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 돌아오면 1년 동안의 영화계를 정리하는 각종 시상식이 단골메뉴처럼 등장한다.
그리곤 하나같이 최고의 작품이 뭔지, 감독과 연기는 누가 제일 잘 했는지를 심사한다.
하지만 영화팬들의 관심사가 그게 전부일까. 극장을 나오면서 가슴을 쳤던 부분이 오직 주인공의 연기뿐이겠는가. 때로는 사소한 것이 오랫동안 잔상에 남을 수도 있는 법. 2003년 영화계를 돌아보면서 어쩌면 사소하지만 기억에는 깊이 남았던 장면을 되짚어보자.
#1. 최고의 영화예고편?-'거울 속으로'
거울 속에 비친 또 다른 내가 나를 노려보고…. 2003년 여름, 이 영화 예고편을 보고 "개봉하면 꼭 봐야지"하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거울 보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 영화, 우리 공포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걸작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 예고편의 흡입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지만 웬걸…. 예고편보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극장을 나서면서 하나같이 이렇게 얘기했다.
"이런, 예고편이 전부잖아". 경제사정이 어려운 영화팬을 위해 예고편에다 모든 줄거리를 다 쏟아 부은 제작진들의 배려(?)가 가상할 정도다.
#2. 여자만 망가지나-'똥개' 정우성
영화 '비트'에서 검정 가죽잠바에 청바지 차림으로 오토바이에 올라탄 정우성의 모습은 한때 남학생들에게 멋진 우상이었다.
이후 '무사'에서 그는 머리를 풀어헤쳤지만 강렬한 눈빛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똥개'에서는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무겁던 눈빛을 풀고 기름기 빠진 모습, 폼잡고 싸움 잘 하던 그가 구멍난 체육복 차림에 고무장갑을 끼고, 계란프라이 하나를 두고 아버지와 젓가락 싸움을 벌이는 꼴이라니... 정말 어깨 힘 쫙 뺀 모습이다.
정우성은 올해 가장 망가진 배우로 기억 속에 남았다.
#3. 기대외면은 이렇게-'매트릭스3 : 레볼루션'
두두둥~~ 쓰리, 투, 원, 제로. 사상 최초로 전 세계 50개국에서 동일.동시각 개봉. 제작비만 1억1천만 달러(약 1천200억원) 소요. 개봉 전까지 줄거리 절대 비밀 등. 이러한 신비스런 마케팅전략은 개봉 전 매트릭스 완결편에 대한 영화팬들의 기대심리를 최고조로 높이는데 일조를 했다.
하지만 개봉 후엔…. 많은 사람들은 제작사가 그런 마케팅전략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대부분 이해(?)하게 됐다.
#4. 최고의 소품-'살인의 추억' 나이스 운동화
키스 장면만으로 편집된 필름이 '시네마 천국'의 소년에겐 영화가 되었듯이, 때론 작은 소품 하나가 영화를 기억하는 이미지가 된다.
'장화홍련'에서 특유의 고급스럽고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꽃무늬 벽지가 그러하고, '매트릭스'에서 네오와 스미스 요원이 썼던 검은 선글라스가 그렇다.
하지만 올해 가장 뛰어난 소품은 나이스 운동화(나이키가 아닌)가 아닐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비록 '짝퉁'이지만 행여 흙이라도 묻을까봐 항상 가슴에 품고 다녔던 백광호의 모습이 왜 그렇게도 생각나는 것일까.
#5. 영화 복고시대-'남남북녀'
올 여름 영화팬들은 '남남북녀'라는 수작(?)으로 말미암아 아련했던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됐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개인적인 생각이지만) 10여년 전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날 정도였으니. 하지만 이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최근 영화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됐던 '영화가 끝났습니다'라는 엔딩 크레딧은 단연 최고(最古)의 영화답다.
아마도 영화가 끝난지도 모르고 계속 앉아있을 관객들을 위해 저런 직설적인 엔딩 크레딧을 쓰지 않았을까.
#6. 가장 많이 등장한 대사-'황산벌' 거시기
오랜만에 실컷 웃게 만들었던 영화 '황산벌'에서 '거시기'라는 말은 몇 번 나올까? 영화를 보면서 엉뚱한 상상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도전해봐도 좋을 듯하다.
참고로 영화 중반부까지 50회는 넘겼다.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한 신마다 한번씩은 꼭 나올 정도다.
얼마 전 영화를 해외로 수출하기 위해 영어 자막을 만든다며 '거시기'를 'it'과 'that'으로 번역했다는데, 아마도 스크린 절반이 대사로 덮여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지진 않을지….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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