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3주만에 백두대간 종주산행에 다시 나섰다. 우수와 경칩은 훌쩍 뛰어 넘었고 21일은 밤낮의 길이가 꼭 같다는 춘분이었다. 해가 전보다 확실히 길어져서 저녁 6시가 넘었는데도 거리가 대낮처럼 훤하게 밝다. 날씨도 포근한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번 산행에는 대학서클후배였던 이현주를 신입회원으로 대동했다. 마누라가 직장을 다니고 대신 자식을 키우고 살림을 사는 소위 '전업주부' 일년차 남편이다. 집에서는 철학과출신답게 동양철학도 틈틈이 공부하고 있는 모양이다. 또 언젠가는 직장을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건데, 세파에 찌던 남자들중에서 현주 같은 부류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더러는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요즘 가장들은 다들 푹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돈버는 기계'를 잠시 그만 작동하고 싶을 게다. 인간들의 속성이야 놀면서도 자기가 꼭 하고싶은 일을 하는게 소원이겠지만 피곤에 절은 현대의 아버지들이야 오죽 하겠나. 마누라와 자식여러분, "너희들이 돈 벌어서 식구들 먹여살려 봐라, 그렇게 쉬운가." 저항군과 반란군이 필요해. 이현주, 니가 총대 매라. 부럽다 부러워. 잘했다 잘했어.
내 고교친구한명도 국내 굴지의 모증권에서 사표를 제출한뒤 전업주부를 몇년하다가 다시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 친구만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4년전인가 그 친구로부터 한통의 팩스가 날라왔다. 내용인즉, 마누라가 서울에서 중학교 선생을 하는데 자신의 앞날보다 더 안정적이고 발전가능성이 있다며 대신 자신이 직장을 포기하고 자식들을 키우기로 결심했으니 이해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친구도 자신의 행동이 쑥스러웠든지 이 사실을 상세하게 내게 알렸으니. 내가 이해할 게 뭐 있느냐마는 그 당시로서는 참으로 '세기사적인 일'로 치부했었다. 신문에서만 보던 희한한 일을 내 주변에서 직접 겪으니 느낌이 이상했었다. 얼마전에 전업주부 5년째 남편이 자녀들을 위해 학교에까지 자주 가고 (우리는 죽어도 못해), 음식솜씨도 거의 프로에 가깝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하기도 했다.
노르웨이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가 쓴 '이갈리아의 딸들'이란 장편소설. 남녀의 위치와 역할이 정반대로 뒤바뀐 가상의 나라 이갈리아.여성천국이다. 기도문은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라 "하느님, 어머니"로 시작된다. 월경축제가 있고 초경때는 생리대들고 길거리에 뛰쳐나가 난리가 난다. 무도회에 초대받은 남성들은 브래지어 대신 '페호'라는 성기가리개를 착용하고 나오고 여성들은 이에 감춰진 것을 보기위해 음흉한 눈빛을 보내고.
"맨움이 지배하는 사회라니 맨움이 계획을 세우고 사회를 통치하다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맨움은 생명과 실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단다. 그들은 자손과 육체적 연결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래서 그들이 죽으면 세상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능력이 없단다.맨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땅의 생명이 죽어없어질 거야" . 나중에 맨움해방주의자들이 페호를 불태우며 맨움의 권리회복투쟁에 나선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며. 여성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속이 다 시원하겠구만.
그런데 나도 이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남자들도 재미있게 살아보자. 가만 있어도 유혹의 손길을 받고. 유혹하는게 쉽나, 유혹당하는게 쉽나. 모르겠다. 아무나 유혹하고 쉽게 유혹당하다가는 인생 망치지, 결국 다 힘드는 거네. 그렇구나. 처신하기 나름이구나.
세상이 참으로 크게 변했다. 산업화,근대화로 인해 국토가 '상전벽해'가 아니라 부부관계가 '상전벽해'다. 아내가 바깥에서 돈벌고 남편이 가정에서 살림을 꾸리고 이런 상황은 인류역사상 처음 나타난 현상이 아니겠는가. 물론 예전에도 남편이 노름이나 주색에 빠져서 여자가 생계를 맡아 고생고생 살아가는 경우는 있어도 아내의 무궁한 (?) 발전을 위해 남편이 내조하듯이 뒷바라지는 하는 경우는 전례가 없었지 않았나 싶다. 에이, 모르겠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니 박장대소할 일들이 너무 많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50년전만해도 삼종지도,칠거지악의 논리가 팽배했으나 지금은 '제왕적 마누라'가 판을 치고 있으니.
신의 조화이며 인류사의 예정된 코스인지, 아니면 신도 예측못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여자가 남자와 대등한 관계로 치닫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부에서는 힘의 역전현상도 마구마구 보이고 있다. 전에도 말했지만 종교서를 다시 써야할 판이다. 이브의 갈비뼈로 아담을 만들었다. 원래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야. 패자는 다 역적이고 패륜아들이지 뭐. 억울하면 이겨야지.
한문 집가(家)자도 지붕밑에 돼지모습이거든요. 돼지는 돼지인데 엄마 젖을 빠는 형상이어서 역시 집의 가장은 어머니라는 것을 암시할 수 있죠. 이것은 주부가 대장이라는 뜻이 아니고요 마누라는 집에서 살림살고 남자들은 바깥활동을 하라는 뜻으로 보이네요. 거리가 (街)자 있죠. 또 아름다울 가(佳) 자 있죠. 남자에 해당될 것 같네요. 남편은 마누라에게 가정을 맡겨놓고 거리를 싸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것(아름다운 여자, 맛있는 음식, 멋진 옷등)만 찾아다녀라는 거죠. 억지부리지 말라고요. 죄송합니다.
미국이란 나라도 별수 없는가 봐요. 미국가정에서도 중요존재를 보면 아이들이 먼저고 다음이 아내, 그리고 개, 마지막으로 남자라고 한다네요. 이게 바로 '선진화', '세계화' 인가. 개만도 못한 남편들. 우째 이렇게 되었노. 원인이 뭐꼬.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가 아니고 "만국의 남편들이여 단결하라".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어떤 조사에서 첫번째는 건강이고 두번째는 아내요, 세번째는 재산이요 네번째는 일이요, 다섯번째는 친구라고 나왔데요. 맨날 이런 조사만 나오나.한심하군. 남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여론조사를 하는 기관은 모두 폐쇄시켜야합니다.
기분전환겸, 보너스하나. 코카콜라회사의 책임자의 명언, " 인생은 다섯가지 공을 가지고 공중놀이를 하는 것과 같다. 일, 가족, 친구, 건강, 마음이 그것이다. 그중 일은 고무공같아서 한번 떨어뜨려도 다시 튀어올라 오지만 나머지 공들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어서 한번 떨어 뜨리면 깨지거나 상처를 입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가 없다" . 하여튼 가족이 중요하다는 얘기밖에 없구만. 남편들을 구속하는 얘기만 하구만.
이번 산행에는 3명의 새로운 식구를 맞았다. 총14명의 우리일행은 길동 청산학원앞에서 예정보다 한시간가량 늦은 저녁 6시 50분에 출발했다. 전세버스차안에서는 늘 그러하듯이 술파티가 벌어졌다. 김밥과 함께 족발과 돼지보쌈을 안주 삼아 맥주와 소주잔이 분주히 오고 갔다. 환경의식이 고양되었는지 , 영업경쟁이 치열해졌는지, 돼지보쌈 포장속에 유료쓰레기 봉투가 하나 들어있었다. 와, 이 완벽한 마무리 서비스정신, 대단하다. 모두들 박수.
한국사람에게 술이 없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을까, 민주화의 기적이 일어났을까. 한국사람은 술없이는 아무 일도 못하는 민족은 아닐까. '가무민족'에 앞서 '애주민족'이 틀림없다. 인간과 술, 한국인과 술은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한다. 이헌태, 술 너무 좋아하면 안되지.
탈무드에 나오는 "악마가 너무 바빠 일일이 인간을 방문할 수 없을 때 대신 술을 보낸다"는 말을 명심해라. 늘 조심하고. 네. 어떤 책에 보니 신도 너무 바빠 낼 틈이 없을 때 어머니를 대신 보냈다고 하더라구요. 어머니와 술은 각각 신과 악마의 대리인이구만. 최영장군의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가 아니고 "어머니보기를 신같이 하고, 술보기를 악마같이 하라"구요. 말된다.
우리 일행이 남행을 할 때마다 꼭 들러는 금산인삼랜드 휴게실. 술을 마시다보면 요기가 발동하기 때문에 거리상으로 늘 이 휴게실에서 멈춘다. 폭탄주를 민속전통문화로 홍보해서 이헌태한테 딱 걸려들었던 이곳 화장실의 문벽은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자리도 아름답습니다'는 홍보문구이외에 물절약캠페인도 펼치고 있었다.
한국이 머지않아 물부족국가로 전락, 극심한 고통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어 그대로 전한다. "양변기 1회 사용시 12리터의 물이 소모되며 금액으로 환산하면 16.8원입니다". 에게게, 얼마 안되는구먼. 아저씨, 4천7백만 국민전체로 생각해야지. 얼마나 큰 돈인데.두고보세요. 나중에 환경문제처럼 물부족으로 호들갑을 떨테니. 우리세대야 그럭저럭 버틴다해도 후손들이 불쌍하지 않아요. 우리들만 잘 먹고 잘 살면된다고요. 대구지하철방화사건때 왜 같이 저승에 안갔는고. 국민여러분, 한방울이라도 물절약에 나서야겠습니다.
갈수록 이혼도 많아지고 성도 문란해지고 있다고 하네요. 이것은 몸의 이상한 물을 낭비해서 잘 생기죠. 어떤 종류의 물이든 무조건 물낭비해서는 안됩니다. 저질, 속물이라고요. 제가 물낭비하지 말자고 했는데 뭐가 잘못되었나요. 왜 시비세요. 사실, 웃자고 해보았습니다. 프랑스의 불세출의 영웅 나폴레옹도 속물로 공격받았어요. 음악가 베토벤은 열렬한 공화주의자로 교향곡3번'영웅'을 만들 정도로 나폴레옹의 지지자였는데 그 인간이 1804년 황제에 즉위하자 "이 속물"이라며 헌사를 취소했다고 하네요. 결국 영웅이 속물이 되었군요. 영웅들이 끝에 속물근성을 보여 허망하게 망가진 케이스가 적잖았거든요.
질문하나,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왜 늘 망신창이가 되는거죠. 또 우리나라에는 나라전체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도 없어요. 제생각에는 국민들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나라의 영웅은 그 나라 사람들이 만들어요. 외국에서 평가받는 사람도 기어코 폄하하는 국민들이잖아요. 대단한 국민이에요. '한국사람들은 병신만드는 특등제조기로 임명합니다". 하기야 남이 잘되면 배아파하고 꼭 짖밟아서 꼬꾸라지도록해야 직성이 풀리는 백성들이잖아요. 그러니 대통령이나 지도자가 잘되는 꼴을 보겠어요. 이제 나쁜 면만 보지 말고 좋은 면도 보는 아량있고 이해심 넓은 국민이 됩시다.
대간산행팀 팀원가운데 김경순이라는 후배가 있죠. 차안에서 얘기꽃을 피우다가 제가 그 이름을 갖고 또 이빨을 세게 풀었죠. 신라 56대, 마지막 경순왕에 대해서 말이죠. 신라가 망한 뒤 경주에서 고려수도 개성으로 집을 옮겨 태조 왕건의 딸과 결혼해서 잘 살았나봐요. 태조가 태자서열에 해당하는 지위에 봉하고 녹 천석과 경주를 식읍으로 주었으며 딸 9명중 2명이나 주었다고 하네요. 신라를 통째로 먹으면서 체면은 세워준거죠. 전처의 자식 입장에서는 눈이 뒤집어졌겠죠. 나라까지 넘겨준 마당에 아들, 딸 놓고 신라왕때보다 더 다정하게 사니. 그것도 44년이나 더 살았다고 하네요. 더 황당한거죠. 하기야 다 망한 나라, 즉 썩은 끈에 매달고 있었던 왕이니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만 제가 봐도 경순왕은 자존심도 없나, 너무 한 것 같았어요. 그렇죠. 사내짜식이. 이름도 경순, 여자 이름같구만.
마의태자가 열받아서 금강산에서 은둔해서 사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죠. 둘째아들 범공도 성질이 나서 스님으로 출가를 해버렸다고 하네요. 저도 산을 좋아하다 보니 마의태자와 같은 길을 선택했을 것같아요. 자연과 벗삼아 사는 게 최고 인생이 아닌가요. 후세는 마의태자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더라구요. 자기 취향대로 사니 자기도 좋고 남들로부터 좋은 평가도 받고 이것이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까요.
저는 늘 이렇게 사물과 상황과 인물을 객관적으로 통찰하려고 합니다. 마의태자를 야박하게 평가하지 말라구요. 만약 비굴하지만 호화롭게 살 것인지 아니면 가난하지만 '안빅낙도'하면서 살 것인지를 놓고 여론조사 합시다. 전자가 99%가 아닐 것입니다. 후자도 많을 걸요. 마의태자를 칭송할 것까지는 없잖아요.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해서 패망한 나라의 왕자가. 뭐 잘났다고.
마의태자의 말은 그럴듯하더라구요. "이기고 지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정신이 혼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신라가 망하다해도 신라의 정신이 살아 있다면 신라는 언제까지나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망하기도 전에 모두 항복하여 신라의 혼까지도 죽어 버리고 만다면 신라의 멸망을 가슴 아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참조,경순왕이 국왕으로서 마지막 교지를 내리면서 한 말. "이미 우리는 강해질 것도 없고 더 약해질 것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러한데 하물며 죄없는 백성들에게 간과 뇌를 땅에 바르도록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경순왕의 말도 일리가 있구만. 아니 다 망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려와 싸운다면 누가 피 보는데. 죄없는 백성들만 피보지. 제 말은 마의태자의 기백은 높이 살만하지만 현실인식도 중요하다는 것. 물론 경순왕은 입이 열개라도 할말 없을 걸.
솔직히 당신이 이런 상황에 놓여있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같나요. 마의태자의 길이냐, 경순왕의 길이냐. 산이 좋아서 마의태자 얘기를 꺼냈지만 나도 자신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자연을 벗삼는 삶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날 걸요. 명나라 진강의 금뢰자에 나오는 글을 인용하면, " 어떤 선비가 가난한 생활에 쪼들린 나머지 밤마다 향을 피우며 하늘에 기도했다. 어느날 갑자가 하늘에서 소원을 묻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대답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아주 작습니다. 이 인생이 의식이나 조금 넉넉해져서 산수사이에서 유유자적하다 죽었으면 합니다' 하늘의 목소리가 크게 웃었다. '이는 하늘나라 신선의 즐거움이니 어찌 쉬 얻겠는가. 그대가 부귀를 구한다면 그것은 가능하리라" 마의태자는 신선과 비슷한 길을 간 셈이다.
유영래선배가 차안에서 좋은 한말씀. "마음이 편해야 득심이 생기지, 논련훈련소나 군대처럼 정신에 물리력을 가하면 득심이 생기지 않는다,. 자유, 방임이후에야 자기 기운이 잡힌다."며 '득심'을 강조한뒤 '부고장'의 예를 들면서 휴머니티를 강조했다. "사람이 죽으면 안타깝지만 태어나서 죽는 것은 당연하고 특히 생명을 다해서 죽으면 놀랠 것이 전혀 없다. 남과 자기를 위해 올바른 행실과 휴머니즘을 실천못한게 놀랄 일이지 죽는게 놀랄 일이 아니다" 아하, 우리가 슬퍼할 일은 죽음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좋은 일을 못한 것이로구나.
출생, 삶, 죽음. 인간의 세가지 대사(大事). 이헌태식 분류법에 따르면 당신은 어떤 인생인가요. 1) 잘 태어나고 잘 살고 잘 죽는다 2)잘 태어나고 잘 살고 잘 못죽는다 3) 잘 태어나고 잘 못살고 잘 죽는다 4) 잘 태어나고 잘 못살고 잘 못죽는다 5) 잘 못태어나고 잘 살고 잘 죽는다 6) 잘 못태어나고 잘 살고 잘 못죽는다 7)잘 못태어나고 잘 못살고 잘 죽는다 8) 잘 못태어나고 잘 못살고 잘 못죽는다.
잘 태어나서 잘 살고 잘 죽는 경우는 극히 드문케이스. 그정도 사람이면 '사바세계'에 온 것이 아니고 '극락세계'에 온 것이지 뭐. 심심해서 인간세상에 그냥 놀러왔구만. 사바세계라는 말 아시죠. 의역하면 인토 내지 인계. 즉 인내를 강요하는 세상살이, 인내하지 않으면 안되는 세계를 뜻합니다. 결국 세상의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참고 지내야 한다는 것이죠. 세상을 한마디로 잘 요약했구먼.
아휴, 인간이면 고통은 필수과목이라는 얘기네. 이 과목은 좀 뺄 수 없나. 중생들이 모두다 데모하면 빼 줄려나. 신들은 인간들이 개긴다해도 눈하나 까딱안한다구요. 착한 일 많이 해서 '사바세계'를 탈출하면 된다구요. 알겠습니다. 나는 어느 경우가 될 것인가. "현재까지 돈은 못 벌었지만 인생이 순항하고 있음을 보고드립니다" 이라크전쟁중이라서 군대식 보고.
유영래 선배, 저는 득심이 바로 군자의 길이라고 보는데. 공자왈, "군자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엇나가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평생의 꿈이었다고 하네요. 자기 멋대로 해도 항상 옳은 길이다. 인간이냐. 신이지. 거의 신의 경지구먼. 나는 죽어도 그렇게도 안될 것같구만.
창밖으로 벌써 어둑해져서 산야에 드문드문 흩어진 집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전기불빛만 보였다. 만약 전기가 없었다면 현대인류사회는 존재할까. '타임'지는 20세기 최대의 발명품으로 자동차를 꼽았다. 인간의 공간적 이동이 가능하면서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는 이유를 든 것으로 기억된다. 혹자는 컴퓨터라고도 하고. 전기든, 컴퓨터든, 자동차든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품인 것은 틀림없다.
곁에 있던 박현수선배가 "내가 생각하기에 인류의 최대발명품은 바퀴"라고 생각한다고 거든다. 고대의 수레바퀴가 인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나. 자동차가 같은 맥락인 것같다. 한가지 귀기울여야할 대목. 전기가 발명되어서 밤에도 낮처럼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낮과 밤을 바꿀 수 없고 컴퓨터를 발명했지만 인간두뇌처럼 될 수 없고 자동차를 발명했지만 공간이동에 한계가 있죠. 인간들은 하느님과 부처님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함.
7년 전인가 중국에 갔을 때 들은 얘기. 개방화시절이전에 사방 천리에 산도 없고 강도 없는 끝없는 평원에서 해뜨고 해지는 것만을 평생 보고 사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네요. 공산주의 국가에서 이동의 자유가 없었으니까. "여행 많이 한 사람이 최고의 인생"으로 대접받는 요즘세상 잣대에서 보면 기가막힌 인생이죠. 우리에 갇힌 소, 돼지나 마찬가지지 뭐. 본인들이야 그르려니 하고 살았겠지만.
이헌태, 최다의 여행객이 최고의 인간이면 이들을 안내하는 여행사 직원은 성직자들이네. 저는 돈많은 부자보다는 벼슬이 높은 고관대작보다는 세상을 방랑하는 여행객이 훨씬 더 부럽더라구요. 전세계를 안방처럼 떠돌아 다닌 바람의 딸, 한비야씨는 저의 우상이죠. 인간으로 태어나 맘껏 그 가치를 누리는 것 같아요. 인간으로 태어나 본전을 수천배 뽑는 것 같습니다.
지금 세계는 방랑자적, 유목적 사고의 세상이죠. 후진국 사람들은 노동력의 보충차원에서 선진국으로 물밀듯 밀려가고 선진국 사람들은 후진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기위해 여행을 떠나고. 이렇게 전세계적인 교류가 확산된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네요. 세계화의 좋은 면이라구요. 나쁜면 같은데, 각국의 나라안에도 그렇지만 국가간에도 빈익빈 부익부.
컴컴한 저녁 11시쯤, 함양의 묏골관광농원에 여장을 풀었다. 황토방갈로 두개에는 81학번이상 노인네들과, 킥킥, 여자두분이 각각 자리를 잡았고 그 이하학번, 머슴들은 그냥 큰 온돌방에 몰쳐 넣었다. 나는 염치불문하고 황토방에 잠입했다. 바깥계곡소리가 비소리처럼 들리면서 이런 저런 속세생각 때문에 잠을 설쳤다. 지난번 남원쪽 황토방보다는 비교가 되지않았지만 역시 자고나니 온몸이 개운했다. 황토방은 늘 좋다.
23일 새벽 5시에 기상했다. 공기가 찬 반면에 너무 맑고 깨끗했다. 휘엉청 밝은 반달이 하늘에 걸려있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자연계곡을 그대로 이용해서 만든 이 농원은 어떻게 허가가 났는지 모르겠으나 휴식처로는 그만이었다. 버스는 새벽 5시 50분 되어서야 길을 나섰다.텅빈 안개낀 시골 도로를 달리다 길을 잘못 들어 포장도로가 끊긴 곳에 막다다랐다. 일차선도로여서 대형버스가 빠꾸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수백미터를 빠르게 빠꾸하는 운전사의 솜씨가 환상적이어서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새벽 6시 50분쯤, 겨우 목표점인 운봉읍 가동마을에 도착했다. 지난 백두대간 산행때 하산했던 동네다.
이 마을은 새벽 안개가 사위에 깔렸다. 개짖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가 아침 적막을 요란스럽게 깨고 있을 뿐 평온한 동네였다. 폐가와 흙담의 찌그러진 집들, 가난한 몰골이 가슴 아팠다. 아침 7시가 되었는데도 인적이 없다. 지난번에도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도대체 보이지않았다.
'경로당'으로 되어버린 '농촌'. 이헌태의 주장, 농촌문제는 노인문제로 취급하는게 어떨지. 한 분야에 두배의 돈이 들어가니 더 효율적이지 않나요. 농담. 이제부터라도 '농촌문제'는 '식량 안보문제' 내지 '현대인의 삶의 휴식처' '도시와 농촌의 공존' 차원의 상위의제로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땅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복받는 세상이 되어야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떻게 된 판인지. 슬프다. 하지만 나의 이기심인가, 장작타는 구수한 냄새와 굴뚝에서 올라오는 하얀 연기가 고향향수를 더욱 부채질했다. 들판의 농부의 모습을 보면서 뒤에 감쳐진 뼈빠지게 일하는 힘든 노동은 아랑곳하지않고 그 고즈녁한 풍경에 흠뻑 젖어 낭만을 즐겨서는 안되죠.
이 시간과 이 공간에 딱 맞는 시 한편을 소개. 영국 빅토리아시대 대표적 시인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극시 '피파가 지난간다'의 첫 부분. 공장에 다니는 소녀 피파가 일년중 단하루의 휴가날 아침 잠에서 깨면서, " 계절은 봄이고 / 하루 중 아침/ 아침 일곱시 / 진주 같은 이슬언덕따라 맺히고/ 종달새는 창공을 난다/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 하느님은 하늘에 / 이 세상 모든 것이 평화롭다"
마을을 지나 산자락에 올라탔다. 3주전에 개구리가 시끄럽게 울던 논은 조용했다. 개구리들이 뭐하나. 잘들 있었나 모르겠다. 대략 15분정도 올라가니 지난번에 하산했던 대간길이 나왔다. 지난번보다 10여미터앞선 쪽에 올라섰다. 심호흡을 한번 가다듬고 "자, 출발이다. 오늘도 무사히"가 아니라 "자, 출발이다. 오늘도 너무 신나게". 바로 머리위 나무위에서 참새만한 크기의 이름 모를 새가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반가워요. 잘 가세요"라며 짹짹짹짹대며 인사를 한다. 짜식, 인사성은 밝아서. 아침 7시 25분 단체사진을 찍고 드디어 출발.
마을에서도 산에서도 봄은 찾아왔다. 봄, 아시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그런데 봄은 오기 무섭게 도망가 버린다고 한다. 봄은 오래달리는 마라톤선수가 아니라 눈깜짝할 사이에 뛰고마는 100미터 단거리선수다. 다시말해 조용하게 스며들듯이 와서 이내 소식도 없이 사라진다. 봄은 자연과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고 가버린다. 사실 봄은 한달전부터 찾아왔고 지금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불가에서 만물의 구성은 지수화풍(地 水 火 風). 인도의 한 수도승은 " 물질이 지수화풍으로 이뤄진 게 아니고 물질의 최소단위는 사랑. 사랑이 없으면 모든 물질이 결합력을 잃는다"고 주장했다지만.
어쨌든 지수화풍이 봄단장을 했다. 땅은 이미 녹아 촉촉한 흙으로 바뀌어 생명을 잉태할 준비를 끝냈다. 개울물도 녹아 졸졸 소리내며 흐르고 있다. 화는 따뜻한 온기를 뜻한다,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을 포근한 봄기운이 완연하다. 바람 풍, 봄바람이 한들한들 불고 있다. 지수화풍은 봄맞이끝.
다음은 생물들의 태도다. 산과 들에는 쑥이며 봄나물과 잡초 풀들이 초록색을 띠면서 단단한 땅을 뚫고 나오고 있었다. 산에는 지천으로 널린 진달래의 잔가지 끝에도 파란 싹을 틔우고 있었다. 생명을 가진 것들이 눈치를 보다가 이제 머리를 마구 내밀고 있다. 산과 들에 생명들이 가득차고 있었다. 눈치없는 놈은 잘못 고개 내밀었다가 동사하지. 생물들은 지수화풍의 후발대가 아닌가 싶다. 생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 다 기지개를 다 켜면 비로소 봄이 완성된다. 결국 봄이라는 개념과 이름은 가장 늦다.
질문하나. 봄이 되니 새소리가 더욱 커졌다. 봄은 소리로 온다는 말이 실감난다. 새들이 봄을 좋아하나 아니면 봄이 되면 먹거리가 많아져 좋아하나 이유가 뭔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도 봄을 좋아하는데 저 아랫것들이야 (KBS개그콘서트 복숭아학당의 세바스찬에 따르면 저 천한 것들이) 말하면 뭐하노.
봄의 생성과정과 봄이라는 개념에 대한 논리적 사유를 펼치다 보니 노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전설적인 책인 5천2백자의 '도덕경'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 名 非常名)'으로 시작되는 첫 문장. 꾸밈없는 삶, 자연 그대로의 삶을 추구했던 그의 철학이 담겨있다.
"도(는 그 이름을)를 도라고 해도 좋겠지만 / (그 이름이) 꼭 도이어야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이름으로 (어떤 것의) 이름을 삼을 수는 있지만 / 꼭 그 이름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천지의 시작이니 따질 수 없고 / (우리가 )이름을 붙이면 만물의 모태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니/ 이름을 붙이기 전(도의 이전)에는 (천지지시의) 묘함을 보아야하지만 (묘함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름을 붙인 후(도의 이후)에야 그것의 요(실상계의 모습)를 파악할 수 있느리라/ 이 두가지는 똑 같은 것인데/ 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 이름뿐이니 (도 이전의 세계와 도 이후의 세계가) 검기는 마찬가지여어서/ 이것도 검고 저것도 검은 것이니(도와 도이전의 무엇은 같은 것이니라)/ 도는 모든 묘함이 나오는 문이니(지금부터 그것을 말하려 하느리)라"
결론, 이름과 말은 중요하지 않다는 깊은 뜻이리라. 봄이란 이름이 중요한게 아니다. 봄이름이 있기전에 봄의 속성은 있는 것이다. 그럼 말이 중요하지 않으니 국어사전도 진시황의 분서갱유처럼 모두 다 불태워버리고. 잉. 이헌태 니만 말장난하지 않으면 만사가 오케이야. 알겠습니다.
봄과 관련 두편의 글을 각각 소개한다. 조선시대 정극인의 '상춘곡'. "---엊그제 겨울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 도리앵화는 석양리에 피어있고/ 녹양방초는 새우중에 푸르도다/ 칼로 말아낸가 붓으로 그려낸가 / 조화신공이 물물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를 못내 겨워 / 소리마다 교태로다/ 물아 일체어니 흥인들 다를소냐/---- 미음 완보하여 시냇가에 혼자 앉아/ 명사 좋은 물에 잔 씻어 부어들고 / 청류를 굽어보니 떠오나니 도화로다/ 무릉이 가깝도다/ 저 뫼이 그것인가 -----엊그제 검은 들이 봄빛도 유여할사/공명도 날 꺼리고 부귀도 날 꺼리니/ 청풍명월 외에 어떤 벗이 있사올고 / 단표누항에 흩은 혜음 아니하네 / 아모타 백년행락이 이만한들 어떠하리"
또 중국의 대스타 '이백'이 봄밤연회에서 읊은 글 '춘야연 도리원서'. "천지라는 것은 만물이 쉬어가는 나그네집이요. 세월이라는 것은 영원을 흘러가는 길손이다. 그 가운데 우리네 덧없는 인생은 짧기가 꿈 같거니 그 동안에 환락을 누린다 한들 겨우 얼마이겠는가. 옛 사람이 백년도 못사는 인생으로 천년의 근심을 안고서 낮은 짧고 밤은 길어 놀아볼 겨를이 없음을 한하다가 밤에 촛불을 켜고 밤을 낮 삼아 놀았다고 하더니 참말로 이제야 그 까닭이 있음을 알겠구나"
고명하신 두 양반 모두다 놀자판이구만. 겨울에 방구석에 쳐박혀있다가 봄이 되어 날씨가 풀리니 자연을 벗삼아 술마시고 놀자는 건데. 예나 지금이나 풍류객들은 존재했구나. 나처럼. 나도 날씨 좋은 봄날을 한잔해야지. 그런 것은 흉내내지 않아도 된다구요. 알겠습니다.
조금만 진도더 나갈께요. 봄이란 말의 어원이 뭔지 모르시죠. "바깥으로 나가 만물이 소생하는 것을 보다" 에서 나왔다고 하네요. 즉' 보다' 에서 봄이란 말이 탄생된 거죠. '뛰놀다'의 옛말이 '봄놀다'였데요. 조상들이 봄놀이를 그렇게 좋아했다네요. 조상들도 봄하면 봄나들이를 먼저 연상했나봐요. 겨울내내 얼마나 갑갑했겠어요. 제가 일전에 불화가 잦은 부부 춘삼월을 조심하라구했죠. 바로 이때문입니다. 국민여러분, 봄이란 말자체가 야외나들이란 뜻이 있다는 것을 아셨죠. 모두 놀러갑시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바람피는 계절. 그바람과 그바람은 다르다고요. 똑같지 뭐.
갑자기 노래방에서 제가 간혹 간드러지게 부르는 노래,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피면 같이 웃고 꽃이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열매의 중세어가 여름이라고 하네요. 여름은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고 또 가을은 가살 (모두 아래하점)에서 나왔는데 베다. 끊다는 뜻이랍니다. 곡식을 베는, 끊는 계절이란 뜻. 겨울은 '겨다'가 어원. '겨집'하면 집에 있는 여자라는 뜻이고 '집과 겨다'의 복합말이라고 하네요. 여자와 겨울은 집에만 살아라는 의미이겠죠. 그런데 왜 요즘 여자들이 집밖으로 싸돌아다니면서 남자들을 괴롭히는데요. 농담. 이제는 남녀평등시대니까, 똑같이 열심히 삽시다. 선의의 경쟁. 앞의 사계절의 어원은 진짜로 어원책에 나오는 내용임을 밝혀둡니다.
너무 길었나. 죄송. 이 일대산은 온통 송림이다. 소나무는 독야청청, 늘 푸른 소나무지. 그래서 한국의 선비들로부터 추앙받고 존경을 받고 있지. 일생에 단 한번만 꽃을 피우고 화끈하게 대밭까지 말라버리는 대나무처럼. 그 기개와 절개와 끝의 미.
지금은 소나무는 한국의 대표나무로 대충 인정되고 있다. 소나무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왕성하게 자랐다고 하네요. 물론 그전의 한국나무의 간판은 지금도 친근한 느티나무죠. 경북 경산 임당동 원삼국고분, 부산 복천동 초기가야고분, 신라 천마총의 관재가 느티나무래요. 고려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 16개도 마찬가지. 나는 소나무도 좋고 느티나무도 좋고, 다 좋더라. 이쪽 저쪽 다 좋다니 입장도 없고 쓸개빠진 놈.
한국의 대표선수들의 역사가 짧구만. 고추가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통해 도입이 되었다고 하네요. 지금의 고추가루 버무린 김치는 당연 그 후의 일이죠. 백성들에게까지 전파된 것을 감안하면 고작 2백년정도 밖에 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작은 고추가 맵다' '한민족은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한민족은 매운 민족이다"는 통설도 오래된 게 아니구만. 완전 속았구만. 나도 용맹한 고구려 기마단이 매운 음식먹고 힘낸줄 알았는데.
하기야 제가 전에 그랬잖아요. 세종대왕은 고추가루 김치도 못먹었다고. 우리보다 불쌍하다고. 고려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보면 "소금절인 김치 겨울내내 반찬되네"라는 내용이 있데요. 김치와 소금넣어 발효시킨 된장은 고대때부터 존재한 것 같다네요. 그렇구나.
소나무 일색이다보니 자연히 백두대간 등산로는 퇴색하고 마른 솔잎이 양탄자처럼 깔린 융단이었다. 진달래가 헤치고 나가야할 정도로 빼곡했다. 오는 4월쯤 되어 진달래가 만개하면 온 산이 붉게 타겠지. 소방서 아저씨들이 산에 불났다고 착각할 정도로. 진달래는 버드나무모양, 잔가지들이 흐드러져 있기도 하고 머리카락처럼 헝크러져 있기도하기도 하고 전위예술가의 작품흉내를 내고 있는 듯하다. 우리 일행은 푹신한 솔밭위를 진달래와 소나무의 엄호를 받으며 하늘저편에 긴장이 떨어진 채 멍하니 쳐다보는 봄해의 포근한 햇살을 받으면서 따뜻한 봄바람을 가르며 행군을 계속했다.
솔잎 융단길. 내가 존경하는 소동파의 귀중한 말씀은 깨끗한 정권을 표방하고 있는 노무현대통령의 측근들이 귀담아 들어야 것같다. "나와 어울리면서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거북의 등에 난 털을 가지고 융단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간길에 들어서자마자 대간길 한복판에 떡 버티고 있는 김해김씨 어떤 분의 묘가 있었다. 대간길 한가운데 놓여있는 묘들이 의외로 많았다. 대간의 정기를 받아서 좋겠지만 그다지 모양은 별로 나아보이지 않았다. 명당이란 과연 뭘까. '명동성당'의 준말일까. 카톨릭의 성지니까 명당은 명당이죠. 자기가 있는 바로 그곳이 천국인 거 아시죠. 당연히 그곳도 명당일 것이다. 내 집과 사무실, 내가 다니는 대간길, 내가 즐겁게 사람을 만나는 모든 곳들이 명당이네.
40여분이 지난 오전 8시 4분쯤 오늘 산행코스가운데 가장 높은 고남산 정상 (해발 8464미터)에 도착했다. 지리산자락을 벗어나 가장 우뚝 솟아있어 사방을 휜히 내다볼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였다. 까마득히 저 멀리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바래봉, 세걸산 능선도 스카이라인처럼 얼굴을 내비쳤다. 언제봐도 근육질의 우람한 체격. 지리산 본류에서 벗어나 주촌리 마을로 잠시 푹 꺼졌다가 다시 수정봉, 입망치로 연결되어 고남산까지 걸어온 꾸불꾸불 능선도 한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에 논과 밭이 아기자기하게 모여있는 운봉읍의 전경도 안개를 머금은 채 아름답게 다가왔다. 백두대간을 계속하면서 밥먹듯이 내 뱉는 말, "와 너무 멋있다" 더 나아가 "와, 너무 좋다". 이헌태, 바보아냐.
고남산 정상 바로 옆에는 통신중계소탑이 높이 설치되어있어 멀리서도 식별이 쉽다. 행군을 계속했다. 대간길이 능선길이다보니 좌, 우측 양방향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어 대간산행은 더욱 신난다. 한국에서는 설악산의 용아능선이 최고일품이다. 대청봉에서 찍은 사진을 보시면 뾰족한 날카로운 능선이 정상에서 사방으로 장쾌하게 뻗어 내려있다. 용이빨처럼 가장 거칠게 가장 멋있게 이어진 능선이 바로 용아능선이다. 사진에서 보면 어떻게 저런 곳에 길이 나있겠냐고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다 길이 있으니 걱정말라. 간혹 둥근 바위로 능선길이 가로막혀있는 곳은 둘러서 가면된다.
대청봉에서 백담사계곡까지 이어진 용아능선은 산행시간만 대략 6시간이 걸린다. 위험한 구간은 세곳이다. 30미터 직벽, 낭떠러지에 붙은 작은 버팀길, 밧줄로만 지나갈 수 있는 개구멍. 여차하면 목숨을 잃는다. 이 구간에서 죽은 사람들도 꽤된단다. 조심하면 괜찮고. 그러나 1미터도 안되는 꼭대기 능선길을 지나갈 때면 그 스릴감, 좌우 천애 낭떠러지를 안고 능선에 서있을 때의 그 상쾌함, 천상의 길을 걷는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한다. 물론 용아능선은 위험천만한 곳이어서 미끄러운 겨울철이나 비오는 날은 늘 통제한다. 나는 두번이나 가보았는데 형언할 수 없는 비경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라면 죽기전에 꼭 가봐야한다고 이 어린 연사, 이헌태는 강력히 주장합니다. 연설대회에 나왔냐.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오전 9시 30분쯤 매요리에 도착했다. 대략 5킬로미터 가량 걸었다. 그럭저럭 먹고는 사는지 마을이 번듯하게 생겼다. 논에는 허리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고 삽으로 못자리를 고르고 있는 농부가 보였다. 봄이라는 결정적인 증거. 주름이 깊이 패였고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있었다. 농부의 얼굴은 결실을 기대하는 기쁨보다는 농사지어봐야 별볼일 없다는 걱정이 섞인 담담한 표정이었다. 아저씨, 소박하게 꿈도 작고 희망도 그다지 없겠지만 그래도 올해 뜻하는 바 모두 다 이루어지길 바래요. 농사를 빨리 시작했으니 많은 성과가 있기를 제가 뒤에서 기도해드릴께요.
저쪽에서는 영농기계로 밭을 갈고 있었다. 이제 사람과 소가 밭을 가는 것은 사라진 풍경. "참 좋은 세상이다." 인간들은 문명과 기계의 발달로 갈수록 편해지는데 갈수록 왜 사는게 피곤하고 힘들까. "참 힘든 세상이다". 두개를 합치니, "참 이상한 세상이다". 물질과 정신은 반비례하구만. 대체적으로 물질이 풍요로우면 정신이 빈곤해지고 물질이 빈곤해지면 정신이 풍부해지나.
쬐금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보자. 환란과 시련이 닥쳐야 바른 생각이 나온다. 나는 대학4학년때 급성간염에 걸려 대학병원에 한달 가량 입원한 적이 있었어요. 의사가 만성간염으로 가면 사회생활이 어렵다면서 얼마나 협박하고 공포감을 주는지, 눈만 뜨면 앞날을 걱정했다. 환자에게 긴장감을 주는 것은 좋지만 과도한 겁주기는 심한 것아닌가. 나는 그때 "만약 내 병만 고치면 사회를 위해 좋은 일만 하겠다" 고 다짐 다짐했지만 병이 완쾌되고나서 오래지 않아서 그때의 결심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싹 잊어버렸다. 사람은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빠져야만 겨우 정신을 차리고 부모나 사회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고난속에서 이타주의, 박애주의, 겸손, 사회봉사등의 고귀한 사랑이 생긴다. 인간본연의 높은 의식이 깃들어진다. 성인 (聖人)수준의 정신과 마음, 의식을 스스로의 노력과 수련으로 달성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이헌태처럼 아파봐야 정신을 차린다. 또 그때의 결심을 이내 곧 팽개쳐버리지만 말이다. 신이시여, 저에게 자꾸 시련을 주십시오, 정신차릴 때까지. 말이 씨가 될라. 앞으로 알아서 착하게 열심히 할 테니 시련보다는 격려, 희망을 주십시오.
지금부터라도 인류는 물질도 풍요롭고 정신도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두 노력합시다. 소설책에서나 있지 인간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구요. 하기야 제가 봐도 쉽지는 않는 것같은데 혹시 수백년후에는 실현될지 압니까, 너무 포기하지 맙시다. 저희 세대에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네요. 흑흑.
삐쩍마른 소나무가 울창해서 향기가 그윽했다. 자연에 대해서 척척박사인 심상준선배가 "솎아주지 않아 죽어가는 소나무가 많다" 면서 "서울도심에 매연을 마신 소나무들도 그랬지만 죽어갈 때는 솔방울을 유달리 많이 만든다"고 걱정이다. 위를 쳐다보니 핏기없는 소나무에 솔방울이 대추처럼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다. 종족보존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구만.
불꽃이라, 가슴을 띠게한다. 일제때 독립군들이 일본군의 총탄을 맞아 장렬히 전사하며 불꽃처럼 살다갔다. 또 윤시내의 히트곡 '열애'의 한 대목도 생각난다. "-- 이 생명 다하도록 / 이 생명 다하도록 / 뜨거운 마음속 / 불꽃을 태우리라 / 태워도 태워도 / 재가 되지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나는 죽는다. 대신 내 씨를 남긴다" . 종족보존을 위한 장렬한 죽음. 이런 고귀한 말로가 많다. 피라미나 붕어가 잡히면 알들을 쏟아내며 죽는 경우, 또 폐병이 악화되면 여자를 밝히는 것이나 행군군인이 지치면 갑자기 사정하는 꼴도 이에 해당되나. 아니면 말고. 다들 씨와 관련되니까. 비슷해서.
그런데도 대구지하철 방화범과 같이 종족과 사회를 위해 죽는 것은 고작하고 혼자 죽기 싫어 다같이 몰살을 꾀했다니, 물고기나 소나무보다 못한 것. 인간의 탈을 쓴 짐승, 즉 인면수심. 불특정다수를 향한 살인자 여러분,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인간답게는 못살더라도 인간으로서는 하지 말아야할 것은 하지 말아야지. 나무나 고기가 좋아서 돌아가고 싶다고요. 그렇게 놀다가는 소나무나 물고기로 환생하는게 아니라 불구덩이지옥으로 떨어질 걸.
마을꺽는 지점에 백두대간휴게소가 나왔고 주름살이 깊게 난 할머니가 반갑게 맞는다. 8남매를 키워 모두 객지에 보내 혼자 장사를 하고 있단다. 일행은 막걸리를시켜 한잔씩 걸쳤다. '운봉 생막걸리'란 상표가 붙은 막걸리 맛이 기가 막혔다. 김치도 너무 잘 익어 술이 절로 넘어갔다. 나는 컵잔으로 세 잔이나 얼큰할 정도로 마셨다. 라면 14개를 두개의 큰 솥에 끓여나오자 모두들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배가 포식하자 배불뚝이처럼 둥그렇게 튀어나왔다. 14명이 푸짐하게 먹고 마셨는데도 3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탁무권선배가 할머니가 김치를 너무 많이 주면서 큰 인정을 내자 감사의 마음으로 1만원을 더 주었는데 할머니는 "제석에서 다 받을 건데"라고 답하며 몇차례나 사양했다. 시골할머니에게는 1만원이면 큰 돈인데도 말이다.
제석천아시죠. 그 할머니 말인즉, "나는 현실에서 쫀쫀하게 몇 만원에 연연해하지 않고 다음 생을 그리면서 크게 논다"는 표정 같았다. 최근 세상에는 돈 때문에 목숨 거는 한심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부류의 인간들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평생 고달픈 인생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저 할머니의 비결이 바로 그것. 지금 세상이 아무리 고달파도 착한 일하면 다음에 좋은 세상에 태어날 것이란 이 무시무시한 사상.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는 부자들이여, 이 할머니의 말이 무섭지 않느냐.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저승까지 먼 안목의 시각을 갖자. 영원히 잘 사는 방법을 택해야지 잠깐 잘 사는 방법을 택하는 어리석음을 짖지 말아야지. 불교뿐만 아니라 기독교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 종교는 현생의 기쁨과 행복보다는 사후의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요.
이승과 저승. 이승만 생각하는--잉, 이승만은 초대대통령아냐. 농담. 이승만 생각하는 이승의 행동과 더 멀리 저승까지도 보는 이승의 행동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아닐까. 이승에서만 희희낙낙하다가 저승에서 쪽박차지말고 이승에서도 희희낙낙, 저승에서도 희희낙낙하는 인생이 되도록 합시다. 이승에서 고생스럽다하더라도 최소한 저승에서 평가받는 행동을 해야. 저승이 없다구요. 있으면 어떡할래. 유비무환이라고. 사실 나도 저승을 별로 안믿지만 없다고 목숨 걸고 우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승이 없다해도 나쁜 짓 안하면 마음편하지 않나요. 저승이 없다고 굳이 나쁜 짓 할 필요야 없잖수.
휴게소에서 일행들이 무지막지하게 김치를 먹는 바람에 금방 김치가 동이 나버렸고 급기야 할머니댁 김치를 바닥낼 정도였다. 어찌서, 촌김치가 맛갈스런 양념을 안 넣었는데도 잘 익어 맛있을까. 도시에서는, 특히 일류호텔에서도 저런 김치를 못만든다고 하네요. 농촌출신일행들은 이구동성으로 물차이 때문인 것같다고 하네요. 도시의 약품처리된 상수도물이 김치 맛을 죽인다나. 쌀도 같은 쌀이지만 도시의 물을 만나면 시들해진다고 하니. 신토불이가 딱 맞는 말이다. 하여튼 늘 하는 말, "촌사람들은 가난해도 저거들끼리 맛있는 거 다 먹는다"고.
물 때문에 김치맛이 그렇게 차이가 난다. 공기때문도 있고 기때문도 있고. 하기야 물도 생명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에모토 마사루가 지은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을 보면 물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대자연의 생명력의 표현이며 정화작용과 만물을 생성하고 기르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조사에 따르면 좋은 음악과 좋은 말을 들려주고 좋은 글을 보여주면 물이 아름다운 육각형결정체로 바뀐다고 하네요. 물론 반대로 하면 퍼지고 엉망이라고 하네요. 믿거나 말거나. 나도 믿기 어렵지만.
이 대목이 더 눈길을 끌더라구요. "인간의 몸은 70퍼센트가 물이다. 인간이 형성되는 최초의 시기인 수정란 때는 99퍼센트가 물이다. 막 태어났을 때는 90퍼센트다. 완전히 성장하면 70퍼센트. 죽을때는 약 50퍼센트가 물이다. 물질적으로 인간은 물이다. 어떤 인종에게도 , 전세계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진실이다". 이 책을 통해 얻는 교훈은 백인이든 흑인이든 황인이든 다 똑같다는거네. 모두다, 물 같은 인간들이구만. 차별이 없네. 인류들이여 형제처럼 서로를 사랑합니다.
휴게소입구에는 무당집표시마냥 백두대간 안내리본이 40여개나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할머니는 근래에는 종주팀이 거의 없다고 했다. 일요일에도 두팀이나 세팀이 있을까 말까한다고. 유행처럼 한번 불고 사라졌나. 하기야 백두대간 종주를 해본 사람이 몇 명되겠나.
휴게소 바로 위에는 매요교회가 방송으로 성가를 내보내며 일요예배를 알리고 있었다. 그렇구나 일요일 오전 10시구나.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할머니 한분이 교회길을 느릿느릿 올라가고 계셨다. 20년전 과거로 필름을 돌린 한 폭의 시골풍경이었다. 맞은편에는 폐교된 초등학교가 방치되어있다. 시골에는 폐교가 왜 그렇게 많은 지, 농촌의 몰락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리라.
미국의 최첨단무기가 이라크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농촌은 이미 오래전부터 초토화되고 있다. 인간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이 강력한 무기는 무엇일까. 산업화, 공업화, 도시화라는 무기도 무섭지만 더 가공할만한 무기가 개발되었다. 미국을 제외한 나라의 농촌을 박멸시키는 바로 그 악독한 '세계화'. 농촌에 늙은이들만 남겨두고 어린이나 청년이나 젊은 부부등 나머지는 다 제거해버리는 소위 인간들을 선별해서 쫓아내는 핵무기보다 더 가공할 생화학무기다.
전쟁용어로 설명도 가능하다. "농민들 꼼짝마, 두손 들어,농촌을 고사시키겠다" (농촌피폐화전략) "농촌에서 살기 힘들면 무조건 항복하고 도시로 떠나라" (탈농전략)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도시하층노동력확보전략) . 완전 제네바 포로협정에 따른 전쟁포로로서의 대우만 해주겠다는 거구만. 도시와 기업의 풍요는 농촌과 농업의 빈곤이라는 희생 위에서 이뤄진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보상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도시민들과 기업인들이 다양한 형태로 농촌을 살리는데 앞장서야 한다.
오전 10시 22분, 우리 일행은 기분이 좋아서인지 너도나도 "할머니 잘 계세요"라며 인사를 건네며 다시 힘차게 전진을 계속했다. 노치마을에서도, 매요리마을에서도 남원 아지메들이 인심이 좋더라구요. 춘향이로부터 연예하는 것이나 배웠나 했더니 인심도 배웠더구만.
밭에서 소똥을 펼쳐놓고 거름과 퇴비를 만드는 부부도 눈에 띄었다. 콘크리트 마을 도로를 지나자 남원시 운봉읍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에 놓여있는 유치삼거리 이정표에 닿았다. 목표지역인 복성이재까지 9.6킬로미터가 남았다. 이 곳에는 심상준선배의 지인이 운영하는 상, 제기공장이 있었다. 원료인 오리나무가 잔뜩 쌓여있었다. 지인이 마련해준 음료수 한박스를 받아 각자 배낭에 한 두개씩 넣은 뒤 다시 숲속으로 행군에 들어갔다.
진달래가 널려있어 정글을 헤치듯이 지나갔다. 자연 진달래잔가지와 악수를 했고 몸도 부딪쳤다. 미끄러운 하산 진흙길에는 진달래 가지를 뭉텅 잡기도 했다. 스님들이나 특히 아메리카인디언족들은 식물도 슬픔과 기쁨을 느끼는, 감정을 가진 생명체로 인정한다. 함부로 꺽거나 훼손하지 말란다.
진달래와의 악수. 악수하면 생각나는 재기와 감동이 넘치는 시가 한편 있다. 장애인 시인 이선관의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 참 좋은 일이다 / 가령 /손녀가 할아버지등을 긁어 준다든지 / 간난애가 어머니의 젖꼭지를 빤다든지/ 할머니가 손자 엉덩이를 툭툭 친다든지/ 지어머가 지아버지의 발을 씻어 준다든지/사랑하는 연인끼리 입맞춤을 한다든지/ 이쪽 사람과 윗쪽사람이 / 악수를 오래도록 한다든지 / 아니 /영원히 언제까지나 한다든지, 어찌됐든 /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 참 참 좋은 일이다"
좀 더 끌고가자, 욕얻어 먹더라도. 입맞춤이란 말이 나오네. 흔히 입맞춤을 키스라고 하잖아요. 키스는 용기가 없는 시대에 어머니가 입으로 물을 머금어 자식의 입으로 넣어준데서 비롯되었다는데. 그 신성한 것이 지금은 거의 반(反)신성, 에로틱한 것으로 바뀌었으니. 미국의 버논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키스를 자주하면 기분이 좋아져서인지 수명이 5년정도 길어진데요. 오랫동안 살고 싶으면 하루종일 하세요. 남이 주위에서 미쳤다고 말해도. 10년전인가 일본의 호텔로비에서 한쌍의 젊은 남녀가 공공연하게 키스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요즘 우리나라 거리에는 이제 흔한 광경이 되었더라구요. 와. 누구집 아들 딸인고.
미국유학중인 친구가 이메일로 보낸 내용이 충격적이에요. 한국여의사에게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영어를 잘 하라고 혀뿌리를 자르는 수술이 유행이라고 했더니 여기도 일부 부유층에서는 혀뿌리를 자른다고 했다나요. 그 이유는 뭔지 아세요. 아이들이 커서 프렌치 키스를 하라고 수술을 한답니다. 충격 충격 충격. 프렌치키스가 뭔지 아시죠. 모르면 주위에 물으보세요. 다만 한 번 해보라고 하면 큰일납니다.
나의 중요한 생각하나. 식물이 과연 감정을 가진 생명체냐. 나는 증명할 수 없다. 오히려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편이 더 쉬울 것이다. 나무가 감정을 가진 생명체라고 확신을 하면 그것은 고민할 필요도 없고. 이 바쁜 시간에 식물이 감정을 가진 생명체가 아니라고 연구하고 연구할 이유는 뭐가 있나요. 그렇다고 누가 똑똑하다고 상을 주나요. 인간에게 도움 안되는 것을 일생을 통해 연구하는 것은 진짜 시간낭비죠.
만약 감정이 있는 생명체라고 생각하면 나무를 대할 때 정성스럽게 대할 것이고 함부로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본인의 심성도 고와지고 자연도 보존될 것이다. 만약 감정을 가진 생명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함부로 파괴할 것이다. 결국 본인의 심성도 거칠어지고 악해질 뿐만 아니라 자연도 파손되어 그 폐해가 인간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이런 논리대로 하면 나무는 감정을 가진 생명체로 생각하면 만사가 낫다.
이헌태의 강력한 주장. "돈드는 게 아니면 어떤 것을 좋게 생각해서 좋은 현상이 벌어지면 그것이 맞는 것처럼 믿는 것 ". 이 논리는 "좋으면 좋다"는 사고죠. 영어로 줄여서 "이프 굳, 이즈 굳 (if good, is good) " . 말이 되나 모르겠네요. 쉽게 얘기해서 "이헌태식 긍정 사고"이라고 부르고 싶다.
태종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건넨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식이나 일제때 친일인사처럼 "좋은 게 좋다는 식" 의 근거도 없고 철학도 없는 생각이라고요. "좋으면 좋다"와 "좋은게 좋다"는 뉘앙스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죠. 하기야 내 말도 "좋은게 좋다"로 해석될 수도 있겠네요. 하여튼 크게 다릅니다. 다르고요. 앞은 제가 만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뜻이 담긴 좋은 말이고 나중은 흔히 대충대충, 눈치껏, 그럭저럭 사는 속물들에게 붙이는 나쁜 말이죠.
저는 '이프굳 이즈굳'의 사고방식으로 살께요. 종교도 마찬가지에요. 나는 종교는 없지만 신이 없다고 굳이 주장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신이 없다고 일생을 바쳐 연구할 필요가 뭐 있나. 역시 연구한다고 해서 누가 똑똑하다고 상을 주나. 불교든 기독교든 뭐든 사이비종교만 아니라면 신은 있다고 믿으면 되는 거지. 나처럼 안 믿더라도 굳이 없다고 꽥꽥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것도 "이프굳. 이즈굳 사고"다. 이헌태머리가 문제가 많다고요. 죄송합니다.
설령 식물이 감정이 있는 생명체라고해서 인간과 같은 반열에 놓기에는 너무 억울하죠. 만물의 영장인데. 너무 양보한 거라고 봅니다. 여기서 잠깐. 유가는 불교나 도가에 비해 인간을 타존재에 비해 우위지위에 놓고 있다네요. 천지를 본받아야하는 존재로 보고 있기때문이래요. 불교나 도가에서는 인간은 자연안에서는 꽃이나 나무 ,새나 짐승을 똑같이 평등하게 대우한다고 하네요. 물아일체라고. 물론 서양에서는 인간은 타존재에 비해 월등히 우월한 존재죠. 서양사고가 맞나, 동양사고가 맞나. 당장 기분은 서양사고가 좋은데. 서양사고 때문에 인간들이 자연을 가볍게 보고 마구 개발하고 파괴한 것은 아닐까. 나의 결론, 인간이 저 아랫것들인 꽃과 나무와 새와 짐승을 잘 데리고 행복하게 살면 되지 뭐. '우월적 동반자 사고방식'이라고나 할까. 이제 정리가 잘 되셨죠.
이름도 없는 '618미터봉"을 거치면서 능선을 따라 계속 앞으로 앞으로 진군한 끝에 오전 11시 24분쯤 겨우 영호남을 잇는 88올림픽 고속도로에 까지 다다랐다. 100미터정도 우회해서 지하로 건너갈수도 있다고 안내했지만 우리 일행은 용감하게 도로를 가로질러 횡단했다. 백두대간이 아깝게도 88올림픽 고속도로로 끊겨있구나. 이곳이 '사치재'. 이정표에는 최종착지 복성이재까지 4.8킬로미터라고 적혀있다. 88올핌픽고속도로가 사치였다는 말인가. 전두환정권시절에 영,호남화합의 명분속에 만들어진 고속도로였지만 실제 이용가치는 별로 였다. 차라리 그 돈으로 서해안고속도로를 일찍 완공했다면 서울까지의 교통편이 크게 나아져 목포의 대불공단도 더욱 활성화되었을 것이고 호남의 낙후가 일찍 탈출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을 해본다. 나라발전을 위해서는 짱구를 잘 돌려야지. 깨끗한 대통령도 좋지만 머리좋은 대통령이 필요한 시기.
쌩쌩 지나가는 차들을 피해 재빨리 고속도로를 건너서 다시 대간코스를 총총히 걷기 시작했다. 능선에 올라타니 헬기장이 나왔고 함양쪽으로 보니 지리산휴게소가 나타난다. 이 대간길은 남원시와 장수군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첫 봉우리에서 부터 1킬로미터 가량 이어진 능선은 좌우가 확 트여 늘 애기하지만 징키즈칸군대처럼 행군했다. 14명이 줄지어 가는 모습이 멋있었다. 징키즈칸이 싫으면 고구려군이나 화랑도처럼. 억새풀이 바람을 맞아 이러저리 군무를 펼치고 있었다. 시원한 골바람이 땀과 피로를 씻어주었다. 콧노래가 절로 날 지경이었다. 오늘 코스가운데서 가장 경치가 좋았고 기분도 상쾌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슬픔이 마음을 옥죈다. 능선의 좌우가 왜 이처럼 탁 트였을까. 지금까지 능선은 지리산주봉을 제외하고는 소나무숲이었다. 그런데 이 능성는 소나무는 사라지고 잡초나 진달래,억새풀만 무성하다. 화재때문인듯하다. 계곡까지 낀 산이 새카맣게 타버렸다. 어림잡아 백만평정도의 어마어마한 규모가 되지 않을까. 너무 안타까웠다. 묘소도 불탔을 것이다. 엄청난 생명이 죽어갔을 것이다. 누가 불을 질렀나. 실수나 부주의로 대형산불이 났겠지만 그 피해와 상처는 너무 컸다.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불탄 채 처참한 시신처럼 널브러져있다. 계곡은 흔적조차도 없고 산이 흙이 무너져 내린 곳도 눈에 띄었다. 불난 지 대략 5년쯤 되지 않을까 짐작하는데 너무 참혹한 광경이었다. 사라져간 생명들이여, 인간들을 용서하소서.
불탄 지역을 벗어난 첫 산봉우리에 자리잡은 묘앞 넓은 터에서 일행은 등산화도 벗어 모처럼 휴식을 취했다. 막걸리를 한잔씩 돌렸는데 그 맛에 "캬, 맛좋다"는 소리가 절로 났다. 지리산 전경이 대형병풍처럼 일거에 다 들어왔다. 지리산을 좋아한 사람의 무덤인가. 심상준선배가 고수레를 하면서 술을 약간 뿌린다. 고수레 아시죠.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나 무당이 굿을 할 때, 귀신에게 먼저 바친다고 하여 음식을 조금 떼어 던지면서 하는 소리, 또는 그렇게 하는 짓. 심선배는 어딜가나 반드시 고수레를 한다. 심상준이 아니라 '심고수레'다. '허고수레'도 있다. 이번에 불참한 허정균선배라고. 모두들 잘 살지도 못하면서 인심을 좋아서. 땅신인지 하늘신인지 아니면 죽은영혼한테인지는 몰라도 신고 잘하는 사람이라구요. 미리 부조하고 있는 것인가.
'697미터봉'과 새막이재, '781미터봉'을 연이어 거치면서 남원군 아량면과 장수군 번암면을 잇는 복성이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마지막 봉우리에 다다랐다. 발아래에는 아막산성과 돌탑들이 흩어져있다. 여기서는 지리산의 반야봉과 바래봉, 수정봉등 지나온 대간길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저 먼 길을 걸어왔구나 " 하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여기서도 지리산이 다 보이구나"하면서 지리산의 장대함에 또 기가 질렸다.
오후 2시 20분 아막산성에 도착했다. 성곽은 무너져내리고 돌탑들이 너, 다섯개 쌓여있다. 돌탑이란 돌탑이 넘어지지않게 돌을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얹으면서 나라든 개인이든 희망과 소원을 빈다. 즉, 돌탑을 만든다는 것은 정성을 모으는 일이다. 지금 이라크전쟁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죄없이 사라져가겠지. 이 지구상에 평화만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인류는 전대미문의 일들을 많이 겪고 있다. 물질과학기술문명의 발달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정신의식의 발달에 기인한 것도 있다. 이전보다 발달한 것도 있고 이전보다 악화된 것도 있을 것이리라. 이라크전쟁에서 보듯이 상당수 지구인들의 생각이 개인과 민족과 나라의 평안에서 더 나아가 세계의 인류평화로 확대된 듯한 모습을 보이고있다. 이것은 분명 인류의 발전된 모습이다. 인류가 급기야 지구촌을 형성하고 TV생중계를 통해 이라크전쟁을 안방에서 옆집 일처럼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은 아무래도 과학기술문명의 덕분일 것이다. 또 민주주의와 평등, 인권을 인류의 보편가치로 만들어낸 '인류지성'의 승리도 커나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하느님과 부처님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 같은 큰 족적을 남기면서도 반대로 환경을 파괴해서 인류역사상 가장 위험한 재앙을 초래하기도 했다. 인류는 한면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다만 인류가 공동번영과 행복의 종착점에 이르기에는 아직 험하고 먼길이 남아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쟁얘기한번하고 넘어가자. 20세기는 '전쟁의 역사'였죠. 전세계적인 대규모 전쟁이 2차례나 있었던 탓인지 희생자가 의외로 컸던 것 같다. 어떤 학자는 20세기동안 직접 전투로 3천6백만명이 사망했고 그와 관련되어 학살된 수는 1억1천9백만명이나 된다고 주장. 또 어떤 사람은 1억8천7백만명으로 훨씬 증가. 어떻게 그렇게 잘 총계를 냈는지. 억울하게 죽어간 그 영혼들이 지금은 다 어디갔나.
'피의 문화사'라는 책을 보면 유사이래 전쟁으로 지상에 흘린 피가 125만리터나 되고 그래서 땅이 검붉게되었다고 주장하네요. 어떻게 조사했는지. 그렇게 할 일이 없었는지. 인류는 '전쟁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다만 주목할 점은 2차대전 이후 전세계를 화염에 휩싸이게하는 강대국간의 대규모전쟁은 없었다고 한다. 종교간, 민족간 자잔한 전쟁은 있었지만. 왜냐하면 미.소가 서로를 파멸시키는 핵으로 대결하고 있었기때문이란다. 어떤 책을 보니 이차대전후 40여년간 150차례의 전쟁이 나서 2천만명이나 죽긴죽었데요.
하여튼 정치학자들에 따르면 인류역사상 요즘처럼 조용한 때는 별로 없었다고 한다. 당분간은 큰 전쟁이 없을 것으로 기대된다. 솔직히 과거와 달라서 전쟁이 일어나면 목숨을 바쳐 싸울 젊은이들이 별로 없다. 애국심이 넘쳐 흐르든지 아니면 종교맹신자라면 몰라도. 쉽게 얘기해서 "이 좋은 세상 내가 왜 종쳐야하나. 억울해" 지금 이라크전에 투입된 영,미의 젊은 군인들 마음이 착잡할텐데.
사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이라크전쟁도 사실은 규모 (첨단무기규모나 무기비용규모가 아닌 참가군인규모)나 사상자로 보면 큰 전쟁은 아닌 편이다. 다만 세계적 관심은 인류역사상 최고수준이 될 듯하다. 종군기자들이 2천명이나 파견되어 생중계를 하고 있기 때문. '웃기는 지구촌'이죠. 남은 죽어가고 있는데 TV화면 쳐다보면 재미나는가, 오락실 게임처럼.
놀라운 변화 한가지. 이전의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쟁때만해도 수십만명의 사람이 죽어도 그런가보지하며 무감각했지만 요즘은 몇백명만 죽어도 난리가 난다. 그만큼 생명을 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인류탄생이후 인간존중사상이 이처럼 하늘을 찌른 적이 없었는 것 같네요. 이건 잘하고 있는 것. 하느님께서 큰상을 주실 일. "인간들이 이제 한사람 한사람의 생명을 이렇게 존중하다니. 기특하구나"는 칭찬의 말씀이 나올 법하다.
어쨌든 이차세계대전이후 큰 전쟁이 사라지면서 남자의 가치가 똥값으로 하락한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전쟁은 광기며 폭력이다. 남녀를 주식시장에 상장한다면 전쟁이 터지면 남자는 상한가를 치지않을까. 이라크전쟁은 예외지만 전쟁이 터지지않으면서 여자들의 파워가 갈수록 상승곡선이다. 어디까지 갈 지 제한도 없이. 여자들은 현재, 가정을 장악한 상태로 조만간 이대로 방치하면 사회와 국가도 장악할 지도 모른다. 이헌태가 전쟁광이라고요 농담이고요. 하여튼 전쟁은 하지 맙시다. 무슨 이유든. 왜냐하면 전쟁은 원혼을 만들고 원혼은 지구와 인류를 괴롭히니까요. 절대로 전쟁은 하지 맙시다. 저한몸은 물론 남자들이 설령 여자들의 노예가 된다하더라도.눈물을 머금고.
미국이 전세계의 압도적 반전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라크공격을 개시했다. 아랍국들의 석유가격농간을 막기위해서든 , 거대한 항공모함으로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기위해서든 어떻든 일단 석유자원확보때문으로 보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한마디로 끝내겠다. "지금 미국이 위대함을 전세계만방에 과시하고 있지만 고대 로마제국과 중세 징키즈칸제국, 근세 대영제국의 위대한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참으로 허망한 짓이다"
이번 미국과 이라크전쟁은 세계사적으로 큰 기로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이헌태, 의미부여가 너무 센 거아냐. 2차대전후 전개되던 미,소강대국의 대결이 20여년전에 무너진 후 10여년전에는 떠오르는 태양이었던 일본까지 무너지면서 미국의 일방적 우위속에 유럽, 중국의 3각축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잖아요. 미국의 더 강력한 세계주도권 회복으로 가느냐 마느냐는 갈림길에 서있는 셈이죠. 세상일 참 모르죠. 20년전만 해도 일본이 기세등등해서 미국사람들이 겁에 질렸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떻게 저렇게 비참하게 몰락을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일. 당시 똑똑하다고 한 미래예측학자들이 일본이 나중에 어떻게 된다구 그랬죠. 한심하기는. 항상 예측할 때 신중해야죠. 50년이 긴 세월같지만 금방 찾아옵니다.
50년 후에는 세상의 파워 밸란스가 어떻게 될까 맞춰보세요. 1)미국과 유럽, 중국의 3파전 2)여전히 미국주도의 세계 3)미국과 중국의 대결 4)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등 다극화 5) 미국과 유럽의 대결 6)기타. 인심 써보자 7) 미국과 한국. 7번은 빼라고요. 위의 객관식 문제들이 엉터리에 가까울 거에요. 제가 뭐 압니까. 나오는대로 적은 거지 뭐. 전문가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는 "미래는 신의 영역이다"라고 말했어요. 정답이네요. 그리고 '세계화'란 말을 놓고 가만히 따지고 보니 '미국화'였던 것 같아요.
오후 3시 20분에 드디어 복성이재에 도착했다. 한시간 가량 더 나아가기로 했으나 다수가 피로가 누적되면서 여기서 중단하기를 바랬고 유영래대장이 단안을 내려 멈췄다. 여기서 남원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아영면 성리의 상성마을이 나온다. 바로 흥부가 제비다리를 고쳐주어 부자가 된 마을이다. 남원은 흥보전과 춘향전의 터전이다.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은 판소리 동편제의 고향. 동편제 시조인 송흥록과 박초월 국창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문화의 도시, 남원이여 영원하여라, 남원에도 이솝 같은 왕구라가 살았나. "남원을 한국 제1의 전통문화도시로 임명합니다"
부끄러운 일화. 여기서부터 일행은 2시간 반동안 헤맸다. 전세버스가 번암면을 통해 복성이재에 올라와야하는데 포장도로 공사탓에 통제를 받았다. 우여곡절끝에 산꼭대기에서 패잔병처럼 터벅터벅발걸음 내딛으면서 산아래 번암면소재지까지 하산해서 겨우 버스를 탔다. 산정상에서 바라다본 번암면 댐은 장관이었다.
오후 6시, 버스를 타고 저녁식사가 마련된 장수군 장계면으로 달렸다. 박현수선배의 친구가 운영하는 삼겹살식당에 갔는데 고기맛이 너무 좋았다. 다들 막걸리와 소주,맥주를 곁들여 얼큰하게 취하게 많이 마셨다. 저녁 7시에 바로 인근의 장수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대전- 충무간 고속도로를 통해 저녁 9시 30분쯤 강남고속버스터미날에 도착했다. 버스 뒷칸에 일자로 누어 잤다. 차가 출발할 때 눈을 붙였는데 눈을 떠보니 수원이었다. 이것은 90%성공이다. 예전에 서울에서 대구까지 고속버스를 탄 적이 있었는데 차 타서 눈을 감고 잠 깨니 고속버스터미날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것은 1000%성공이다. 집에 오니 저녁 11시를 넘겼다. 샤워하고 다시 푹 잤다.
이날 산행거리는 방황한 번암면까지를 포함하면 총 18킬로미터에 대략 10시간이 걸렸다. 산행총평. 지리산이나 덕유산처럼 웅장하고 장쾌한 코스는 없었으나 넉넉한 시골인심이 묻어나고 울창한 소나무 숲의 좋은 향기를 맘껏 맡았으며 봄을 확실히 영접한 산행이었다. 또 화재로 폐허된 산을 통해 슬픔을 느끼며 환경보존의 가치를 다시금 깨달았다. 수없이 부딪힌 진달래와 악수하면서 생명의 가치를 재차 느꼈던 산행이었다. 다음 산행이 또 기다려진다.
이헌태 총평이 괜찮다. 의미부여를 하지않으면 누가 니보고 욕하냐. 사실 이전의 산행보다 못했잖아. 솔직히 그런 면도 있었습니다. 백두대간의 다른 코스보다는 조금 못한게 사실이지만 시중의 산들보다는 백배 낫다는 것도 알아야지요. 매일 좋은 데만 갈 수 있나요. 이런 코스를 통해 나름의 가치도 찾고, 또 그래야 다른 멋진 코스들을 보면 더 탄성을 내지르는 것 아닌가. 이헌태, 솔직하구만.
대미를 장식하자. 베트남출신 틱낫한 스님이 얼마전 한국을 방문했는데 인기가 대단하더라구요.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스님도 많은데도 더 추앙을 받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지만 어쨌든 그 스님의 귀한 말씀은 가슴속 깊이 새겨야할 것같네요.
아시다시피 그 스님은 '걷기와 호흡' 명상으로 유명한 분이죠. 베스트셀러 책도 많이 펴냈어요. "기적은 물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푸른 대지위를 걷는 것이다. 지금이 순간의 평화, 아름다움과 만나는 것이다. 평화는 이 세상과 자연속에 그리고 우주안에 있다. 그 평화와 만나는 순간 , 우리는 치유되고 탈바꿈된다. 그대는 자신의 주인이 되고 진정으로 살아있게 된다." 너무나 향기로운 말씀. 모두들 기립박수.
틱낫한 스님이 방한하면서 한 일성(一聲), "한반도의 형제들에게 평화의 씨앗을 심으러 왔습니다". 조계종에 건넨 액자선물에는 "정토 (淨土)가 바로 이곳이니, 여기가 아니면 어디에도 없다"는 글귀가 베트남어로 적혀있다. 많은 저서에서 "내일 내가 떠날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지금 이순간에도 나는 여기에 도착하고 있으니까"고 말했다. 비슷한 말이 인도의 격언에도 있어요. " 당신이 어느 곳으로 가든 당신은 그곳에 있을 것이다" 모두다 시간적으로 현재, 공간적으로 이곳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치는 말이 아닐까요. 살아 숨쉬는 자체만으로도 천국이라는 뜻이겠죠. 게다가 열심히 살고 즐겁게 살고 만족하고 살고 평안하게 살면 더욱 좋겠죠.
전에도 제가 그랬죠, 죽으면 짠하고 천국이 나타나는게 아니고 지금 행복하면 천국이고 지금 괴로우면 지옥이라구요.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잉. 마음을 먹다니, 그것은 어느 식당에서 파나요.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음식같은데. 마음을 사고 팔다니, 신을 우롱하는 처사구만.농담하지 말고. 결론이 중요. 지금 당장 행복하게 착하게 사세요. 동양만 아니고 서양의 헤르만 헷세도 "최고의 가치는 영원히 현존하는 삶이다. 나는 살고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죠.
전선을 흐트리겠습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만 비슷한 테마로 고뇌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구요. 실존주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는 소설 '구토'에서 "마로니에 나무는 그 자리에서 말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려 애쓰지도 않았고 거기 그렇게 서 있어야하는 이유를 찾지도 않았다. 그렇게 실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 즉 존재하는 모든 것에 굳이 존재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그 자리에 묵묵히 존재할 뿐이다."
또 알베를 카뮈도 '이방인'을 통해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이 지상에 발을 딛고 있는 실존뿐이다. 비록 부조리이긴 하지만 그것은 유일하며 또 전부이고 각자의 특권이기 때문에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일갈했다. 두사람 모두 인간존재의 부조리, 인간실존에 대한 고뇌는 좋은데 뭔가 칙칙하고 어두운 냄새가 나네. 고민도 적당히 해야합니다. 웃고 삽시다. 즐거운 세상. 안녕. (3월 22,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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