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역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시인 박정만도 우리와 별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시인이었을 뿐이었던 그에게 시대는 가혹한 운명을 강요했다.
1981년 국풍 행사가 요란하던 5월 어느 날, 그는 일명 '빙고 호텔'로 불리던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끌려갔다.
그리고 7년 후 43살의 젊은 나이에 시인 박정만은 세상을 떠났다.
KBS 1TV '인물현대사'는 19일 밤 10시부터 '누가 시인을 죽였는가-박정만'편을 방송한다.
박정만은 1981년 5월 이른바 '한수산 필화 사건'에 연루돼 가혹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 시인이다.
그는 시인 김소월의 계보를 이어 한국 서정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순수한 시 세계를 노래했다는 평을 받는다.
박정만은 개성 있는 시를 통해 민중의 한과 슬픔을 남도의 유장한 가락으로 담아낸 천부적인 서정 시인이기도 했다.
박정만은 '나는 사회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인물도 아니었다'는 유언을 남겼다.
시인의 마음은 현실을 왜곡하는 시대의 모순을 견딜 수 없었고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박정만과 작가 한수산은 책을 출판하려는 목적으로 한두 번 만난 것이 고작인 관계였다.
그러나 박정만은 소위 '한수산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고문과 함께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겪었다.
고문으로 인한 고통을 겪은 후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단 20여 일 동안 무려 300여 편의 시를 쏟아내는 초인적인 능력을 보였다.
이 시기 그는 기존의 허무주의를 넘어 현실 비판과 참여의 의지를 거침없는 시어로 표현했다.
그리고 서울 올림픽 폐막식 날인 1988년 10월 2일 그는 자신의 봉천동 셋집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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