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新빈곤시대(12)-함께 하는 행복

힘겨운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도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삶들이 있다.

금세 꺾일 듯 이리저리 휘둘리지만 꿋꿋하게 견뎌내는 인생도 있다.

이른바 '신 빈곤시대'를 사는 서민들에겐 끈질긴 민초들의 삶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베풀며 사는 이웃들의 이야기는 따스한 난로가 된다.

영덕군 남정면 회1리 신백휴(62)씨. 그는 한우 사육이라는 한우물 파기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농민이 됐다.

신씨는 지금 마을 앞 축사에 한우 200여 마리를 키운다.

자산만도 10억여원대에 이른다.

사육우 중 150여 마리는 암소. 따라서 매년 150여마리의 송아지를 받는다.

송아지 한 마리 시중가격이 300여만원을 감안할 때 그의 연간 수입은 5억원대. 사료주기 등 농장일 대부분을 기계로 처리하기 때문에 부부 일손만 있어도 200마리 사육은 거뜬하다.

사료값과 제반 비용을 빼도 연간 3억원은 버는 셈.

신씨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다.

대구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고향으로 내려와 수십년째 한우만 묵묵히 키웠다.

힘든 때도 많았지만 무던하게 한우물만 파다보니 좋은 결과를 낳은 것. "한우뿐 아니라 다른 작목도 대형화, 전문화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정부가 계획만 잘 수립하면 농민들도 살길이 있는데, 그걸 잘 못하다보니 농민들이 우왕좌왕하고 경쟁력도 잃고 말았습니다".

영양군 수비면 발리리 권상한(45)씨는 작년 태풍 루사때 상추재배 비닐하우스 수십 동이 몽땅 떠내려가는 피해를 입었다.

지난 2000년에는 엄청나게 내린 눈 때문에 하우스가 내려앉았고, 한때는 화재로 버섯과 풋고추농사를 망치기도 했다.

대구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함께 내려온 가족들이 모두 매달려 농사일에 나섰지만 늘어난 것은 빚뿐이었다.

권씨도 가족도 너무 지쳐버렸다.

그러나 권씨의 성실함에 탄복한 지역 농협과 이웃들이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며 그는 다시 이를 악물고 밭을 일궜고, 올해 다시 상추농사에 도전했다.

결국 권씨는 전국적인 수해로 시중 상추가격이 껑충 뛰는 바람에 오랜만에 큰 소득을 거뒀다.

농협 빚도 갚게 됐고, 힘든 와중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구를 거듭한 덕분에 칡상추 특허까지 얻어 내년에는 더 알찬 소득을 기대하고 있다.

힘들 때 도와준 이웃들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권씨는 올해 '자랑스런 영양군민상'까지 받았다.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정연홍(21), 연철(19) 형제는 지난 97년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

당시 형은 중학교 3년, 동생은 중학교 1학년이었다.

이웃의 도움과 정부 지원으로 생활한 형제들은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모범생이었던 형이 먼저 2001년 고교를 졸업하고 영천 본촌공단 자동차부품업체에 취업했다.

형 연홍씨는 올해 7월 군에 입대해 현재 육군 부사관으로 근무 중이다.

동생 연철씨도 올해 2월 고교를 졸업하고 영천 언하공단 자동차부품업체에서 근무 중이다.

월급은 80만원선. 임고면은 올해 8월로 형제를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열심히 살아온 형제가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이다.

나누고 베풀며 사는 이웃들의 이야기도 있다.

청송읍에서 한약방을 하는 김진우(56) 원장. 10여년을 한결같이 불우한 이웃과 사회복지시설에 남모르게 온정을 베풀어 왔다.

김 원장의 온정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 지난 94년부터 경북도와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매월 3만원씩 후원금을 보내고 있으며, 95년부터 유니세프(유엔아동기구)에 매월 5만원씩, 2000년부터는 한국어린이보호재단과 대한적십자사, 야학교 지원법인인 한얼회 등에 월정 후원금 4만1천원, 작년부터는 청송읍 월외리 '태양의 집'과 진보면 추현리 '축복의 집'에도 각각 3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또 95년부터 시각장애인 어머니와 함께 어려운 생활을 하는 김모(당시 15세)양에게 매월 5만원씩 지원했다.

현재 김양은 장학금을 받는 대학교 2학년이 됐다.

또 소녀가장인 심모(15)양 자매와 결연을 맺고 8년째 매월 10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96년엔 청송여중고에 장학금 300만원을 기탁, 연간이자 발생분과 매월 15만원씩 자비를 보태 매년 학생 3명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이밖에 각처에 장학금을 보내고 있는 김 원장은 "여유가 있어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게 정을 나누는 것"이라며 "흡족할 만큼 돕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가정경제가 파탄 나는 바람에 난생 처음 공장일을 시작한 안민희씨. 최근 그녀는 한 자활후견기관의 소개로 간병을 시작하면서 환갑을 넘긴 나이에 새 인생을 살고 있다.

"밖에서는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면서 조기퇴출이 심각한데 '그래도 할 일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 한탄과 푸념이 사라집니다". 40여년 결혼생활을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는 안씨는 "최근 들어 철이 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11년간 시신경이 마비된 친정 아버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가시게 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메어온다.

때문에 간병을 맡은 노인 환자들을 대하는 그의 마음은 남다르다.

"그저 외롭고 힘든 노인들에게 말동무 해드리는 게 가장 큰 간병입니다".

또 영양읍 서부리에서 건축설계업을 하는 박재웅(45)씨는 수해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을 위해 10여채의 주택설계를 돈 한푼 받지않고 무료로 해 주었다.

오히려 소문이 날까봐 쉬쉬했던 박씨의 미담은 최근 도움을 받았던 농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주위에 퍼졌다.

태풍 직후 일감이 밀렸던 박씨는 힘들어하는 직원들을 독려하며 10여일간 밤샘을 하다시피 작업을 추진해 수재민들에게 설계서를 전했다.

"도움이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입니다.

더욱 많이 나누고 베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장영화.최윤채.김경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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