자라 가정에서 죽는다는 거죠. 그것도 일리가 있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게 참 재미있는 일이잖아요. 찌지고 볶고 아웅 다웅 다투고 그러면서 정들고 살다가 죽는 과정이지만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삶이 담겨있는 거대담론이라고도 할 수 있죠.
남녀 얘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플라톤의 '대화'편중 '향연'에 기록되어 있는, 2천 4백년전 고대 아테네의 희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가 지은 신화. 인간의 모습은 태양의 자손인 남자, 땅의 자손인 여자, 달의 자손인 남녀가 한몸인 양성체 3종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뛰어난 양성체 인간이 교만하자 제우스는 버릇을 고치기위해 아예 남녀로 갈라버리는 벌을 내려 그 이후 따로 태어나며 성숙한 뒤에도 자기 짝을 만나면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 잘도 만든다.
보너스 하나. 제우스가 인간 세상에 신을 보내 여자가 나은지 남자가 나은지 조사를 시켰다고 하네요. 각각의 몸속에 하루씩 머문 뒤에 나온 보고서는 여자가 낫다는 결론. 여자가 느끼는 쾌감이 남자의 쾌감보다 아홉배나 강하기때문. 맞나 모르겠다. 쾌감이라. 이헌태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마라, 다친다. 감전사고 날라.
이상한 것은 한 통계조사를 보니 남자가 다음 세상에도 다시 남자로 태어나고 싶은 경우는 80%이상이고 여자가 다시 여자로 태어나고 싶은 경우는 절반정도라고 하네요.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남자로 태어나는 편이 훨씬 나은 모양이죠. 나는 무조건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이유는 단하나. 여자들은 꼬리만 치면 대접을 잘 받을 수 있잖아요. 잉. 헛소리 하지 말라고요. 농담입니다, 농담이고요. 솔직히 말하면 남자죠. 여자분들 가운데 다시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는 분들도 의외로 많네요. 그분들은 어떤 분들이에요. 잘 이해가 안 가서. 험하고 거친 세상에 조용히 살겠다는 심보인가.
가족, 가정얘기가 나왔으니 허를 찌르는 황당한 얘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공자 아시죠. 동양의 성인이고 예법을 중시하는 유교의 창시자죠. 충격 사실 공개. 공자, 백어, 자사로 이어지는 삼대가 모두 아내를 내쫓았다고 하네요. 한심한 집안이구만. 열자도 "공자도 집안일을 잘 다스리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유교의 대표 슬로건인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내지는 '가화만사성'을 헌신짝처럼 버렸구만. 집바깥에서 유명하신 분들이 집안에서는 개판인 경우가 요즘에도 그렇게 많다면서요. 외부에서는 부부가 화목한 것처럼 보이는데 집에 가면 서로 싸우는 유명인사도 있다고 하네요.
공자가 입이 까다로워서 간이 맞지 않고 정갈하지 않고 싱싱하지 않으면 음식을 절대로 먹지않는다고 전에 말씀 드렸죠. 지금이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예전에도 저렇게 나오면 어느 마누라가 버티겠어요. 공자 자신도 그야말로 진짜 잘 나가는 사람인데 성질 죽이고 가만 있었겠어요. 공자가 마누라를 내 쫓아버렸는지, 아니면 마누라가 자기 발로 나갔는지는 불확실해도 하여튼 음식과 요리문제때문에 이혼했다고 하네요.
공자처럼 하늘 같은 높은 분을 까니까 억쑤로 속이 시원하네. 히히히. 이헌태, 니 변태아냐.정신파탄자. 나온 김에 공자님을 확실하게 더 욕해야지. 한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책을 지은 어떤 교수님 수준의 공격은 아니고요. 남 비판하는데 이골이 난 기자출신이라서 옛날 버릇이 도져서. 죄송합니다.
잘난 사람 까면 기분이 좋잖아요. 한국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뭔 줄 아세요. 잘 난 놈은 거꾸러져야 하고 못 난 놈은 동정하는 거죠. 특히 잘 나가는 놈들이 거들먹거리면 죽어도 그 꼴을 못 보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은 없죠. 대신 감성과 감정만이 개입되어 있죠. '지독한 평등의식'입니다.
이 '지독한 평등의식' 때문에 한국이 세계를 경악시키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IT강국'을 실현하며 현재까지 내달려 왔죠. 앞으로는 이런 의식 갖고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죠. 잘 난 놈은 더 잘 나가게 하고, 못난 놈들은 끌어 올리고. 전체적인 업그레이드 전략과 실천이 필요하죠. 무식한 얘기로 여러분의 귀한 귀를 피곤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공자님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잘근잘근 씹어보겠습니다. 씹으면 문명인. 무슨 말씀이냐 하면. 400만년전 인류의 두뇌는 400그램이었고 1백만년전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남자가 1400그램, 여자가 400그램(체중의 2%). 많이 씹게 되면서 뇌용량이 커졌다고 되었다고 하네요. 물론 씹지 않으면 뇌는 당연히 퇴화하고요. 씹는 것의 의미가 다르다고요. 어쨌뜬 씹으면 문명인. 꼭꼭 씹어 먹읍시다.
그럼, 초대형메가톤급 핵폭탄을 사용해서 박살을 내겠습니다. 철학적 접근은 제가 능력이 안되고요, 헛점을 드러낸 처신에 대해. 야비하게. 사실 공자는 출생부터 아픔이 있었죠. 양친의 야합의 결과로 태어났다. 서자출신이죠.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꺼렸고 어머니가 죽고 난 뒤 겨우 어느 할머니가 아버지 산소를 가르쳐주었죠. 소위 결손가정출신입니다.
공자는 논어의 '자한' 편에서 "나는 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잡기에 능한 것이다"라고 말했죠. 천한집 출생과 잡기 만능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만 하여튼 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본인이 솔직히 고백했죠. 이처럼 호사가들은 아버지의 정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완벽한 인간을 추구한 것이 아니냐고 추측하고 있더라구요. 만약 장, 단점이 고루 섞인 그렇고 그런 평범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면 과연 그토록 부모에게 효성을 하자며 열불을 냈겠느냐는 것입니다.
공자도 '판단미스'가 있었더라구요. '자우' 라는 제자입문 희망자를 보니 사람의 용모나 재능이나 인성 모두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능력과 덕망이 출중한 것으로 드러났죠. 반대로 '자아'라는 제자는 잘 생기고 언변이 유창한 것을 보고 점수를 후하게 주었지만 결국 게으르고 성격도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죠. 공자는 잘못된 판단을 솔직하게 시인하면서 "언변을 듣고 나면 행실까지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공자도 사람 보는 눈에 문제가 많았구만.
또 '공산불요'라는 사람이 노나라에 반역을 꾀하며 한 지방에 독자정권을 수립하고 공자를 초빙했죠. 공자가 응하려 하자 제자들이 "하필이면 공산씨에게 가십니까"라고 대들었죠. 이에 공자왈, "나를 초빙한 만큼 진지한 생각이 있을 것이다. 나를 등용할 리더가 있다면 그 나라를 옛날 동주처럼 부흥시키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시쳇말로 춥고 배고프면 이렇게 되나요. 물론 자기능력의 실현욕구도 강하게 작용했겠죠. 공자님이니까 좋게 생각해야죠 뭐. 악의 소굴에 들어가 그들을 선하게 만들려고. 5공 정권 때 참여하신 분들이 아직도 멍에처럼 따라붙는데. 공자가 이 시대에 환생했다면 욕 퍼지게 얻어먹죠.
공자는 아사할 지경까지 고생한 적이 있었죠. 제자 '자로'가 돼지고기를 사 가지고 왔는데 출처도 묻지 않고 먹었다고 한다. 이에 묵자는 "평소에 출처와 진퇴에 엄중한 공자도 이런 모순이 있었다"며 유교도를 비난했다고 하네요. 배고파 죽겠는데 출처는 무슨 출처. 살고 봐야지.
하나 더. 초나라 사람이 노나라 사람인 공자에게 자기 마을에 직궁이라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가 이웃의 양을 훔치니까 관가에 고발했다며 자기나라에서는 법대로 시행하고 있다고 자랑을 했다고 하네요. 이에 공자왈, "오당(吾 黨,우리 공동체)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대요. 공자님께서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법적용에 형평을 잃는 태도를 보이고 있구만. 북한에서야 바로 고발하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참 고민은 고민이네.
또 공자님은 직접 저술한 책이 한 권도 없다고 하네요. 주나라 때 만들어진 것을 교재로 제자들을 가르쳤죠. 제가 공자님을 너무 씹었나. 공자님의 경우 좋은 말씀은 90%죠. 좋은 면을 보고 삽시다
공자도 사는 게 고달팠습니다. 지금보면 최고의 성현인데도 당시에는 각국의 왕들의 대접이 시원찮았습니다. 오히려 추연이란 사람의 대접이 월등히 나았다고 하네요.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추연은 각 나라의 왕들의 대접이 융숭했다.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배를 곯고 맹자가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곤란을 당한 것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라고 적혀있죠. 공자의 철학과 논리가 그 시대에 당장 맞지도 않았기때문이죠. 공자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역시 한무제에 의해서죠. 그때 유학이 국가의 기본철학으로 정해졌죠. 지금도 유교는 중국을 포함 동양에서는 국가통치철학으로서는 별로인 것 같아요.
공자를 보면서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아셨죠. 사례 하나 더. 유비가 삼고초려해서 발탁한 탁월한 정치인이며 군사전략가인 제갈량. 그도 끝내 유비의 유언을 지키지 못하고 위나라에 패해 전사했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장군은 승리로 말하는 것", 즉 야박한 말 같지만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주는 것" 제갈량이 아무리 잘 나면 뭐합니까. 전쟁에 져서 죽었는데. 후세는 불세출의 영웅으로 기록하면서도 "임기응변의 재간이 모자라고 일의 마무리가 서툴렀다"는 평을 달고 있죠. 이렇게 따지니 정말로 '완벽한 사람은 없네'. 있다면 신이지.
'완벽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게 뭔 줄 아세요. 겸손과 관용의 마음이죠. 특히 관용의 정신이 중요해요.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기초한 개념이죠. 볼테르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서로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의 첫 법칙이고 인간의 전유물이다"라고 말했죠. 한국인이여, 약간의 흠을 핑계삼아 큰 장점을 가진 사람을 죽이지 맙시다. 해방후 지난 60년간 한국에는 존경할 만한 정치 지도자가 한명도 없는 '무지도자시대'를 맞고 있죠.
과거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절 언젠가, 박통이 발탁한 사람이 깨끗한 인물이 아니라고 옆에서 누가 조언을 했는가 봐요, 그러자 박통은 대뜸 "그렇다면 능력도 있고 깨끗한 사람을 소개해보라"고 화를 냈다고 하네요. 박통시대는 어느 정도 부패했어도 능력만 갖추면 발탁을 한 '개발독재시대'였잖아요. 지금이야 그 같은 사고와 행태는 씨도 안먹히겠지만.
가장 좋은 케이스는 능력도 있고 깨끗한 사람을 발탁하는 것이지만 가장 위험한 케이스는 능력도 없으면서 깨끗하다는 이유만으로 발탁하는 경우죠. 능력도 없고 부패한 놈이야 얼씬도 못하게 해야하는 것은 당연지사. 이헌태, 니가 무슨 대통령이라고. 노대통령께서도 이헌태의 용병철학을 참고하시라고. 우야든지 깨끗하면서도 능력있는 사람을 발탁하라는거죠. 세계적 초유량기업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좋은 인재만이 살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잖아요. 평가에 반영하자 계열사 사장들이 좋은 인력을 찾느라고 난리를 피웠잖아요. 노무현 정부도 그대로 따라해야죠. 체력이 국력이 아니라 무한경쟁시대에는 '인력이 국가경쟁력'이죠. 노정부의 캐치프레이즈가 '개혁과 통합'이죠. 이것도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2.
저녁 술 약속이 되어 있었다. 지인들과 함께 모 호텔에서 중국식 코스요리와 함께 발렌타인 17년, 21년, 30년까지 양주 네 병이 동원되어 퍼 마셨다. 술자리를 옮겨 저녁 10시 반에 야반도주하듯이 토꼈다. 술에 취해서 몸은 비틀비틀 거렸다.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인 길동 청산학원앞에 도착했다. 약속시간인 저녁 11시 반보다 약간 늦었다.
모 후배가 늦는다는 바람에 일행은 도로변에 쭉 앉아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나도 어지간히 술에 취했던 모양이다. 객기로 세번 걷다가 한번 절하는 소위 '삼보 일배' 흉내를 냈다. 재미있다고 낄낄댄다. 자정이 가까워 지나가는 행인들이 없어서 다행이지 무슨 개망신이야. 아마 일행들이 이렇게 나의 대취는 처음 봤을 것이다. 제가요,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은 지 20여년동안 내내 술독에 살았지만 뒷끝이 깔끔한 편이거든요.
'삼보 일배'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은요. 5월 31일 지난 주 토요일, 새만금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 일배' 행사의 피날레가 시청앞광장에서 거행되었거든요. 회사일을 마치고 참석했거든요. 대학교 다닐 때야 집회나 시위는 직업(?)이었지만 사회에 나온 이후에는 한번도 참여하지 않았거든요. 새만금갯벌 살리기운동은 가슴에 와 닿았고 자그마한 벽돌 한장이지만 내가 얹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날 행사장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어요. 새만금갯벌파괴로 죽어가는 억조의 생명들을 떠올리며. 새만금갯벌살리기에 열과 성을 쏟고 계시는 허정균선배도 만났지만.이헌태 술주정하면서 흉내낸 '삼보 일배'를 가지고 잘도 미화시키는 구만.
이번 '삼보 일배'로 인해 세계가 깜짝 놀랐을 것같아요. 비폭력 무저항운동의 스타트를 끊은 간디가 이 광경을 보면 입을 다물지 못했을 걸요. 말이 '삼보 일배'이지, 65일간 309 킬로미터를 어떻게 세번 걷고 한번 절하면서 나아갈 수 있나요. 간디처럼 감옥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거하고 차원이 다르죠. 아마 전세계의 비폭력 무저항운동의 신기원을 이룩하고 또 인류의 환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을 것 같아요. 천주교의 문규현 신부님과 불교의 수경스님, 원불교의 김경일 교무님, 기독교의 이희운목사님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삼보가 불보,법보,승보에서 나왔는가. 사실은 탐(탐욕), 진(성냄), 치(어리석음)의 3독을 끊기 위한 삼보라고 하네요. '삼보 일배'보다는 '육보 일배' 내지 '십보 일배'했으면 두배, 세배나 더 편하셨을텐데. 단말마의 고통을 겪어신 것이지 뭐. '삼보일배'에서 '잔 배'라고 보면 술 한 잔 마시고 안주 세 개를 먹으라는 뜻인가. 앞으로 학교에서 교육용 벌칙으로 '삼보 일배'를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데. 매로 물리적인 폭력을 자제하는 대신 운동장 한바퀴 돌리게 하면서 '삼보 일배'하라고. 학생들에게 참회의 기회도 주고. 이헌태, 아이디어 좋다. '토끼뜀'에서 '삼보 일배'로 대체합시다. 종교를 욕되게 하지 마라, 이헌태. 죄송합니다.
사설 하나. 오랜 역사에 걸쳐 탄압도 많았고 저항도 많았는데 왜 하필 인도에서 비폭력 무저항운동이 나왔느냐는 의문이 들죠. 다 이유가 있습니다, 있고요. 인도의 경우 아이덴티티가 다른 집단이 4천 6백개가 넘는다고 하네요. 하지만 하나로 뒤섞여 조화롭게 잘 살아가는 나라죠. 즉,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철학이 인도의 강한 생명력이죠. 이런 토양 위에서 "좋은 전쟁과 나쁜 평화는 없다"면서 비폭력 무저항을 주장한 간디의 탄생이 가능한 것이죠. 간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삼보 일배'라는 세계적인 전위예술이 한국에서 등장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이런 사고와 행동이 나오려면 그 바탕과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라는 판단때문이죠. 아니먼 그만이고.
한국이 21세기 '환경과 생명의 시대'를 끌고 갈 것이라는 능력과 자부심과 희망을 느꼈다는 거죠. 쬐금만 더 나아가면 民族우월주의로 나아가겠구만. 아닙니다, 아니고요. 21세기를 한국이 리더할 지는 모르겠고요. 저는 다만 '삼보 일배' 행사가 지구의 마지막 분단국의 휴전선을 넘어간 소떼 방북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문명사에 큰 이정표를 던졌다는 것이죠. 의미 부여를 너무 세게 했나.
우주의 음악, '율려'사상을 외치고 계시는 김지하 시인께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우주적, 생태학적 인식과 상상력, 미적 인식의 바탕아래 신화적 환타지 지향성과 고도의 과학기술적 멀티미디어지향성을 구축하고 이를 통합해서 나아가면 세계 문화대혁명, 인류지구혁명, 아시아 르네상스의 출발이 될 수 있다고 했거든요. 와, 거창하다. 이번 산행 지역이 거창인데.
3.
자정을 넘긴 시간인 밤 12시 20분, 일행 16명은 전세버스를 타고 깜깜한 어둠 속을 뚫으며 중부고속도로를 달렸다. 대전을 관통하고 난 뒤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방향으로 진입해야 했지만 운전기사분이 놓치는 바람에 경부고속도로를 더 타고 내려와 김천을 거쳐 국도를 통해 거창으로 향했다. 귀신처럼 늘어선 가로수의 호위를 받으며 칠흑 같은 어둠을 헤쳐나가는 버스, 헤드라이트에 비친 도로변 나무와 아스팔트 길과 묘한 적막감과 고요함. 버스는 인간처럼 가야할 곳이 정해진 운명을 타고 났는지 마냥 질주를 계속했다. 어슴푸레 날이 밝기 시작한 새벽 4시 50분, 거창군 소재지에서 지난 산행때 함께했던 백신종 선배와 그 후배인 김길수씨가 합류를 했다.
거창군 한가운데를 도도히 흐르는 황강이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새벽녘이라 잠이 깨어 홀로 움직이는 것은 강밖에 없었다. 인간도 자고, 산도 자고, 나무도 풀도 자고, 모든 생명이 자고 있는 가운데. 새벽 공기는 깨끗했지만 서늘했다. 반바지 차림의 나로서는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산골인 거창은 일교차가 심하다고 하던데, 실감나는 구만.
버스는 백선배를 태우고 이내 출발했다. 새벽 5시, 김이 샌 게 아니라 날이 훤하게 샜다. 버스는 지난 2월 8,9일 백두대간구간 덕유산 주능선 산행때 하산했던 송계사계곡으로 향하면서 내내 강을 따라갔다. 차창을 통해 바깥을 보니 논에는 모심기가 끝났고 밭에는 작물이 익어가고 있었고 산은 온통 초록 물결이었다. 화려했던 봄꽃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식물들은 작열하는 햇볕을 받으면서 젊음의 축제를 벌이고 있겠지. 가을이 오기 전에 삶을 맘껏 즐기겠지.
버스는 영남일대에서 특히 거창내에서도 아름다운 경치로 소문난 위천지역을 지나고 있었다. 위천중학교 앞을 지나자 유심히 쳐다봤다. 한때 마누라가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지리과목을 가르쳤다. 마누라는 그 뒤 울산으로 전근을 갔다가 지난 1989년 웃기는 아저씨인 나를 만나 결혼을 하고 사표를 냈다. 사표의 한자 사가 '스승 사'니까. 사표를 제출했네. 결혼할 때 사표를 내라고 하니 군말 없이 바로 때려치웠다. 말이 선생님이지 학교에 잡일도 많고 노가다나 마찬가지고 또 의외로 학교가 권위주의체제라고 푸념을 털어놓으면서. 에게게,마누라가 그 이후 나를 만나 인생을 조졌다. 앞으로 잘 할게.
남들이 보기에 선생님하면 '군사부일체'니까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강철 같은 사명감과 의지가 없다면 버티기 참으로 힘든 직업이라고 하네요. 반듯한 직업여성이 최고의 신부감이 된 지금의 시대에서 보면, "내가 니 하나 못 먹여 살리겠나. 당장 치아뿌라" 라고 큰 소리 친 내가 땅을 치며 후회를 하고 있지만. 농담입니다, 농담이고요. 큰 후회는 아니고 쬐끔. 마누라가 가정을 지키며 자식들을 키우는 것도 얼마나 가치가 있고 보람찬 일인데. 위천중학교앞을 지나면서 남다른 감회가 있어서.
얘기 나온 김에 진도 좀 더 나아가자. 마누라는 그때 학교에서 좋은 평판을 받았는지, 아니면 아주 골 때리는 여교사는 아니었는지. 마누라는 학교 때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아서요. 참 궁금하더라구요.
중학교 다닐 때 어떤 여선생님 얘기. 노처녀 히스테리인지는 몰라도 볼펜 심을 빼내 학생들 머리를 콕콕 찌른 선생님이 계셔서. 지금 기준으로 보면 엽기죠. 그분은 지금은 뭐하시나. 자기 자식도 그렇게 벌 주고 계시나. 그래도 그 선생님 보고 싶구만. 또 기억나는 악독한 벌칙하나. 당시 찌그러진 대형주전자로 물을 따라 먹던 시절, 학생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앞에 사람이 컵으로 뒤의 사람의 앞머리를 때리는, 그것도 목탁소리가 청아(?)하게 들릴 때까지. 그때 적을 통해 적을 다스리는 소위 '이이제이' 수법이죠.
학창시절 가장 흔한 벌칙.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길다란 대형 밀대 막대기가 3-4개 부서질 정도로 반전체 학생이 엎드려서 허벅지를 맞아 시커먼 멍이 들어 엉금엉금 기면서 귀가했던 추억. 이런 처벌은 사라졌겠죠. 학부모들이 가만있겠습니까. 다 그리운 시절의 편린이죠. 대학 들어가서도 동문 선배한테 야구방방이로 빠따를 맞았죠. 그분은 대기업의 이사로 계시는 선배님인데 그때 그 정열과 후배사랑이 요즘 어떠하신지요.
제 인생에 있어 영향력 1위는 중학교 1학년때 담임이셨던 여자선생님. 잘 살고 계시는지. 늘 책읽기를 권유하고 공부 잘 한다고 격려한 그 선생님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헌태가 없었다고 봐야죠. 그 분을 고분고분하게 따랐던 게 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죠. 그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까. 그전까지는 책과 공부는 저하고 관계없는 딴나라 얘기였죠.전국의 선생님들, 학생들 때문에 속 터지시죠. 우짜겠습니까. 참고 잘 가르치이소. 팔자거니 운명이거니 하고 사이소. 나중에 복받을거예요.
거창군은 참 희한한 동네구만. 도로를 따라 자그마한 마을마다 입구에 큰 돌에 새긴 충효비가 세워져 있었다. 개삼마을 충효비도 눈에 띄었다. 그 전통이 제대로 잘 계승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대단한 동네구만. 충효, 충효, 충효. 웬지 요즘 세상에 안 맞는 코드구만. 근래 하도 코드, 코드 하길래. 촌에는 노인들 밖에 없는데. 부모에게 효도할 사람이나 나라에 충성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충효비도 시대에 맞게 바꾸어야지 뭐. 뭘로 바꾸나. 젊은 사람들이야 "못 먹고 살겠다. 도시로 토끼자"지 뭐. 토끼는 촌에서 키워야지 도시에서 키우나. 요새 촌에도 토끼가 사라졌더라구요. 다 토꼈나. 이유 아시는 분.
이헌태, 말 장난하냐. 말장난이 어떤 것인가 보여 드릴께요. 인도 벵갈의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당신이 행복하지 않는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야라꼬. 이 정도는 되어야 수준급 말장난이죠. 토끼자의 토끼는 유치찬란한 발상. 죄송합니다.
4.
새벽 5시 30분, 덕유산의 북쪽 자락에 놓여있는 송계사 매표소 (북상면 소정리)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이라서 국립공원 매표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청명한 새소리, 계곡 물소리만이 귓전을 때릴 뿐 조용하기 그지없다. 매표소 입구에서 송계사 입구까지 이어진 한적한 포장도로 주변에는 수백년 이상 나이를 먹은 기품있고 예술조각 같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전나무가 에워싸고 있었다. 고목 소나무, 전나무들은 서울 강남 테헤란로 양옆에서 하늘을 찌르는 빌딩 마냥 위압감은 전혀 주지 않고 오히려 하늘을 덮으며 포근한 안식처를 제공해주는 것 같았다.
거창이라는 말은 크고 창성한다는 뜻인가. 백선배처럼 큰 인물도 많고 나무도 커다랗고, 모든 게 크다고 해서 거창인가. 송계사 계곡은 바위와 돌이 멋지게 어우러져 멋진 계곡이 아니라 나무들이 멋지게 서있어 멋진 계곡이었다. 말장난이고요. 거창(居 昌)은 한문에서 풍기듯이 옛부터 넓고 큰 밝은 들이란 뜻에서 거열(居烈), 거타(居陀), 아림(娥林)등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바뀐 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라 사람들도 거창이라고 했겠네. 신라 사람들의 호흡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뻥입니다, 뻥이고요. 일상생활에서야 거창이란 말은 별로. "그 사람 거창하게 나오네"
새소리 들으며 잠에서 덜 깬 나무들의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면서 10여분가량 올라가자 송계사로 오르는 길과 등산로가 갈리는 곳에 영천 약수터가 있었다. 목을 축이고 원기를 북돋운 뒤 힘찬 출발을 시작했다. 입구에는 이구동성으로 "참으로 잘 생겼다"는 소나무 한 그루가 턱 버티고 있다. 소나무를 보고 잘 생겼다니. 나도 잘 생겼다는 소리를 별로 못 들었는데. 나보다 더 좋겠구만. 나보고 잘 생겼다고 하는 사람 전격 공개. 우리 엄마, 우리 마누라. 간혹 술집에 가면 써빙하는 아가씨. 우리 엄마는 형제가 많기 때문에 맞지만 우리 마누라는 아니지. 내가 공동 남편이 아니니 내 마누라가 맞네. 한국 사람들 '우리' 라는 말 버릇이 강해서.
각설하고 소나무가 거의 사람취급 받고 있구만. 진짜로 인간 취급 받는 소나무가 한국에 있어요. 우리나라에 사람처럼 종합토지세를 내고 있는 소나무가 있다는 거 아세요. 경북 예천에 있는 수령 600살 난 소나무인 석송령(石 松 靈). 사연은 이렇습니다. 1920년대 말 이수목이란 노인은 자식은 없는데다 오랜 이 고목을 너무 사랑해서 자기 소유의 땅 1191평을 상속하고 죽었어요. 또 벼슬높은 소나무는 다 아시죠. 속리산 입구의 정이품 소나무. 조선 세조가 타고 가던 수레가 가지에 걸리자 가지를 스스로 들어 올려 무사히 지나가도록 해서 세조가 기특해서 벼슬을 내렸죠. 이헌태보다 출세했네.
참조사항. 나무든 거북이든 백년 이상을 살면 모두 정령을 갖게 된다는데, 맞는가 모르겠어요. 하기야 백년이 짧은 세월인가. 백년을 지났다고 하면 식물이든 동물이든 신령한 기운이 생기지 않겠어요. 국내에서 가장 고령의 나무는 울릉도 도동항 절벽 위의 향나무라고 하네요. 2000살. 예수님 탄생 때쯤 태어났구만. 와, 대단하다. 그런데 언제 죽으려나.
입구 소나무에 붙은 설명판에는 "늘 푸른 바늘 잎의 큰 키 나무로 우리 민족의 상징. 줄기는 보통 붉으며 오래된 껍질은 흑갈색. 4,5월에 꽃 피고 10월에 솔방울이 익는다"고 적혀있었다. 나의 질문, 소나무가 언제부터 우리 民族의 상징으로 되었냐구요. 누구 마음대로. 그러면 무궁화는 형식적 民族의 상징인가, 느티나무는 우짤긴데. 순위에 있어 완전 뒤로 밀렸나. 소나무가 은근슬쩍 한국의 대표나무가 되었구만. 영악하기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국대표나무를 다시 정하는 조사 한번 합시다.
'다함이 없는 꽃'이란 뜻의 무궁화 (無 窮 花). "무궁 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꽃.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라는 동요 아시죠. 중국 사람들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이라고 해서 '하룻영화꽃'이라고 무시. 같은 현상이라도 다르게 본 고산 윤선도는 '일일화'라고 부르며 호평. "오늘 핀 꽃이 내일까지 빛나지 않는 것은 한 꽃으로 두 해님 보기가 부끄러워서다 / 날마다 새 해님 향해 숙이는 해바라기를 말한다면/ 세상의 옳고 그름을 그 누가 따질 것인가" 무궁화에 대해서 아부해라. 대신 해바라기를 깠구만. 어떤 사람은 해바라기가 늘 해를 향한다고 해서 일편단심 꽂이라고 치켜 세우더라구요. 나 같은 무식한 인간들은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하나.
핵심포인트는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고. 잉. 목이 칼이 들어와도 할 소리는 해야지. 무궁화보다는 소나무가 보기가 좋더라구요. 이헌태, 니 혼자 좋아해. 네, 알겠습니다. 얼렁뚱땅 넘어가면, 무궁화도 나무지만 단순 꽃으로 취급해서 한국의 대표나무는 소나무, 대표꽃은 무궁화로 삼으면 되지 뭐. 모르겠다. '국화 = 무궁화'는 손상이 없잖아유.
그런데 '애국가'에서는 무궁화를 소나무보다 쬐금 더 쳐주더라구요. 1절,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절,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3절,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절,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1절에는 무궁화고 2절에는 소나무니까 일단 나라의 상징으로서는 무궁화가 판정승이네요.
'문화의 상징'은 확실히 소나무. 문인들의 시에는 소나무가 점령군처럼 기세를 올리고 있고 무궁화는 찬밥신세. 소나무의 우리나라 말,'솔'은'으뜸'을 나타내는 옛말 '수리'가 변한 것이라고 하네요. 이빨 중의 이빨, 이헌태. 나무중의 나무, 으뜸 나무. 소나무 만세.
쉬어가는 코너. 퇴계 이황의 시 한편 소개. "돌위에 자란 천년 묵은 불로송 / 검푸른 비늘같이 쭈글쭈글한 껍질 마치 날아 뛰는 용의 기세로다 / 밑이 안 보이는 끝없는 절벽 위에 우뚝 자라난 소나무/ 높은 하늘 쓸어낼 듯 험준한 산봉을 찍어 누른 듯 / 본성이 본래 울긋불긋 사치를 좋아하지 않으니 / 돌이 제멋대로 아양떨 게 내버려 두며 / 뿌리깊이 현무신의 기골을 키웠느니 / 한겨울 눈서리에도 까딱없이 지내로라".
소나무 만세. 개나무, 말나무, 닭나무가 아닙니다. 역시 한국 농촌 대표선수는 소와 소나무, 그리고 소주. 모두 소자 돌림이네. 고교친구인 '소 근'이라는 놈도 한국 농촌의 대표선수로 임명합니다.
산행 초입부터 고로쇠나무, 서어나무, 느릅나무, 광대싸리나무, 팥배나무, 굴참나무, 비목, 다양한 나무들이 각기 자태를 뽐내며 '나무 박람회'를 열고 있었다. 지리산 백무동게곡을 통해 장터목 산장까지 오를 때 보았던 다양한 수목이 기억난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보니 이렇게 다양한 나무들이 혼재되어 서식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도시는 여름에 접어들기 시작했지만 산속은 한창 여름이 진행중이다. 대간산길은 키 큰 나무들의 가지와 잎에 가려 드높이 푸른 지붕을 엮었고 쪽빛 하늘이 틈새로 조각조각 보였다. 송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풍상이 배인 고색창연한 회색 바위들이 여러형태의 포즈로 전시되어 있었다. 한시간쯤 올라가자 거의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었다. 지난 2월, 쌓인 흰눈에 허리까지 푹푹 빠지면서 거의 사투 끝에 내려온 그 길이다. 악몽이 되살아 났다. 급경사 길을 오르면서 그때 어떻게 이 길을 내려왔는지 생각만하면 아찔할 뿐이다.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귀신에 홀린 듯이 내려왔다.
짐작하셨겠지만, 대간 종주산행을 시작한 이래 이번처럼 괴로운 적은 없었다. 5일 저녁 늦게까지 떡이 되도록 술을 퍼 마신데다가 밤새 버스안에서 새우처럼 몸을 구부려 눈을 붙이는 바람에 몸 상태가 엉망진창이었다. 산행시작 직전에 벌써 한번 오바이트 한데가 산행 내내 뱃속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토할 것 같은 최악의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밀어 부쳤다. 악과 선의 투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헌태가 누구인가.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군말 없이 간다". 주변 사람들이 꽥꽥하며 토할 것 같이 괴롭워하면서도 꾸역꾸역 올라 모습이 처량했을 것이지만. 비웃으라, 내 갈 길 내가 간다.
5.
숨이 턱에 닿으면서 급경사를 한발짝 한발짝 내딛으며 계속 힘들게 올랐다. 2시간만인 아침 7시 22분에 지봉 또는 못봉의 안부 (말안장)에 도착했다. 백두대간 마루금에 올라 선 것이다. 산능선에 무슨 못이 있다고 못봉으로 지었나. 나아가야 할 지봉은 0.5킬로미터, 신풍령은 6.5킬로미터, 방금 올라온 남쪽아래 송계사까지는 3.28킬로미터가 적힌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제 겨우 뱃속은 '선'의 승리로 끝나 있었다. 말끔하게 평정되었다. 술에는 등산이 최고야. 만약 등산을 하지 않고 술만 퍼 마신다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 너무 살벌했나. 죽기 직전에 당연 술을 줄였겠지만. 금연에 성공하고 나서는 몸 컨디션이 좋아지니까 술이 술술 잘 들어가더라구요.
몽고속담에 "마시면 죽는다, 마시지 않아도 죽는다". 참 술이란 묘한 존재구만. 나한테 가슴에 와닿는 말이더라구요. 다만 법화경에 나왔듯이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지경은 금물. 저도 나이가 나이니 만큼 술을 세게 마시면 그 다음날은 헤매죠. 앞으로 절주 결심. 술회사가 망할 리는 없겠지. 국민 모두가 똘똘 뭉치면 망하겠지만. 술회사 근로자들은 실업자가 되겠지. 그것을 보고 쓸데없는 걱정.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을 두려워하는 걱정. 결론. 적당히 마셔야겠다. 이틀에 한번씩. 그것도 많다구요. 더 이상 양보 못해. 이틀에 한번 꼴로 마시는 케이스도 미국 시각에서 보면 알코올 중독자래요.
해는 여느 때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도 때묻지 않은 해. 하늘은 더없이 맑고 드넓은 대자연의 공기는 깨끗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바람 한 점 없는 것. 산에 오면 쉬원한 바람이 그립거든요. 땀을 씻어주기 때문에 산행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호쾌한 덕유산의 자락들도 한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안개 속에 희미하게 형체를 드러낸 산들과 바로 눈앞에서 뚜렷한 얼굴을 내비친 산들이 사방으로 겹겹이 겹쳐 있다. 산은 초록색의 물감을 뿌려놓은 신록의 바다였다. 시각의 즐거움에다 청각의 즐거움이 빠질소냐. 새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도심지 크락숀 소리와 완전 다르죠. 백두대간 길에서 듣는 새소리는 대게 합창이 아니라 독창이다. 그래서 더욱 좋다. 산에서 듣는 새소리는 영혼을 깨우는 소리다. 인간의 위대한 창작음악이 자연의 새소리만도 못하다니. 인간들은 까불어봐야 자연보다 한 수 아래야.
자연의 소리 그가운데서 새소리는 베토벤의 교향곡보다 더 감동을 일깨운다. 인간으로서 최고의 음악가가 아무리 곡을 잘 지어도 자연의 소리보다는 못하다. 자연미가 인공미를 누르듯이.
공자도 혹평했는데 최고의 작곡가 베토벤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고 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베트벤의 창작도 결국 크게는 모방 속에서 작게는 그 이전의 음악의 영향 속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베토벤의 이전 음악과 완전 다른 음악이 아니다. 베토벤이 째즈음악을 만들었다면 100% 순수창작으로 인정해주겠지만.
근래 '퓨전'이 유행이다. 섞으면 퓨전이다. '퓨전음식', '퓨전음악', '퓨전예술' 등등. 일부에서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 이나 베토벤의 '9번교향곡'도 퓨젼음악으로 부른다. 전자는 당시 유럽음악의 퓨전에 불과하고 후자는 교향곡에 합창을 퓨전시킨 것에 불과하는 것이다.
더 가혹하게 말해서 모방은 도둑질입니다. 그래서 "문화란 본질적으로 훔치는 행위"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더라구요. 도둑 가운데 최고는 역시 프로메테우스'. 신의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전해주었죠. 이를 계기로 인류의 문명이 천지개벽했죠. 인류의 '문화영웅'이죠. 베토벤을 도둑취급해서 죄송합니다. 뜻이 그렇다는 거지. 베토벤 비판은 너무 무리한 논리인가.
베토벤의 창작도 결국 기존 음악의 영향 안에 있다고 치면 부처님도, 예수님도 난처한 입장에 빠지죠. 불교의 경우도 윤회, 해탈, 수행과 같은 핵심 사상들이 부처님이 직접 깨우치시고 만든 게 아니고 부처님 태어나실 당시나 그 오래 이전부터 인도에 널리 퍼져있는 사상들이죠. 참고로 힌두교에 따르면 인간은 8천 4백만번의 윤회를 한다고 하네요. 대단하다.
기독교도 2천년전 예수님이 탄생하시면서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예루살렘이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의 3대 종교의 성지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이 3종교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유대교를 혁신하면서 비롯되었죠. 유대교와 이슬람은 하느님을 철저한 유일신으로 믿는데 비해 기독교는 성부,성자,성령의 3가지 위상의 삼위일체 교리를 믿고 있다. 창세기에서 모세까지의 구약성서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공통 경전이다.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을 추가한 신약성서를 갖고 있다. 이슬람교는 구약에다가 예수님의 기적은 인정하면서도 예수님을 마지막 예언자 마호메트와 같이 인간으로 취급한다. 예수님이 젊은 시절 인도에까지 가셔서 불경 공부를 했다는 이도 있다.
종교도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새롭게 떨어진 게 아니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사전 정지작업을 하시고 나타나셨으니 이헌태,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마라. 저야 예수님과 부처님에 대한 경외심은 대단하죠. 베토벤도 영웅이죠. 하늘아래 새로운 게 없다는 말 뜻만 아시라구요. 무슨 말이냐 하면, 과거의 도움이든, 타인의 도움이든, 어떤 형태로든 도움을 받고 살고 있으니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는 뜻이죠. 이헌태, 결론이 좋다.
6.
일행은 지봉 안부을 출발해서 북동쪽 방향으로 나아갔다.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대간길 주변에는 키가 나보다 훨씬 큰 철쭉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보기 드문 철쭉 군락지였다. 5월 중순쯤 만개해서 이 산하를 붉게 물들였으리라. 인간들로 하여금 자연을 찬미케 했으리라. 화려했던 시절은 지나가고. 여름철의 무진장의 햇볕을 받으면서 '내공'을 키우며 내년의 찬란한 영광을 위해 목이 빠져라 기다리면서. 보랏빛 꽃이 제 철을 맞아 사방천지로 쭉쭉 뻗는다고 해서 철쭉인가. '화무십일홍'이란 옛말이 철쭉 너를 보고 일컫는구나.
지붕안부를 떠나 10여분 계속 지나자 숲을 벗어난 능선이 나왔다. 향적봉을 위시한 덕유산의 주능선이 저 멀리 웅장하다. 청아한 새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리고 있을 뿐 태초의 신비를 머금은 채 그윽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10여분 더 나아가자 아침 7시 41분, 1302미터 고지의 헬기장이 나왔다. 아득히 산이 눈에 들어온다. 오른편에서부터 향적봉, 중봉, 백암봉이 잇달아 연결된 덕유산의 전경이 활짝 나를 웃으면서 반기고 있다. 산이 왜 너를 반기나. 그런 착각 속에 살아야지요. 제가 산하고, 또 나무하고 대화를 해요. 대화라기보다는 말을 걸죠. 되돌아 오는 대답은 없지만. 넋빠진 미치광이처럼.
운이 너무 좋았다. 철쭉이 다 사라진 시기에 철쭉 하나가 몇 송이의 꽃을 덩그러니 피우고 있었다. 웬 떡이냐. 너무 기뻤다. 마지막 철쭉 꽃을 보게 되다니. 얼마나 행복한가. 하기야 그 철쭉꽃은 질긴 놈이야. 철쭉꽃이 시든 뒤에도 홀로 남아 있다니. 꽃의 생존 한계테스트에 살아남은 꽃이다. 장하면서도 독하다. 대간 길을 가다가 하얀 꽃망울을 터뜨린 산목련도 보았다. 이름을 모르는 야생화들도. 찔레꽃도 여기저기 활짝 피었다. 허정균선배가 사진을 예쁘게 찍었더라구요. 허선배는 둥글레 군락지를 보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약상 하시는 손석규선배가 왔다면 더 좋아했을 것이고. 허선배는 둥글레 군락지가 돈으로 보이세요.
일행은 계속 행진. 말이 좋아 백두대간 길이지 숲속에 난 뱀모양의 오솔길을 헤쳐나가는 것같다. 하늘에는 푸른 숲이 우산처럼 뒤덮여있다. 성하의 여름. 산과 숲은 푸른 색깔로 도배했다. 하늘에 드문 드문 구멍이 뚫려 잿빛이 섞여 있을 뿐이다. 갈색을 띤 흙과 나무의 몸통이 '일당독재'가 아닌 '일색독재'를 막기위해 구색을 맞추고 있다. 눈에 보이는 만상의 90%이상이 푸른 색. 온 산이 푸르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도 푸르게 될까. 물들겠지. '근묵자흑'. 응용해보면 '근록자록', 녹색을 가까이 하니 녹색이 된다. 육체는 초록색으로 되지 않더라도 의식과 정신이 초록색으로 바뀌어도 좋을텐데.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그린 사상'이라고. 말 되나 모르겠다. 넘어가자. '그린 사상'에 빠진 사람은 '그린 소주'만 마시나요. '그린 소주'회사의 상술이 뛰어나구만. 너무 좋은 표현 하나 더 만들어 볼께요. "산을 가까이 하면 산처럼 된다". '근산자산'
아침7시 51분, 이번 산행의 최정상, 1342미터고지의 못봉에 올라섰다. 온몸을 냉욕시키는 시원한 산들바람이 분다. 기분이 상쾌했다. 일망무제, 덕유산의 장쾌한 모습에 탄성을 내지른다. 아름답구나. 크고 작은, 구불구불한 백두대간의 웅장한 능선들이 마주치면서도 켜켜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안개까지 등장하면서. 바다처럼 넓게 퍼진 푸른 산속에 띄엄 띄엄 흰색이 뭍어있다. 유영래대장님께서 층층나무꽃이라고 한다. 그렇습니까. 아는게 있어야죠.
송계계곡을 품었던 산자락의 벼랑에 매들이 떼지어 서식한다고 해서 '수리덤'이라는 이름이 붙어진 바위산이 절경을 이룬다. 금강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 절벽. 금강산에서야 흔하고 흔하겠지만 덕유산에서 홀로 불쑥 솟아 있는 게 장하다. 매는 참새와 달라. 높은 곳에서 앉아 먼 곳까지 쳐다보겠군.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바라본다"
이헌태의 창작개조. "훗날의 죽을 때를 자주 생각하는 인간이 인생을 더욱 깊게 산다" 철마다 유언장을 계속 써놓으시는 분들이 인생을 훨씬 값지게 산다고 하네요. 그런 뜻이죠. 유언장 미리 써놓는다고 일찍 죽는 것은 아니죠. 하나 더. "높은 데서 바라보는 세상이 작을수록 그 반대로 세상을 크게 산다". 비행기 자주 타는 분들은 건물이나 차가 자그마하게 보이니까 전부 도인들 이겠네. 그 깊은 뜻을 아셔야지.정상에서 속세를 보면 인간이 개미새끼처럼 보이잖아요. 다 부질없는 세상, 하산하면 마음 비우고 느긋하고 여유롭고 따뜻하게 살잖아요. 그런 뜻이에요. 유명한 인사들은 명언을 남기면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나는 왜 그렇게 안될까. 설명까지 붙여야 하고. 이헌태, 정신차려, 니가 무슨 명언 운운하느냐. 죄송합니다. 꾸벅.
한국은 예로부터 명실공히 '가무의 民族'이죠. 이에 비해 유럽의 자존심 프랑스인들은 '말의 民族'이라고 하는데. 이빨과 구라가 특기인 이헌태는 프랑스에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태어난 번지수가 잘 못 되었구만. 한국에서는 칭찬이 '착한 사람', '인간성이 좋은 사람'인데 비해 프랑스에서는 '영리한 사람','현명한 사람'이라고 하네요. 이헌태는 한국에서 태어나든 프랑스에서 태어나든 그렇게 칭찬 듣지는 못하겠구만. 나 원 참 참. 객관적으로 보면 프랑스쪽에서 태어나는 게 쬐금 더 나을 뻔 했구만. 그래도 나는 한국이 좋아.
못봉에서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 마을이 또렷이 내려다 보였다. 평온한 부락이다. 흘러가는 내도 보였다. 김길수씨에 따르면 저 개울이 거창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황강으로 들어가 끝내 낙동강에 합친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거창군 내에서 흐르는 물은 단 한방울도 다른 데로 빠지지 않고 황강을 통해 낙동강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신기한가, 안 신기한가. 나도 모르겠다. 주민이 신기하게 여기며 자랑할 정도니까 희한한 일인 모양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12,12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은 뒤 자신의 일생을 미화하기 위해 펴낸 자서전 책 제목이 "황강에서 북악까지"죠.황강은 전통의 고향인 합천을 거쳐 낙동강에 흘러가니.
퇴임후 감옥까지 갔다가 출소후 대구에 한번 들렀다가 지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하네요. 맞나, 안맞나는 모르겠지만. "복에도 없는 대통령을 해서 쪽 다 팔았다" 어떤 분은 그 얘기가 맞다고 할 것이고 어떤 분은 역시 통 큰 사나이라고 하겠지.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극과 극이다.
7.
못봉을 떠나 내리막을 따라가다가 달음재를 통과한 뒤 다시 오르막 길을 힘차게 나아가서 한시간 가량 지나자 아침 8시 55분쯤, 1263미터 대봉이 나왔다. 덕유산의 풍모가 장관이었다. 한마디로 침묵, 광활, 무한, 평온. 종주기에 자주 나오는 '장관'은 무슨 장관인가. 곤욕을 치른 교육부 장관, 건설부 장관인가. 아닙니다. 아니고요. 저는 또. 이 장관이든 저 장관이든 둘다 대단하지 뭐.
산바람이 피곤을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 자리를 잡아서 라면을 끓이고 김밥을 곁들여서 아침 허기를 채웠다. 이수연씨가 집에서 직접 만들어온 김밥은 맛있고 김밥집에서 사온 김밥은 맛이 별로였다. 입이 이제 고급스럽게 되었구만. 공자 닮아가나. 음식을 귀하게 여겨야지.
식사하기전 감사기도문 몇 개를 소개할께요. 베트남 스님인 틱낫한 하루 매순간을 감사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계속 명상하라는 주문. 미소명상, 먹기명상, 시계명상, 화장실명상, 휴식명상, 포용명상, 숨쉬기명상. 똥 눌 때는 똥을 누는데 100% 전념하라는 것.
틱낫한 스님은 식사전 다섯 가지 명상을 하며 우주에 감사하라고. "이 음식은 전 우주와 지구와 하늘과 수많은 깨어있는 노동이 가져다 준 선물이네 / 우리가 이 음식을 받을 자격이 있도록 그런 방식으로 먹게 하소서 / 어리석은 마음을 변화시켜 적당한 양을 먹게 하소서/ 우리 몸에 영양을 주고 질병을 예방해주는 음식만 먹게하소서 / 이해와 사랑의 수행길을 이루기 위해 이 음식을 받게 하소서" 눈이 입보다 크니 작게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30번 이상 씹으라는 것.
불교에서는 또, "이 밥이 어디서 왔는가 /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밥을 받으리라"
명상가 크리슈나무르티의 기도문. "땅과 물 공기와 불이 합쳐져 / 이 음식을 만들었네 / 우리가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수없이 많은 존재들이 수고를 하고 / 생명을 바쳤으니 / 여기 이 음식이 우리에게 보탬이 되듯이 / 우리 역시 큰 생명에 보탬이 되리라"
인디언들이야 "우리를 먹여 살리는 어머니 대지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라며 약초에다가 옥수수에다가 매사에 늘 감사죠. 저도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면서부터 먹을 때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맛있게 잘 먹습니다.
대봉에서 백선배의 자작시 낭독이 있었다. 멋진 대간팀이야. (낭송한 시 두편 아시는 분 있으면 좀 보내주세요) 이수연씨가 이번에는 시집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하네요. 좋은 시집을 지니고 다니면 시집을 잘 가나. 그 시집과 그 시집은 다르다구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다 좋은 거구만.
50분가량 휴식을 취한 뒤 아침 9시 40분쯤 다시 산행에 나섰다.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갈미봉으로 갔다. 반시간가량 나아가 이른 갈미봉에서 직각으로 확 틀어 북동쪽 방향으로 나아가면 대간이 계속 이어진다. 체크식 모양.
갈미봉을 출발해서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오전 10시 56분에 1039미터 고지의 산봉우리에 도착했다. 덕유산 주능선은 시야에서 벗어났다. 숲에서 벗어난 능선에서는 지글지글 뜨거운 햇볕에 몸이 노출되어 무더웠고 갈증도 생겼다. 연씬 땀을 닦느라 손수건이 계속 이마와 목을 분주히 오갔다.
대간 능선을 걷고 또 걸어서 오전 11시 20분에 거창군 고제면에 위치한 신풍령에 도착했다. 임진왜란때 식량으로 사용된 짐승들의 뼈가 쌓여있던 곳이라고도 해서 '빼재'라고 하기도 했다. 빼어날 수를 써서 수령(秀 嶺)으로 부르기도 한다. 표지석에는 '수령'으로 새겨져 있다.경남 거창과 전북 무주를 연결하는 37번국도, 고갯길 관통도로를 내느라 대간 산을 깊게 흉물스럽게 깍아 놓았다. 야생동물의 이동 통로인 대간의 허리를 저렇게 잘라서 동물들이 어떻게 살라고. 터널식으로 도로를 뚫든지, 야생동물의 이동통로를 만들어 주든지.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아닌가. 자연을 우습게 알게 어떻게 되는 지 알지. 빼재휴게실의 구석에 놓여있는 약수물이 시원한데다 맛도 좋아 모두들 세수하고 물통도 가득 채웠다.
신풍령 휴게실에서 30분가량 더 휴식을 취했다. 아지메,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뽕짝노래가 요란스럽게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나무그늘 밑에 베낭을 베개삼아 단잠을 잤다. 시멘트 바닥이어서 경주 석빙고안 냉방에 누운 것 같았다. 일각에서 "산행을 이쯤해서 마치자" 면서 약한 모습을 보이며 바람을 잡았지만 유대장님에게 통할 리 만무하다. 나도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며 신을 신고 일어섰다. 유대장님이 이끄는 선두는 벌써 자리를 털고 저 멀리 가고 있었다. 나머지 일행들도 꾸역꾸역 모두 일어서 유대장님을 따라갔다.
8.
오전 11시 50분 대간길에 진입하기 위해 고개쪽 도로를 향해 약간 거슬러 올라갔다. 도로는 폭염에 푹 늘어져 있었고 차도 불쾌한지 별로 지나가지 않았다. 도로변에서 바로 연결된 벼랑같은 산길을 올랐다. 바로 위에 대간 길이 나왔다. 조금 나아가자 대간길은 정글속 밀림길 같았다. 장난이 아니었다. 잡목과 풀, 넝클식물을 헤치며 전진해야했다. 반바지를 입다보니 다리와 무릎의 생 살이 그슬렸다. 여름철에도 긴바지를 입어야겠구나. 특히 대간 길은 인적이 드문 코스가 많아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정돈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대간길의 숲은 강원도 깊은 산골의 숲과 진배 없었다. 백두대간 길의 묘미리라.
대간길에는 정구지 같은 풀도 있고, 더덕 향내도 물씬 풍겼다. 고급 산나물인 삿갓대를 한아름 캐어 베낭에 매단 이도 있고 쑥이 지혈에 최고라며 비상시를 대비해서 한움큼 뜯어 베낭에 매단 이도 있었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만 하는데 자연은 인간에게 이롭기만 하구나". 부모와 같은 일방적인 사랑이구나.
숲속에서 향긋한 나무, 풀 내음이 코를 찌른다. 한시간 반가량을 헤쳐나오니 낮 12시 43분쯤 숲을 빠져 나왔다. 동북쪽에 삼봉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 산만 넘으면 하산길이라고 하는데. 삼봉산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벼랑 옆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깍아 지른 벼랑 아래쪽에는 바위산이 환상처럼 걸려 있었다. 삼봉산으로 오르고 있는 점처럼 박힌 등산객들의 풍경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라스트 피치를 올리는 사람마냥 마음을 설레게 했다. 덕유산의 아름다움이 북쪽 끝자락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구나. 최고의 인생이 뭔 줄 아세요. '불꽃 같이 살다가 바람처럼 죽는 것'
천애의 낭떠러지 옆을 지나오면서 계곡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면서 오르막 능선길을 계속 탔다. 전망이 탁 트여 비경 그 차체였다. 오후 2시 7분, 1254미터 삼봉산 정상에 도착했다. 넉넉한 덕유의 품안에 든 모든 산들을 훑어 볼 수 있다. 최고의 전망대.
이날 따라 목가적인 시인 신석정의 '산산산'이란 제목의 시가 생각난다. "지구엔 돋아난 산이 아름다웁다 / 산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다웁다 / 산에는 아무 죄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더 아름다웁다/ 언제나 나도 산이 되어보나 하고 기린같이 목을 길게 늘이고 서서 멀리 바라보는 산 산 산"
우람한 산들이 삼겹으로, 오겹으로 겹겹이 쌓여있다. 삼겹살도 잘 안팔리다 보니 아예 오겹살까지 나왔더라구요. 돼지고기는 겹이 많을수록 좋구나. 사람은 정반대. 배에 겹이 많으면 병도 걸리기 쉽고 보기도 꽝이죠. 아무렴, 인간은 짐승하고 다르지.
덕유산의 기세와 기상은 삼봉산에서 멈춘다. 언제 또다시 덕유산에 올 수 있을까. 삼봉산 정상에서 감회에 젖어 덕유산의 주능선을 향해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정상에 '진달래'란 제목의 무명씨의 시가 있다. 이현주씨가 고맙게도 적어왔다. "진달래 밭에서 너만 생각하였다 / 연 초록빛 새순이 돋아나면 온몸에 전율이 인다는 眞眞이 / 이 저 너만 그리워 하기로 사나이 눈감고 맹세를 하고 / 죽어서도 못잊을 저 그리운 대간의 품속으로 우리는 간다 / 끊어 괴로운 인연이라면 구태여 끊어 무엇하랴 / 온 산에 불이 났네 진달래는 왜 이리 지천으로 피어서 지천으로 피어서"
9.
삼봉산 정상부터 하산해서 도착할 소사마을 위 능선까지는 낭떠러지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붙어가는 대간 길이다. 산에 다니면 터득하게 되는 법칙. "위험할수록 경치는 더 탁월". 위험과 경치의 정비례관계. 위험한 만큼 경치는 더 말해 뭐하리오. 돌과 바위 능선을 넘고 넘으면서 감탄, 감탄, 감탄. 신선이 세상으로 내려 가지 않고 머무르고 싶은 곳이었다. "왜 이 좋은 데를 놓아두고 어지럽고 시끄럽고 다투는 세상에 내려가려고 하시겠나". 절벽끝 바위 위에 앉아 도를 닦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도가 트일 것 같았다. 이 코스가 이번 산행의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이번 산행은 덕유산 주능선이 아니라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웬 이런 횡재. 설악산 능선코스 산행의 기쁨과 맛을 즐겼다.
벼랑 옆길을 한참 가다보니 오후 2시 40분쯤. 벼랑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9시간 가량 산행을 계속 하다 보니 나도 좀 지쳤다. 유대장님이 뜬금없이, "백두대간 종주산행이 갈수록 쉬운 게 아니야"라고 말씀하신다. 맞습니다. 맞고요. 남들이 저희 대간팀을 너무 너무 부러워하고 저를 비롯 일행 모두가 용기를 백배, 천배 내어 이렇게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 아닙니까.
세월이 흘러 흘러,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 평생을 통해 언뜻 떠오르는 추억이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권력도 부도 명예도 한줌의 모래에 불과. 자연을 보면서 자연과 느끼면서 자연과 함께 산 인생이 최고가 아닐까. 옛날 도사님들이 자연의 품안에서 도를 닦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있고요.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다음 산행이 너무 기다려지는 거 있죠. 가고 나면 또 언제가나 하고 기다려지고. 너무 너무 행복해요. 삶의 원천이고 기쁨의 원천이죠. "아름다운 자연을 눈앞에 두고 천국을 이야기 하다니". 알겠습니까. 하나 더. 임제선사 왈, "이땅을 걷는 것이 바로 기적이다". 물위를 걷거나 공중을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땅을 걷는게 기적이라는 명언.
산행도 어찌보면 여행의 한 종류죠. 마르셀 푸르투스는 "진정한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죠.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단지 그 책의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라고 말했죠. 둘다 설명안드려도 아시겠죠. 제가 종주기를 통해 골 백번 더 설을 풀었으니까요.
일행은 능선끝자락에 다다라 바로 밑을 돌아 계곡을 따라 하산하느냐 아니면 직각 가까이로 난 위태위태한 벼랑길을 따라 하산하느냐. 두가지 갈림길에 섰다. 오른쪽 아득히 소사마을에 일행을 태울 버스가 보였다. 왼쪽 마을쪽으로는 신라와 백제의 통로 길인 나제통문이 있는 무주군 설천면이 보인다. 지리산에서 출발해서 벌써 덕유산까지 올라왔고 이제는 덕유산을 벗어나려 하고있다.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 앞으로 갈 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가파른 벼랑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스릴이 있을 것 같았다. 고향이 이곳인 백선배가 괜찮다며 선두를 서면서 내려가고 이어 일부가 따라가자 뒤에서 지켜보는 유대장님은 아무래도 위험하게 느꼈는지 다시 위쪽으로 철수를 지시했다. 상당수가 내려갔고 대기중인 일부도 계속 내려가자 유대장님이 고함을 지르며 화를 냈다. 내려간 사람은 다시 올라오기 힘든 처지. 유대장님은 남은 일행을 데리고 계곡 쪽으로 하산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을 강조하는 유대장님의 철학에 박수를 보내면서. 대장님, 스릴감 있는 코스도 가 봐야죠. 백선배가 설마 위험한 곳에 데리고 가겠습니까.
대장님의 후배사랑은 대단하다. 지난번 산행 때 "헌태야, 모자를 써라. 명색히 사장인데 얼굴이 너무 시커멓게 타서는 안된다". 별 거 아닌 것 같은데도 마음이 찡하더라구요. 독일의 괴테가 말했죠. "하늘에는 별이 있어 아름답고 땅에는 꽃이 피어 아름답지만 사람에겐 사랑이 있어 아름답다". 백두대간에 딱 어울리는 말이죠. 하늘과 땅과 별과 꽃과 사람이 등장하니. 화 푸셨나 모르겠네.
겉보기에는 위험천만한 코스 같았지만 실제로 내려가보니 가파른 산길을 내려오는 수준에 그쳤다. 직각 벼랑길을 택해 내려온 12명은 숲을 헤쳐 나가면서 어렵게 어렵게 하산했다. 내려와 보니 대장님 팀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절약과 스릴 차원도 있었지만 백두대간 길은 능선 길이라서 계곡코스보다는 벼랑코스에 고집을 피운 것이다. 결국, 성공했다. 수직에 가까운 벼랑 능선을 보면서 "백두대간 길이 뭐 이래" 라며 의문을 품기도 했다. 자연스럽지 못한 어색한 능선이었다. 뭐든지 100%는 없구만. 천하의 공자, 천하의 제갈공명의 흠을 잡았듯이.
하산 길도 쉽지 않았다. 정신없이 내려오다 보니 오후 3시 41분쯤, 소사마을로 통하는 드넓은 밭에 도착했다. 운동장만한 넓이였다. 대장님은 잔뜩 화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앞으로 대장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죽어. 이헌태 잘 했죠. 솔직 고백. "벼랑길은 너무 위험하다. 만에 하나 사고 나면 대간종주는 큰 일 난다"는 대장님의 철수 지시를 못 들은 채하고 "죽기야 하겠나. 스릴이 최고지" 라며 바로 내려갔거든요, 노여움 푸이소. 대장님, 파이팅.
소사마을은 사방 높은 산의 밑에서부터 중턱까지 가능한 대로 밭을 일구어 배추를 비롯 고냉지 채소를 키우고 있었다. 골처럼 죽죽 뻗어 내려온 산들이 밭으로 흉한 모습이었지만 먹고 살기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산을 내려오니 넓은 공터에는 '독새'라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허정균선배에 따르면 어릴 때 배고팠던 시절 볶아서 먹었다고 한다. 아지메, 아저씨 농부 몇 분들이 뙤약볕 아래서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열심히 일 하이소. 복 많이 받으시고요.
뒤를 돌아보니 덕유산의 마지막 자락이 병풍처럼 우뚝 서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산배경사진이 예술이다. 예술 작품을 남기기 위해 나도 한 포즈. 산이야말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구나, 인간과 비인간, 이승과 저승,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주듯이.
덕유산아 잘 있거라. 덕유산 국립공원은 육십령에서 신풍령까지 아닌가 싶다. 덕유산 국립공원을 알리는 경계표지를 통해서. 덕유산 국립공원 구간은 이번 산행으로 끝이다. 덕이 큰 덕유산아 언제 또 다시 보겠느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순전히 거짓말. 때로는 거짓말로 하면서 살아야지.
10.
넓은 밭두렁 옆을 따라 내려 오다가 대간길은 왼쪽 숲으로 이어졌다. 오후 4시 정각, 소사고개 도로로 들어섰다. 대기중인 버스를 타고 인근에 있는 백선배의 생가로 갔다. 덕유산의 삼봉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광 좋은 곳이었다. 황토 흙으로 지은 '초가삼칸'이었다. 옛날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이제는 도로사정이 좋아서 내왕에 불편이 없겠지만 예전에는 심심산골이란다.
덕유산 정기를 받고 태어났나.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 자랑스런 경남도의원이 되어서 민의를 대변하고 있으니. 한 가족이 오손도손 넓직하게 앉을 만한 크기의 마당에 자리를 깔고 20여명이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맛이 일품인 개고기를 뜯는 것을 시작으로 토종콩으로 만든 촌두부를 먹고 매운 고추가 듬성듬성 들어간 구수한 된장에 윤기나는 밥, 디저트로 수박까지 푸짐하게 성찬을 벌였다. 야외 아름다운 대자연의 설치비까지 감안하면 일인당 20만원대의 '일류 요리코스'다. 하나 하나 그 맛이 옆 사람이 죽어도 모를 수준이다. 별유천지 비인간, 무릉도원, 지상낙원. 경치만 신선의 경지가 아니다. 먹는 것도 신선의 경지가 있다. '미상낙원' '무릉식원'이라고나 할까. 백선배와 친구인 박계동 전의원도 합류해서 얘기 꽃을 피웠다.
불교에서는 개고기를 먹으면 좋지 않다고 하거든요. 저도 개인적으로는 가급적 안 먹으려고 하지만 개고기가 워낙 맛이 좋기 때문에 여러 사람과 함께 먹을 때는 빠질 수도 없고. 위안을 삼는 인도설화 하나 소개하면. 제사장이 신전에 바치기 위해 염소의 목을 치려고 하자 염소는 "이제 난 서른 번만 더 죽으면 인간이 될 수 있다"며 좋아했다고 하네요. 우리 일행이 잡아 먹은 개도 인간에 더 근접할 수 있어서 좋아할 수도. 잘도 갖다 붙인다. 좋게 생각해야죠.
좋은 경치에, 좋은 음식에, 좋은 술에, 좋은 벗에. 모두들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좋은 인생이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술 냄새만 맡아도 역겹다. 술한잔이라도 덜 받으려고 눈치를 살피며 주변을 계속 맴들고 있다. "언제 가나". 저녁 6시가 되어서야 일행들이 자리를 털고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잠에 곯아 떨어져 저녁 9시 15분쯤 중부고속도로 동서울톨게이트에 도착해서 눈이 떴다. 이 얼마나 완벽한 잠인가. 언제가 한번, 대구에서 서울까지 고속버스를 탔는데 대구를 출발할 때 자기 시작해서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에 들어가는 순간 눈이 떴다. '퍼퍽트'. 이럴 경우는 비행기보다 더 낫다. 버스는 강변옆 동서울터미널에 세웠다. 여의도로 택시를 타고가서 세워둔 승용차를 타고 고양시 화정집에 도착했다.
가족들이 반긴다. 특히 자식들이 매우 반긴다. 중2아들과 초등2딸은 언제나 "잘 살지는 못해도 행복하다"고 일기장에도 쓰고 가족관련 학교숙제에도 쓰고, 나에게도 직접 말하고. 민망해서. 얼마전 딸은 숙제에 "아빠는 나를 끔직히 사랑하신다"는 표현을 썼더라구요. 황송해서. 자식들을 여태까지 한번도 안 때리고 사랑스러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잘 해 준 게 별로 없거든요. 자식 때리는 분, 부모 자식으로 태어난 것도 큰 인연인데 왜 때려. 한번도 안 때려도 공부 잘하고 예쁘게 잘 크고 있습니다, 있고요.
이번 백두대간 산행은 대략 10시간이 걸린 평범한 산행이었지만 '무사한 산행', '행복한 산행'이었다. 특히 지리산에 이어 두번째로 덕유산이란 큰 산을 접은 '뜻깊은 산행', 백선배 집 마당에서 연 개고기 파티가 인상적인 '성찬의 산행'이었다.
종료전 한마디. 강남에 교보문고가 오픈했거든요. 화장실에 적혀있는 내용이 있어서. 냄새나도 할 수 없고. "최상의 행복은 1년이 지난 뒤에 연초의 자기보다 더 좋아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톨스토이) "모래 알갱이 하나에서 하나의 세계를 보고 한 포기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블레이크, 영국 시인) "짧은 인생이 시간의 낭비로 더욱 짧아진다"(존슨, 영국 문학가)안녕. (6월 5,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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