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시장을 세번이나 연임한(1933~1945) 피오렐로씨가 즉결심판소 판사로 일하던 시절, 어느 추운 겨울날 남루한 차림의 노인이 법정에 섰다.
죄목은 절도죄. 마을 빵집에서 빵을 훔치다 잡혀왔다는 그 노인은 가족이 추위속에 굶어죽어 가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피오렐로는 단호하게 '법은 지켜야 한다'며 벌금 10달러를 선고했다.
그리고는 자기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10달러를 꺼내 노인에게 건네준 뒤 방청석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 법정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와 함께 50센트씩의 벌금을 선고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은 저 노인처럼 살기위해 빵을 훔쳐야 할 만큼 어려운 이웃을 버려둔 뉴욕시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부끄러운 얼굴로 말없이 50센트씩을 냈고 노인은 47달러50센트를 받아 굶고있는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피오렐로 시장의 벌금 일화는 세모(歲暮)를 보내는 우리들에게 이웃돕기의 참 뜻을 새롭게 생각해보게 한다
엊그제 보도된 구세군 자선냄비 기사에서 '대구가 전국 어느지역 보다 자선냄비 모금액이 저조하고 기부를 꺼린다'는 구세군 봉사자의 지적이 왠지 피오렐로 시장의 벌금선고처럼 낮부끄럽게 들렸다.
대구 시민들은 정말 인색한 사람들인가. 굶는 이웃을 못본체 하면서도 뉴욕시민처럼 4대도시의 주인임을 자만하고 있는 것인가. 수십년을 전국을 돌면서 세모때마다 자선냄비 모금일을 해온 구세군 사관들의 체험적 증언인 만큼 기부금 꼴찌얘기가 분명 틀린 말은 아닐터이지만 듣고보자니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지난 지하철 참사 모금때만 해도 전국의 거의 모든 신문.방송사들이 모금운동을 폈지만 매일신문사에 보내주신 대구시민 모금액이 최고액을 기록했었는데 말이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란 자긍심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재난이 터지면 어느 지역보다 후한 인심을 드러내 보였던 대구시민이 자선냄비 기부가 가장 짜더라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듣게되다니 의외다.
구세군 사관들의 기탄없는 고언(苦言)중에 그나마 부끄러운 가운데서도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말은 기금저조가 인색해서 보다는 대구기질이 낳은 기부문화 탓으로 본다는 '꿈보다 해몽'같은 덕담이다.
구세군 사관들 표현으로는 대구의 쫀쫀한 기부문화가 잰채 하거나 나서기 싫어하는 대구정서, 특히 대구 남자들 기질 때문이라는 얘기인데. 바꿔말하면 큰일에 큰돈 내는건 몰라도 길거리 남들보는 데서 푼돈 꺼내 냄비에 넣는 것이 젊잖고 양반기질(?)강한 대구사람 특히 대구 남자들의 기질에 맞질 않아서 그럴거란 의미기도 하다.
대구의 자선냄비 기부자들 대부분이 여성들이더라는 구세군 사관들의 평가도 그런 대구남자들의 기질을 잘 꿰뚫고 있다.
대구 남자들이 고쳤으면 좋을 기질에 관한 일화는 자선냄비 말고도 또 있다.
카드회사 판촉여사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대구남자들의 보수적 기질은 '못 말리는 수준'이라고들 입을 모은다.
카드사는 전국의 카드 회원들에게 부인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축일이 되면 날짜에 맞춰 전화를 걸고 포도주가 곁들인 축하 꽃다발과 간단한 사랑의 메모글을 끼워 전국 배달을 해주는 마케팅을 한다.
하루에도 수백군데 성인남자 회원을 상대로 부인에게 꽃다발 주문 권고를 하다보면 '씰데 없는 거 뭐할라꼬 하노, 유치하구로-'라는 고객은 열에 아홉은 대구.경북 지역 고객이라는 거다.
어쩌다 꽃다발까지는 오케이 했다가 사랑의 메시지 메모에 이런이런 구절은 어떻겠느냐며 분위기 있는 글귀를 읽어주면 '닭살 돋는다'며 취소하기도 하는 고객이 바로 대구남자들이란 거다.
좋게 보면 선굵고 듬직한 속정(情)을 베푸는 대구 기질의 멋일지도 모르나 다른 지역의 남자들이 다 변화돼 가는 세상에 독야청청 혼자서 체면문화, 양반기질을 황소고집 부리듯 버티고 있는 것이 자선냄비 기부모금에까지 이어지는 것은 한번쯤 재고해볼 필요가 없을는지.
아직 올 세모는 보름이나 남아있다.
그 사이라도 자선냄비 앞에 큰 걸음으로 다가가 지갑 척 꺼내 드는 기개 크고 손도 큰 대구남자들의 모습이 좀더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
애덕과 나눔의 사랑이 아쉬운 세모에 굶주림으로 빵을 훔치는 이웃이 없는 따뜻한 도시의 주인이 되기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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