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클릭-키워드로 본 2003 대구문화

시인 정일근은 '시간에 대해 우리는 영원한 채무자이고, 달력 속의 숫자 12 중 1은 절대자의 모습이며 2는 그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의 모습으로 읽혀진다'고 표현했다〈월간지 '객석' 12월호 권두언에서〉. 2003년도 이제 보름 남짓 남았다.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대구지역 문화계를 키워드를 통해 돌아 보았다.

▨유니버시아드 대회=유니버시아드 대회의 이니셜인 'U'자는 적어도 올해 지역민들에게 단순한 알파벳에 머물지 않았다.

대구.경북을 하나로 만드는 꿈이었고 문화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상징기호였다.

대구.경북에서는 일일히 나열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문화 행사가 U대회 기간중 집중적으로 열렸으며 문화에 대한 시민들의 갈증과 문화도시로서 대구가 나아가야 할 당위성도 확인됐다.

▨오페라=올해 신문 문화면을 가장 많이 장식한 단어 중 하나이다.

오페라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폭발시킨 촉매제는 대구오페라하우스의 개관이었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종합예술인 오페라 발전을 통한 대구.경북지역 문화예술 발전의 견인차 및 인프라로서의 기대를 안고 지난 8월 모습을 드러냈다.

창작 오페라 '목화'가 개관기념작으로 공연된 대구오페라하우스에는 몰려든 시민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10월 한달 동안 열린 대구오페라축제 역시 초대권을 발부하지 않고서도 대부분의 공연 좌석이 매진됐는데 이는 한국 오페라 역사에 유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페라를 향한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은 대구오페라하우스라는 건물 자체에 대한 시민들의 호기심이 크게 작용했다.

올해 대구.경북에 분 오페라 붐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으며, 많은 숙제를 대구.경북 문화계에 남겼다.

▨문학을 통한 '지역 사랑'=저마다 개성을 추구하는 것이 문인들의 특성이지만 올해에 지역 문인들은 문학을 통해 대구.경북에 한마음으로 뜨거운 애정을 표현했다. 대구문인협회는 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명복을 비는 애절한 글들을 한데 모아 문집 '천국으로 보내는 편지'를 발간했다. 참사현장에 남겨진 글들은 물론 희생자 유가족들의 애절한 사연과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던 작가들의 시와 편지글 그리고 언론매체에 실린 추모시와 애도글 등 모두 165편이 실려 당시의 아픔을 되새겼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지회도 희생자를 추모하는 문학제를 열고, 추모문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대구U대회를 기념하고 대회에 참가한 외국인들에게 대구를 알리기 위해 대구문인들의 글을 모아 영어로 번역한 한.영(韓英)시집 '시와 여름의 영광' 발간도 주목을 끌었다. 이 영역시집에는 대구.경북의 시인, 수필가, 시조시인 등 76명의 작품들이 실렸다. 지역 문학계의 이 두가지 '사건'은 절망에 빠진 대구.경북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지역의 발전에 나름대로 이바지하려는 문인들의 '지역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도광의 시인이 23년만에 두 번째 시집 '그리운 남풍'을 내고, 아동문학가 김선주씨가 동화집 '벙어리와 꽃씨' 등을 발간한 일도 관심을 모았다. 또 아동문학가 하청호씨는 10년 만에 동시집 '무릎학교', 아동문학가 권영세씨는 동시집 '탱자나무와 굴뚝새'를 각각 펴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뮤지컬=올 한해 대구연극계에서 가장 많이 입방아에 오른 단어를 뽑는다면 단연 뮤지컬이다. 한동안 '그들만의 행사'로 전락된 나머지 침체일로를 걷던 공연장들은 오랜만에 밀려드는 관객들로 인해 너도나도 즐거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 시발점이 된 것은 다름 아닌 뮤지컬이었다.

'시카고', '캣츠' 등 잇따른 대형뮤지컬 공연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시카고' 경우 서울공연 뒤 지방투어 도시로 유일하게 대구를 결정했을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주일 동안 공연장을 찾을 관객이 있을까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들의 우려는 기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캣츠'는 한 수 더 떴다. 오프닝 전 11회 전공연·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는 등 지방 뮤지컬 역사를 새롭게 쓴 것. 결국 한국 투어 일정을 늘리면서까지 대구에서만 앙코르 공연을 열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따라서 2003년은 대구 뮤지컬시장이 전 세계 뮤지컬 기획자들에게 인정받은 한 해였다. 하지만 지역에 모처럼 불씨를 지핀 뮤지컬 열기를 앞으로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 역시 지역 연극계에 남겨둔 셈이 됐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이인성=미술계에서는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이 집중 조명을 받은 한 해였다. 11월 문화관광부의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이인성을 기린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두류공원 인물동산에서 이인성 조형물 제막식이 열린 것을 비롯해 '이인성 예술세계와 미술사적 의의'란 주제의 학술 세미나, '제4회 이인성 미술상 시상식', 제3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자인 '이강소 기념초대전' 등이 줄을 이었다. 대구시립극단은 이인성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노을앞에서'를 공연했고, 이인성의 친손녀 이민선은 어린이용 화집 '우리 할아버지 이인성'을 출간했다. '이인성기념사업회'를 확대.개편하는 작업도 이뤄졌다.

지역 문화의 역사와 흔적을 복원하고 기리는 사업이 일천한 상황에서 향후 대구 미술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화 작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대가야=1500여년 동안 땅속에 파묻혔던 고대 왕국 '대가야'가 부활했다. 본지의 '아! 대가야' 시리즈를 계기로 대가야의 역사는 물론 대가야의 후손 악성 우륵과 가야금, 대가야박물관, 가야산 등이 크게 부각됐다.

10월21일 대구문예회관에서는 철의 왕국을 상징하는 대가야 대장장이의 이벤트와 가야금이 어우러진 '대가야의 밤' 공연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우륵 12곡중 대가야를 예찬한 '상가라도'가 가야금으로 다시 태어났다. 고령 우륵기념탑 앞에서는 '악성 우륵 추모제'가 열렸고, 대가야 유물을 보관.전시할 '대가야 역사관'이 완공됐다. 우륵박물관 건립도 추진되고 있다. 경산대 김세기 교수는 대가야의 역사를 파헤친 '고분자료로 본 대가야 연구'란 책을 냈다. 고령군은 전국 관광자원개발 우수사례 발표에서 '대가야 역사테마 관광자원 개발'이란 주제발표로 최우수상을 받았고, (주)이노뱅크는 '대가야 사이버왕릉'을 개설해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 산업자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경북 성주군과 경남 합천군은 대가야의 건국신화가 담긴 가야산을 두고, '합천 가야산' '성주 가야산'을 서로 주장하며 '땅싸움'을 벌이는 웃지 못할 헤프닝도 벌였다. 대구시설관리공단이 '대가야 문화체험 테마코스'를 운영했고,대구시.경북도 교육청은 학생들의 대가야 문화기행을 시행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대가야 왕묘인 고령 지산동 고분과 가야산을 찾는 이들은 날로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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