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 (9) - 덕유산 종주능선

올들어 첫 백두대간종주 산행이다. 작년 12월 20일 지리산등반 이후 해를 넘기고 한달 보름만에 다시 종주가 재개되었다. 그새가 참으로 길고 긴 나날로 느껴졌다. 그만큼 종주는 나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반증이다. 기다림이 길수록 기쁨도 큰 것. '대장희대'(待 長 喜 大) . 말 마구 만들어라. 그런데 말이 되나 모르겠다.

8일 토요일 퇴근후 늦게까지 늘어지게 한숨을 잔 뒤, 집을 나서 저녁 10시반쯤 약속장소인 강동구 길동 청산학원앞에 도착했다. 늘어지게 잔 이유. 최근 새해가 몇일 지나지도 않았는데 새벽까지 술 마시는 일이 몇 건 생겼거든요. 마누라한테서 잔소리를 들었지만. 그런데 요즘 우리 마누라는 너무나 고맙게도 그냥 그냥 잘 넘어가는 편이죠. 근래 마누라 애기하는 것보면 저보다 훨씬 정신과 의식이 높은 분 같죠. 도인 같다구나 할까. 시를 써기 시작했는데 큰 감동을 주더라구요. 빨리 시집 한권 내면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 독촉하고 있지만 시하나를 만들려면 깊은 성찰과 느낌, 오랜 시간이 있어야 한다며 깝치지 말랍니다. 진짜 시인답게 나오더라구요.

각설하고, 작년말 금연에 성공한 뒤 올해부터는 절주를 맹세했지만 이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알코올중독증 환자마냥 내가 먼저 한잔 땡겨 마시는 '찾아다니며 적극적 술마시기 행위'는 거의 사라졌지만 나를 아끼는 선배들을 비롯 지인들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고 있는 탓에 '불려나와 수동적 술마시기행위"는 아직도 적잖기때문이다. 이것마저 끊는다면 이헌태의 인생은 끝나고 결국 생존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여러분 다 아시죠. 미국이나 선진국기준으로 보면 한국남자성인들의 다수가 알코올중독증세환자라는 거. 괜히 해가 서산에 지면 누구 불러 한잔하고 싶은 마음, 우리는 이게 보통사람인줄 알았죠. 이게 바로 그 무서운 알코올중독증세죠. 한국이 부끄럽게 보유하고 있는 '세계 넘버1'의 악명가운데 하나가 술소비량일겁니다. 전에 그랬죠. '가무의 민족' 후예답다고요.

올들어 절주를 실천하는 것은 물론 폭탄주를 가급적 줄이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술을 화끈하게 먹는 풍속은 신라시대 때도 있었더라구요. 조상들의 피가 제게 강물처럼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거죠. 경주 안압지에서 발굴된 주사위에 (정사각형 모양면 6개와 육각형 모양면 8개, 4.8센티높이) 적힌 내용을 우리말로 풀어 잠깐 소개해 드릴께요. 주사위 던져서 걸리면 적힌 대로 했다고 봐야죠.

1) 술세잔 한번에 마시기 2) 스스로 노래부르고 스스로 마시기 3)술을 다 마시고 크게 웃기 4) 덤벼드는 사람 있어도 가만히 있기 5) 소리없이 춤추기 6) 스스로 괴래만이라는 노래 부르기 7)누구에게나 마음대로 노래청하기 8) 술2잔이면 쏟아버리기 9) 여러 사람 코때리기 10)얼굴을 간지럽혀도 꼼짝않고 있기 11) 팔뚝을 구부린채 다 마시기 12) 월경 한곡 부르기 13) 더러운 것 버리지 않기 14) 시 한수 읊기 .대충 보면 어떻게 놀았는가 감이 오죠. 하기야 신라시대때 그런 음주문화가 있었다면 그 훨씬 이전에는 왜 없었겠어요. 저의 대학입학 환영식때 선배들로부터 재떨이나 구두에 술부어 마시기, 후래자삼배풍속, 술마시고 치고받기등등. 근래 폭포주라고해서 폭탄주 연거푸 3잔마시기등등. 요즘도 전통문화가 면면히 잘 계승되고 있죠. 야, 진짜네. 전통문화보존합시다. 우리나라 아저씨들 술집에서 넥타이 풀고 폭탄주 돌리면서 미친 듯이 노는 것, 쬐금 이해가 가죠. 또 아줌마들 관광버스안에서 무너질 정도로 펄쩍펄쩍 뛰면서 미친 듯이 노는 것, 쬐금 이해가 가죠. 모두들 그럴 때보면 놀기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아요.

그럼 이헌태 니도, 조상들의 유전자 구조탓으로 돌리고 마구 퍼마셔라. 죽든지 말든지. 아닙니다. 제가 올해부터 쓸데없이 마시는 낭비성 음주는 줄이기로 했으니 노력하겠습니다. 과거 폭탄주의 대가였던 이한동, 박희태의원도 환갑을 넘기면서 예전처럼 못 마신다고 합니다. 나이는 못 속이죠. 또 술앞에 장사없다는 말도 있죠.

술,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고의 선물인가, 아니면 인간을 파멸시키는 독약인가. 세계의 주당들을 소개해 볼까요. 한국의 김삿갓과 황진이, 중국의 이백, 그리스의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미국의 훼밍웨이,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유명하다고해요. 플라톤은 '향연'에서 "술마시고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학문적 토론을 하는 것이 바로 향연"이라고 했고요.

중국에서 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3세기후반, 위진시대의 '죽림 칠현'의 청담(淸 談)그룹. 이들은 정치적 혼란기, 세속을 벗어나 음주와 초월적 노장사상에 도취했다. 그들의 행동. "멱을 감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돼지와 더불어 큰 독의 술을 들이키고, 빨가벗고 방에 벌렁 드러누어 "죽림칠현의 중심인물인 완적. 완전한 자유인이었다. 모친사망소식을 전해듣고도 장기를 끝까지 두고 승부가 끝난 뒤에도 술을 두말이나 마셨다. 미친 놈. 60일간 계속 술을 마셔 옆에서 자식 혼사 얘기를 못 꺼냈을 정도. 미친 놈. 완적의 난세생존법 하나 소개. 완적은 화를 피하기 위해 남에 대한 평가를 절대하지 않았다.

중국의 주선(酒 仙)이 누구인지 아세요. 중국의 유명수필가 임어당이 격찬한 송나라 소동파에요. 주선이라고 하면 두주불사형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오히려 반대다. 그는 주량이 극히 적었지만 술에 낭만과 풍류를 실었다.

소동파는 어떤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왈, "친구가 술을 마셔서 어느 정도 얼큰히 취한 걸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 술은 사람이 성공했을 때엔 그 기쁨을 한층 상승시켜주고 슬플 때엔 상처를 받지 않도록 위로해준다. 술은 마치 가을이슬처럼 시원하고, 봄바람처럼 사람의 마음을 달래준다. 술을 마시고 나면 사람의 마음은 마치 밤새 끼었던 구름이 모두 걷혀진 후의 아침햇살처럼 달아오르고 설레게 된다 --- 우주 만물 가운데에서 오직 이 술만이 우리를 물질세계로부터 초탈하게 해준다. 정말로 술은 하루라도 이것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그런 물건이다. 이 취기성이 있는 음료는 사람을 도취하게 하고 마음을 맑아지게한다. 또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삶의 궁극적인 진리를 감지하게 해준다." 이 정도 되면 당시 술제조업자와 판매업자, 술집기생들이 홍보비를 덤뿍 주어야 하지 않을까. 술을 통해 삶의 진리를 안다, 참으로 격찬중에 격찬이다. 소동파처럼 쬐금 마셔야지 삶의 진리가 나오지 자기 주량을 크게 넘어서면 오바이트만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좀 더 인용할께요. 염치없게. 채근담에는 "꽃은 반만 피었을 때가 가장 아름답고 술은 적당히 취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고 하네요. 누군가 왈, "비는 진흙에 내리면 진흙을 더럽히지만 옥토에 내리면 꽃을 피운다. 마찬가지로 술은 좋은 분위기에 적당히 마시면 삶을 더없이 풍요롭게 한다". 역시 소동파와 맥이 통하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술하면 술 때문에 죽은 술꾼, 천상병시인이 연상된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예쁜 아내니 여자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고 ,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하느님이 나의 빽이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 결론. 술은 적당히 마십시다.적당히 마시면 보약, 많이 마시면 독약.

서론이 또 길어졌네요. 이번 산행에는 우리 백두대간팀의 물주인 두 선배가 모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고맙게 생각한다.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우리끼리는 다 아니까. 저녁 10시반쯤 청산학원앞에 도착하니 박홍규선배와 손석규선배가 미리 와있고 그때 마침 전세버스가 도착했다. 드문 드문 일행들이 도착하면서 저녁 11시 반쯤 박현수선배를 끝으로 일행 15명이 다왔다. 신규회원 2분이 합류했다. 지난 태백산산행 하산때 다친 심상준총무는 아직 완쾌되지 않아 등산을 못하지만 동참했다. 미칠 노릇일 것이다. 우짜겠노. 기다리는 동안 심총무는 10회차 로또복권추첨시간인 저녁 9시에 TV 생중계하는 곳마다 난리였다고 한다. 월드컵이 또 열렸나. 1등 당첨확률 814만분의 일이라고 하니 결과는 뻔한 것. 모두다 허탈과 한숨, 절망뿐.

어쨌든 1등 당첨자가 13명이 나왔는데 64억씩 나눠 가져갔다고 한다. 2608억원을 팔아 정부도 상당한 돈을 벌었다. 피눈물 나는 서민돈 모아 나라 살림 사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뉴스에 따르면 로또복권 꽝으로 자살한 사람도 있고 3천만원 대출받아 망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3천만원 투자해서 100억원을 먹든지 아니면 쫄딱 걸뱅이신세되든지.이판 사판, 개판이다. 후유증이 장난이 아닌 것 같아요.

한 조사를 보니 한국의 도박중독증세가 세계에서 높은 편이래요. 노래방 최다설치, 게임왕국,폭탄주 1위, 음주소비량 세계 톱, 룸싸롱 원조국, 화류걸 최다보유, '가무의 무예'답게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은 세계에서 단연 앞선다. 인생이 즐겁고 나라가 즐겁다. 망할 때까지 가보자. 킥킥

전에 지적했지만 황당한 나라다. KBS방송 '개그콘서트' 우격다짐코너를 보면 나오잖아요. "웃기지 웃기지 웃기잖아 .내 개그는 한국이야", "왜", "한국이란 나라는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나오는 나라라서"

진짜로 우리나라는 웃기는 나라다. 상식과 원칙과 정답이 통하지 않는 나라다. 깡다구와 뻥, 눈물이면 만사 오케이다. 불과 50년전 일인당 국민소득이 지금의 아프리카수준인 나라가 지금은, 98년 외환위기로 다시 주저앉았지만 일만 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1000배가량 늘었지 않나 싶다. 6.25전쟁때 참전했던 외국사람들이 최근 다시 방문하면 모두다 충격 그자체다. 한 서양역사학도는 이를 두고, 반세기동안 석기시대에서 초현대시대에 이르는 변화가 일어난 땅이라고 했다. 천지개벽이고 쌍전벽해다. 이것은 기적이다. 전세계가 놀랐다. 브루스커밍스란 학자는 "한국의 현대사의 특징은 무서운 역동"이라고 표현했다.

경제만 비약적으로 발전한 게 아니다. 독재정권이 오래전에 무너졌고 작년 대선때 세계최초로 전자개표가 진행되었다. 민주주의도 성큼 진행되었다. '빨리 빨리' 민족이다. 하여튼 대단한 민족이다. 나의 주장, 정치와 경제는 '압축 성장'이 가능하지만 의식은 '압축 성장'이 가능하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을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특히 어릴 때부터 교육이 중요하다. 선진국의 민주주의는 수백년의 전통과 피, 눈물이 담겨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도입한 지 고작 50년. 하여튼 '속전속결' 웃기는 민족이다.

특히 정치분야에서도 재미있는 나라다. 정치부기자와 정치권에 몸담은 게 대략 15년이라서 잠깐 설 풀면.

첫째,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씨 소위 '3김씨'가, 해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대략 40년동안 한국정치계를 주름잡았다는 것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청년이 되어 나이 70살이 될 때까지, 죽을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다 해먹었다. 국민들에게는 참으로 지겨웠던 세월이었고 3김씨들에게는 너무도 좋았고 행복했던 세월이다. 나의 생각, '3김씨'는 묘비에 " 국민들로부터 내 생애에 받은 은혜와 사랑에 대해 죽은 후라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라고 새겨라.

5천년역사에 '3김씨'는 오랫동안 각인이 될 것이다. 백년후 한국역사 시험에 '1백년전 3김씨'가 뭐냐는 문제가 출제될 것이다. 1) 20세기말 최고부자 김씨 3형제 2) 한시대를 풍미한 DJ,YS,JP 세명의 정치인 3) 유명한 가수 김트리오 4) 달동네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한 3명의 김씨아저씨. 정답은 2번. 그런데 '3김씨'들이 종횡무진할 때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두사람이 또 주름잡아서 결국 '5김시대'였네. 한반도는 지난 50년간, 김씨들이 판을 쳤구만.

그래서 희귀 성인 노씨가 "오노, 안돼" 하면서 두사람이나 대통령이 되었나. 그런데 근래 '개그콘서트'의 최대히트작은 노통장의 "맞습니다. 맞고요"라는 노대통령당선자의 흉내. 노는 아니오란 뜻이고 맞습니다는 예스라는 뜻. 정반대네.

국민 여러분 거부, 즉 '노'중에 가장 피맺힌 절규가 뭔지 아세요. 문둥이 시인 한하운씨의 "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정말로 아니올시다. 사람이 아니올시다. 짐승이 아니올시다". 국민여러분, 국내에 돈벌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너무 못살게 굴지 맙시다.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일본을 점령통치했다면 우리가 당한 일제통치때보다 더 잔혹하게 했을 거라는 얘기가 나오죠. 누구든 너무 한맺히게 하지 맙시다.

하여튼 '3김씨'는 원없이 살았다. 국민들은 대선에서 몇 번이나 떨어졌는지를 상관않고 김대중씨와 김영삼씨는 대통령에 시켜주었다. 김종필씨는 영, 호남지역에서 태어났더라면 벌써 대통령을 지냈을 것이다. 그래도 총리를 몇 번씩이나 하고 오랜 여권생활을 감안하면 대통령을 한 것이나 진배없다. '3김씨'가 한명도 빠짐없이 나라의 정상에 서서 40여년이상을 호사했다.

한국 사람들이 바보인지는 모르나 하여튼 불쌍한 사람에게 인정 베푸는 것은 세계 최고다. 그런 인정은 나라에 크게 도움이 안되는데. 질질 짜고 눈물만 흘리면 무조건 넘어가는 민족이다. 요즘은 안통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국회의원선거에서 평생 떨어진 후보가 이번에 떨어지면 죽는다고 울고 불고해서 당선된 사례도 있다. 외국에서 보면 연구대상의 나라다.

그러면 이번 대선에 패배한 한나라당 이회창후보도 다음에 우째 될라나. 그런데 나이가 70이 넘어서. 젊었을 때 나와서 몇번 떨어지지. '3김씨'처럼. 우리도 대선에서 떨어지면 다시 못나오게 합시다. '3김씨'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묻혀버렸고 또 그분들 때문에 필요한 세월이 그냥 흘러가버렸나.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60년대 70년대 정치를 했으면 결코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걸. 역시 대통령은 하늘이 내려준 타고난 천운이 있어야함.

그런데 요즘 투표가 비밀투표이기 때문에 지난 40년 동안 '3김씨'를 안 찍어줘도 되는데 누가 손가락 짜르나, 왜 그렇게 맨날 찍었는데. 제가 늘 얘기하죠. " 그 국민에, 그 대통령, 그 정치인, 그 언론". 수준이 늘 비슷하더라구요. 고만고만해요. 누구 탓할 것 뭐 있어요. 국민들도 반성해야죠. 부정부패만 나오면 개거품을 물면서도 꼭 검은 돈받아 먹고 감옥갔다 온 후보를 당선시키더라구요. '지역싹쓸이' 아시죠. 인물 가릴 것없이 깃발만 꼽으면 한 색깔만 찍더라구요.

지금은 민주주의국가, 국민들이 자기 나라를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데. 저거가 안해서 그렇지. 국민들이라고 입만 살아 가지고. 걸핏하면 욕만할뿐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와 의무, 책임도 다해야지.

둘째, 지난 대통령선거때 어떻게 여당후보가 뽑혔는지 아시죠. 민주당 노무현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후보가 여론조사결과로 단일후보를 결정했어요. 여론조사기관 랭킹 10위권 안에 드는 곳은 오차범위를 인정하지않는 여론조사결과는 인정할 수 없다고 거부해서 10위권 밖 기관 두곳에 맡겼죠.

노후보측에서도 오직 답답했으면 단일화여론조사를 수용했겠느냐고 이해가 가면서도, 어쨌든 대통령후보를 여론조사기관에 의해 뽑았고 그분이 한국의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세계정치사에 유례가 없는 것이죠. 우리나라가 아프리카의 소국이면 괜찮지만 지금 세계무역 13위권에 드는 경제대국에서 말이죠.

어쨌든 그 지리하고 지리하고 또 지리하고 지리하던 '3김씨'가 이제 완전 끝나가고 '3김씨'의 퇴장과 함께 시작되는 노무현정권의 탄생, 이 두가지 사실은 한국정치사는 물론 세계정치사에 남을 일이다. 기록에 자꾸 남겨라.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가 수많은 전쟁 때문에 불타 사라진 점을 감안하면 밀린 숙제하는 셈, 보충하는 셈치고 황당한 거라도 자꾸 많이 남기자.

이외 지난 50년을 되돌아보면 한국이 별난 기록들이 많더라구요. 특히 교회성장률. 불교전통이 강한 동양사회에서 이 짧은 기간에 불모지로부터 전인구의 30%가 독실한 기독교신자가 된 나라는 전무후무하다. 아마 2천년전 예수님이 탄생한 이래 전세계에서 이 같은 사례는 찾기 힘들 지 않을 까 싶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도 깜짝 놀랐을 거다.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전세계에서 단일교회로서는 최고로 크다고 하네요. 지독한 세계최고병에 걸린 것인지, 고구려 민족의 그 대담한 기상을 다시 보는 듯한 건지. 모르겠다.

교회의 예를 든 것은 좋다, 나쁘다는 차원이 아니라 그만큼 화끈한 민족이라는 얘기를 하려고 했을 뿐. 왜냐하면 종교얘기 잘못 꺼내면 큰일 나거든요.

우리나라는 참 기복이 심한 나라죠. 한강의 기적을 통해 갑자기 잘 살게되자 이내 곧 흥청망청했죠.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고 있다고 경고해도 거들떠도 안봤죠. 결국 98년에 외환위기가 닥쳤어요. 그때 아시죠. 국민들의 반응. 애국의 물결이었죠. 온국민이 구구절절이 사연이 담긴 돌반지, 결혼반지, 감추어 두었던 장롱속 금을 다 내놓았죠. 세계가 경악했죠. 세계최고의 감동을 연출했죠.

그러다가 그 고통을 또 잊어버렸죠. 다시 요즘 어렵다고 난리에요. 우리 민족이 '새대가리'민족인가. 왜 그래 잘 까먹는지.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해요. 망했다가 흥했다가 또 망했다가 아주 재미난 민족으로 생각해요. 제가 '인생은 추억쌓기'라고 앞에서 말했죠. 나라와 민족도 마찬가지에요. 앞으로 화끈하게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추억하나 또 없나. 이 미친놈아. 정신차려. 나라와 민족이 화끈하게 잘 되는 쪽으로 희망해야지.

우리 민족이 부지런하고 똘똘해서 망하지는 않을 것같아요. 또 어려워지면 허리끈 조르고 난리를 피우니까요. 물론 아주 잘될 민족은 아닌 것같다. 쬐금만 잘 나가면 또 나사가 풀리니까요. 또 지 새끼, 지 마누라밖에 모르고 ,지만 잘되면 그만이고 남이야 죽든 말든지, 남이 잘되면 배 아파하고, 고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망하지도, 아주 잘되지도 않는, 그냥 추억도 많고 사연도 많은 민족인 것같다. 결론 "한국을 세계 제1의 코미디민족으로 임명합니다.". 그래서 내가 '개그 콘서트'를 애청하나.

전세버스는 거의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쯤, 목적지인 지리산 마지막 코스인 정령치로 향했다. 그런데 차가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총무가 미리 현지에 가 있던 유영래대장으로부터 지리산국립공원측이 그 전날부터 갑자기 내린 눈, 비로 도로가 결빙되어 입산금지를 시킨다며 오히려 덕유산으로 바꾸자는 뜻을 전해왔다는 것이다. 사정변경에 원칙에 의해 모두들 이 방안에 찬성했다. 덕유산은 지형상으로 우리나라에서 눈이 많이 내리는 산이다. 그래서 모두들 덕유산 겨울설경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부풀었다. 어제 눈이 많이 왔다고 해서 더욱 마음이 설렜다.

밤을 새워 달린 전세버스는 고속도로를 거쳐 거창군 북상면 황점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는 차안에서 날이 새기를 기다리며 차안에서 자거나 바깥공기를 쐬었다. 황점마을에서 본 하늘은 어릴 때 천체과학관에서 본 하늘과 똑같았다. 사금파리처럼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국자모양의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또렷하게 보였다. 대충 세다가 지쳤지만 눈에 확 띄는 별만해도 3백개가 족히 되리라.

윤동주시인의 '별헤는 밤'이란 시가 떠올랐다. "-- 별하나에 추억과 / 별하나에 사랑과 / 별하나에 쓸쓸함과 / 별하나에 동경과 / 별하나에 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이별은 너의 별, 저별은 나의 별. 마누라와 같이 왔으면 좋았는데. 경상도말로 빵깽이 사나. 소꿉 장난 사나.

하늘아래 별아래, 바로 붙은 마을같아서 참으로 부러웠다. 혹시 별이 떨어져 바로 밑에 있는 나를 때리지나 않을까 걱정할 정도. 이헌태, 니도 상상력이 풍부하구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걱정은 들어봤지만 별이 떨어져 머리 깨질까하는 걱정은 니가 처음이다.

우리가 멈춰있는 전세버스 앞에는 마을을 지키는 당나무가 한그루 모셔져 있었다. 옛날에는 매우 신성시했다고 하네요. 정월대보름의 마을 당제사가 그렇게 대단했단다.

우리 일행은 새벽이 밝아오자 새벽 6시 45분쯤 발걸음을 내딛었다. 해발 700미터고지 마을에서 출발해서인지 고개를 들어보니 장엄한 백두대간, 용트림 같은 산능선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멀리 산봉우리들은 아침 햇볕을 받아 히말리야의 산들처럼 빛나고 있어 신비감마저 자아냈다.

눈이 쌓여있었지만 사람다니는 길이 나있어 사각사각 눈밟는 소리가 좋았다. 행군을 계속하다가 황점마을을 뒤돌아보니 깊은산속에 파뭍힌 조용한 마을이었다. 옛날로 말하면 오지중의 오지였으리라. 지금은 차까지 들어오니. 속세를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게 하는구나.

속세를 떠나는 방법 가르쳐 드릴까요. 시내에 오피스텔을 건설하고 방에 '탈속세'라는 이름을 붙이면 되죠. '탈속세1', '탈속세2' 라는 식으로. 장사가 될려나. 아니면 '신선1', '신선2'라는 식, 아니면 '해탈1', '해탈2' 라는 식의 방이름을 만들든지. 그 방에 있으면 뭔가 도닦는 기분이 쬐금이라고 들지 않을까. 어느 분이 썼듯이 "아이면 그만이고". 아에 사이비종교로 빠지면 된다구요. 죄송합니다. 제 말은 달나라로 가지 않을 바에는 우리나라에서 도닦을 곳은 없다구요. 시끄러워서 도닦는데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구요. 도닦고 계시는 분들, 주위환경 핑계대지 맙시다. 공부 못하는 얘들이 꼭 공부여건이 안좋다고 얘기하더라구요.

우리 일행은 계곡을 따라 부지런히 올라갔다. 신갈나무, 서어나무, 굴참나무가 나를 반겼다.물소리도 정겹다. 두시간도 채 못걸린 아침 8시 30분쯤 덕유산주능선에 놓여있는 삿갓골재 휴게소에 도착했다.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 대체로 완만하게 오르는 코스여서 도중에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다.

삿갓골재 산마루에 마지막 한 발을 옮기려고 하는데 바로 위의 허정균선배가 갑자기 "저기 바다가 보이네"라고 흥분한다. 그래서 나도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정말 그러네"라고 대답했다.나는 서해와 연관시키면서 덕유산의 위치에 대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바다가 아니고 운해였다. 언뜻보면 영락없는 바다였다. 운해위에 듬성 듬성 솟아 떠있는 산꼭대기들이 마치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으로 착각될 정도였다. 허선배가 우리를 속인 것이고 우리가 속아날 정도로 완벽했다. 참으로 비경이 아닐 수 없었다.

가야산과 지리산이 지척에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나타난 운해도 감탄 그자체였고 , 반대쪽 대둔산과 덕유산정상인 향적봉이 바라다 보이는 삿갓골재 북쪽방향의 다도해도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작년에 가보았던 중국 최대장관인 황산의 운해도 이보다 나을 수 없으리라. 우리는 이 신비로운 운해를 하루종일 계속 볼 수 있었다. 덕유산은 전북장수,무주군과 경남 함양,거창군 4개군이 얽혀 있는데 삿갓골재는 서쪽으로 장수군, 동쪽으로 거창군이 받치고 있다.

가이드역할을 하게 된 백신종 선배(경남도의원)는 이런 날씨는 일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다며 함께 감탄사를 연발했다. 전날 눈, 비가 왔고 오늘은 햇빛이 내리쬐면서 절묘하게 이 같은 운해가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년 전부터 시작해서 지리산 종점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며 길을 재촉하던 백두대간 종주팀도 이런 장관은 처음이라고 털어 놨을 정도. 지리산 산행을 포기하고 덕유산으로 방향을 돌린 게 신의 가호와 조종 때문이 아닌가.

삿갓골재휴게소는 작고 아담했다. 그래도 69명이 대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 아침에는 등산객이 거의 없었다. 휴게실에 비치된 메모록에는 특별히 감동을 주는 글귀는 없었지만 내용은 가지가지였다. "인생은 짧고 갈 데는 많고" 란 산악회의 글이 마음에 쏙 든다. 바로 내 생각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한 김우중 전대우회장의 말. 할 일이 많은 것은 좋지만 '세계경영'의 기치아래 자신이 감당도 못한 일을 해서 망했나.

사실 달나라나 다른 행성은 별도로, 지구하나만 다 돌아다녀도 모자랄 판에 정말 맞는 얘기다. "산은 정복의 기쁨보다 정상을 향하는 과정이 더 기쁘다", 또는 "산에 왜 가느냐고 묻는다면, 산이 그거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구태의연한, 뻔한 얘기도 있었다.

"우리가 일년이 지나고 십년이 지나고 다시 찾아왔을 때 우리 사랑 변치 않으리라 믿습니다"라 문구도 있었다. 웬지 여자에 대한 남자의 공갈, 압박처럼 보여 감동이 별로. 진짜 사랑은 그런 식으로 남기는 게 아닌가 같아서요.

명상시인 류시화씨가 쓴 인도기행문을 보면 목걸이처럼 목에 단 메모볼펜의 용도를 듣고 인도 노인왈. "당신 자신이 진정으로 경험한 것이라면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종이위에 적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당신의 가슴속에 새겨지기 때문이다. 당신의 영혼깊이 새겨진 진실한 경험이 아니라면 그것은 글로 쓸 가치가 없고 머릿속에 한순간 스쳐 지나가고마는 금방 잊을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당신이 쓰는 글을 다른 사람이 읽기 전에 맨 먼저 읽는 이가 있다는 걸 잊지 마시오. 다름아닌 신이오. 신이 당신의 영혼속에 새겨진 것을 읽고 있기때문이다" 남녀, 두사람간의 십년후 사랑까지 내다보고 미리 종이위에 새겨둘 필요가 있나. 앞으로 계속 마음속으로 다지면 되지.

삿갓골재휴게소안은 따뜻했다. 장작 태우는 난로가 있는 실내마루위에 일행전체가 둥그렇게 앉아 맛있게 식사를 했다. 각자, 컵라면 한개에 김밥, 양평 누님이 싸오신 김치두부, 물론 중국술이 한잔 돌았다. 이런데서 먹는 음식은 꿀 맛이다. 같은 컵라면이라도 여기서 먹는 거하고 속세에서 먹는 거하고 왜 그렇게 다른지. 불교의 '일체유심조'아시죠.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려. 굳이 애기하면 자연속과 속세와의 차이. '일체자연조'사상인가. 신비스러우면서도 황홀한 운해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난 뒤 우리 일행은 삿갓골재휴게소를 오전 9시 12분에 출발하면서 장장 9킬로미터에 이르는 능선을 오르내리는 행군에 들어갔다.

덕유산 주능선을 따라 산행을 계속하다 보면 길안내표가 드문드문 나뭇가지에 달려있다. 길이 헷갈릴 때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운 존재다. 간혹 오래되어 흉물처럼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재미난 표현으로 눈길을 끌 때도 있다. "그래 쉼 없이 가보자. 산! 갈곳은 많고 (부산)", "산을 아끼면 산을 닮아갑니다- 산사람들 (대구)",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경남정보고 0B산악회)"등이 인상적. 나머지는 대게 무슨 무슨 산악회 내지는 무슨무슨 백두대간종주산악회와 전화번호. 역시 제일 단순형은 "산불조심, 자연보호 (목표새천년산악회)". 핵심이 다 들어있다.

원래 제가 그랬죠. 노자,장자사상의 핵심철학이 의식주의 단순화, 생각의 단순화. 넓은 의미의 삶의 단순화. 그리고 종교,사상의 원천인 인도의 슬로건이 '단순한 삶', '고결한 생각'이라고 하네요. 과거에는 단순한 게 머리 나쁜 거로 오해했는데 지금은 좋은 말이네.

미국의 대표적 현대시인 '알렌 긴스버그'의 '너무 많은 것들'이란 시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너무 많은 공장들 / 너무 많은 음식 / 너무 많은 철학 / 너무 많은 주장 / 하지만 너무나 부족한 공간, 너무나 부족한 나무 /----너무 많은 양복 / 너무 많은 서류 / ---너무 많은 헛소리 / 하지만 너무 부족한 침묵". 물량의 홍수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정확하게 해부한 시라고 보여진다. 시라고 보기에 다소 황당하지만 그래도 오죽했으면 이런 시가 탄생했을까.

국민여러분, 이제 단순하게 삽시다. 허영과 욕망의 덩어리를 걷어 차버리고 짱구 자꾸 돌리지 말고. 인간들이 단순하게 살면 세상도 단순해져서 결국 모두가 행복하게 됩니다. 야, 이헌태, 길안내표 적힌 말한마디로 노장사상이 왜 나오냐. 니처럼 자꾸 머리 복잡하게 굴릴래. 제발 단순하게 살아. 잉. 당했어, 당했어.

정말 한마디만 더 덧붙일께요. 현대에 5반(反)운동이 있어요. 반전은 사랑이고요, 반권력은 평화고요,반원자력은 비핵이고요, 반체제는 자유고요, 여기에 반공해는 단순한 삶이에요. 현대사회에서는, 단순한 삶이 이렇게 큰 뜻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어투) 5반운동은 어떤 면에서는 생명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김대중 대통령어투)

등산하기에는 원더풀 날씨였다. 겨울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람도 불지 않았다. 그 유명한 매서운 겨울 덕유산바람을 무색케했다. 하늘에는 흰색으로 물탄 파란 하늘에서 따가운 햇살이 내려 쬐고 있었다. 간혹 더워 옷한벌만 달랑 입고 가기도 했다. 또 발밑에는 폭신한 눈길이 발걸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긴 능선을 따라가면서 우리 일행은 내내 사방주위를 보면서 탄성을 내질렀다. 고개부러질라.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이 아니고. 이리 보아도 입이 쩍 눈이 쩍, 저리 보아도 입이 쩍 눈이 쩍. 이헌태의 눈이 주인 잘못 만났는 줄 알았는데 오늘에야 아름다운 경치를 신나게 보면서 호강하는구만.

덕유산주능선길에서 본 사방천지는 모두가 산악지대였다. 늘 얘기하지만 아프카니스탄의 산악지대처럼. 우람한 한국산 호랑이의 요동친 등처럼 생긴 능선이 첩첩 내지 중첩형태로 장쾌하게 뻗어 있었다. 수많은 산들이 파도를 치듯 파노라마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70%가 산이 아니고 100%가 산인 것 같다. 서해안지역의 평야지대를 빼면 사실상 거의 전부가 산악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우리민족은 산(山)족이라고 부르고 싶다. 중국사람이 받침이 다른 상(商)족인데 비해. 상놈할 때 상놈하고 다른가. 하여튼 우리민족과 차원이 다르지.

장사하는 사람, 상인 (商 人)들도 상놈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요. 관계 없다구요. 관계 있는 것같은데. 요즘 세상은 돈만 있으면 양반이 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천민(賤 民) 자본주의라고 해요. 자본주의중의 자본주의, 자본주의 꽂이라고요. 아니죠. 가장 악질, 저질 자본주의죠. 천민의 천자가 하늘 천이 아니고 천박 천이에요. 하여튼 상인이 사람 가운데 상당한 수준 위의 사람이란 뜻의 상인(上 人)이 되고 천민이 착하고 훌륭한 하늘 백성이란 뜻의 천민 (天 民)이 될 날을 기대해봅니다.

덕유산 능선을 바람처럼 헤쳐나가다 보면서 혼자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해봤다. 신선들이 아시아대륙의 끄트머리, 대한민국에 많이 살았을 것이라고. 신선들이 살기에 이보다 더 나은 나라가 없을 것이다. 산악지역이 언뜻 보기에는 늙어서 쭈글쭈글한 모습이지만 모진 풍상을 겪어온 경륜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호쾌하고 장엄한 기품이 서려있다.

오전 10시 47분쯤, 무룡산에 도달했다. 이곳은 백선배께서 직접 쓴 걸로 떠서 판 기념비가 있었다. 글씨가 아주 뛰어났다. 백선배는 주위의 이름난 산들을 손으로 가르키며 한바뀌 뺑돌면서 안내해준다. 덕유산은 확트인 전망대였다. 북쪽으로는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 동쪽으로 돌려, 금오산 수도산 단지봉 가야산 매화산 의상봉 비계산 오도산 , 한참 산이 보이지 않다가 황뫼산 그리고 남쪽으로 계속 이어져 지리산 천왕봉, 반야봉 , 정령치, 남덕유봉, 저멀리 마이산. 서쪽으로 돌아서 위봉산 대둔산 적상산.

방금 거론한 산들은 그 지역 마을사람들에게는 둘도 없는 명산이겠지만 덕유산에서 보니 많은 산중의 하나. 여러분 이 산들 밑에 하얀 구름이 카펫트처럼 깔려 소위 구름바다를 이루고 있고 이들 산이 고깔형의 머리를 내밀고 있다고 생각해보셔요. 운해와 산, 다도해가 바로 눈에 선할 것입니다. 신선이 된 느낌이었다. 일행모두가 신선같았다. 개봉박두, "14명의 신선". 신선들이 도닦다가 바람 쐬러 나왔다. 그런데 당나라 때 신선이 되고자 한 사람이나 당황제들이 불로장생이라며 상용한 약의 원료가 뭔지 아세요. 요즘으로 보면 몸에 치명적인 수은이나 비소화합물이래요. 미친 놈들.

무룡산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역시 덕유산이 산중의 산, 센터산이었다. 영,호남과 강원,경기를 한가운데서 이어주는 사통팔달 대전처럼 한반도 남녘 산의 중심이었다. 신선들의 본부도 덕유산에 있을까. 신선이 인간보다 대전쪽에 행정수도를 먼저 옮겼나. 아니지. 신선들은 휴전선이 없지. 죄송합니다. 신선들의 센터는 금강산이 될 가능성이 높겠네요.

덕유산을 호위하는 산들이 나의 지척에 있는 느낌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되는 백두대간의 형세도 뚜렷이 보였다. 지리산 천왕봉도 반나절 걸으면 닿을 수 있는 것 같고. 지리산 넘어가면 남해고, 가야산과 마이산을 넘어가면 동해, 서해. 에째째, 우리나라가 왜 이리 작아. 신선들이 구름을 타고 오고가면 싱거울 정도의 가까운 거리. 물론 마음먹기에 따라 살기에 아기 자기한 강토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미국이나 중국대륙정도는 되어야 한다고요. 그런 땅에 살면 꼭 대장질하고 싶고 작은 얘들 괴롭히는 침략근성이나 배우지. 우리처럼 순박하고 정겨운 민족성을 갖지는 못하지요.

우리나라와 잘 어울리는 말 아시죠. "작은 고추가 맵다". 중국 수나라, 당나라가 왜 망했는지 아시죠. 고구려정벌 실패로 망했잖아요. 우리나라 우습게 봤다가 큰코다쳤죠. 큰 코다친게 아니라 한 목숨을 다쳤죠. 망했으니까. 중국사람들이 한국사람들 보면 놀란데요. 동화되지않고 고유언어,고유문화를 지키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특이한 것은 한국사람들이 자기 조상때 쓰던 한자를 지금도 우직하게 그대로 써고 있데요. 우리가 쓰는 한자가 공자, 맹자시대때 글이거든요. 중국과 일본은 저거들 멋대로 간단하게 만들어 써잖아요.

한국사람들은 중국사람 조상들로부터 칭찬 받겠구먼. 공자선생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꿈뻑하고 하여튼 우리가 중국사람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구먼. 중국문화 보존비를 받아야 할 판. 한국은 어떤 때는 교조적이고 골통 같아요. 그러니 대화하고 토론하는 문화는 거의 빵점.

특히 내 고향, 대구경북사람들. 김대중 정권때 자주 하는 말, "밟아라 캐라. 밥 세끼 먹을 꺼 두끼 먹으면 돼지. 치아뿌라". 무조건 반대. 뭐 그래 한이 맺혔다고. 요즘 대명천지에 뭐길래 매사에 목숨을 거나. 호남사람들이 그 전 30년이상 한 맺힌 거 비하면 새발의 피. 그런데 호남사람들, 더 정확히 호남정권에 빌붙어 덕분 사람들, 사실 인사편중이 심했잖아요. 그렇게 핍박받아 놓고 정권을 잡고나서 거꾸로 해버리면 얼마나 황당. '개그콘스트'에 나오는 유치개그가 아니라 황당개그. 내가 보기에 영남, 호남 사람들 다 같이 반성해. 똑 같애.

저는 간신배라고 고백합니다. 지리산에서는 어머니 처럼 장엄하고 그윽한 기품이 압권이고 덕유산에 오니 다도해의 망망대해, 그 운해가 일품. 그러면 아부 체질이잖아. 그런게 아니고요, 백두대간을 다 종주한 후에 총평을 하겠습니다. 앞으로 감탄할 산들과 그 비경이 많이 남아있을 겁니다. 너무 초조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하여튼 덕유산 운해에 나의 마음을 뺏아겨 버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보름달 한가위만 같아라가 아니고 덕유산 운해만 같아라.

이헌태의 마음속 우상이 누구인줄 아세요. 앞에서 잠시 거론한 소동파다. 그래서 나는 늘 마음속으로 "헌태야, 너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소동파만 같아라"라고 외치고 있다. 김삿갓처럼 속세를 등지지도 않았다. 현실정치에 뛰어들면서도 백성의 진정한 친구였고 물질욕과 거리를 두며 검소하게 살았던 능력있는 행정가 및 늘 바른 말해서 고초를 겪었던 정치인, 당송8대 문인에 들어가는 탁월한 시인이었다. 그런데 왜 제가 좋아하냐 하면 저처럼 소동파도 위트를 겸비한 수다꾼이었고 구제불능의 낙천가였다고 해요. 책만 보면, 성인들의 지혜를 보면 말이 많은 사람들을 비판해 놓아 숨을 곳이 없더니만 소동파를 만나서 나서 마음 편하게 다리 뻗고 자게되었습니다.히히히.

노무현대통령당선자를 비롯 여,야 정치지도자들은 소동파를 배워야한다. 과연 정치가 무엇이냐를 알 수 있다. 정치는 우선 국민을 잘살게 하는 능력, 능력이 있어야 하고,국민과 아픔을 함께하는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이 있어야 한다. 소동파는 일생을 통해 이를 실천한 사람이다.

작고한 고정희 시인의 '야훼님 전상서'란 제목의 시가 불현듯 생각난다. " 야훼님. ----신도보다 잘 사는 목회자를 용서하시고, 배부른 시인을 용서하시고, 백성보다 살쪄있는 지배자를 용서하시고, 사회보다 잘사는 교회를 용서하시고, 제자보다 잘 사는 학자를 용서하시고 --"그런데 다 좋은데 배부른 시인,제자보다 잘 사는 학자는 왜 안되는데요. 말 뜻은 알겠는데 너무 걍팍한 논리가 아닌가 싶네요. 어쨌든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또 여러 사람 가슴 뜨끔하게 만드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몇 명 더있다. "항상 의복을 갖춰 입어야 하고 시찰관에게 굽신거리는 것이 지겹다"며 관리직에 실망하고 40세이후 농부로 산 남북조시대의 대시인, 귀거래사의 작가, 도연명. 또 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 전국시대 제나라 재상 맹상군 휘하의 식객, 풍환이 멋있는 사람이죠. 무턱대고 찾아가 "장검아 돌아가지 않으련" 하면서 걸핏하면 자신을 대우해주지 않으면 집에 가겠다고 한 기개, 나중 주인의 허락없이 가난한 이웃을 위해 식량을 푼 도량, 맹산군이 물러나자 3천명이나 되는 식객들이 떠날 때 혼자서 지킨 의리. 중국 고사성어의 한페이지를 장식한 사나이죠. '장협귀래호'(長 鋏 歸 來 乎, 장검아 돌아가지 않으련) 남자가 살아가는데 기개, 도량, 의리 이 세가지만 갖고 있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리라. 이헌태 니, 무협지 써냐.

정오가 거의 다 되어가는데도 운해가 걷힐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참으로 드물게 좋은 날씨였다. 보통 덕유산과 같은 큰 산은 산위 날씨가 시시각각으로 급변할텐데. 오늘은 산신령이 한없이 운해를 보라며 한턱 세게 내는 모양이다.

운해를 보면서 또 철학적 생각에 잠겼다. 백두대간종주를 시작하면서 생긴 병이 도지고 있구먼. 나는 두개의 하늘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동해, 서해, 남해 소위, 어부들이 고기를 잡기도 하고 가족과 함께 해수욕도 하는 짠물 바다. 또 다른 하나는 높은 산에 걸터있는 구름바다, 즉 운해. 인간은 속세 바다에서 생선을 낚아 먹고 살지만 산신들은 구름 바다에서 도를 닦으며 산다. 말이 되나. 자꾸 말 만들지마라. 억지도 만드니 무리가 온다. 인간이 의식면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면 신선이 되고. 그만 넘어가겠습니다.

인간들이 신선들 바둑한판 두는 것을 구경하고 나면 백년이 훌쩍 지나간다면서요. 불교경전에 따르면 도솔천의 하루가 인간세계의 4백년에 해당되며 도솔천에 기거하는 존재는 도솔천의 날짜로 4천년을 산다고 하네요. 인도 브라흐마 신의 하루를 '칼파' 라고 하는데 인간세계로는 대략 43억년에 해당. 야 인간세계와 신의 세계가 시간이 다르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있어요. 도솔천에 살아 봤나, 2천년도 아니고 어떻게 4천년이라고 알수 있나. 옛날 사람들도 참 뻥은 셌구먼. 가 본듯이 얼마나 뻥을 잘 치는지. 단테의 '신곡'을 보면 지옥의 골짜기 둘레 크기가 22마일이라고 하네요. 10마일도 아니고 어떻게 22마일인지. 하여튼 그럴듯해야지 우둔한 민중들은 속아 넘어가지. 그런데 당시에는 다 믿었을 걸요.

정오가 훨씬 지나면서 운해가 조금씩 사라지면서 본격적으로 주변산들이 진면목을 보여주며 황갈색의 주름진 나신을 드러냈다. 고요하고 그윽한 풍경. 너무나 아름다웠다.

넋을 잃은 채 감상하면서 주능선을 계속 강행하는 가운데 허정균 선배가 한 흑갈색의 한 암봉에 앉아 혼자서 도닦는 모습으로 명상에 잠겨 있었다. 유영래선배는 먹이를 찾기위해 하늘을 날아다니는 콘돌이 잠시 앉아 있는 것이라고 놀리고 있지만. 아시다시피 콘돌은 남미에 서식하는 새로, 60킬로미터밖에 있는 동물의 시체도 알아내는 예민한 시각과 후각을 갖고 있다.

불후의 명화 '노틀담의 꼽추'의 주연 배우였던 세계적 스타 '안소니 퀸'이 일생 너무나 많이 한 엽색행각에 대한 반성으로, 죽으면 콘돌이 자신의 시체를 뜯어 먹도록 그냥 사막 위에 버려두라고 유언을 했다고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콘돌. 무서워라.

'색'을 밝히신 분들의 유언이 비슷하네. 어유야담에 살린 조선의 세기적 기생 '황진이'의 유언, "나는 생전에 화려한 것을 좋아했으니 죽은 후에는 산에다 묻지말고 대로변에 묻어주세요". 숭양기구전에 나오는 또다른 유언, "나때문에 천하의 남자들이 자신들을 잘 돌보지 못했으니 내가 죽거든 관을 쓰지 말고 시체를 동문밖 개울 모래밭에 그냥 버려주세요. 개미와 벌레들이 내 살을 뜯어 먹게 해주세요.천하 여자들의 경계를 삼아주세요". 유언들이 어쩐지 후세에 교훈삼기 위해 조작된 듯한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나도 그 자리에 서서 산을 둘러보았다. 한 일주일쯤 먹지도 않고 이 자리에 앉아 우주와 인간의 진리를 탐구하는 명상에 잠기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이 같은 명상의 시간이 꼭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성인남녀들은 일년에 일주일씩, 이 같은 명산의 바위 위에 혼자 앉아 명상을 하도록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헌태, 니는 걸핏하면 법제정하라고 하는데 니 잡동사니 얘기 못 꺼내도록 만드는 법은 없냐. 네, 죄송합니다. 제 글이 오염이 된다고요.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사람도 많은데. 그런데 명상은 꼭 명산에서 해야하나요. 명짜 돌림이네.

허선배는 평소에도 도인 같은 서기가 서려있어서인지 히말라야산 밑자락에서 진리를 깨치는 영락없는 구도자 모습이었다. 그런데요, 가만 보니 산도 함께 명상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인간도 명상, 산도 명상. 이것이 소위 '자연과 인간의 합일'. 헐벗은 채 명상에 빠져있는 산, 대자연. 나는 심오한 명상에 빠졌다. 잉. 명상을 아무데나 갖다 붙일래. 여름,가을의 우거진 숲을 내던진 채 인도의 수도승처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벌거숭이 몸으로 명상을 하고 있는 산. 저 산은 무엇을 명상할까. 신이여, 왜 나를 만들었나, 아니면 인간들아, 자연을 파괴하고 까불기만 해봐라 뽄 때를 보여주겠다일까. 겨울산을 휘몰아 치는 칼바람은 진리를 방해하는 번뇌에 해당되겠지. 하여튼 나는 산이 명상에 젖어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또 산은 겨울에 명상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남하하는 백두대간 종주팀을 몇 팀 만났다. 우리 일행은 반대로 북상중이다. 오늘 산행에서 나온 최대 화제는 우리 일행이 백두산까지 긴 백두대간 여정을 마치면 시베리아를 통해 바이칼호까지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벌써 마음이 들뜬다. 우리 일행의 백두대간코스가 북쪽으로 넘어갈 때쯤은 남북통일은 안되어도 교류정도만 되어도 러시아로 이어가는 것은 국제기차요금만 있으면 되니 충분할 것이기때문이다. 지금보다 비용도 훨씬 쌀 것이다. 동북아중심국가, 유라시아철도경제권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유라시아 기차여행이 더 쏠깃하다.

뚱딴지 같은 걱정하나. 시베리아나 바이칼호로 대륙열차가 이어지면 한국사람들이 개떼처럼 가서 또 환경오염시키지 않을까. 그 이전에 한국사람들의 환경의식과 질서의식이 확 바껴야하는데. 하여튼 우리는 백두대간종주 다섯 걸음째, 벌써 마음은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고 있다. 히로뽕 맞은 사람 같네. '진짜 히로뽕'은 감옥가지만 간혹 '마음 히로뽕'은 필요할 때가 있는 것같아요. 착각속에 행복이 있다고.

우리 일행은 오후 1시쯤 동엽령에 도착했다. 이름이 부르기 어려웠지만 개그맨 신동엽을 생각하니 쉽게 다가왔다. 이정표에는 남쪽으로 삿갓재가 6.3킬로미터, 북쪽으로 향적봉이 4.2킬로 적혀있었다. 2킬로미터쯤 더 가다보니 오후 3시쯤 송계삼거리에 도착했다. 계속 북쪽으로 향하면 중봉,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1614킬로미터)이 나온다. 그런데 이길은 백두대간종주길이 아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야했다.

덕유산의 정상이 백두대간종주길에 없다니. 참으로 이상했다. 왜 그랬을까. 1) 향적봉이 백두대간정상모임때 자꾸 빠져서, 사실 무주 리조트 스키장 곤돌라가 바로 연결되어 있거든요. 2) 덕유산이 한반도 남녂의 중심산, 두목이라서 똘만이들하고 놀지 못하겠다며 한발 비켜 서있어서 3) 백두대간을 만드신 신이 아차, 실수로 4) 백두대간은 '정상중심'이라기보다는 '등뼈중심'이기 때문에 5) 덕이 많고 너그럽다는 덕유산의 이름 값 한다고, 왜냐하면 모든 산정상들이 잘 나가는 백두대간에 줄서기 위해 난리인데 혼자서 점잖빼다가 6) 산도 외도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잉. 오해가 있을라. 옆길로 새는 것. 참고로 사전을 펼치면 외도는 첫째, 정도를 어김. 둘째, 오입. 셋째, 경기도 이외 다른 도. 넷째, 불교이외에 다른 교. 7) 답없음. 정답은 7번일 것 같고요, 이유는 단지 느낌상. 말도 안되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만 늘어놓았네요. 손들고 반성.

동해를 끼고 장쾌하게 내려오던 백두대간은 강원도 삼척 두타산에서 남서쪽으로 꺽여 소백산,속리산, 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에서 마감한다. 덕유산 주능선은 남쪽 남덕유산에서 북쪽 향적봉까지 크고 작은 봉우리를 따라 17킬로미터에 걸쳐있다. 덕유산을 얘기하면 뭐니뭐니해도 무주구천동을 빼놓을 수 없다. 향적봉 정상에서 무주와 무풍사이를 흘러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으로 빠져가는 설천까지 70리 계곡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무주구천동계곡은 수려하기로 유명한 덕유산 8개 계곡중 으뜸이다.

우리 일행은 덕유산 능선길만 대략 10킬로미터 걸었다. 이제, 주능선아 안녕. 우리 일행은 하산을 시작했다. 눈길이 스폰지위에 걷는 것같았다. 다리가 푹푹 빠졌다.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진 길옆에는 무릎이 쑥 들어갔고 많이 쌓인 지역은 허리까지 쑥 빠졌다.

보통 하산길이 고달픈 게 사실이다. 결빙은 위험하기 짝이 없고 그냥 흙길이라도 터벅터벅 걷거나 뛰어내려 오다보면 무릎에 충격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눈길이어서 다리가 덜 피곤했다. 이번 산행에서는 잔 나뭇가지에 눈이나 얼굴이, 길위에 구부러진 나무에 머리가 자주 부딪쳐, 칠칠치 못한 산행으로 기록될 것같다.

송계삼거리에서 능선을 따라 3킬로쯤 내려가니 오후 4시 반쯤 횡경재에 도착했다. 저편 향적봉쪽에 소나무, 구상나무군락이 군데군데 파란빛을 띠고 있었다. 송계사로 하산할 수 있었으나 다음 백두대간종주 시작편의를 위해 계속 직진해서 지봉안부 (말안장모습)를 거쳐 송계사로 하산했다. 계속 나아가면 지봉과 신풍령이 나온다. 백두대간종구 길이다.

송계사로 하산하는 길 초입에는 경사가 급한 지역이어서 거의 무릎까지 눈에 빠지면서 헤치다시피하면서 내려왔다. 동심이 되어 신나게 내달렸다. 귀신에 쫓긴양 뒤도 안돌아 보고 그냥 뛰다시피했다. 송계사입구에 오후 6시 40분쯤 도착했다. 약수물도 마시고 세수도 머리도 감으니 온몸과 마음이 깨끗해졌다. 속세의 때를 씻고 열반에 들어온 인상이었다.

장장 20킬로미터에 이르는 12시간의 강행군이었다. 전세버스가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가니 바로 옆 식당에서 이미 허정균선배를 비롯 4분이 먼저 식당에서 도토리묵에다 촌김치찌게를 시켜서 오가피주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흥겨움도 잠시. 나머지 일행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슬슬 걱정이 시작되었다.

지봉안부에서 송계사로 내려오는 길(3.4킬로미터)에서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양평누님이 퍼진 것이다. 거의 10시간 이상 무리하게 등산을 한데다 내려오는 눈길이 경사가 거의 직각에 가깝고 푹푹 빠지는 바람에 더욱 힘들었던 모양이다. 결국 해가 지고 저녁 8시가 다 되어갈 때 쯤 나머지 모두가 무사하게 하산해서 천만다행이었다. 나의 등산한계시간은 대략 12시간이다. 몸을 풀로 가동했다. 공장가동률 100%. 나는 그래도, 계몽주의 대표적 사상가인 칸트가 1804년 2월 12일 죽기직전 마지막으로 한말. "좋다"

향기좋은 시골밥에다 돼지김치찌게를 맛있게 먹고 우리 일행은 저녁 8시반쯤 서울로 향했다. 차안에서 몇 분과 맥주를 몇 잔 돌리다가 이내 파하고 나도 눈을 붙였고 이내 잠에 곯아 떨어졌다. 자정쯤 서울톨게이트에 들어섰고 종착지인 길동에 내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를 약간 넘겼다. 나 때문에 단잠을 깼는지 마누라는 "다음부터 열쇠가지고 다니라"며 퉁명스럽게 한마디 한다. 보통 때와 다르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자식들의 자는 모습이 예쁘다. 내가 자식들에게 "너거들은 내 뱃속에서 제왕절개로 나온 새끼들"이라고 말하면 "아빠, 헛소리좀 하지말라"는 딸의 말이 갑자기 생각난다. 꿈나라로 갔다. 다음날 아침 조간을 보니 '로또복권에 떨어진 사람들, 허탈'이란 기사가 크게 났다. 사는게 다 '일장춘몽'이지 뭐. 이번 10회차에 당첨된 로또복권당첨자 13명의 용사들도 일장춘몽. 믿거나 말거나, 미국 복권당첨자분석에 따르면 대게가 당첨된 이후 5년만에 '원래 꼬라지'로 돌아온데요. 이혼, 가정파탄, 불행을 안고 돌아온 케이스가 수두룩하고요. 이번 로또복권당첨자들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지난번 65억짜리 당첨된 분도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신문에 났더라구요. 세상에는 공짜는 없다고 하네요.

질문하나 있습니다. 일장춘몽을 사전에서 보면 '한바탕 봄꿈처럼 헛된 부귀영화"라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한바탕 여름꿈과 한바탕 가을꿈과 한바탕 겨울꿈과는 무엇이 다르나요. 가장 황당한 꿈은 언제꿈인가요.

이헌태 피곤한 놈. 너의 지금을 있게 한 부모 형제 및 담임선생님과 친구, 선배 후배 동료들 이름 한번 대봐라. 니가 왜 이모양 이꼴이 되었는지 한번 철저히 연구해 봐야겠다. 결론을 내고 끝낼께요. "이헌태를 대한민국 제일의 꼴통으로 임명합니다" (2월 8,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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