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빈배로 떠난 '킹메이커'>

虛舟(허주.고 김윤환 전 의원의 호)가 15일 만선(滿船)의 꿈을 접고 빈 배로 역사

의 뒷편으로 사라졌다.

'킹메이커'를 자임하며 1980년대 이후 한국정치사의 중심에 서서 화양연화를 누

렸던 그였지만 결국 시대의 변화 앞에선 '구태 정치인'으로 전락, 변방으로 내몰려

병마와 씨름하다 쓸쓸하게 빈 손으로 돌아간 것이다. 향년 71세.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김 전 의원은 유신말기인 지난 79년 유정회 의원으로

국회에 첫발은 내디딘후 10.11.13.14.15대 5선 의원을 지낸 현대정치사의 산증인.

예리한 정세 판단력과 현실정치 적응력, 위기국면시 돋보이는 조정력, 호방한

성격과 특유의 친화력까지 갖춘 정치인으로 평가받아 늘 주변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5공말 정무수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거쳐 6공과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에 여당 사무총장 2번, 원내총무 2번, 정무장관 3번, 여당 대표 2번, 야당 대표

등 화려한 경력을 기록했다.

특히 그는 6공과 문민정부 출범과정엔 두 차례나 '킹메이커'로서 성공적 역할을

해내 정치적 진가를 드러내기도 했다.

5공말 대통령 비서실장 때는 고교동창인 노태우(盧泰愚)씨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또 '여소야대'였던 노태우 대통령 시절 막후에서 3당통합을 이끌어내 거대여당

을 탄생시켰고 92년 대선에선 민정계이자 TK(대구.경북) 출신이면서도 'TK배제론'을

내세워 PK(부산.경남) 출신의 'YS 대통령 만들기'의 선봉에 서서 'YS 대세론'을 선

도하기도 했다.

97년 대선을 앞두고는 한때 신한국당 9룡(龍)중 한 명으로 '용꿈'을 품었으나

도중에 이를 접고 당내 지지기반이 전혀 없었던 이회창(李會昌)씨의 정치적 후견인

으로 변신, '영남후보배제론'을 설파하며 '이회창 후보 만들기'에 나섰고, 당내 경

선과정에서 드라마 같은 성공을 거둬 정치적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15대 대선에서 이 후보가 'DJP(김대중-김종필)연대'에 밀려 낙선함에 따

라 세번째 킹메이커 등극에는 실패했고 이후 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조락의 길

로 접어들었다.

그는 98년 이회창씨가 한나라당 총재로 복귀하는 과정에 주도적 역할을 했으나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정치인 사정에 걸려 고전했고 2000년 16대 총선에선 '개혁

공천'이라는 '명분'아래 당시 이 총재로부터 공천에서 배제되는 '잔인한 배신의 계

절'을 맞았다.

이후 민주국민당을 창당, '반창(反昌)연대'의 핵심을 자임하며 정치적 재기에

나섰으나 경북 구미에서 낙선, 정치적 낭인신세가 됐고 정치권 시야에서 조금씩 멀

어져갔다.

그는 지난해 12월 하순께 신장암 판정을 받고 절제수술을 받은 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미국에서 치료를 받다가 병세가 악화돼 귀국했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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